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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5/09/21 20:51:29
Name jerrys
Subject 얼리어답터에 대하여.
부제:호로호로를 아시나요?


어린 시절 우리집은 밭 한가운데 있었다. 감자와 고구마 밭, 그리고 울도 담도 없는 집.
인천에서도 중심가였지만, 내 어린시절에는 허허벌판에 집 몇 채, 그리고 논과 밭이 대부분이었다.

지금도 기억나지만 아버지의 서랍 안엔 항상 내가 처음 보는 진기한 물건들이 그득했다.
그렇다. 아버지는 그 당시에는 매우 드문 얼리어답터였던 것이다.

초등학교(국민학교)들어갈 무렵이었나..
아버지는 이상한 새들을 사오셨다.
일명 "호로호로" 라는 요상한 이름의 새.
호랭이 담배 피던 시절이고, 인터넷은 커녕 집에 전화도 없던 시절이라서(국민학교 3학년 때
처음 전화가 생겼다) 한낱 새이름에 엄정한 고증을 거쳤을리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나는 "호로호로"라는 그 이름은 애칭이나 별칭 정도 였을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우리동네엔 칠면조를 키우는 집이 있었는데 아이들에겐 공포의 대상이었다.
닭은 우습게 여기는 담력이 쎈 아이들도, 칠면조 우리 근처엔 가지 않았다.
칠면조가 한번 물면 손가락을 잘린다고 하는 소문을 누군가가 퍼뜨렸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칠면조 주인의 작전이었던 것 같다.

하여간 이 호로호로란 놈은 생긴 것이 칠면조와 상당히 비슷했다.
검은색 몸에 흰반점이 나 있어 녹록치 않은 성격을 표현하는 듯 했다.
아이들은 호로호로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고, 나 역시 이 불쾌한 새 근처엔
가지 않았다.

좀 난감했던 것은 이웃집 사람들은 우리가 새 수십마리를 키운다고 몇 번 항의를 했던
것이다. 집들이 띄엄띄엄 있던 옛날이었음에도, 항의가 들어온 것을 보면 이 호로호로란
놈의 목청을 짐작할 듯 하다. 더군다나 단 두 마리임에도 불구하고 암수가 소리높여
"호로호로" 하고 울기 시작하면 동네가 한바탕 떠나갈 정도였다.

만일 지금 도심지에서 이 새를 키운다면, 반상회에서 매장될 각오를 하셔야 할 것이다.

하여간 이놈의 새는 약간의 알과 욕 비스무리한 엄청난 소음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반가운 사건이 터졌다.

어느날 밤, 호로호로 두마리가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신뢰할 만한 정보에 의하면, 인근 공사장의 인부들이 이놈들을 밤에 서리해가서 구워 먹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코웃음을 쳤다. 아무리 배가 고프기로서니 먹을 것이 따로 있지 맛이라고는
전혀 있을 법하지 않은 새를 훔쳐다 구워 먹었다니.


수십 년이 지나고 이 사건은 잊혀졌다.
헌데 최근 어느 홈피에서 이 새에 대한 정보를 새롭게 알게 되었다.
본명은 호로새(호로호로보다 더 욕같다)


http://blog.naver.com/ilovetrombon/120016094967
위 블로그를 보면 다음과 같은 설명이 있다.
--------------------------------------------------------------------------------------------
호로조는 「판타드」란 원명을 가진 아프리카산 야생 조류로 고기맛이 워낙 좋아 프랑스 식민지 시절부터 가축으로 길들여온 것이라고 한다. 프랑스에서는 현재도 조류 중 가장 맛이 있고 비싼 요리로 각광받고 있다.  

  이 호로조가 한국에 도입된지는 16년 전쯤 되나 오리고기가 호남의 일부지방에서나 별미로 취급되어 왔다가 이제야 겨우 전국적으로 퍼지기 시작한 것처럼 가슴살이 회 맛으로 일품인 호로조는 이보다 더 늦게 빛을 보기 시작한 것이다.

  호로조는 낯선사람이나 동물이 지나가면 듣기 시끄럽게 울어대는 거위처럼 집을 지키는 데도 쓸모가 있으며 힘도 좋아 한번 날면 높은나무 꼭대기까지 단번에 올라가며 놓아 길러도 멀리 가지 않고 닭처럼 주위를 빙빙 돈다.

  최근 맛자랑의 메스콤을 통하여 홍보된 이후 사육을 희망하는 농가들의 분양문의가 날로 늘고 있는 실정이다.
---------------------------------------------------------------------------------------------

여기서 주목할 만한 구절.
한국에 도입된 지 16년 쯤 된다고 한다.
우리집에 도입된 것은 1970년대 말(77-78년?)이니 대략 27년 전 쯤이 될 것이다.
아프리카에서 직수입 하신 걸까? 아니면 프랑스에서?

어쨌거나 이 새의 효용가치를 보고 선구자의 마음으로 도입하신 아버지.. 진정 놀랍다.
얼리어답터란 이름이 부끄럽지 않다.

그러나 더 놀라운 것은 징그러운 새의 생김새를 아랑곳하지 않고 이 새의 맛을 알아
서리한 공사장의 인부들이다. 아버지는 단지 이 새의 알을 취하셨을 뿐이지만 인부들은
"고기의 훌륭함을 이미 간파하시어 그 맛을 취하니 참으로 좋았도다" 이다.

얼리어답터의 지존은 과연 인근 공사장의 인부들이었을까.



* 얼리어답터의 의미를 자구를 그대로 해석해서 임의로 썼으므로 요즘 쓰이는 의미와 다를 수 있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 이 글은 제 누님의 글을 컨버젼한 글입니다. 퍼가기를 허락하지 않아서.. 흑흑.
  원본이 훨씬 재미 있습니다.



P.S.추석이라 집에 가서 아버지께 여쭤 보았다.

    나 "아버지 혹시 호로호로란 새 기억하세요?"
    아버지 "????? 그 뭐시라?"

    팔순에 가까운 연세지만 정정하신지라 기억하실 줄 알았는데, 잘 기억을 못하시는 듯.
    하여간에 조금 허무하고 서운했다.
    하지만 어쩌랴. 진정한 얼리어답터는 뒤를 보지 않고 앞만 보고 가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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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터테란J
05/09/21 20:54
수정 아이콘
우리네 정다운 추억의 이야기로군요^^
얼리어답터라 평소에 관심이 많던 단어인데,
스타커뮤니티인 우리 피지알에서 보게될줄이야..^^;
인생에 있어 앞을 보고간다는것 새삼 중요하다는걸 느끼게 됩니다.
마술사얀
05/09/21 21:05
수정 아이콘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글 잘쓰시네요. 누님이 쓰신 원본도 보고 싶군요. ^^
EpikHigh
05/09/21 21:12
수정 아이콘
앵 물건에 대한 이야기인줄 알았어요 하하;;
EpikHigh
05/09/21 21:12
수정 아이콘
저희집에 지름신을 불러들이는 책이 하나 있어서링;;
메딕아빠
05/09/21 21:13
수정 아이콘
얼리어답터란 단어에 대한 색다른 방식의 접근 ...
그 공사장의 인부들이 진정한 얼리어답터인 것 같네요 ^^

윈도우 ... 인터넷 ... LCD ... 노트북 ... Mp3 ... 디카 ... PMP ...
새로운 무언가를 가지게 되는 것이 좋아 ...
겁없이 지르는 것을 즐기는 편이지만 ...
적어도 전자제품에 대한 얼리어답터 정신은 ... 권해드리고 싶지는 않네요 ...
대중화되지 않았을 때의 가격 ... 장난 아님^^
악플러X
05/09/21 21:15
수정 아이콘
키야 대단하신 분이네요
05/09/21 22:07
수정 아이콘
하하하 정말 재밌는 글이에요..!
보면서 계속 키득키득 거리면서 봤네요.. ^^
부들부들
05/09/21 22:16
수정 아이콘
막 웃음이 나는 글이네요.
재밌게 잘봤습니다 ^^
마술사
05/09/22 01:31
수정 아이콘
이야;;;
예아나무
05/09/22 06:02
수정 아이콘
돌이켜보면...-_- 우리 아버지도 얼리어답터 셨던거 같아요.
cdp 디지털피아노 식기세척기 dvd플레이어 가정용노래방기계 까지...
-_-아버지의 구입력(?)에 GG...
지금은 골동품이되어버렸지요...ㅎ
온누리
05/09/22 09:25
수정 아이콘
재밌게 잘 보았습니다.
정말 누님분의 원글이 궁금해 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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