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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6/09/04 18:36:13 |
Name |
퉤퉤우엑우엑 |
Subject |
[소설] 殲 - 8.Normal |
순간, 태일의 표정이 굳어졌다.
"선배, 방금 뭐라고...?"
상당히 당황한 듯, 천천히 입을 열어 되묻는다.
아직도 표정은 그대로 굳어있다.
"어, 네가 전에 공원에 갔던 적이 있었냐고 물었어."
문득, 나 자신이 뭘하고 있는지에 대한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아아, 그래. 태일에게 전에 공원에 있던 사람이 너였냐고 묻고 있었지.
"총, 같은 걸 들고."
태일이 계속 바라보고 있자 마지막 말을 덧붙였다.
"......"
태일에게선 대답이 없다.
이번에도 굳은 표정으로 아래를 주시하며 뭔가를 생각하는 듯한 표정.
그렇지. 사실대로 말해야하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겠지.
자신의 비밀을 다 알아버린 것 같으니까, 그걸로 고민하고 있을거야.
"선배,"
고개를 다시 치켜들고 태일이 입을 열었다.
"그거, 정말 진지한 건가요?"
"어? 뭐가. 뭐가 진지하냔 건데."
"그 질문, 제가 꼭 대답을 해야하는 진지한 질문이냐구요."
태일이 날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진지한 질문 이냐'라니. 그런 말엔 마땅한 대답이...
"지금 '아니요'라고 대답을 해야할지 아닐지 생각했어요.
그런 걸 물어본다는 게 장난이라고 생각했는데, 선배 표정이 너무 진지해서 장난으로 넘기면 안될 것 같았고."
무슨 말을 하고 있는거야.
그냥 '장난'으로 받아들인다는 건가.
"정말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죠, 그거?"
"아, 어. 그런데......"
나도 모르게 말끝을 흐렸다. 뭐라 해야 할까,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어서 말끝을 흐렸다.
"그렇다면 제 대답은 '아니요'네요."
태일이 다시 미소(라고 생각했다)를 지으며 말했다.
아직까지도 별로 큰 일이 날 뻔한 상황이 아니라는 듯 자연스럽다.
"음...알았어."
무의식적으로 대답을 했다.
지금은 내가 심하게 잘못 짚은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채웠다.
태일의 모습은 지나칠 정도로 평소처럼 자연스럽다. '점심은 먹었어?'라는 질문에 대답하는 것처럼, 지나치게 자연스러워.
분명히 내 생각대로라면 크게 놀라고 어떻게 알고 있냐고 물어야 했다.
하지만 그런 기미조차 보이질 않고 지금도 평소대로(평소에 여기 있을 일은 없지만) 서 있다.
분명히 맞을텐데. 분명히 그 사람이 맞을텐데, 뭐지. 저 당연한 듯한 모습은.
"선배, 그럼 이만 가도 될까요?"
태일이 더 못기다리겠다는 듯 말했다.
맞아. 아직 집 안에 있었지.
"어. 가도 돼. 갑자기 불러세워서 미안."
"아니요. 제가 이 집에 갑자기 온걸요."
태일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리고는 다시 문을 열고 방에서 나갔다.
애초에 집, 이란 말보단 방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했으려나.
왠지 몸에 힘이 빠져서 침대에 드러 누웠다.
조금 전에 내가 왜 그렇게 말을 했는지 생각했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물었다. 내가 왜 태일을 의심했었지?
그건, 그저 그 사람과 닮았기 때문이었다. 어디가? 겨우 목걸이가 닮았던 건 아니였나?
아니. 목걸이만이 아니더라도 얼굴도 많이 비슷했었어. 그리고...
갑자기 철컥, 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놀라서 몸을 일으켜 문 쪽을 보았다.
"깜빡 잊은 말이 있어서요."
태일의 목소리가 들리자 안심하고 다시 천장을 바라보며 누웠다.
태일은 목만을 방 안으로 내민채 말하고 있는 걸로 보인다.
"내일 저녁 쯤에 밖으로 나올 수 있어요? 보여주고 싶은 게 하나 있는데."
"내일 저녁? 저녁이라니. 내일도 학교..."
무심코 달력을 보았다. 그때서야 오늘이 금요일, 그것도 휴무토를 끼고 있는 주의 금요일인걸 알았다.
"내일은 학교도 안가잖아요. 게다가 간다고 쳐도 토요일이면 저녁에 학교에 있지도 않을건데."
"오늘이 몇요일인지 몰랐어."
내가 뉴스를 안본다고 했을 때와 똑같이 경멸하는 표정을 짓는다. 보고 싶지 않은 표정.
그 가죽 저리 치워줘. 라는 말이 목까지 올라왔지만 참아냈다.
"근데 왜 하필 저녁이야? 낮에도 상관없지 않아?"
"보여주고 싶다는 게 저녁이나 밤에만 가능한 거라서요. 낮에는 안돼요."
목만 내미는 자세가 힘이 든 듯 태일이 한쪽 발을 방안에 들여놓았다.
"알았어. 어차피 할 일은 항상 없으니까."
혹시 놀자며 누가 전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무시했다.
그럴 가능성이 그리 높지도 않으니.
"네. 그럼 기다릴께요. 내일 저녁에 공원에 오세요."
말하고는 바로 문을 닫는다.
내일 저녁 공원이라...
어, 잠깐. 내일 저녁에 공원이라고?
저녁이라는 거, 대체 언제인지 알 수가 없잖아.
뭐, 태일이가 다시 오겠지. '정확히 몇시에 만날지를 빼먹었네요.' 라면서 다시 머리만 내밀거야.
그보다 하고 있던 생각을 마무리 지어야 한다.
어디에서 멈췄더라...아아, '어디가 닮았는지' 생각했었지.
목걸이 말고도 얼굴이 상당히 비슷했었다. 정확히 보지는 못했지만, 여러모로 비슷하게 생겼었어.
그 아래를 볼 때 표정이라든가 두상이라든가. 그리고 둘 다 잘생...겼...고(순간 자괴감이 밀려왔다).
또 그 사람은 공원에 있었고, 태일도 공원에 '다시' 갔었다고 말했다.
언제 갔는지는 알 수 없지만 모두 공원에 갔었다면 동일인물일 확률은 충분해.
문득, 공원이라는 곳이 떠오르면서 태일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공원에서 만나자고...했었지.
왜 또 하필 공원인거야? 그리고 뭘 보여주겠다는 거지?
뭔가, 공원에서 만나자고 한 점에서 또 태일에게 의혹이 생겼다.
태일과 그 사람은 적어도 특별한 관계에 있을거다. 동일인물이라는 생각도 제쳐놓을 수 없고, 최소한 둘은 아는 사이일거야.
닮았다는 이유로 그러는 게 조금 억지스럽지만. 아니, 엄청 많이 억지스럽나.
공원, 생김새, 목걸이
그 둘에 대한 공통점은 단 세가지 뿐이지만, 느낌이 태일은 그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고보면 느낌이라는 게 틀려 라고 소리친 건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어.
...물론 그렇게 되면 나한테 무슨 문제가 있는 거 겠지만.
결국 오늘은 태일과 그 사람에 대해 의심만 하고 얻은 건 없었다.
그래도, 그 의혹이 사실일지 아닐지도 모르고 있으니 실질적으로 얻은 건 없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이상한 느낌을 여러번 받긴 했어도 이런 생각을 한 적은 처음이잖아.
마지막에 이 생각이 틀린 생각이었다고 깨닫게 되면 그냥 잊으면 되는거야.
속으로 태일이한테 미안하긴 하겠지만 의심해서 나쁠 건 없겠지.
솔직하게, 내 생각이 틀렸으면 하고 은근히 바라고 있다. 제일 가까운 후배가 그런 사람이라면 그리 좋은 일만은 아니니까.
내일 저녁 공원에서.
내일 저녁 공원에서 뭘 좀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지.
어쩌면 또 그 사람이 온다거나 한다면, 그러면서 태일도 온다면 되는거야.
빨리 내일이 되려면 잠드는 것이 가장 빠르겠지.
악몽은 어젯밤에도 전혀 없었으니까 오늘도 당연히 없겠지─아니, 없었으면 해.
"...아."
그러고보니 태일이 다시 오지 않았다.
뭐, 어때. 저녁이라고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시간인걸. 8시까지 기다려 보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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