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트맨이 암호를 외자 곱추는 의기양양한 표정이었다.
'걸그룹의 배열은 시간마다 바뀌며 이는 형님이 지정한 임의에 난수표용 책과 방정식에 대입하지 않으면 절대 알아낼 수 없다. 즉 난수표나 공식을 몰라 카라와 에이오에이를 바꾸어 말한다거나 이엑스아이디 같은 이름이 어려운 걸그룹을 잘못 왼다거나 하면 신경가스가 작동하게된단 이야기지,,,, 흐흐흐, 그리고 이 자랑스런 시스템 모두를 바로 형님보단 못하지만 아무튼 천재 이 김산초가 만들었던 것이지."
",,,,,,,레인보우, 헬로비너스, 걸스데이, 타이티!"
"지이잉!"
배트맨이 암호를 모두 입력하자 원형의 방탄유리는 소리를 내며 열리었다.
산초는 나무함의 뚜껑이 열리는 것을 매번 볼 때마다 짜릿한 전율을 느꼈다.
배트맨은 함을 잡아 열었다.
"기이익!"
잠금장치가 풀리는 소리를 듣자 배트맨과 산초의 눈이 커지며 반짝였다.
상자 안에는 금장으로 된 회중시계가 진붉은색 천 안에 묻혀 있었다. 뚜껑이 덮혀 있는 회중시계에는 몸체 전체에 원과 다각형의 검은 음각과 양각으로 된 알수 없는 도안과 알수 없는 글자 들이 빽빽하였다.
고풍스런 느낌이 감도는 100년은 족히 되어 보이는 시계는 잔 상처하나 보이지 않아 오랜 세월 이렇게 좋은 대접을 받으며 보관 되어온 듯 보였다.
배트맨은 시계를 들어 올리며 쉰 목소리로 말했다.
"두 시간이면 충분하겠지."
산초는 초조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산초는 눈에 힘을 주며 형을 응원하였다.
"흐흐흐 형님은 최강입니다. 이기실 겁니다."
배트맨은 회중시계가 아니라 날이 달린 전투용 장갑 위에 디지탈 시계를 2시간 타이머로 맞추었다.
그리고 배트맨은 손목시계의 타이머를 맞추자 회중시계를 열고 옆에 달린 태엽 감게를 돌렸다.
회중시계는 멎어 있었고 배트맨이 밥을 주자 초침이 째깍 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외부와 달리 시계의 내부는 여느 시계와 마찬가지로 아라비아 숫자 시침 분침 초침뿐으로 매우 단조로웠다.
배트맨은 태엽을 감으며 속으로 수를 세었다.
'그쪽 세계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은 태엽을 한번 돌릴 때마다 30분,,,, 하나, 둘, 셋, 넷!'
배트맨은 시계 뚜껑을 덮지 않고 그대로 상자 안에 있는 고운 천위에 두며 생각을 이었다.
'30초 뒤에 이동이 이루어진다.'
산초는 배트맨에게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형님 저도 배트맨이 되고 싶습니다. 아까 배트맨 목소리를 만든다는 노래방 금지곡 좀 알려주세요.."
배트맨은 어린시절부터 자신을 따라하곤 했던 산초를 보면 가슴이 찡할 때가 많았다.
배트맨은 어께에 맨 RPG7을 여미고 바닥에 놓아 두었던 대전차 미사일과 슈트케이스를 들고 일어나며 말했다.
"고해, 좋은날, She's Gone을 3대금지곡이라 하지. 노래방에서 이걸 부르면 3주간 친구들에 연락이 없다는 마성의 곡들이지."
산초는 좋은 정보에 괴소를 지었다.
"흐흐흐."
말을 마친 배트맨 주위로 회중시계에 외피를 둘렀던 문양의 광휘들이 나타났다. 미약하게 시작하였던 이 금색과 검은 도형과 문자의 빛무리는 점점 커지며 배트맨의 주변을 황금빛으로 감쌌다.
산초는 이런 경험이 많은지 얼굴을 돌리고 눈을 감고 있었다.
"취이익!"
대기중에 공기가 소멸할때 나는 소음이 울리며 배트맨은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째깍 째깍!"
상자 안에 놓여진 회중시계는 아무 일 없다는 듯 동작하고 있었다.
배트맨은 아공간에 있었다.
배트맨이 추측하는 이 의식과 육신이 미묘히 틀려 있는 아공간은 우주에 존재하는 각 공간을 막는 문과 같은 존재였다.
이 곳은 회중시계의 겉면에 그려진 알 수 없는 무늬들처럼 점과 선 도형과 시간이 뒤죽박죽 공존했다.
이곳을 들어오고 빠져나가는 장치는 회중시계였고 머물러 있는 시간 외에는 배트맨의 의지대로 되는 것은 아니었다.
배트맨은 영화와 다른 자신의 현실을 생각했다.
'SF 영화를 보면 전송지점을 입력하면 바로 전송되어 워프가 되는 걸로 묘사되지, 회중시계를 이용한 워프 개념은 인터넷으로 하는 지도찾기와 더 흡사해. 이곳에 와서 구글링으로 가고자 하는 곳을 먼저 찾고 위치를 찾으면 네비게이션을 작동시키는 거야. 내가 갈 곳은 종남산 금금궁 금금세가의 장주이자 당금 무린 200년 내 소림속가 제자 중 최고라는 등신갑 금천만!'
아공간 내에서 위치는 생각의 집중을 통해 공간 내 부유하는 도형의 면적 그리고 흘러가는 위치 화살표 등으로 알아낼 수 있었는데 여기에는 많은 규칙과 공식이 숨어 있었다.
배트맨은 자신이 알고 있는 도형과 색깔에만 의식을 집중해 조합했다.
공간 내에는 배트맨이 모르는 무수한 색과 형태 그리고 방위와 속도가 다른 도형들이 존재했으나 배트맨은 아주 작은 영역의 열쇠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배트맨은 의식으로 종남산으로 가는 지도를 조합하며 아버지가 남긴 일기장 속 메모를 떠올렸다.
1. 시계 테엽은 최대 48번(24시간) 돌릴 수 있다.
2. 내 몸에 닿여 있는 물체는 같이 이동된다.
3. 사람 같은 생명체도 내 몸에 닿여 있으면 같이 이동 가능하다.
4. 큰 물체도 역시 가능하다. (15톤 트럭이나 굴삭기도 가능하였다. 점보 제트기도 가능할 것이다.)
5. 땅에 박혀 있는 건물은 이동을 시도해 보았으나 실패하였다.
6. 이동은 태엽을 감은 후 30초 뒤에 이루어진다.
7. 태엽을 감은 시간이 끝나면 역 전송되어 전송을 시작한 위치로 돌아온다.
8. 시계를 가지고 가든 안가지고 가든 태엽을 돌린 이는 무조건 전송된다.
9. 역전송시 역시 몸에 닿인 생명체와 물체를 같이 움직여 우리 세계에 가지고 올 수 있다.
10. 역전송 역시 30초의 여유시간이 주어지며 인지가 가능한 신호가 온다. (난 이 장치가 사람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으려는 상당한 배려가 되어 있음을 느낀다.)
11. 시계는 1번 사용한 이후 48시간 동안 다시 사용할 수 없다.
12. 아공간 내에 위치 조합하는 법은 내가 발견 했을 때 적혀 있었던 2가지 그리고 내가 위험을 무릎쓰고 발견한 1가지 외에도 무수히 많을 듯하다. (난 더 이상의 조합 즉 더 이상의 세계는 찾지 않을 것이다.)
배트맨은 아버지가 시계를 처음 가지고 왔던 15년 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아버지는 흥분하여 껑충껑충 뛰며 돌아왔다.
아버지는 마치 술에 취한 듯 보였으나 술을 마신 평소와 달리 눈에 따뜻함이 보이지 않았다. 당시 8살이던 어린 배트맨에겐 이런 아버지는 낯선 존재 같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배트맨은 아버지의 그 눈에 탐욕을 이해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배트맨의 아버지는 이글거리는 눈으로 외쳤다.
"하하하하하! 이제 우린 더 큰 부자가 될거야. 그리고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힘을 얻을 거야! 호태야! 내 아들 호태! 하하하! 아비는 이 세상 최고가 될 것이다!"
아버지는 어제 보던 현실에 인물이 아닌 것 같았다.
마치 영화에 나오는 악당들이 쓰는 대사 같은 말을 하는 아버지는 배트맨의 지금 기억속에는 흑백영화의 등장인물처럼 각인되어 있었다.
'아버지,,,,.'
그리고 1년 뒤 아버지는 촌스런 중국 무협영화에서 봄 짓한 중국풍 무대복을 입은 어린 산초를 데려왔다.
"쿠우우우웅!"
'13. 아공간에서는 내가 아는 사람의 대략적 위치를 알면 그것을 이용해서 좀 더 빠른 이동이 가능합니다. 아버지 이건 제가 찾은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