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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1/08/05 21:24:41
Name 바람모리
Subject [일반]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아있는 알바 두번째
사실 뭐 평범하게 살아온 사람에게 수년이 흘러도 기억에 남을만한 일이 그렇게 많겠습니까..
피시방 알바하면서 기억에 남는일이 한가지 더 있지만 그건 쓰면 삭게행일 것 같아서..
그닥 재미있는 내용은 아니지만 이일은 해보신 분이 거의 없을 듯 하여 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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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방에서 두달좀 넘게 일을 했을까..
시급도 괜찮은 편이라 원래 계획은 복학전까지 계속 일할 생각이었지만,
어느날 동생이 자기 친구가 하고있는 일인데 벌이가 괜찮다면서 물어다준 것이었다.
TM, 즉 텔레마케팅 하는 일이었는데..
지금 하라면 절대 안했겠지만 뭐 당시야 뭣도 몰랐으니까..

일산에 MBC 드림센터가 생기면서 그 건물에 같이 생긴 상가를 TM을 통해 분양하는 일이었다.
일을 하자면 일단 정장이 있어야 겠기에,
면접을 보고 다음날부터 출근하기로 하고 집으로 오면서 정장을 사기로 했다.
마침 페업정리하는 가게가 눈에 띄었고,
둘러볼 것도 없이 제일 싼 것을 보여달라고 했다.
상하의 합쳐 4만원짜리는 뭐랄까.. 부직포로 만든 옷처럼 생겨서 패스하고,
6만원짜리를 한벌, 셔츠를 세벌, 지퍼로 잠그는 넥타이를 세개 샀다.
휴일도 없는 일인데 난 무슨생각을 하고 자켓과 바지를 한개씩만 샀을까..

출근하니 대리명함을 하나 파주더군..
좀 오래 일한 동생친구는 과장이었다.
열명남짓의 대리와 과장을 한팀으로 팀장이 셋,
부장이둘 이사하나 사장하나 비서가 하나,
책상에 앉으니 전화기를 하나 던져주고 TM메뉴얼과 잘사는동네의 전화번호부를 주며 일을 시킨다.
대치동 아파트단지에 전화를 걸었다.
욕을 먹었다.
방배동 주택가에 전화를 걸었다.
상가 어쩌구 하는순간 전화가 끊겼다.
첫날은 300통 정도 전화를 하고 저녁때 이사의 일장연설을 40분정도 듣고 퇴근했다.
사람들이 오늘은 이사의 연설이 짧다고 좋아하며 퇴근한다.
잘못 온것 같았다.

일주일이 지나자 회식을 한다고 한다.
홍어를 하는 가게로 갔다.
오.. 노오란 홍어다 난 이거 못먹는데..
부장이 술을 주고 직접 삼합을 싸서 입에 넣어준다.
어쩔수 없이 먹고 맛있다고 했다.
회식이 끝나니 부장이 택시비라며 모든 대리와 과장들에게 오만원씩 준다.
오오.. 좋은 곳인가?

잘못 안 것이었다.
이곳은 기본적으로 월급이 없다.
자신이 전화를 건 사람이 모델하우스로 와서 계약에 성공했을때만,
판 물건에 따라서 돈을 준다.
아! 여기 사람들은 물건을 발음할 때 뒤에 강세를 주고 물껀! 이라고 하더라.
신기했다.
여튼 모든 대리와 과장들은 빚이 많았다.
계약만 하면 가장 작은 물껀이라도 수백이 떨어지기 때문인지,
평소에 빚을 지는데 아무런 꺼리낌이 없었다.
아니 빚이 많아서 이일을 시작하게 된 걸까?

어쨋든 한달이 지나니 미칠 것 같았다.
가끔 회식때 받는 택시비와 회식자리에서 이사나 사장의 기분을 띄워주고 받는 용돈으로는,
도저히 일을 계속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TM질이 숙달되니 전화통화야 하루에 500통이 넘게 할 수 있었고,
말도 꽤나 늘었고 욕먹어도 기분나빠하지 않게 되긴 했지만..
어쨋든 계약이 되야 돈이 들어오지 않는가..
정신이 반쯤 나간 나는 부자동네의 앞번호 9XX번호를 하나 정해서,
0001 부터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지금 번호가 기억이 나진 않지만 그짓을 4일쯤 했을때인가,
드디어 모델하우스에 와보겠다는 아줌마가 나타났다.
약속을 잡고 내 핸드폰 번호를 알려주고 내 이름을 주입시켰다.
혹시 이 아줌마가 기껏 모델하우스에 와서 다른 이름을 얘기하면 돈이 날아간다.

드디어 고객님 방문날!!
마음가짐을 단단히 먹고 출근했다.
내 역할은 고객을 방문시키는 일까지였다.
팀장이 고객을 상대하고 난 옆에서 앉아있기만 하면 된다.
혹시 모델하우스에 고객으로 와본 적이 있는가?
테이블마다 손님이 많고 아주 시끄럽다.
그거 다 연기다.
복스럽게 생긴 중년아줌마 아저씨들을 섭외해서 남아도는 대리와 과장들과 잡담을 시키는 것이다.
물론 다른 사람의 고객이 왔을때는 나도 여러번 연기에 동참했다.

하지만 오늘은 드디어 나으 손님!!
팀장에 말빨에 넘어간 아줌마가 카드를 꺼내든다.
옆에서는 다른 팀장들이 마치 계약이 성립된 것처럼 꺼둔 핸드폰을 들고 소리친다.
미친듯이 뛰어서 민증을 복사하고 계약서를 들고오고 이런 저런 자료들을 챙겼다.
그렇게 계약금 오백을 지불시켰다.
은행문이 닫힌 시간이었는데 팀장의 대단한 말빨은,
아줌마에게 수수료를 지불시키며 현금서비스를 받게하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그렇게 나의 첫 계약이자 마지막 계약이 끝났다.

이곳이 계약이 되자마자 돈을 주는 것이 아니고,
일정기간마다 승리자(계약자)들을 모아서 돈을 주는데,
마침 내가 계약한 날 다음주가 바로 그날이었다.
나말고도 십여명정도가 돈을 받는데,
오오..
사장앞에 쌓여있는 배추뭉치들이라니..
그렇게 많은 돈을 보는건 처음이었다.
세금제하고 내가 받은돈은 470여만원,
ATM기계 앞에서 입금시킬때의 기분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그 다음날 나는 한달반쯤 일한 그곳을 그만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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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눈물
11/08/05 21:27
수정 아이콘
반도의 쿨한 알바생이셨네요
11/08/05 21:52
수정 아이콘
돈 들어온 다음 날 바로 그만둔 대목에서 통쾌한 박수가 나왔습니다 크크.. 저도 TM 알바를 한 적이 있습죠. 바람모리 님처럼 한탕적인 건 아니고 일당 식. 일 4만원쯤 받았나? 2005년쯤이니 꽤 된 얘기네요.
고용주는 학교 동문회, 동문 명부의 연락처를 보고 다짜고짜 전화를 걸어 "선배님안녕하십니까다름이아니오라 저희학교동문회비가 너무나적은납부율을보이고있어서... 이것은라이벌모대학과 비교해도 부끄러울정도로 적은것으로써~~~" 하는 겁니다. 출근하다가, 한창 일하다가, 회의하다가 "어 뭐야" 하면서 영문을 모르는 아저씨들에게 마구 쏟아내는거죠! 흐흐...
하지만 약속받긴 쉬워도 실제 남 주머니에서 돈 빼가기는 어려운 법, 조금이라도 추심율을 높이고자 개발된 방법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인증번호 시스템...
"선배님 올해부터는 일일이 고지서나 은행이체를 통하지 않고도 편리하게 납부하실 수 있게끔 저희가 인증번호를 문자로 쏴드립니다아. 통화를 끊지 마시고 지금 가는 문자의 4자리 번호를 바로 확인하셔서 말씀해 주시면 이쪽에서 휴대폰 소액결제로 처리합니다 호호." -> 이런 식이랍니다-_-
하지만 모두들 찜찜했을 겁니다. 이제 보이스피싱인지 소액결제사기인지 어떻게 믿고? 그래도 흔쾌히 승낙해 주신 여러 대인배 선배님들께 지금 새삼 감사드려요. 저 그때 알바 중 1위했다고 칭찬과 함께 선물(인센티브는 전혀무) 받았어요...
그런데 과연 실적 비교라는 게 사람을 움직이더군요. 벽에다 차트 만들어 두고 하루 몇 건 성공시켰는지 그래프로 딱 그려 비교하니까 잘하고 있을 땐 으쓱, 헤매고 있을 땐 분함이 여실히 느껴지덥디다. 아하 일터에서의 인간성 말살은 이렇게 일어나는 거구나! 하면서도 막상 게임에 참여하고나면 뭐... 어쩔 수 없죠^^;
포프의대모험
11/08/06 00:28
수정 아이콘
좋은 경험 하셨네요
BetterThanYesterday
11/08/06 05:40
수정 아이콘
개인적으로 제가 사회경험이 많이 부족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부럽습니다 솔직히,,

나름 사회경험을 쌓고 있지만 글쓴분 같은 분들에 비하면 경험도 아닌듯요,,

무슨 일을 하셔도 성공하실 것 같습니다 비록 짧은 글이지만 많은게 보이는 느낌이네요 크
히나우동요
11/08/06 10:14
수정 아이콘
혹시 창동민자역사 이런일?
엄마,아빠 사랑해요
11/08/06 11:15
수정 아이콘
계약한 날이 최연성급 gg 타이밍이네요.
뭐 알바 그만 둔 타이밍도 박태민급 gg타이밍이구요.
11/08/06 11:43
수정 아이콘
글 진짜 술술 읽었어요~

이런 글 좋아요~ 실상을 알 수 있는 글이요~
바람모리
11/08/06 14:00
수정 아이콘
아.. 당시에 같이 일했던 사람들한테 들은 얘기로도,
지금 제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진짜 복권당첨급으로 운이 좋았던 케이스입니다.
특이한 경험이기에 사회경험이 많아보일수도 있겠지만 저도 그닥입니다;;
일단 제가 계약한 건은 가장 적은 수수료를 받는 건이고,
큰건 잡은 사람들은 한방에 몇천도 벌긴 합니다만,
일년에 그런일 한두번 나올까 말까입니다.
혹시라도 이글읽고 분양팀에 들어가시는 분은 없길 바라며..

쿨하게 그만둔건 이업종 하루에도 한두명은 꼬박꼬박 사람들이 들어오고 나가고 그럽니다.
팀장급 이상은 사람이 들어오건 나가건 신경쓰지 않더라구요.

제가 돈을 받고 느낀 건..
상가 하나 팔면 TM한 저같은 사람한테 그만한 돈 주고,
팀장이 얼마먹고 부장,이사,사장이 얼마먹고.. 뭐 저보다 적게 먹지는 않겠죠..
초기 상가분양가에 얼마나 많은 거품이 끼어있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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