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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1/07/11 20:03:47
Name 눈시BB
File #1 쌍령_전투.JPG (27.3 KB), Download : 58
File #2 강화도.JPG (61.8 KB), Download : 1
Subject [일반]  남한산성 - 14. 쌍령 전투, 강화도 함락







http://youtu.be/3C_v2AnKLI0
라스트 사무라이에는 훈련 덜 된 총병과 기마병의 전투가 잘 나와 있습니다. 적이 오기도 전에 한 명이 쏘자 다들 연달아서 쏴 버렸고, 재장전 하기도 전에 적이 들이닥치죠. 총검을 꽂은 상태였는데도 대응하지 못 하고 도망갑니다. 일단 위 영상에서는 그런 모습이 제대로 안 나오고 주인공이 무쌍 찍고 있죠 - -a 뭐 영화 자체의 고증은 일단 무시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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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사와 일반 백성은 같을 수 없는데 하루아침에 농부를 전쟁터로 몰아넣으니 달아나지 않으면 죽을 판이다 - 선조 (응? -_-;)

4만 vs 300(디스 이즈!) 이라는 식의 어마어마한 전투로 알려진 쌍령 전투지만 그렇게 서술된 건 찾기 힘듭니다. 병자호란사나 거기에 영향을 받은 한민족전쟁사는 그 병력을 8000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 근거는 아무래도 실록 30일자에 있는, 경상 병사 민영이 어영군 8000명과 본도 병마를 이끌고 충주에 도착했다는 것일 듯 합니다. 애초에 다른 데서 만이 안 넘는데 경상도만 그러는 게 이상하긴 하죠.
4만명 설을 부정하는 근거는 이렇습니다.
- 인조의 명령이 빨리 도착해 봐야 19일 수준인데 23일에 이미 충주에 도착. 시간상으로 불가능
- 쌍령에서 조선군이 있던 곳은 좁은 곳으로 4만명은커녕 2만명도 힘들다.
- 반면 청군 300은 아무리 오합지졸이라도 그 대군에 닥돌하는 건 말이 안 된다.
- 연려실기술의 기록에서는 "병력이 절반도 도착하지 못 했다"고 했는데 이 때 4만이면 얼만큼의 병력이 더 있었다는 것일까?
- 김충선의 승전이 이때인데 언제 활약한 걸까?
- 경상도 관찰사 심연은 패배소식을 듣고 본진을 물렸다고 하는데 그럼 4만 말고 더 있었단 건가?

쉽게 반박이 가능한 문제입니다. 연려실기술에 4만이라 기록돼 있긴 하지만 그 정도의 대군이 패했다는 충격은 찾아보기 힘들죠. 결국 이 4만설은 인터넷에서 사료를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인 데서 나오는 오류라 할 수 있겠습니다. 경상도군도 다른 도의 병력 수준이었고 패배도 다른 전투들과 큰 차이가 없다고 봐야 될 겁니다.

자, 그럼 쌍령 전투의 실체를 밝혔으니 강화도 함락으로 넘어가기는... 개뿔 -_-;


쌍령 전투가 온라인에서만 돌아다니는 이유는, 연구가 잘 돼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병자호란 자체가 잘 안 알려졌고, 부끄러운 대패인데다 전세에 영향을 준 것도 아니죠. 20년도 전에 8000이라고 결론 내고 지형까지 고증한 책이 있으니 굳이 더 연구할 필요도 없었을 테구요.

이런 전투를 10년도 전에 (아마 디펜스 코리아에서) 거대 떡밥을 만들어 투척하신 게 바로 번동아제(신재호)님이죠. 스스로도 밝히셨고, 인터넷에서 돌아가는 거 보면 출처 자체가 이 분이라고 보시면 될 겁니다.

+) 이 분이 병자호란 연구하시는 거 보면 언젠간 결과물이 나올 거 같은데 기대하고 있습니다. 병자록이라 불리는 여러 판본들을 다 알아보고 계시더라구요. 윤민혁님도 소설 언젠가 쓰실 거 같은데 과.연. 언제일지는...

http://lyuen.egloos.com/category/%EC%A0%84%EA%B7%BC%EB%8C%80%20%EC%A0%84%EC%9F%81%EA%B3%BC%20%EC%A0%84%ED%88%AC

이 부분의 모든 출처는 여깁니다. 시작해 보죠. -_-

1. 경상도 근왕군 - 쌍령 전투
1) 경상도군의 병력
실록에는 30일 [어영군 8000][경상도 병력]을 이끌고 이동 중이라고 쓰고 있습니다. 연려실기술에서는 이들을 4만이라고 하고 있으며, 청군 총병력이 300명이고 그 중 선봉은 33명이라고 쓰고 있죠. 하지만 여기에는 출처가 나와 있지 않습니다. 또한 참전했던 경상좌병사 허완과 우병사 민영은 직접적인 기록은 남기지 않았다고 합니다. 한편 이들의 상관인 관찰사 심연의 묘비에는, 자신의 직할 병력이 1000명이고 허완과 민영이 쌍령에 도달하기 직전에 지휘하던 병력은 3만이 조금 넘는 수준이라고 적고 있다고 합니다. 한편 하담파적록에는 허완, 민영, 충청 병사 이의배의 병력이 총 3만이라고 적고 있구요. (이의배가 여기로 도망친 모양이네요 ㅡㅡa)

얘기를 쉽게 쓰기 위해 피했는데, 병자록에는 여러 유형이 있다고 합니다. 현재까지 그 사본들에 대한 연구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진짜 나만갑이 썼냐는 의혹까지 받고 있다고 하죠. 번동아제님은 이 판본들을 여러 개로 나누어서 살펴보고 계신 듯 합니다. 그 중에는 외부의 전투를 정말 자세하게 다루는 판본도 있고, 사관이 쓴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인조와 신하들의 얘기를 복사 붙여넣기 하다시피 한 것도 있다고 하네요. 여기에는 (아예 병력 언급이 없는 본도 있지만) 공통적으로 4만이라 적고 있으며, 2차로 전사자 수습 (가족이 찾아간 후 다시)한 숫자만 8000여구라고 적는 본도 있다고 합니다.

한편, 경상도의 인구는 조선시대 내내 전라도와 1, 2등을 다퉜고 북삼도 및 강원도의 인구까지 합쳐도 많을 때도 있었다고 합니다. 둘이 합쳐 50~60% 수준에 그 위의 도들이 나머지를 갈라먹는 형국이었죠. 임란 때도 경상도는 4만이 넘는 병력을 운용했었고 그 때도 가능했다는 거죠. 28년 당시 경상도 속오군의 병력이 24000명이었다고 합니다. 한편 35년 기준 어영청 중 어영청에 소속된 경상도 병력은 보인을 합쳐 대구와 안동에서 약 8000. 즉 이들은 원래 남한산성에 들어갔어야 될 병력이었던 것이죠. 여기에 기타 아병(관리의 직할 병력)이 포함됐고 이의배의 충청도군까지 합류했습니다. 이렇게 3만이 넘는 병력이 나왔고, 4만까지 갈 수도 있었다는 거죠. 도내의 속오군을 모두 징집하는 게 가능했다면요. 전사자 중에 창원 부사 백선남도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경상도 해안지방까지 모두 징집을 해 온 것 같습니다. 여기에 부제학 전식 등의 의병까지 생각할 수 있구요. 김충선이 대구에 있었으니 그 역시 의병으로 참전했다고 보면 될 겁니다.

다만 전 병력이 모이기 전에 급히 (주로 어영군 등 경상북도의 병력) 출진해서 23일에 충주까지 강행군했고, 이게 병자록과 연려실기술의 [원거리 지역의 병사들이 절반도 도착하지 않은 상태]로 나왔고, 23일에 충주에 도착한 데 비해 쌍령에 도달하기까지 10일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는 것은 그 동안 추가 증원군을 기다렸다고 분석할 수 있습니다. 이 행군은 혹독해서 특히 종사관 도경유에 대한 비난이 심했습니다. 군량과 장비가 조달되지도 않았고 갑옷과 무기마저도 제대로 챙기지 못 한 것 같습니다.

이런 점에서 번동아제님은 4만은 못 되도 3만은 넘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시더군요. 한편 하담파적록에는 광교산 전투에서 김준룡이 이끈 병력이 1만이라고 적고 있다고 합니다. (전 글에서는 2000이라 적었죠) 전라도 의병 1만까지 생각한다면 전라도 역시 2~3만을 투입했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경상도의 4만도 그리 이상하지는 않습니다. 병력 동원면에서 영호남은 북도들과는 차원이 달랐으니까요.

아무튼, 제 사견을 덧붙이면 경상도는 당시 피해가 가장 적던 지역이었고, 인구 면에서 동원 자체는 가능했고, [징병이 정말 잘 됐으면] 그 짧은 시간에 동원할 수 있었다는 겁니다. 결국 유사시 조선의 대응 시스템이 잘 된 케이스라고 봐도 무방할 겁니다.

... 오히려 그게 독이 됐지만요 -_-

한편 지형의 문제에 대해서는 애초에 비정했던 그 지역이 8000을 기준으로 생각했다는 걸로 반박 가능합니다. 쌍령 전투에 대한 전설이 내려오는 곳은 꽤 넓다고 하네요.

2. 전투의 시작
1) 좌병사 허완
1월 2일, 쌍령에 도착한 경상도군은 둘로 나눠 좌병사 허완은 우측 고지 (229m)에 진을 설치하고 우병사 민영은 좌측 고지 (125m)에 각기 진영을 설치, 목책을 구축했습니다. 안동 영장 선약해가 도로에 인접한 완만한 경사 지역에 진영을 구축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했지만 묵살됩니다.

허완은 일등 포수를 중앙에 배치하고 실력이 낮은 포수를 외곽에 배치했고, 화약도 2냥씩만 지급했다고 합니다. 10발 쏠 분량이라고 했는데, 번동아제님이 자세히 분석하셨는데 넘기겠습니다. 초관 이택, 천총 이기영 등이 강병을 외곽에 배치하자고 했지만 허완이 수가 적어서 안 된다고 하죠. 병자호란사에서는 이 때 출동한 청군이 6000이며, 2000으로 둘 사이를 차단했다고 적고 있습니다. 실제 남급본 병자일기에는 척후가 조선군을 둘러쌌는데 몰랐다고 적고 있습니다. 청 역시 수천 이상은 동원됐다고 봐야겠죠.

이 때 청군이 도로 쪽이 아닌 조선군 진영보다 더 높은 산에 있었고(이게 300), 그 중 33명이 돌격해 왔다고 합니다. 여기서는 조선군도 일부 병력으로 나가서 요격했고, 1명이 즉사하자 청군은 퇴각합니다. 이 때 조선군이 마구잡이로 총을 쐈습니다. 이후 화약을 추가 지급해서 혼란스러울 때 적은 돌격을 감행하죠. 하지만 단지 총만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조선군 전체가 공황 상태에 빠진 것 같습니다. 안동 영장 선약해만 활을 쏘며 저항할 정도였고, 나머지는 화살을 쏘지도 못 할 정도였죠. 청군은 목책을 넘어 돌격해 옵니다. 그리고...

좁은 지역에 밀집해 있던 경상좌병군은 적의 반대편으로 도망치다가 "압사"합니다. 병자남한일기에는 "경상 좌병사 허완이 늙고 겁이 많아 말을 타지 못 했는데 말에 세 번이나 태워줬지만 떨어졌고, 세번째 떨어지는 순간 진영 중견이 붕괴되면서 밟혀 죽었다"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또한 "도망가다 계곡에 사람이 쓰러져서 쌓이면서 깔려 죽었는데 시체가 구릉처럼 쌓였다"고 하고 있고, 청군이 사방으로 흩어져 단병으로 마구 죽였다고 합니다.

남급이 쓴 병자일기에는 더 나아가서 "흩어진 병사들이 목책에 도달했으나 목책을 넘지 못하고 넘어지면 그 뒤로 계속 시체가 쌓였고, 목책을 넘은 병사는 목책 밖이 험준해 추락해서 죽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죽은 시체가 계속 쌓이면서 마지막으로 넘은 자는 살아났다"고 하죠.
여기까지 가면 숫제 전투가 아니라 "압사 사건"입니다. 이 기록이 맞다면 당시 경상도군이 많았고, 밀집해서 있었다는 것도 신빙성이 높아지구요.

청군이 처음에는 소수였지만 이 때는 살짝 찔러본 거였고, 그 이후에 돌격을 개시했다고 봐야될 겁니다. 한편 청이 넘은 목책은 말 타고 넘을 수 있을 정도로 낮았던 반면, 조선군이 도망간 목책은 추락사할 정도로 높았다는 것, 조선군이 경계한 것은 도로 쪽 (선약해가 지적한) 이었고 청군은 대신에 조선군이 예상 못 한 산 쪽으로 와서 기습한 거구요. 조선군이 패한 건 단지 화약이 떨어진 게 아니었던 겁니다. 오히려 화약이 떨어진 건 최전방의 극소수였고, 공황 상태에서 전원이 도망간 거구요.

2) 경상 우병사 민영
이어 청군은 민영의 경상우병군에게 공격을 가합니다. 이 때 민영은 정예 포수 200명과 궁병 300명을 1선에 배치하고, 2선에 중등 포수, 중앙에 참겅볌을 배치해 공격에 대비했고, 군기도 엄정해서 적이 쉽게 오지 못 했다고 합니다. 적은 수십명의 병력을 잃고 후퇴했죠. 이에 민영이 적극적으로 공격하려고 하면서 화약을 재분배했는데... 여기서 사고가 일어납니다. 화약이 폭발한 거죠. 민영을 미워하던 자가 일부러 불을 질렀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이 때문에 화약을 분배하던 수령 둘이 죽고 수십 명이 폭사했으며, 이 때를 타고 청군이 돌격, 경상우병군 역시 허무하게 전멸합니다. 도망치던 병사들은 강을 만나 건너지 못 하고 전사했을 거라는군요.

오히려 병력이 많았던 게 독이 됐던 걸까요. 이례적으로 모인 경상도의 대군은 이렇게 전멸합니다. 용인 전투, 현리 전투와의 차이는 그 전투는 기습당하자 도주해서 최소한 살아남은 사람은 많았다는 거죠. 쌍령 전투는 이 상황에서 살아남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가 오히려 의문입니다. 위에 적었듯 가족이 수습하지 않아서 추가로 수습한 시체만 8000구였습니다. 패배할 상황에서도 맞서서 피해를 그나마 최소화했던 다른 전투들과도 크게 다르죠. 속오군의 훈련 부족, 지휘관의 기량 미달, 약점을 찌른 청군의 작전이 어우러진 전투였습니다.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테니 이만 하죠. 비웃거나 열 받아야 될 상황인데, 오히려 대형 건물에서 일어난 사고처럼 "공포에 질려 도망가다가 차례로 압사당하는" 공포가 떠오르네요.

이후 감사 심연은 전의를 잃고 조령 방면으로 철수합니다. 이렇게 북도군은 경기도 동쪽에서 움직이지 않고, 남도군은 수원부터 공주에서 움직이지 않게 됩니다.

2. 강화도 함락
1) 청군의 상륙
12월 14일, 김류의 아들이자 한성 판윤이었던 김경진은 강도검찰사에 임명됩니다. 이민구를 부검찰사, 홍명일을 종사관으로 해서 비빈, 왕자, 종실 및 백관의 가족을 호위해서 강화도로 들어가죠. 한편 강화유수 장신은 주사대장이라는 직책을 겸임해 수군을 정돈해서 해로를 차단하게 하고, 각 도 수사들은 수군을 이끌고 구원하라는 명을 받죠. 예정된 병력은 6000~7000에서 1만이 넘었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보이는 건 5천도 안 돼 보이네요.
김류는 자기 아들이 중요한 직책을 맡자 걱정하기는커녕 기뻐하며 "능력은 없어도 잘 할 거"라고 했다고 합니다. 잘 했으면 좋겠는데 말이죠. 그리고 그 김경징은 자신의 아내와 어머니를 가마에 태우고 짐을 잔뜩 들고 갔는데 경기도의 인부와 말이 다 동원되었을 정도였습니다. 거기에 바다를 건널 때도 자기 가족 먼저 보내서 "빈궁" 일행도 이틀이나 기다려야 됐을 정도였습니다. 가장 중요시해야 되는 빈궁이 그럴 정도면 다른 이들은 어땠을까요. 빈궁이 가마 안에서 "김경징아, 김경징아, 니가 차마 이런 짓을 하느냐"고 꾸짖자 그제서야 건너게 해 줬다고 하고, 결국 건너지 못한 이들은 결국 적에게 죽고 바다에 빠져 죽거나 포로가 됐다고 합니다.

한편 도르곤과 경중명이 이끄는 우익군 16000명은 30일에 강화도 반대편 보구곶, 성내, 포내, 원포 일대에 포진해 강화도 공략을 준비합니다. 하지만 김경징과 장신은 청이 수전에 약하다고 판단하고 신경쓰지 않고 있었죠. 거기에 장신은 김경징이 명을 내리려 하자 나는 지휘를 받는 사람이 아니다며 배척했습니다. 강화도와 기포 반도 사이의 바다는 염하, 소금강이라 불렸는데 겨울에도 얼지 않았습니다. 그건 착각일 뿐이었습니다. 수전에 익숙한 경중명이 거느린 한병이 있었고, 홍이포가 있었죠. 청군은 우선 강을 뒤져 배를 얻어 내고 민가를 헐어 수백 척의 배와 뗏목을 건조합니다. 이걸 육지로 운반해서 조선군에 띄지 않게 했구요. 알아도 대비했을진 의문입니다만. 강화도에 있던 이들은 해안선에 방비를 강화할 것을 건의하지만, 김경징은 술이나 퍼 먹고 있었다고 합니다.

1월 21일, 통진가수 김정이 적의 동태가 심상치 않다고 보고하자 그제야 방어 계획을 수립합니다. 주사대장 장신은 광성진 연안에 병력을 배치해 신덕포 방향에서 도하하는 걸 막게 했고, 충청수사 강진혼은 갑곶에 배치했습니다. 한편 육군도 강화성 수비병과 해안 상륙을 저지할 병력을 나누어 배치합니다. 당시 요격을 위해 성 밖으로 나가던 병력은 3000 정도였습니다. 청이 도하할 곳이 갑곶으로 판단되자 그 방면에 병력을 증원하고 장신에게도 그 쪽으로 가라고 하죠.

22일 새벽, 청군은 도하 작전을 개시합니다. 그들은 대소 선박 100척에 분승해 충청수사 강진혼의 선단을 목표로 하죠. 강진혼은 거느린 건 7척 뿐이었습니다. 강진혼은 분전해 10여척을 격침시키지만 전세는 불리해졌습니다. 이 때 장신은 정포만호 정연과 덕포첨사 조종선으로 청 선단의 배후를 공격하게 했고 전과를 거둡니다. 이에 청군은 반전하죠. 장신은 겁에 질려 후퇴를 명해 도망칩니다. 강진혼은 노해서 이렇게 외칩니다.
"네가 나라의 후은을 입고서 어찌 감히 이럴 수가 있단 말이냐! 내 반드시 살아서 너를 죽이겠노라!"
그의 병력은 전멸했고, 그는 수십명을 이끌고 간신히 후퇴했습니다. 역시 겁이 난 김경징과 이민구는 만류에도 불구하고 해안선에 펼쳐진 병력을 철수해 강화성으로 도망치려 합니다. 하지만 중군 황선신, 황대곤, 강홍업, 정재신 등 100여명은 끝까지 남아 싸웁니다. 처음 복병을 의심해 상륙하지 않던 청군은 정찰병을 올려 확인한 후 대거 상륙합니다. 소수의 조선군이 기습하지만 청군은 소수라는 걸 확인한 후 공격, 전멸합니다.

2) 강화성 함락
다음 날 아침 청군은 갑곶을 출발해 강화성에 도달합니다. 이 때 원임대신 김상용은 3000의 병력을 나누어 배치한 후 청군은 일단 항복하라고 하지만 단호히 거부하죠. 주변에서 탈출을 권유하자 이렇게 말 합니다.
"나는 명색이 대신으로서 나라가 이 지경이 되었는데 어찌 구차스럽게 살기를 도모하겠는가? 오직 이 강화성과 운명을 함께 할 뿐이다."

청군은 다수의 화포로 포격한 후 공성병기를 대동해 성벽으로 돌격해 왔습니다. 사기가 떨어진 조선군은 더 이상 막을 수 없었습니다. 북문이 돌파되고, 동서남문도 쉽게 뚫려 버립니다.

김상용은 미리 준비했던 화약더미 위에 걸터앉아 자결합니다. 이 때 종이 주인의 뜻을 알고 머뭇거리자 담배를 피려 한다며 불을 가져오라고 했죠. 우승지 홍명형, 전 좌랑 김수남, 별좌 권순장, 생원 김익겸 등은 "어찌 혼자서만 의로운 일을 하냐"면서 불덩이에 걸어 들어갑니다. 심지어 열세살 난 손자 수전도 같이 죽겠다며 자리를 떠나지 않았죠. 심현, 민성, 홍명형 같은 이들은 청이 공격해 오자 아내와 자식들을 스스로 죽이고 싸웠고, 자신도 자결했습니다. 이 때 많은 대신들의 가족도 피난해 왔었는데, 김류, 이성구, 김경징 등의 소실은 모두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연려실기술에서는 이들의 목록을 아예 따로 적어 두고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종친이나 대신들의 가족이었지만 죽거나 사로잡힙니다. 이게 강화도의 가치였던 겁니다.

김경징은 이 와중에 홀로 배를 타고 충청도로 도망갑니다. 강화성 안에는 아내와 어머니가 있었는데 말이죠. 거기다 그 아들 김진표는 할머니와 어머니에게 자결하라고 협박했습니다. 실제 자결하긴 했지만요. 참 잘난 부자입니다. 결국 그는 그 해에 사약을 받는데, 이에 대한 사론입니다.
"묘당이 참으로 마땅한 사람을 가려서 맡겨 방어할 방도를 다해야 할 것인데, 김경징은 한낱 미친 새x(狂童)일 뿐이었다"
"김류는 부귀 때문에 이미 나라를 망치고 또 제 아들을 죽였다.”

열심히 싸웠던 강진혼이 참수형을 당하는 것을 생각하면, 공신 아들이라고 계속 봐주려다가 죄가 너무 커서 그나마 나은 형벌을 내린 거죠. -_-
몇 번이나 말 했잖아요. 원균은 죽지 않아요. 김경징이 한 짓은 원균과 동급, 혹은 그 이상이라고 봐야 될 것입니다. 최소한 원균은 그를 대신할 전설의 구원투수라도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병자호란에서 치트키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강화도에는 육군과 수군, 양쪽에 원균이 한 명씩 있었죠. 장신 역시 멀쩡히 살아서 도망칩니다.

궁금한 건 여기에 충청 수군 외에 전라, 경상 수군이 합류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시간 때문일까요 뭐 때문일까요. 광해군 때 강화도를 지키는 데는 판옥선 같이 큰 전선보다는 작은 배가 더 맞다는 논의가 있긴 합니다. 또한 그 때 통제사는 육지로 진격해 오고 있었죠. 경기 수군 + 충청 수군만으로 충분하다 생각했던 걸까요. 전설로 남은 지 얼마 지나지 않던 수군은 별 활약은커녕 굴욕만 당하게 됩니다.

3) 봉림대군의 편지
도르곤은 강화부 관아를 포위하고 항복을 권유합니다. 훗날 효종이 되는 봉림대군은 항복했고, 강화도 내의 약탈과 살육 금지, 비빈, 왕자, 종실, 백관 및 그 가족의 신변 보장을 조건으로 항복합니다. 도르곤은 청군을 조선인과 떨어뜨려 놓고 약탈을 금지해서 민심을 수습하려 했죠. 이어 둘은 회견하는데, 도르곤은 성중에 있는 이들을 남한산성으로 이송하는데 협조하고 강화도 함락 사실을 남한산성에 알리는 편지를 쓰라고 요구합니다.

봉림대군은 서찰은 거절하지 않지만 인원을 옮길 수 없다면서 거부하지만, 도르곤은 휘하 병사들에게 약탈을 허락하는 것으로 답 합니다. 결국 봉림대군은 이걸 받아들이고 강화도로 출발하죠. 청군은 비빈과 왕자에게 예의를 다 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들에게는 최고의 장기말이었죠. 그를 뒤따르는 이들은 강행군에 쓰러져 죽는 자가 생길 정도였다고 합니다.

27일 아침, 그들은 삼전도의 청군 본진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봉림대군이 보낸 편지는 26일 남한산성에 전해집니다.

짧았던 전쟁은 이렇게 빠르게 막바지로 가고 있었습니다.

=============
병자호란 얘기는 다음 편으로 끝이네요. 그 뒷이야기를 어디까지 해야 되나 고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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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7/11 20:49
수정 아이콘
아름다운(-_-) 전투였네요...;;;;;; 역시 군사는 기세 싸움이네요
호떡집
11/07/11 21:03
수정 아이콘
m의 클라이막스군요. 뭐, 할말이 없네요. 저정도면 박살난게 아니고 자멸한 수준이니.

게다가 강화도는... 치트공이 있는 수군과 없는 수군의 차이를 절감하게 되네요. 여러번.
마이더스
11/07/11 21:03
수정 아이콘
드디어 올게 왔군요. 한국사 통틀어서 가장 병맛나는 전투가..
임진왜란때부터 매번 수고로움에 감사드리고 싶었는데 하필이면 이런 쌍령전투글에서 드릴줄이야!!
물여우
11/07/11 23:07
수정 아이콘
백업 파티션의 보안 중요성은 C 파티션보다 커야 하것만...사람이 문제네요. 정말...
개인적으로 쌍령전투야 그렇다고 쳐도 강화도는 진짜 이해가 안 갑니다.
무리수마자용
11/07/12 07:14
수정 아이콘
한반도에서 이보다 더 큰 M은 없을 성 싶네요 흐흐흐흐흐흐흐흐
헌리전투와 한일합방과
지금정도만 빼면요 [m]
11/07/12 11:27
수정 아이콘
아이고.. 아이고...
그야말로 병맛 of 병맛 이군요....
빨리 뒷이야기로 넘어갔으면 좋겠습니다 ㅠㅠ
백마탄 초인
11/07/12 13:20
수정 아이콘
아무리 생각해도 청군은 정말 운이 좋아 보입니다.....

각 지휘부가 날짜만 맞쳐서 압박해도 이런 사단은 안났을텐데...

그리고 강화도는 할말이 없네요;;

12척으로 몇백척 깨트리는 이도 있는데... 뗏목과 대충 만든 선단에도 밀리는 수군도 있고...

원래 상륙이 젤 어려운 법인데

상륙하는 곳을 비워 두는 센스에서 할말이 없네요;;

암튼 참 아픈 역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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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242 [일반] [축구] 아스날 제르비뉴 영입!!(오피셜) [49] HBKiD5519 11/07/11 5519 0
30240 [일반] '윤하'양이 소속사 라이온미디어를 상대로 계약해지 소송중입니다. [40] New)Type8475 11/07/11 8475 0
30239 [일반] 2011프로야구 8개구단 팀간 전적 [24] 강한구5262 11/07/11 5262 0
30237 [일반] 남한산성 - 14. 쌍령 전투, 강화도 함락 [15] 눈시BB7342 11/07/11 7342 5
30235 [일반] 오늘밤 11시 이선희 콘서트 방영하네요! [6] 리콜한방4260 11/07/11 4260 0
30234 [일반] 저도 핸드폰 구입구조에 대해 약간의 설명을 드리고 싶습니다^^;;(기본료가 깍이는이유) [11] 정시레5428 11/07/11 5428 1
30233 [일반] 다시는 기자들을 기다리지 마라 [12] Judas Pain5252 11/07/11 5252 2
30232 [일반] 1954년 한국전쟁 후 대구모습 [16] 김치찌개6426 11/07/11 6426 0
30231 [일반] 아래글 한류열풍이 필요했던 이유..[대성씨 사건 새로운 전개] [31] Lovepool8202 11/07/11 8202 0
30227 [일반] 문제 있는 '나가수' 청중평가단 선발과정 [124] Schol11575 11/07/11 11575 2
30226 [일반] [야구]고교선수의 해외진출 [23] 페일퓨리6262 11/07/11 6262 0
30225 [일반] 역시나 또 북한 짓이로군요.. [23] 부끄러운줄알아야지7963 11/07/11 7963 0
30224 [일반] 쌀 씻기 [8] 삭제됨4597 11/07/11 4597 0
30223 [일반] [야구]LG, 한화와 1대2 트레이드...김광수<->유원상 양승진 [150] Drin6577 11/07/11 6577 0
30220 [일반] 영국의 신한류? [18] 로사6931 11/07/11 6931 0
30219 [일반] [잡담] 돈 안되는 일만 죽어라 하는 36살 남자의 일상 [12] The xian7061 11/07/11 7061 0
30218 [일반] 저희 가족에게 힘을 주십시오.. [44] fafaf335269 11/07/11 5269 0
30217 [일반] 남자의자격] 음악을 들으며 눈물을 흘릴수 있다는것.. [8] 부끄러운줄알아야지4644 11/07/11 4644 0
30216 [일반] 보건복지부가 내년 저소득층과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 예산을 삭감하려는 군요.. [13] the hive4494 11/07/11 4494 0
30215 [일반] [KBO]LG와 기아의 서로 다른 선발투수 활용법 [104] 아우구스투스6490 11/07/10 6490 0
30213 [일반] 드디어 플레이스테이션3를 지르기로 하였습니다~~ ^^ (타이틀 좀 추천해주세요 박식한 피지알러님들~~) [33] fr33man5240 11/07/10 5240 0
30212 [일반] 스마트폰 요금제 알아보기 [47] Nihil8276 11/07/10 827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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