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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2/02/28 00:04:31
Name Marioparty4
Subject [일반] (스압)가족이야기 - 태양, 금성, 그리고 화성과 명왕성(1)
가족 이야기
- 태양, 금성, 그리고 화성과 명왕성

  아버지가 돌아가신 그 날, 나는 딱히 슬픈 기분이 아니었다. 그저 멍하니 아버지의 영정 사진을 바라보며 ‘사진 찍을 일도 없었을 텐데, 어찌 알고 미리 준비했을까..’라는 바보 같은 생각을 할 뿐이었다. 그리고 옆에서 형은 묵묵하게 오는 조문객들을 맞이하며 담담하게 인사를 나눌 뿐이었고. 상을 치르며, 그리 많지도 적지도 않은 수의 친구들에게 일을 알렸고 친구들은 멀리 서울에서부터 오기도 하며, 가까이에서 당장 달려오기도 하며 나를 위로해주었다. 이럴 때를 대비해 사귀어둔 친구들은 아니지만, 적지 않은 수의 친구들이 온 것과는 달리 형은 늘 친구 이상의 친구라 할 수 있는 사람이 한 명만 왔다. 직장 동료들도 많이 왔지만 그 중에서 형에게 ‘친구’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역시 그 사람 한 명밖에 없던 것 같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관식을 위해 아버지를 관 속에 누일 때 나는 처음으로 울었다, 하염없이 울었다.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지만 그저 울기만 했다. 옆에서 쓰라린 눈빛으로 아버지의 시신을 바라보는 형과는 대조적으로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보일 체면 따위 신경 쓰지 않고 온몸으로 울었다. 이 와중에도 하관식을 기독교식으로 하되, 어떤 것을 더 강조할지 논의 하고 있는 주변 사람들에게 살의 이상의 분노를 느끼며 평생 흘릴 수 있는 눈물을 다 쏟아내었다. 아버지의 고향으로 돌아가 하관식을 할 때 이상하리만치 나는 침착해졌다. 관 안에 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볼 수 없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이때는 반대로 형이 울었다. 평소에 울기 좋아하질 않는 형이 무언가에 홀린 듯이 울었다. 우린 정말 바보다. 이럴 때 만이라도 같이 울고 같이 기분을 나눌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같이 이야기를 하면 좋을 텐데. 우린 왜 이다지도 달라서 아버지가 돌아가신 그 날에도 이렇게 바보같이 행동할 수밖에 없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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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태양계는 각각의 행성이 있고 각각이 하나의 그림을 이룰 때 아름다운 것이다. 화성의 아이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자신의 행성만이 태양계의 전부인 줄 알았다.

  이야기를 들으며 어렴풋이 알 수 있을 뿐이라 이전의 가족에 대한 기억은 꽤나 단편적이다. 뚜렷이 형상화된 가족의 모습으로서 내 기억에 박혀있는 최초의 기억은 ‘한창 행복할 때의 화목한 가정’의 시기가 이미 다 지나버린 때였다. 어머니 말씀으로는 한 때 우리 잘 살았단다. 정말로 잘 살았는지 아니면 무리를 한 것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어렸을 때 무언가 부족해서 힘이 들었다거나 모자랐다는 것은 없었다. 아니, 확실히 ‘차고 넘치게’ 부모님으로부터 혜택을 받으며 살았다. 하지만 물질적인 풍요가 가정의 화목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가족에 대한 기억의 시발점으로 돌아가 그 때의 모습을 떠올리자면 허구한 날 싸워대는 부모님과 그것을 따라하듯이 미친 듯이 싸워대는 형과 나의 모습이다. 가족 넷 다 정말 ‘한 성질’하는 사람들이라 절대로 양보, 물러남이 없다. 어떤 경우,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 할 말은 다한다. 성향을 얘기하자면 극과 극인데 가족이 4명인만큼 우리는 4방향에서의 극을 담당하는 독특한 가족이었다. 들은 얘기를 정리해서 내 나름대로의 기억과 접붙여보니, 본격적으로 불화가 시작된 것은 사람이라면 무조건 좋아라 하는 아버지가 대뜸 보증을 서주고 말아먹게 되면서 운영하던 자그만 회사가 도산이 되고 나서부터랄까. 믿었던 사람으로부터의 배신과 갑자기 나락으로 떨어진 충격으로 인해서인지 아버지는 그 날부터 주구장창 술을 드시기 시작했고, 술을 드시고 나면 어김없이 집에 돌아와서는 집을 거나하게 한번 휘저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어머니도 처음에는 어느 정도 이해를 하셨지만 1년이 지나도, 2년이 지나도 늘 같은 양상인지라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참을 수가 없었고 매일 밤 9시 뉴스를 보는 듯한 기분으로 나는 부모님의 싸움을 봐야만 했다. 그렇다고 해서 싸움을 마냥 구경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싸움의 처음과 끝을 제대로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어릴 때는 10시가 되기 전에 무조건 잠에 들곤 했는데 어느 순간엔가 무슨 소리에 잠이 깨면 어김없이 부모님은 안방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높여가며 싸우고 계셨다. 그렇게 한 번 잠이 깨면 모든 걸 잊고 잠들기 위해서 베개로 귀를 막아가면서 최대한 몸을 웅크리고 발악을 했다. 보기 싫었다. 왜 싸우는지 따위 알고 싶지 않았다.  

‘왜 우리 집안은 이 따위야, 왜 우리 가족은 이 따위야. 이런 집안 정말 꼴도 보기 싫어.’

  그렇게 속으로 수도 없이 되뇌며 잠에 빠지길 간절히 기도했다. 두 번째 잠에서 깨고 나면 초토화된 집안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고, 안방에 가면 어머니는 붉게 충혈 된 눈으로 (가끔은 울고 계시기도 하면서) 어딘가 나갈 준비를 하고 계셨고 차가운 말투로 ‘밥은 해놨으니 제 때 알아서 챙겨먹어라’고 하실 뿐이었다. 빌어먹을 집안, 책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하고 화목한 가족이라는 것은 다 개소리라며 나는 안에서부터 철저히 삐뚤어지기 시작했다.
  중학교 3학년이 되기 전까지 나는 하루하루를 최대한 즐겁게 ‘놀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했다. 어린 꼬마 아이가, 그것도 남자 아이가 생각 없이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 즐겁게 놀기 위해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한 가지에 빠지면 미친 듯이 몰두하는 나의 성향을 감안해 그 무엇인가를 찾기 위해 어릴 때부터 노는 것에 관해서 이것저것 알아보았다. 그 중에서 친구도 필요 없이 혼자서 놀기에 최고인 것은 역시 게임뿐이더라. 아주 어렸을 때부터 오락실에 가서 오락을 즐기며 열심히 하고 있노라면, 어머니가 나를 잡으러 와서 열심히 도망갔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나는 컴퓨터와 오락실 게임의 두 가지로 하루하루를 아무 생각 없이 즐겁게만 살기 위해서 노력했다. 노력하고 또 노력했다. 중학교 때 심한 수준의 집단 따돌림을 당한 것, 소위 말하는 왕따가 된 것은 친구를 두지 않고서 혼자서 생활하는 나의 생활방식으로 인해서인 것일지도 모르겠다(아니 필경 그 때문이다) 왕따를 당하면서 쌓인 울분을 다시 게임을 하며 풀었고, 나는 별다른 일탈을 보이지 않아도 속에서는 그 누구도 제어할 수 없을 만큼 삐뚤어졌고, 나만의 세계를 만들고서 아무도 침범하지 않길 바랄 뿐이었다. 생각해보면 중학교 때 정말 아이들에게 지독히도 당했다. 신기한 것은 가끔 대구로 돌아가서 동네를 걷다 보면 그 때의 중학교 동창들을 만날 수 있다. 그 녀석들도 나도 옛날 일은 까맣게 잊고서 그냥 즐겁게 인사하고 웃는다. 아무런 악감정이 생기지 않는 것은 따돌림의 근본 원인이 나에게 있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중학교 3학년이 되기 얼마 남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어느 날, 어머니는 심각한 목소리로 방 안에서 게임에 열중하고 있는 나를 부르셨다. 무시하고 게임을 하려고 했지만 어머니의 목소리가 여느 때와는 달리 심각했기도 했고, 그 심각함이 단순히 가정의 불화와 같은 슬픈 연유에서의 성질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기에 별 말없이 컴퓨터를 끄고 마루에 앉았다. 어머니는 담담하면서도 호소력 짙은, 그리고 쓸쓸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씀하셨다.

‘○○아, 캐나다에 잠시 다녀오지 않을래?’

  ..노망이 나셨나, 아니다. 그런 건 분명 아니다. 다만 그 말을 들을 당시의 나로서는 캐나다에 다녀오라는 말이 뜬금이 없을 뿐더러 어머니가 무슨 생각으로 나에게 그런 말을 한지도 모르겠고, 이 말의 배경에 숨어져있는 사실이 무척 궁금할 따름이었다. 매우 짧은 시간 동안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나를 알아보셨음인지 어머니는 이내 말을 이으셨다.

‘아빠 위로 큰 고모 계신 건 알지? 왜, 효진이랑 효주 맡고 계신 분 있잖아. 고모가 도와주신다니 한 번 가보렴.’

  이 말로 어떤 바람이 불어서 가라는 건지는 알 수 있었다. 집안에 생각 없이 놀고만 있는 애들이 두 명 있으니 부모님 생각에는 얼마나 골치 아프랴. 안 그래도 콩가루 집안인데 자식마저도 별 다른 꿈과 목표 없이 하루하루를 소비하고 있을 뿐이니 어머니의 심정을 알만 했다. 그렇지만, 캐나다를 간다고 뭐가 달라지려나. 당장엔 이 콩가루 집안 분위기부터 어떻게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쯤 어머니가 다시 말씀을 하셨다.

‘○○아, 너 나중에 커서 뭐가 되고 싶니? 아니, 엄만 널 다그치고 싶은 게 아니다. 그렇다고 널 욕하는 것도 아니야. 엄마가 하고 싶은 말을 잠시만 들어주었으면 한다. 우리 집안 형편이 어떤 줄은 네가 어리다고는 해도 대강 알지? 엄마는 너무 미안하단다. 네가 나중에 커서 무엇이 되고, 무엇을 할 건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네가 크고 내가 죽게 되어도 우린.. 아니, 엄만 너에게 줄 것이 아무 것도 없어. 유산은 뭔 줄 알지? 엄마가 부자였다면 너에게 많은 재산이라도 줬을 텐데 그럴 수가 없는 상태야. 오히려 유산 상속을 하게 되면 이 어마어마한 빚만 너에게 떠넘길 뿐이고. 엄마가 하고 싶은 말은 네가 나중에 커서 집안에 있다고 하더라도 엄마가 너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말이야. 그 점에 대해서는 참으로 미안하게 생각하지만 엄마는 결국 너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에 ○○이 네가 크고 나면 네 인생은 네가 알아서 살 수 밖에 없어. 무엇을 할 지 모르겠다는 말은 네가 나중에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직업을 가지게 될 건지를 모르겠다는 말이야. 돈을 벌면 네 힘으로, 네 손으로 직접 벌어야 하는데 엄마가 주는 것 하나 없이 네 스스로 돈을 벌려면 쉽지가 않겠지? 네 인생은 결국 네가 책임을 지는 거야. 그 인생을 책임지기 위해서 네가 무엇을 할 건지는 모른다. 아무 것도 주는 것 없이 이런 말 하는 엄마가 야속하겠지만 나는 ○○이 네가 공부를 했으면 좋겠다. 누가 뭐래도 이 세상은 공부로 성공하기가 쉬운 세상이다. 어떤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서 그 분야에서 최고로 칭송받는다면 무얼 해도 상관없겠지만 정말로 무언가 한 분야에서 최고가 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냐. ○○아, 세상은 네가 생각도 못할 만큼 무서운 곳이야. 그런 곳에서 네가 살아남기 위해서, 그리고 더 나은 삶을 만들기 위해서 일을 가지려면 공부를 해서 성공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 적어도 엄마는 그렇단다. 엄마 말.. 무슨 말인지 알겠니? 엄마는 너에게 강요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어. 하지만 네가 공부를 했으면 좋겠다. 이제는 정신을 차리고 무언가를 했으면 좋겠다. 그 무언가가 공부였으면 제일 좋겠다. 응? ○○아.. 가자, 캐나다로. 엄마가 네가 거기서 무얼 해냈으면 하고 가자는 게 아니라 그 곳에 가서 네가 시야를 넓혔으면 좋겠다.’

  나는, 어떤 감정이나 기분의 언어화에 무척이나 약하다. 어머니가 처음으로 나에게 정말로 진지하게 이러한 부탁을 했을 때, 나는 거절할 수 없었다. 거부할 수 없었다. 그것은 의무감에 의해 거부할 수 없었던 것이 아니다. 어머니의 말에는 나를 캐나다로 가게 만들기에 충분한 설득력이 있었다. 그 설득력이 단순한 논리성의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머니의 그 말은 내가 캐나다에 갈 수밖에 없다는 결심을 하게 만들었고,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그 무엇인가의 감정과 기분을 만들어내었다. 그 때의 그 감정을, 그 때의 그 기분을 무슨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나는 무던히도 그 때의 감정을 사람들에게 설명하려고 애를 쓰지만 결국 언어화해내지는 못한다.
  딸랑 나 하나만 생각 없이 보낼 어머니가 아니었다. 라기보다는 어머니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철부지 어린애였을 뿐이었기에 어머니와 같이 캐나다로 향했고 어머니는 그 곳에서 어머니의 자존심을 끝없이 버려가며 살아야 했다. 고모가 불러서 가야했다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어머니와 나는 고모 댁에서 살게 되었는데 알고 보니 어머니가 사정사정해서 이곳에 올 수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머니는 그 곳에서 집안 하녀만도 못한 취급을 당하며 일을 해야 했고 멍청하게도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어린이 한 명은 어머니의 그러한 모습을 보고서도 별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고 그저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 뿐이었다. 하루는 밤 늦은 시간까지 동네를 산책하고서 고모 댁으로 돌아와 내 방으로 들어왔다. 어머니가 자고 계실 것이기에 최대한 살금살금 들어와서 문을 닫았는데 어머니가 방에 불을 꺼두고서는 침대에 앉아서 하염없이 울고 계셨다. 무슨 일이냐고 묻기도 전에 어머니는 후다닥 이불을 덮고 주무시는 척을 하셨고, 나는 그 날 책상에 앉아 밤을 새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그 하루의 기억이다. 그 하루의 순간이다. 그 순간은 쓸모가 없는, 멍청한 꼬마 한 명을 충분히 제정신을 차릴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고 나는 어머니의 그 모습을 보면서 밤새 ‘이젠 정말 피할 수도 없구나. 한 번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날부터 열심히 공부를 시작했고, 중학교 때까지 공부를 하는 둥 마는 둥 한 것에 비해서 나름 빠른 페이스로 진도를 나갔다. 독학만 하면서 향학열을 불태우고 있을 때 드디어 한 학교에 입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동시에 어머니는 한국으로 돌아가신다고 했다. 사정인즉슨 형도 이곳에 와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어머니가 한국에서 일이라도 해야만 했다. 빌어먹을 가정환경이라는 것은 그 때도 어쩔 수 없었나 보다. ‘돈을 벌 수 없는 잉여인간일 뿐인 나로서는’ 그 때의 어머니의 뒷모습을 잊을 수 없다.
  지금은 믿지 않지만 나는 한 때 열렬한 기독교의 신자였고, 캐나다에서 정말 신실한 하나의 신앙체로서 거듭날 수 있었다. 정기적으로 한인 기독교 교회에 나가 사람들과 교류를 할 수 있었고 나는 그 곳에서 멋진 유학생 누나, 형들을 보면서 어머니가 말한 ‘시야’를 키울 수 있었다. 구체적인 목표나 꿈이 생긴 것은 아니었으나 그 사람들을 보며 나는 ‘저 사람들처럼 멋지게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짧은, 유학 아닌 유학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나는 중학교 학력을 따내기 위해서 검정고시를 봐야 했다. 돌아와서 바로 검정고시를 보고 학교에 입학을 했다면 동갑인 아이들과 같은 학년이 될 수 있었겠지만, 검정고시라는 게 내가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그런 의미에서 나는 좀 아닌 타이밍에 한국으로 왔기에 고등학교에 진학을 하기 위해서는 1년을 기다려야 했다. 그 때의 나는 열심히 놀았다. 다만 캐나다에 가기 전과는 달리 ‘고등학교 때는 공부를 열심히 해야지’라는 생각으로, 이후에 정말 열심히 공부하기 위해서 지금 충분히 놀아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물론 우선시 되어야 할 검정고시도 있었기에 공부도 하면서 적당히 놀 수도 있는, 어찌 보면 그 시기가 내 생에서 가장 ‘편하게 있을 수 있는’ 시기였는지도 모르겠다. 1년을 검정고시 준비를 하면서, 생각없이 놀면서 시간을 보내게 되었고 따로 묻진 않았지만 어찌어찌해서 그 때의 가정상황을 알 수 있었다. 두 분은 이혼을 하셨더란다. 뭐, 하등 놀랄 것 없다. 오히려 ‘전혀 남남’으로 살고 있는 이 상황에서 법적으로 결혼이 되어 있는 상태라는 게 더 이상하니까. 나와 어머니가 캐나다에 있는 동안 아버지가 정말로 정신을 차리고 일을 하려고 했더라나? 그렇지만 사람 습성이라는 것이 쉽게 변하는 게 아닌지라 이내 하던 일을 말아먹고 예전만도 못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내가 어머니와 캐나다에 있는 동안 형이 집안을 이끌고 있었다는 놀라운 사실도 알 수 있었다. 아버지가 하던 일이라는 게 동네에서 조그만 오락실을 운영하는 것이었다. 형은 고등학생이었고 학교에서 서로 얼굴을 아는 사람이 많았던지라 열심히 아이들에게 홍보를 하고 다녔고 동네에 변변찮은 오락실이 없던 관계로 처음 얼마간은 꾸준히 벌이가 잘 되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술을 끊고 정말로 거기에 매진을 하셨다면 흥했을지도 모르지만 다시 그 놈의 습성이 나오기 시작해 어디론가 떠나버리셨다. 아버지가 그렇게 떠나버리신 것과는 반대로 형은 그 시기에 정말 10대의 청춘을 부질 없이, 망할 놈의 콩가루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 다 써버렸다. 술 취해 돌아온 아버지와 육탄전을 벌이며(라고는 해도 때리려는 아버지를 말리고 뭔가를 때려 부수려는 아버지를 잡아 움직이지 못하도록 끌어안는 정도였으니 아버지를 때리는 패륜적인 행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때로는 그러한 아버지를 재우기 위해 밤을 새가며 오락실을 ‘형이 직접’ 이끌어 나갔다. 오락실 한 구석을 개조해 조그만 방을 만들고 거기에 잘 곳을 마련해 그 곳에서 먹고 자며 하면서 학교를 다녔고, 오락실을 꾸려나갔다. 아버지가 팽개쳐버리고 간 그곳을 형은 묵묵히 이끌어 갔다. 조그만 변두리 지역이었기에 별다른 문제없이 운영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생각해보라, 미성년자 아이, 그 것도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 한 명이 한 오락실의 주인으로서 그 곳을 담당했다는 것을. 가타부타 부연설명을 하면서 오락실 운영이 어떤 것인지를 이야기하진 않겠지만 ‘세상에 뭐 하나 쉬운 일은 없다’는 문구를 떠올려보면 ‘성인 한 명’이 해야 할 일을 고등학교를 다니는 한 학생이 해냈다는 점을 나는 독자들이 높이 사주었으면 한다. 알고 보니 형의 그러한 모습을 더는 두고 볼 수 없어 어머니는 부랴부랴 한국행을 결정하셨고 형이 캐나다로 가게 되었던 것이라니, 나는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나와 형이 캐나다에 있는 동안 동분서주 어머니는 열심히 일을 하러 다니셨고, 그러면서도 아버지의 뒤치다꺼리를 해내야 했다. 또한 그런 와중에도 아버지는 계속해서 노름과 술을 찾아 떠돌아다니셨다. 나는 결코 어머니가 매정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때 이혼을 하지 않았다면 아마 어머니는 우릴 먹여 살릴 수가 없었을 테니 말이다. 다만 16살의 어린 나로서는 그 상황자체를 원망할 뿐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가족의 그 누구보다도 나는 행복하고 귀하게 컸다.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 형에 비해서는 아무런 고생을 모르고 자랐으며 늘 가정환경 탓만을 하는 철부지 어린아이였을 뿐이었다. 그러한 사실을 성인이 되고서야, 그것도 21살의 중반에 이르러서야 깨달을 수 있었는데 너무 늦어버린 것이 문제였다. 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집안호랑이였으며, 자기중심적이고 가족의 소중함을 입으로만 말하며 행동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조기교육의 중요성은 이런 것이다. 내가 나 같은 동생이 있었다면 정말 최선을 다해 두드려 패서라도 정신을 차리게 만들었을 텐데. 가족의 그 누구도 그러지 않았고 빌어먹을 나를 가족은 ‘가족 구성원’으로서 받아주었다.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멍청하게 사는 것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계속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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