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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2/02/28 00:12:01
Name Cherry Blossom
Subject [일반] 삶의 방향키를 잃어버렸습니다.
마지막 학기를 앞두고 있는 대학교 4학년입니다. 연대생입니다.
원래 이런 글은 웬만해서는 안 쓰는 타입인데... 좀 갑갑하네요.

올해로 스물 셋입니다. 빠른 생일이라 학교를 1년 일찍 들어갔었구요.
어렸을 때부터 저는 책 읽는 걸 굉장히 좋아했었습니다.
글로 된 책이 아니라 만화로 된 교양서였다는 게 흠이긴 했습니다만.
아무튼 그렇게 중학교까지 보내고 고등학교 들어가서 3년 버티고 대학에 왔습니다.

1년차는 정말 잘 나갔습니다. 공부하는 게 즐거웠죠.
마치 고등학교 때 완전히 잊어버린 공부하는 법을 다시 찾은 것마냥 즐겁게 공부했습니다.
나름대로 올림피아드다 뭐다 하면서 빡빡하게 보냈던 고등학교 생활이라 이해도, 배우는 것도 빨랐습니다.
왜 있잖아요. 이야기를 할 때도 자신이 아는 분야면 즐겁고 활달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거.
대략 그런 모습을 떠올리시면 될 겁니다. 지금 생각해 봐도 그 때만큼 즐겁게 공부했던 적이 없었습니다.
목표도 있었습니다. 어느 대학원이든 좋으니 즐겁게 공부하리라. 그러면서 그 때 수학을 이중전공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중전공하고 나서 생각했던 것과 다르다는 걸 깨달았지만 그 때는 미적분이 재미있었으니까요.
이런 수학이라면 내가 공부해도 될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고 달려들었습니다.
하여간에 정말 즐겁게 공부했었던 시기였습니다.

그러다가 2학년 2학기에 들어서면서 슬슬 방향키가 말을 안 듣더군요.

어째서인지 예전만큼 즐겁지도 않고 거부감이라는 게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이게 아닌데. 이런 결과를 받을 게 아닌데.
첫 시험이었던 분석화학과 고등미적분학 편미분방정식 시험을 잡쳤습니다.
2학년 1학기 때에도 이런 적이 있었으니(그 때 분석화학을 첫 시험 망치고 2, 3차 잘 봐서 A0 받아갔었습니다)
하면 되겠지, 충분히 할 수 있겠지 싶었는데... 웬걸. 하나둘씩 적신호가 오는 겁니다.
그 때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공부라는 것에 점차, 아니 완전히 흥미를 잃어버린 게.
잘 하다가 못 하게 되니까 이건 뭐 책을 쳐다보고 싶지도 않더군요.

그 상태로 또다시 2년이 흘렀습니다. 한 학기 휴학하고, 복학하고,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작살나고.
저번 학기는 정말 최악의 성적표를 받았죠.
첫 세 학기 평균이 3.7이었는데 뒤 네 학기 평균이 2.8입니다. (4.3 만점) 그 정도로 페이스가 미친 듯이 처졌습니다.
덕분에 전체 평균이 3.2... 목표한 대학원을 가기는 심하게 어렵습니다.
이 와중에 집에서는 거기 못 가면 실패한 인생이라고... 툭 던지신 것 같기는 한데, 뭔가 씁쓸하더군요.

열심히 안 해서, 놀아서 그렇다는군요. 인정합니다. 아마 저만큼 놀고 시험 친 사람도 없을 겁니다.
제가 정신연령이 심히 어린 편이라 뭐 진득하게 하지를 못합니다. 제가 좋아서 하는 게 아니라면요.
쉽게 말하면 프로가 되기는 어려운 마인드랄까요. 알고는 있는데 고치지를 못하겠더군요.

저번 학기 연구실에서 인턴을 했는데... 분명히 화학 관련, 그것도 계산화학 관련 인턴이었습니다.
제가 컴퓨터를 무지하게 좋아하는 터라 연구 분야도 계산화학으로 나가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분자 구조 계산하고 거기 계신 박사님께 결과 제출하고. 쉬운 일이었습니다. 누구라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내가 일하려니까 이렇게 짜증이 나는 건지...
솔직히 두 마리 토끼(학점, 연구) 다 놓쳤습니다.
그 때, 처음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프로가 되기는 정말로 틀린 건가.

독학으로 올림피아드 공부할 때 유기화학 하나는 끝내주게 재미있게 공부했습니다.
지금 유기화학 책을 펴면 그 때 이런 것을 배웠던가 싶기만 합니다.
고3때 수능 직전에 (지금 생각해도 미친 짓이었지만) 혼자서 편미분 중적분 공부했습니다.
지금 편미분 식을 증명하려고 하면 머리만 아픕니다.
연구실 인턴 들어가기 전에는(거기에 제 동기가 일하고 있어서 가게 된 겁니다) 부담없이 즐겁게 연구했습니다.
그 때 인턴에 들어가니까 아무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지금 들어가라고 하면 고민을 심하게 하게 될 겁니다.

뭘 하고 싶은지도 이제는 잘 모르겠습니다. 주변의 친구들은 졸업하고 누구는 졸업생 대표연설을 하고 있는데...
실패한 인생이라는 게 이런 거였나. 이럴 때 쓰는 표현이 인생 말렸다고 하는 거였나.
요즘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그렇게 이야기하고 다닙니다. 수학 이중전공하면서 인생 꼬였다고.
실은 거기에 연애 문제까지 겹쳐서 더욱 골치아파진 상황이라 갑갑하기만 한 거긴 하지만요.
(여자를 대하는 게 너무 어렵습니다. 그래서 속만 끓이고 답답해하는 일이 많아요. 어쩌다 컨택트를 해도 답이 안 오고...)

어쩌면 이해 못 하실 분도 있으리라 생각하고, 또 제가 너무 배부른 소리를 하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만,
나름대로 위쪽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바닥으로 떨어지게 되니까 절망감도 더 커진 듯합니다.
대공황 때에 미국이 가졌던 절망감이 다른 나라에 비해서 훨씬 컸던 것처럼요.

시간은 자꾸 가는데, 좋지 않은 때에 방향키를 잃고 고전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런 걸 딱히 이야기할 상대도 없습니다.
집에서는 거는 기대도 기대지만 어쩐지 답이 너무 뻔하다고 생각되어서 이야기를 안 하게 되고...
(제가 한 달 동안 집을 떠나서 밖에서 일했던 적이 있는데, 새해 첫 카톡이 장학금 신청하라는 카톡이었습니다. 얼마나 허탈하던지...)
몇몇 친구에게 털어놓으려고 해도 막상 털어놓으려니까 순간적으로 입이 봉해지는 듯하더군요.

책을 닥치는 대로 질러도(한 달에 최소 10만원 이상 구입합니다), 헬스장에 가서 운동을 해도,
혼자 있을 때 피아노를 쳐도, 핸드폰을 붙잡고 게임을 해도, 그때뿐.
오히려 목표를 잃었다는 공허감만 더 커진 채로 돌아오더군요.

꿈이 교수입니다. 그게 안 된다면 교사로 일하는 겁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랬습니다.
가르치는 게 재미있습니다. 물론 똑똑한 사람을 가르치는 게 즐거운 거긴 합니다만.
가르치면서 내가 번뜩번뜩 떠올리는 아이디어로 연구를 할 수도 있다. 그러면서 생활할 수 있다. 얼마나 좋습니까.
그게 제가 교수를 하고 싶은 이유였는데...

지금은 왠지 그런 느낌이 듭니다.
그런 이야기들은 그냥 이루어질 수 없는 공상을 적어놓은 책의 한 페이지일 뿐이고, 그나마 줄거리마저 흐려지고 있다고...
하다못해 대학원도 타 대학원을 지망하고 있지만 가능성은 거의 제로다, 이런 생각밖에 안 듭니다.
동 대학원을 진학했다가는 부모님의 실망과 비난은 둘째치고 등록금을 낼 형편이 안 되니...

어떻게 하면 공허감을 없앨 수 있을지... 난감합니다.
아무래도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되는데 자꾸 매달려야 하는 상황에 있는 것 같아서 더욱 난감합니다.
꿈도, 대학원도, 연애도, 집안도, 연구도...
다 불가능한데, 어림없는데 나 혼자서 쇼하는 거 아닌가. 애당초 안 될 일 아니었나. 자꾸 그런 생각이 듭니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하는 건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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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름발이이리
12/02/28 00:14
수정 아이콘
첫학기 평점이 0.75인 사람도 잘 살고 있습니다. 힘내시길.
12/02/28 00:15
수정 아이콘
좀 돌아가도 괜찮은 나이신거 같은데..
Marioparty4
12/02/28 00:19
수정 아이콘
대학생들은 나이와도 별도로 학년이라는 층위에서 많이들 고민하는 것이 사실이지요.
힘들고 괴로우시겠지만 조급한 마음을 버리는게 좋지 않나 생각합니다.
'주변에서는 ~~하니까' '같은 학년인 누구는 ~~이니까' 등으로 생각하시면 더더욱 지금 상황을 비관적으로만 보게 될 것 같네요.

너무 깊게 생각하지마시고 차분히 마음 가라앉힌 다음 앞으로의 진로와 계획을 천천히 짜보시길 권유합니다.
도움이 될 지는 모르겠지만 이전의 행보를 무시하고 이후에 어떻게 할지만 고민하는 것은 어떨까요?
기억상실증에 걸린 사람처럼 이전까지의 일을 모두 잊고 앞으로는 이렇게 해봐야지.. 하는거 말예요.

흔들리는 20대의 중심, 진로와 관련해서 고민하시는 분들에게 모두 해당될 거라 생각합니다.
힘내세요.
뿌지직
12/02/28 00:22
수정 아이콘
23이면 아직 뭘 해도 될 나이입니다. 전 요즘 20대 초반분들 보면 너무 부럽더군요.. 그만큼 후회되는 일도 많았구요.. 학교는 더 다니시더라도 학점을 메꾸시고, 대학원이든 교사든 도전해 보시면 괜찮을거 같은데요..
에휴존슨이무슨죄
12/02/28 00:23
수정 아이콘
23살에 4학년이면...08학번이신가요? 군대를 안가신거 같은데 안가도 되는건지, 대학원 가시니까 뭐 방산?을 하시려는건지 아니면 그냥 졸업하고 가시려는건지 모르겠지만 그것부터 해결하는게 좋지 않을까요...안가도 되시는거라면, 남들에 비해서 시간이 꽤나 많이있는것 같은데 휴학해보시는것도 나쁘진 않을것 같은데...

같은 학교 08 공대생이 여기 있습니다만 전 졸업하려면 남은학기 전부다 18~19 에 계절까지 뛰어야 하는 수준이라...재수강때문에...조금 아니 많이 부럽네요 ㅠ
12/02/28 00:25
수정 아이콘
전... 요즘 회사에 들어오고나서 삶의 즐거움을 잃어버린 것 같더군요...
남들이 다들 부러워하는 회사를 막상 들어왔는데... 후... 요즘 참 힘들고 삶이 재미없더군요...
특히... 회사 선배가 저희집에서 잠시 묵고 난뒤로 부터는 제 사생활과 삶이 모두 다 사라져버린 기분이에여...
12/02/28 00:28
수정 아이콘
매우 무거운 질문이네요... 제가 아직 오랜 삶을 살지 않았지만 저는 연구원이 되고 싶다는 꿈때문에 학교 실험실에 1년간 있다가

비슷한 질문을 하고 실험실에서 나와 학회장도 해보고 국가기관 실험실에서 6개월이 넘도록 인턴으로도 있어보기도 하였습니다.

지금은 그 곳에서 나와서 제가 가고 싶어하는 곳이 바로 이런 곳일까? 하는 마음으로 다른 곳에 노크를 하고 있습니다.

저의 상황은 이렇구요... 제가 생각하는 이런 질문에 제일 좋은 답은... 노엘겔러거가 자신이 기타를 치게된 이야기를 하는 인터뷰로

10년인가? 5년인가? 자신이 사랑하고 하고싶은 일에 그정도로 미친듯이 투자하고 안될 것 같을때 그때 시원하게 포기하고 다른 곳을 찾아라

성공하면 전문가가 되는 것이고 실패해도 난 이렇게 순수하게 열정을 가지며 일을 했다는 성취로 다른것에 열심히 할수 있다는 것이죠...

저 역시 아직 보잘것 없는 20대이지만 5년후... 그리고 10년후에 만에 하나 생길지 모르는 자식이나... 가족들에게 자신있게 말할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시간은 cherry blossom님의 생각처럼 부족하지 않아요... 충분한 생각과 행동을 해도 괜찮을 정도의 시간이 남으신거 같아요

아직 24살이시니까...(빠른이라 하셔도 친구들의 나이로 계산했습니다.) 20대에 이런 고민들은 제 후배들도 저도 제 선배들도 비슷한 시기에 거의 다 하신거 같아요..

정상적이라고 생각하시고 침착하게 천천히 생각해보세요... 너무 서두르시지 마시고 자신이 솔직하게 왜 그런가... 무엇이 하고 싶은가...

이 질문에 답은 20대에 낼수 있는게 아니지만 도전하고 싶은곳에 도전하는 그 열정을 보는게 20대라고 보는 1인입니다...

너무 내용이 길고 산으로 막 뻗어가는거 같아 부끄럽네요... Cherry Blossom님의 멋진 미래를 바라며 글을 마칩니다.

대한민국 20대 화이팅!!
고양이맛다시다
12/02/28 00:34
수정 아이콘
2.9X였던 저도 대학원 왔습니다. 힘내세요! 충분히 가능하실거에요.

교수님 미리 찾아뵙고 인사드리고. 어떤 주제에 대해 공부해보고 싶은지 말씀드려보세요.
No21.오승환
12/02/28 00:35
수정 아이콘
무책임한 답변입니다만..

먼가 스스로를 돌아볼 시간이 필요하신거 같은데

군대 합법적으로 빼거나 면제가 아니시면 어차피 갈 군대 지금 가는것도 괜찮아보입니다

군대가면 잃어버리는게 90%지만 정말 몇안되게 얻는 것중 하나가 바로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고 생각을 많이 할수 있다는 점이지요
프리템포
12/02/28 00:41
수정 아이콘
저도 일단 군대를 추천합니다.
정말 생각은 많이 할 수 있는 곳이죠
Demon Hunter
12/02/28 00:47
수정 아이콘
아직 자네는 어리다네..
낭만토스
12/02/28 00:49
수정 아이콘
글쓴이의 현 상황이 부럽네요
白首狂夫
12/02/28 00:51
수정 아이콘
저도 부럽습니다..-_-; 허헛
Wizard_Slayer
12/02/28 00:58
수정 아이콘
일단 저도 부럽네요.. 그리고 심지어 이분은 굳이 군대갈필요없이 석 박사로 군대체복무도 가능해보이네요..

어쨋건 학점을 망친시점이고 삶의키도 잃고 무엇보다!! 이성문제도 있고(만약 헤어져서 쏠로라면)

진짜 우스개소리도 아니고 정말 진지하게 군입대 추천드립니다! 저같은경우도 군대에서 엄청나게 철이든케이스고
3월에 제대해 칼복학해서 2학년 1학기는 2.8 나와 망했지만
군대에서 배운정신력과 한학기동안 학교 시스텝 파악완료후
그이후 2학년2학기부터 4학년1학기까지 장학금타고 다녔습니다
저도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던 타입아니지만 군대가 확실히 뭔가 정신차리게하는데 도움에되는것같아요 어차피가야되고;;

참고로 군대가실꺼면 한사람당 한번밖에 쓸수없는 카츄사지원 해보시길..전 몰라서 못해본게 억울; [m]
hm5117340
12/02/28 01:09
수정 아이콘
저도 첫발에 딱 드는 생각은 부럽다는 느낌이군요. 그정도의 시기라면 제로에서 시작해도 늦지 않을때입니다. 물론 본인께서는 벽에 막힌듯 꽤 갑갑한 심정이실듯 하나 말이죠..말씀하신 고민들은 딱히 정답이랄껀 없지만 보통 시간이 지나고 나서 돌이켜 보면 그냥저냥 하다보니 어떻게든 해결이 되더라..식으로 회상하게 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어쨌든 힘내시길.
루크레티아
12/02/28 01:12
수정 아이콘
올 해 스물 아홉이고, 전 스물 셋에 미친듯이 놀아제끼고 있었네요.
누구든 길은 어디든지 나오기 마련입니다. 당장은 정말 힘들고 불안하겠죠. 하지만 꼭 길은 나옵니다.

당장 대학원에 가고 싶으시죠? 그럼 그 길로 돌아보지 말고 그대로 돌진하세요. 반드시 됩니다.
sad_tears
12/02/28 01:35
수정 아이콘
(여자를 대하는 게 너무 어렵습니다. 그래서 속만 끓이고 답답해하는 일이 많아요. 어쩌다 컨택트를 해도 답이 안 오고...)
12/02/28 01:45
수정 아이콘
자기 하기 나름입니다. 저도 화학 전공입니다만 공부에 재미가 없어서 저는 졸업할 수 있을지도 막막했습니다.
군대며 알바며 졸업전 취직까지 방황 많이 했지만, 복학하여 2.X 평점으로 자대 대학원가고 박사는 유학하고 현재는 나름 괜찮은 학교에 박사후 연구원으로 있습니다.
어학연수나 여행 등으로 학교 울타리 밖에서 조금 휴식을 취해 보는 건 어떨까 합니다. 윗분들 말씀대로 나이가 젊으신데 안되면 좀 돌아가도 되죠. 저처럼 2호선 시청에서 동대문운동장 가는데 시계방향으로 돌아온 사람도 있습니다.
블루마린
12/02/28 01:55
수정 아이콘
며칠 전에 졸업한 화학 전공자입니다. 화학과란 곳이 참 이리저리 여러 분야에 기웃거리고 들이댈(?) 구석이 많기도 하지만 그만큼 막막해지기도 하는 곳이지요. 님과 같은 슬럼프를 저는 3학년 1학기에 겪었는데, 눈 딱감고 현역으로 군대 2년 다녀왔더니 진로에 대한 생각이 잡힘과 동시에 내려갔던 학점도 복구가 되었습니다. 윗분 말씀대로 90%를 잃는 군대라지만, 님과 같은 상황이라면 잠깐(...) 머리 식히러 다녀오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합니다.

P.S) 음 그리고 대학원은.. 유학이나 전문대학원 생각하시는 것 아니라면 PKS 화학계열은 지금 학점으로도 충분히 가능하실 것 같은데요.
12/02/28 02:04
수정 아이콘
순탄하고 나름대로 남들에게도 그렇고 내 자신에게도
자신있었던 인생도중에 첫 실패에 적잖이 당황하신것 이 아닌가 싶습니다.
너무 갑자기 찾아와서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확고한 꿈을 가지고 있고 그에 대해 노력하며 살아가는 분들 중에서
그렇게 갑자기 무너지는 분들을 가끔 봅니다.
남들과는 상관없이 내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너무나 뚜렷했던 탓 입니다.
어디에 핑계를 댈수도 없는 오롯이 내 능력에 따른 결과였기 때문입니다.

공부 자체가 좋아서 평생을 연구하고 가르치고 공부를 하며 살아갈 생각도 하셨다가
시험점수가 안나왔다는 이유로 흥미가 떨어지셨다 하시면
내 인생이었고 취미였고 친구였고 즐거움 이었던 공부와 책 에게 미안하지 않으신지요.

특별한 이유없이 사랑했던 연인이 질리고 싫어지면 헤어지고 싶은 이유를 만들어내듯
꿈도 자신이 없어지면 꿈을 이루어지지 못하게 될 이유를 찾게 됩니다.
이제는 뭘 하고싶은지도 모르겠다는것은 모르고 싶어지신건 아닌지요.
해내지 못할것 같은데 그럴수록 자꾸 하고싶어지는 것을 이제는 모른척 하고 싶은건 아닌지요.
이유를 찾아내기 싫을때 가장 쉬운말이 모르겠다 입니다.
아무 의미도 핑계도 될수 없는 말이죠. 자기위안 조차 되지 않을겁니다.

지름길 은 없습니다.
무언가를 할 생각이 지금 있다면
그건 다시 시작하는것 뿐이고 시작이란건 책을 펴는것 이전에 인정하는것 에서 부터가 시작입니다.
내가 이정도 구나 내 실력이 이정도 였고 내 의지가 이정도 였구나
내 주변을 포함한 내 현실이 이정도 이고 나라는 인간이 이정도 였구나
인정하고 모두 내것으로 받아들일수 있다면
앞으로 찾아올 다른 실패에는 조금 더 의연하게 맞이할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12/02/28 02:04
수정 아이콘
삶의 방향키를 확실히 쥐고 있는 사람은 누가 있을까요. 대학 시절 엉망으로 보내고, 고민도 많이 했고, 취직 후 일하다 보니 어느새 이십대의 마지막 해입니다. 아직도 제가 원하는 삶을 모르겠고 고민이 많아요. 다만 확실한 건, 공허하다 생각하면 무슨 일이든 공허해 지는 것 같습니다. 가끔은 너무 삶에 의미와 목표를 부여할 필요는 없는 것도 같아요.
Absinthe
12/02/28 07:07
수정 아이콘
대학시절을 거의 한국이라는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면서 지냈습니다.
나이가 동갑이 아니면 친구가 될 수 없는것도 힘들었고, 좋아하는 농구를 해도 여자라는 이유로 이상한 사람 취급받고...
해외에서 성장기를 보냈기에 힘든것도 있었지만 그보다도 원래 기질/성격/사상이 한국과는 다른면이 꽤 많아서 힘들어서
휴학도 밥먹듯이 하고, 전공도 뭘 해야할지 몰라서 서로 관계도 없는 수업들 듣고... 결국 선택한 전공도 별로 실용적이지 못한
국제법 + 심리상담 이었습니다. 게다가 은둔생활 / 연극배우 / 교내사이트 키워 활동까지 해서 졸업도 무지 늦어진.....
이정도나 되야 정말 대학생활 제대로 허비한거 아닐까요? (하핫)

그래도 잘 하는것으로 한국에 있는동안 꾸준히 알바하고 실력을 다듬어서 지금은 좋은곳에서 일하고 좋아하는것을
계획할 여유도 있습니다. 아직은 고민하고 조금 멈추어서도 괜찮을 나이입니다.

찬찬히 생각해보시고 마음의 목소리에 귀 귀울여보세요.
급해지고 남과 비교해서 좋을것 하나 없습니다.
Around30
12/02/28 07:36
수정 아이콘
적어도 머리가 나쁘진않으실테니 문제점은 자가자신이 제일 잘아실거라 생각합니다.
다만 의기소침해진 또는 의욕이 없어진 자신의 삶에 새로운 자극과 엔진이 되어줄 무언가가 필요하겠군요

제가 드릴결론은 '연애하세요' [m]
홀리구이
12/02/28 09:20
수정 아이콘
글쓴분과 비슷한 삶의 경로를 살고 있습니다. 너무나 공감합니다.
제가 1-2년쯤에 고민하면서 느낀바로는.....

그냥 살면서 제일 덜 후회하려면 어떻게든 석사를 시작해서 학점세탁+더 좋은 박사과정 or 회사로 가는 수 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석사도 안가고 취직도 안되면 말그대로 꼬입니다. 물론 다시 시작할 수는 있지만 지금까지 함께해온 친구들 수준에 맞추려면 상당한 자괴감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움직이기가 힘들다면 연애+여행+방황을 하면서 자신을 찾는 노력을 해보시는게 어떨까 생각합니다.
중고등학교 우등생+명문대입학 테크를 타다보면 나는 없어지고 주변의 기대로만 인생이 흘러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차분히 생각해보시고 길을 모색해보세요.

그런데, 제가 본 대부분의 경우에서는 공부하던 사람은 공부하는 게 제일 맞습니다.
밴드한다고 몇년 찌끄려보니까... 아... 내가 공부를 해서 그나마 먹고 사는 구나 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화이팅 입니다 !
Cherry Blossom
12/02/28 10:36
수정 아이콘
많은 분들이 댓글 달아주셨네요.
조언 정말로 감사드리고, 조급함을 먼저 내려놓는 게 좋겠네요.
처음으로 다시 돌아갔다고 생각하고 후회없이 보내려고 합니다. :)
다시 한번 많은 조언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12/02/28 11:26
수정 아이콘
살다보면 누구나 슬럼프는 있습니다. 글쓰신 분은 늦게 겪고 계신겁니다. 그동안 나름 승승장구 해왔겠지요..
고등학교 때 까지는, 그럭저럭 평균적인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게 됩니다. 어느 정도만 해도 그 중에서 탁월할 수 있지요.
하지만, 대학에 들어가면, 자기와 비슷한 수준의 사람들만 주변에 있게 됩니다. 즉, 뼈를 깎는 노력을 해도 그 중에서 상위권이 되는게 힘들어요.
게다가, 그 상황에 놓이면, 자기보다 잘난 사람들만 보입니다. 하지만, 한 발 물러나서 보면, 학사경고를 맞는 친구도 있고,
동아리 활동, 학과 활동, 취미생활 등에 미쳐서 성적은 간신히 졸업할만큼만 받고 학교를 다니는 친구들도 있고,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면서 현실을 도피하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다 그런거에요...

"난 이 정도면 잘 하고 있어!" 라는 마음가짐부터 가지셨으면 합니다. ^^;;
(참고로... 학사경고를 2 번 맞았던 제 동기는... 지금 박사과정에 있습니다.)
김치찌개
12/02/29 10:33
수정 아이콘
힘내세요 화이팅!

그리고 부럽네요 하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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