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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8/30 14:41
수백발 수천발이라는 건 어디서 들으셨는지...
그렇게 많이 쏴야 할 정도라면 함포 안 썼죠. 왜선은 말씀하신대로 굉장히 약골이었고 그들은 제대로 된 함포가 없었습니다. 안택선, 일본어로 아다케부네라는 함정이 그들의 가장 큰 대형전함이었으나 이 배 역시 함포를 제대로 설치하는 게 불가능하여 누각에 조그마한 소형 화포 몇 개를 달아서 쏜 게 전부였습니다. <a href=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4190 target=_blank><a href=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4190 target=_blank><a href=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4190 target=_blank><a href=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4190 target=_blank>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4190 </a> </a> </a> </a> 네이버캐스트인데 이 정도만 봐도 이해가 가실 거 같네요. 만화책 중에는 해황기라는 게 있는데 이게 범선시절 해전을 쉽게 이해하기에는 편합니다. (물론 주인공 개사기) 책은 [해전의 모든 것]이라는 책 추천 삽화도 많고 올컬러라서 보기 좋아요. 먼 고대부터 미드웨이 해전까지 해전사를 쭉 훑을 수 있습니다.
12/08/30 14:48
자세한 링크랑 답변 감사드립니다. 수백발 수천발은 트라팔가 해전 관련글에서 읽었습니다.
당시 전열함들이 80문에서 100문 정도의 포대를 보유하고 있었는데도 왠만큼 쏴서는 안가라앉는다고...
12/08/30 14:50
조선수군의 주력함 판옥선이 일본 주력함 안택선과 비교해
넘사벽수준의 우월성은 그 빠른 회피 기동력과 함자체의 단단함이죠 이순신장군은 포로 일단 맛좀가게하고 이어서 당파전법 즉 판옥선으로 그냥 일본함 안택선과 박치기를 해버려 말그대로 일본함을 부셔버리거나 두동강을 내며 일본함의 진형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거였습니다. 완전 멘붕으로 만드는거죠 판옥선이 지닌 우수한 회전력 거의 제자리에서 바로 180도 턴이 가능한 판옥선이기에 가능한 이 우수성이 제대로 발휘된거고 안택선이 얼마나 약했냐면 포를 선상에 두고 쏘질못해(쏘면 바닥이 그대로 그 진동을 이기지못하고 짜개진답니다 말그대로 주저앉아버린다고) 심지어는 배누각 대들보에 묶고 쏘았다고 합니다. 그것도 고작 2문정도를 헌데 판옥선은 전후좌우 12문인가 그렇죠
12/08/30 14:59
당파전술에 대해서는 이순신의 장계에 보이는 당파라는 표현을 곧이곧대로 해석하여 생긴 상상이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일단 왜군이 단병접전에 능한 것을 조선군은 두려워했고 실제로 백병전이 벌어지면 절대 이길 수 없었습니다. 제아무리 판옥선이 왜선에 비해 높고 튼튼하다 하나 굳이 사거리의 이점을 버리고 왜선에게 접근해서 싸울 필요가 있었을지 의문이며 이순신의 주요 전투에서 아군 희생자수가 굉장히 적은 것을 볼 수 있는데 특히 전혀 어려움없이 적을 물리쳐온 한산도전투까지에서는 정말 몇명 전사, 경상 일부 정도의 희생만을 기록합니다. 알려진대로 당파전술을 즐겨 사용했다면 과연 이 정도의 희생자만으로 승전할 수 있었는지 의문이라 저 역시 당파전술이란 말을 믿지 못합니다. 사실 당파라는 대목이 그대로 들이받아 깬다는 의미가 아니라 총포와 대장군전을 사용해 당파한다는 문장이 있는지라..
12/08/30 15:04
왜군과의 단병접전 기록 자체는 자주 있습니다. 백병전의 연이은 패전은 "패주"의 형태로 이루어 진 것이고, (조선수군 최고의 용장이던) 수사 최호나 조방장(한산해전 당시는 첨사) 김완 등은 심지어 본인이 "직접" 단병접전에 참가하기도 했습니다. 상당한 손상을 입고 표류중이기는 했지만, 세키부네에 종3품 첨사가 직접 칼들고 뛰어들어 무용을 뽐내(;;;)는 모습이 꽤나 인상적이였던지, 이전까지는 충무공 이순신에게 제대로 "찍혀" 관심사병...이아니고 관심장교;;; 정도 취급받던 김완은 이후 꽤 인정받죠.
덤으로, 당시 조선군은 육군은 지갑(종이갑옷)및 면갑이 기본이고, 심지어는 갑주 미착용 상태에서 전투가 기본인 반면, 수군은 적어도 전투원 (+ 항해요원) 다수에 한해서는 철갑을 지급했던 것으로 보이는, 현대인의 상식에는 아주 이상한 군대였지요.
12/08/30 14:57
대부분의 일본 배는 말이 군선이지 우리나라로 치면 나룻배로나 쓸만한 배들이었죠. 나무 맞으면 부서지고 돌맞으면 침몰하고-_-;
더구나 조총 이상의 원거리무기는 전무했고요. 그래서 일본군은 수적 우위를 바탕으로 철저하게 달라붙어서 백병전을 노렸고, 우리는 진형을 잡고 거리를 벌려서 함포전을 고수하다 적이 도망가면 당파하고.... 사실 명량 초반전투가 워낙 말도 안되는 개사기(-_-;)여서 그렇지, 지휘관이 왠간한 수준만 되어도 조선수군은 원래 일본수군에게 질 수가 없습니다(아오 원균-_-) 삼포왜란 때였나 왜선이 하다하다 안되니까 1:17로 달라붙고 이래서 간신히 한 척 점령하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하물며 이순신 장군처럼 흔들리는 바다 위에서 배를 손발처럼 움직이는 신의 통솔력이 있는 바에야.....
12/08/30 15:39
이건 전력의 우위보다도 시대를 뛰어넘는 수준의 앞선 전술 운용이 나왔다고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마치 한니발이 보여준 말도 안 되는 성과가 비슷하다고 봐야겠지요. 당시 조선군만 이긴 것도 아니고, 칠천량 해전이란 결과도 있었으니까요.
전열함의 경우에는 유명한 넬슨 제독조차 백병전으로 죽었습니다.
12/08/30 16:37
칠천량에서는... 사실상 전투가 없었습니다;;
애시당초 칠천량에서 전사한 조선수군 지휘관급 전사자가 없고, 인명손실도 전선 1척및 조운선(식량운반선) 1척이니 150명 정도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당시 삼도수군이 대략 2만) 당시 유군장(유격전단 지휘관)이던 조방장 김완도 물에 빠진뒤 포로가 되었다가 탈출, 이후에 조선으로 복귀하죠-_-;; 조선군이 패배한것은 통제상선(삼도수군 기함) 선실에서 기생끼고 술마시던 원균이 상황파악을 제대로 못하고 전군 후퇴 명령을 내린 탓이 9할입니다.
12/08/30 15:46
자, 급히,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당시의 화포로는 적선을 침몰시키는 게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이는 일본 배도 마찬가지였죠. 작은 배들이야 대충 깨뜨리면 알아서 떠내려가거나 가라앉겠지만, 조금만 커져도 이게 불가능해집니다. 가령 안골포 해전 때 구키 요시타카는 배에 천 같은 걸 잔뜩 걸어놓고 대장군전 등이 박히면 (무슨 방탄복 내지 공간 장갑 느낌이죠) 빼서 바다에 버리는 걸로 맞섰다고 합니다. 흘수선에 구멍 크게 뚫는다면 몰라도 격침은 불가능했습니다. 이 때문에 적을 깨뜨렸다는 것은 무력화에 가깝습니다. 화포로 적의 방패 부수고 진열 무너뜨린 후 적을 일일이 화살로 사살하거나 불화살을 쏴서 불태운 거죠. 대충 적이 무력화 됐다 싶으면 접근해서 확실히 불태우거나 나포하구요. 당파는 이런 부분에서 나왔을 겁니다. 화포로 무력화, 접근해서 부딪혀서 깨뜨리고 불화살로 정리하고 이런 식이죠. 나중에 가면 용감해져서 그냥 갖다 박은 후 화포와 불화살로 마무리, 혹은 적선에 옮겨타서 일기토도 벌이고 했습니다. 그 거리도 원거리에서 관광태우는 수준은 아니고 당시 화포의 수준 때문에 꽤나 근접해야 했으며, 적 조총에 대한 사상자가 꾸준히 나옵니다. 당장 2차 출격에서 이순신 장군이 직접 총에 맞을 정도였고 노량에서는 뭐... 그랬죠. 노리고 했는지 우연인진 몰라도 조선의 화약 무기들은 불 지르는 데 특화된 게 많고, 해전에서 이게 참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뭐 조선의 경우 왜구에 특화돼서 나포(왜구와 단병접전을? - -;)보단 불지르는 게 나았고 서양에서는 적 배 하나만 나포해도 큰 재산이 됐으니까 방법이 달랐을 수도 있구요. 아, 일본 배가 약했다는 것은 어떤 의미냐면, 그래도 깨지기는 쉬웠다는 거죠. 침몰은 안 해도 들이받거나 화포로 쐈을 때 적선이 더 많이 깨지면 마무리하기가 더 쉬워지는 거니까요. 차를 탈 때도 내구도에 따라 교통사고 당했을 때 안에 탄 사람이 어떻게 되는지가 다르잖아요? '-' 그리고 조선의 화포와 판옥선은 대형 차로 소형 차를 갖다 박는데 (...) 유리했구요
12/08/31 02:06
17세기 초반부터 티크목재를 쓰면서 유럽 전열함들의 방어력이 급속도로 강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버티는 것이고 19세기 전열함의 시대쯤 오면 장갑도 60cm가 넘지요.
판옥선의 장갑이 30cm정도로 알고 있는데 저정도면 기본적으로 방어력이 2배가 넘는다고 봐야지요. 당시 일본 함정에서 쓰던 소나무는 한국 적송 보다 비중이 작아서(밀도가 낮다=방어력이 낮다) 내구도가 약한 편입니다. 오히려 당시 조선수군은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 주포의 구경을 줄였을 정도니 말 다했지요. 초창기는 대구경이라 불릴만한 천자총통에 대함미슬이라 할만한 대장군전이 마구 등장하지만 오히려 후반 갈수록 황자총통이 더 많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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