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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6/08/15 07:39:22 |
Name |
퉤퉤우엑우엑 |
Subject |
[소설] 殲 - 4.If |
정신이 들었다.
몸은 침대 위에 눕혀져 있다.
아직 눈은 뜨지 않아서 여기가 어딘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아마 당연히 내 방 이겠지.
쓰러진 것까지는 기억이 난다.
좀 더 정확히 기억해 보려다가, 다시 두통이 일어날 느낌이 들어 그만 두었다.
지금이 몇시인지도 알 수 없지만-그렇다기보단 귀찮지만-그냥 이대로 잠드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그러는 편이...
"일어났네요."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설마. 잘못 들었겠지.
"좀 일어나봐요."
이젠 누군가가 내 몸까지 흔들고 있다.
그렇구나. 난 잠들어서 꿈을 꾸고 있는걸지도 몰라.
누가 나왔나 어디 한번 보기나 하자. 눈을 뜨면-
태일...인가.
내 왼쪽에 있는 책상의 의자를 빼서 침대 옆에 놓고 앉아 있다.
앉아서, 말없이 무표정한 얼굴로 날 계속 주시하고 있다. 왜 저러고 있는거지?
몸까지 일으켜 변화라는 걸 주면 뭔가 달라지려나.
침대에서 상체만을 일으켜 세우고 다시 태일을 쳐다봤다. 아직도 그대로.
"너 여기서 뭐하고 있는거냐?"
결국 내가 먼저 질문을 던졌다.
태일은 기다렸다는 듯 막힘없이 대답한다.
"선배 집에서 뭐가 떨어지는 소리가 나길래 들어왔더니 선배가 쓰러져 있었잖아요. 그래서 이렇게 살려줬는데, 그게 무슨 말입니까."
음, 저건 확실히 미리 준비해 놨던 대사야.
"문도 잠그지 않고 뭐했던 거에요? 선배야말로."
아, 맞아. 확실히 문을 두드리던 사람이 태일이었던 건 기억이 난다.
꿈도 조금은 현실과 연관성이 있는건가.
"그보다, 왜 전혀 놀라지 않는거죠?"
"뭐?"
왜 놀라지 않냐니.
확실히 실제로 이런 일이 있다면 어떻게 들어왔고 왜 들어왔는지 궁금한 것도 많고 처음 봤을 때 놀라기도 했을거야.
하지만 이런 건 꿈인 데다, 꿈에선 사방이 녹색이라던가 팔다리가 잘려 있는 것들을 보지 않는 이상 그렇게 놀라지는 않게 되어버린 나다.
"그야, 이건 꿈이잖아."
"에?"
내가 꿈속에서 꿈이라고 느낀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 만큼 저 사람이 여기에 있게 될 확률은 극히 적으니까.
그런데, 갑자기 태일이 날 이상하다는 눈으로 쳐다본다.
"이게 왜 꿈이에요. 어디까지나 충분히 현실인데."
이런 건 또 처음 겪는건데. 현실이라고 주장하는 건.
"현실이니까 이런 지저분한 방도 그대로 있고,"
내 방에서 가장 너저분한 곳을 찾아 가리키려다가 찾지 못하고 결국 방 전체를 말하는 듯 팔로 큰 원을 그렸다.
"저도 제 정신인데다가,"
마치 강하게 강조하듯이 말한다. 당신, 누가 모른다고 하진 않았어.
"아야!"
갑자기 팔에 아픔이 느껴졌다.
누군가가 강하게 꼬집은 느낌. 아니, 누군가랄 것도 없는건가.
"아픔이란 것도 있잖아요."
"이봐. 이번 건 상당히 아팠어. 뭔가 감정이 실린 채로 한 짓이라고."
"평소엔 이렇게 못하니까요."
이제서야 무표정한 얼굴을 치우고 미소 짓는다.
내가 자신을 보고 놀라지 않아서 지금까지 무섭게 그러고 있었던 거라면 정말 특별한 의미에서 대단한 녀석이라고 해야하나.
태일이 뒤를 돌아보며 방을 둘러보고 있다. 잠깐만 봐도 지겨울 방일텐데 아까부터 보고 있다는 게 신기해.
내가 봐도 누구 방인지 참 한심하다.
"선배. 하나 물어볼 거 있어요."
"어? 응...말해봐."
또 다시 미소가 살짝 사라졌다. 이 자식. 요즘 들어 부쩍 진지해질 때가 많아 졌어.
"음...아, 그러니까..."
답지않게 망설이고 있다.
손가락을 꼼지락 거리면서 내 얼굴을 보지 않고 아래쪽을 주시한다.
잠깐, 아래쪽을 주시한다...는 거.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아니에요. 지금은 몸도 안좋으니까 내일 물어볼께요."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오늘은 이만 갈테니까 푹 쉬고 내일 봐요. 또 하루에 두번씩이나 쓰러지지 말고."
"내가 두번이나 쓰러졌었나?"
무의식적으로 중얼거렸다.
"아침에 한번, 지금 한번해서 두번. 맞잖아요."
아니지. 공원에서 한번 정신을 잃었으니까 세번...
-찌릿
약한 두통이 느껴졌다. 역시 이런 생각은 안하는 편이 낫겠어.
이번에 정신을 잃은 것도 공원에서의 일을 생각하다 그런거니까.
"그럼 이만 가볼께요."
뒤로 돌아선다. 목의 뒤쪽에는 역시나 목걸이가 걸려 있다.
잠깐. 목걸이도 어디선가 본 것 같아. 학교에서 매번 보던 상황말고, 오늘은 또 다른 어디선가.
뚜벅뚜벅 걸어나가는 뒷모습이 몇걸음 되지 않는 공간인데도 꽤 오래 있던 것처럼 느껴졌다.
'잘 자요'라고 말하고는 문을 닫고 나간다.
문이 닫히자 일으켰던 상반신까지 다시 눕는다.
"후우..."
한숨을 한번 쉬고 이런저런 생각들을 정리해 본다.
태일의 모습에서 왜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는 생각을 했을지에 대해.
학교에서 매일 보는 모습이니 그럴수도 있겠다, 라고 생각하면 편하겠지만 이번엔 왠지 모를 위화감마저 느껴진 걸.
지금은 이런 생각 같은 건 하지말고 자자. 내일 직접 물어보는 편이 빠를테니까.
p.s4화는 좀 짧습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짧게 연재하게 된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이번주는 4화만 연재되고, 다음주에 5화가 연재됩니다. 다음주부턴 연재속도를 늘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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