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밤늦게 들어와 아무생각없이 자고 일어난 아침에, 문득 게시판에 들어갔다가 '이제동 평점 10'이란 이야기를 보았고, 또 퀸에 대한 이야기를 보았습니다.


퀸은 다크아콘같은 존재라 생각합니다. 역할도 비슷하고 두 유닛을 활용하기 위해 받는 느낌도 비슷합니다.
둘다 유닛을 멈추게 하는 인스네어와 마엘스트롬을 주력으로 하고 있습니다. 특정 유닛에 대한 저격이 가능한 피드백과 부르드링이 있고, 관광용으로 자주 사용되는, 하지만 동시에 특정 상황에서는 유용한 마인드컨트롤과 커맨드센터 감염 기능이 있지요.
여기에 비교적 잘 안죽는 유닛, 이속이 빠른 유닛이라는 점도 같지요.


스타의 기본은 죽지 않는것, 입니다. 물론 상대를 죽이는게 최선이지만, 병력싸움에서 이기는 상황은 쉽게 나오지 않습니다. 즉 세가 불리할때는 병력을 잃지 않는 것이 최선입니다. 상대를 죽이는 하이템플러와 베슬, 장판파의 디파일러는 그래서 유용합니다.
상대를 멈추게 하는 능력은 그와 반대라 봅니다. 내가 불리할때 상대의 일부를 멈추고 후퇴, 좋을거 같지만 어차피 앞마당에서 방어타워 끼고 수비하는 형편에 후퇴해봤자 별일 없지요. 상대를 멈춰놓고 어디에 숨는 영화같은 일이면 상관없지만, 어차피 자신의 위치가 들어나는 형편에서는 상대를 멈춘들 이득이 없습니다.



그러면 상대를 멈추게 하는 능력은 어디에 쓰일까요. 저는 승리를 대승으로 만드는데 쓰인다고 생각합니다. 상대의 후퇴를 저지하는 것이지요.
울트라를 상대로 마엘스트롬이 각광받은 적 있습니다. 이때 마엘스트롬의 용도는 울트라의 공격력을 봉쇄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울트라의 후퇴를 막는 쪽에 좀더 목적이 있었죠. 울트라는 강한 체력에 빠른 이속으로 상황이 불리해지면 쉽게 도망갑니다. 애써 좋은 상황 만들어놔도 후퇴하고 병력 추스려 다시 싸웁니다.  그리고 마엘스트롬은 도망가지 못하게 막습니다. 다크아콘이 없었으면 단순히 울트라를 쫓아내는 작은 승리였겠지만, 다크아콘이 있음으로 해서 울트라를 몰살시키는 대승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이죠.

이는 고스트와도 같습니다.  고스트가 캐리어에게 락다운을 거는 까닭은 캐리어를 도망가지 못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캐리어는 상대적으로 공격력이 높은 관계로 락다운이 전투상의 이득으로도 작용하긴 하지만, 어쨋뜬 락다운 조차도 도망가는 캐리어를 잡아 궤멸시키는, 승리를 대승으로 만드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이것이 퀸과 다크아콘, 그리고 고스트의 문제입니다. 이들은 패배를 승리로 만들어주는 유닛이 아니라 승리를 대승으로 만들어주는 유닛입니다. 전투력 자체에는 별로 도움이 안됩니다. 퀸1기보다 럴커 2기가 좋다, 다크아콘1기보다 질럿2기 템플러 1기가 좋다는 말은 전투력에 대한 말입니다. 예전 뮤탈 2~3부대 규모의 싸움이 자주 일어난 패러독스의 저저전에서, 뮤탈 2부대 뽑기보다 2기 줄여 퀸으로 인스네어 쓰는게 어떠냐, 란 말에 홍진호 선수가 직접 '뮤탈 2마리 뽑는게 더 쌔다'라 말했던 경우도 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퀸과 다크아콘, 그리고 고스트는 병력상으로 유리할때 쓸모가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병력상 유리하면, 보통 상대는 본진에 꽁꽁 틀어박혀 있습니다. 즉 퀸과 다크아콘, 그리고 고스트는

1. 자신이 병력적으로 우세해야 한다.
2. 그리고 상대는 싸우러 나와줘야 한다.

는 두가지 조건을 만족시켜야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쓰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이제동은 그것을 충족시켰습니다. 과거 삼성 박성준의 5해처리 저럴을 보듯 다수의 저글링 럴커를 통해 병력적으로 우세한 상황을 만들었고, 하이브와 3가스등의 움직임을 통해 정명훈을 진출하도록 하였습니다. 퀸을 사용하기 위한 상황 자체를 의도한 것입니다.

  또한 이제동 선수는 근례의 SK테란을 이용한 공굴리기 패턴을 노렸습니다. 아까 말했듯, 삼성 박성준 선수가 롱기누스에서 한승엽 선수를 상대로 5해처리 저럴을 성공시킨 사례가 있습니다. 사실 이때 한승엽 선수는 그냥 본진에 회군하여 지키고만 있으면 돼었습니다.  박성준 선수가 일시적으로 병력에 집중한 대신 뒷심은 떨어지기 때문에, 당시 시점에서의 전투만 피하면 이기는 것은 테란이니까요.
하지만 이미 진출한 한승엽 선수에게 후퇴를 막는 존재가 있었습니다. 바로 탱크죠. 마린메딕이나 베슬에 비해 탱크는 크고 느립니다. 테란의 발걸음을 잡습니다. 과거 마재윤 선수가 레어 타이밍에 화려한 저글링 럴커 기동을 통해 전장의 마에스트로로 거듭날 수 있었던 이유도 탱크가 테란의 발걸음을 잡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절묘한 럴커 버러우를 통해 탱크를 사정권 내에만 확보하면, 테란의 병력은 탱크 주위에 허둥지둥대다 럴커의 촉수에 쓰러지곤 했습니다.

탱크라는 전투력을 버리고 베슬이라는 기동성에 집중한 후 테란은 디파일러와 럴커를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전투력만 따지면 디파일러와 럴커가 한참 우위입니다. 하지만 베슬은 빠릅니다. 적당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가 저그가 달려들면 후퇴하고, 베슬로 저그의 가스 유닛만 저격하며 병력을 모으면 됩니다. 이러한 패턴의 반복이 바로 공굴리기 입니다.
저그가 아무리 병력이 많아도 테란은 쓰러지지 않습니다. 펀치를 흘려받으며 병력을 모을뿐입니다. 3가스 하이브 저그가 고전한 까닭은 여기에 있습니다. 전투력에서 우위를 보인들, 마린메딕이 줄어들질 않으니 마린메딕이 무한정 쌓이게 되고, 그 어마어마한 물량이 전 맵을 압박하면 저그가 감당해내질 못 하니까요.

과거 탱크의 역할을 이제동 선수는 퀸으로 수행하였습니다. 퀸이 테란의 발을 묶자, 적당히 싸우고 후퇴하였어야할 마린메딕의 생존률이 급격히 낮아졌습니다. 마린메딕의 생존을 위해 탱크를 자주 버리기도 했던 테란은 인스네어에 묻어 움직이질 못합니다. 그덕에 이제동 선수는 테란의 병력을 몰살시킬 수 있었습니다. 쌓여야할 마린메딕이 줄어듭니다. 마린메딕을 두터운 장갑으로 삼던 테란의 표피가 벗겨진 것입니다. 알몸을 들어낸 테란에게 이제동의 병력이 진군하고, 게임은 그렇게 종료되었습니다.

이는 아비터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비터의 재발견은 종족의 발전뿐이 아니라 시대의 변화와 함께 이루어진 것입니다. 과거 1부대 가량의 탱크가 넓직넓직 배치되던 조이기의 메카닉에서, 많은 자원을 통한 거한 탱크 물량으로 싸우는 200싸움의 메카닉으로 메카닉의 대세가 바뀌었기에, 뭉쳐진 다수 탱크를 무력화 시킬 수 있는 스테이시스와 리콜이 주목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단순히 '봐라, 퀸 잘쓰니 좋지 않느냐'는 식의 말은 굉장히 무책임한 말입니다. 좀 심한것 같지만, 비유하자면 '저소득층 지원하라'고 말만 하고 거기에 들어가는 예산이나 경제적 파급효과등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이명박같은 말입니다. (너무 심했나.)
최소한의 고려가 있어야 합니다. 축구에서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란 질문에 '골 넣으면 돼'라는 식의 답변, 그리고 '봐라 골 넣었으니 이기지 않느냐'란 말은 넌센스입니다. 상황을 만들기 위한 방법에 대한 제시없이, 단순히 아름다운 결과만 이야기하며 '거기까지 가는 과정은 다른 사람이 개발해라'는 이야기는 좋지 않습니다.



열세의 병력으로도 의기양양 진출하는 저 공굴리기의 테란을 상대로 이제동 선수가 퀸을 보여준 일은 분명 하나의 바람입니다. 하지만 아직 테저전의 흐름을 바뀔 수 있는 폭풍이 되기에는 한참 부족합니다.

과거 비슷한 예로 다크아콘이 주목되어 사용되긴 했지만, 결국 '대승하지 못해도 전투력의 우세만 지속하면 된다'는 마인드를 표현하는 리버에 밀렸으니까요. 고스트 역시 애초에 캐리어를 잡으려면 캐리어를 압도할만한 화력이 필요하기에 3/3업 골리앗에 자리를 내줘야 했습니다.

만약 퀸이 잠시라도 대세가 된다면, 그것은 다크아콘과 고스트에게도 희소식이 될 것입니다. 비슷한 이유로 쓰이지 않았을테니까요. 그렇다면 진실로 입스타조차 나오지 못하는 스카웃을 제외하고 모든 유닛을 사용하는 시대가 도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