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첫번째 탈출“이 회사는 왜 나오셨어요?”
“왜 그 회사에서 퇴사하신 거예요?”
업계 경력이 길고, 또 나름 이직도 잦은 게임업계이다 보니 나도 거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데, 이직을 위한 면접 때 내가 제일 이야기 많이 하는 것은 이 말이다.
“제가 스스로 나온 회사는 W사와 S사 밖에 없습니다. 거기에서 나온 이유는요.”
문제는 이게 구라라는 것이다. 크크
아니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구라이긴 하다. 왜냐하면, 이제까지 이야기한 회사 역시 내가 스스로 퇴사한 회사는 맞는데 퇴사한 사유 역시 사실이니까.
난 결국 이 회사를 퇴사할 수 밖에 없었다.
월급이 3개월이 밀리게 되니, 생활이 되지가 않았다.
경제적으로는 그냥저냥 살 수는 있었다. 맞벌이였으니까.
하지만 멘탈적으로 버틸 재간이 없었다. 야근 철야를 밥먹듯이 하는 회사에서
돈도 받지 못하면서 일을 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으니까.
거기에 더해, 갈수록 정치로 인한 아사리 판이 벌어지고
그 속에서 나를 지키는 것에 허덕이는 상황이 되다 보니, 결국 도망칠 수 밖에 없었다.
한 예로, 새로 기획 팀장이 된 친구는 (전 편에 이야기한, T라는 사람이 꽂은 새로운 기획팀장도 나가리되어 그 후임으로, 정확히는 일반 기획자로 들어왔다가 정치꾼으로 승리하여 자리를 꿰찬 사람이다.)
데이터를 볼 줄을 몰랐다. 지금 이 일이 어떻게 진행이 되고 있는지 파악을 할 수 있는 능력도 없었다.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할 거라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냥, 아무것도 하는 게 없었다. 자리만 차지하고 있을 뿐.
그러면서도 모든 걸 듣고 싶어했고 보고 싶어했고 알고 싶어했다.
결국 그 친구를 위해서, 문서를 두 번 쓰고 두 번 설명하고 진행하는 일을 또 보고 하고 (다시 말해 두 번 진행하듯이 하고) 결과를 두 번 확인하고 설득해야 했다.
설득도 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아무것도 모르는데 납득을 할 리가 있겠는가.
이런 상황이다보니 도저히 버텨낼 재간이 없었던 것이지.
결국 퇴사를 선택했다. 그래도 이직 자리를 알아보고, 두 군데가 합격이 되고 한 군데 선택을 하고 나서 이직을 하긴 했다.
생각해보면 에피소드도 많지만 (이후의 다른 회사라고 에피소드가 적냐? 더 많거든 크크) 좋았던 사람들도 많고
무엇보다, 나를 주류업계로 들어올 수 있게 만들어 준 회사였다. 많이 배웠고, 정말 ‘열심히 일한다’라는 개념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 준 회사였었다. 그만큼 보람도 느꼈고. 금전적인 보람은 없었지만, 멘탈적인 ‘리턴 값’이 컸었던 곳이었다.
학창시절부터 생각하면, 난 무언가를 내 스스로 쟁취하거나 해낸 적이 별로 없긴 했다. 공부는 고만고만하게 해서 (한 반 50명 시절) 열 손가락 내외에 들게 공부를 하긴 했지만 그건 (공부 졸라 잘하는) 형한테 맞지 않기 위해서 했던 것이었다. 크크크. 글을 좀 써서 중학교 3년 동안 학교 대표를 해서 구 대회 시 대회에 나가긴 했지만, 그건 그렇게 나가면 농땡이도 좀 필 수 있고 애들 사이에서 어깨 힘 좀 줄 수 있었으며, 성적 조금 떨어져도 덜 맞을 구실을 챙길 수 있었기 때문에 요령을 잘 부린 것이고. (열라 얄팍한 생각. 참고로 학교 대회는 선생님들이 채점 평가를 하지 않는가? 그래서 그 때는 선생님들이 원하는 답이 있었던 것 같다. 정형화되지는 않지만, 원하는 글쓰기 요령이 있었었다. 난 1학년 때 대회에서 그렇게 상을 타고 보니 그 요령이 보였던 것이었던 것 뿐, 특별히 글을 잘 쓰거나 능력이 있진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고딩도 그랬고 대학도 마찬가지. 그냥저냥 어느 정도, 딱 중간만 하자라는 마인드가 그때까지 내 20후반 가까운 인생관을 관통하던 거였었는데, 게임업계 들어오면서 (물론 아가를 낳은 탓도 있겠지만, 아시겠지만 남자는 똑같잖은가? 안 바뀌고, 애같고, 지만 생각하는 인간인데) 솔직히 완전히 달라지게 만들어준 계기가 이 회사였다.
내가 하는 일에 책임감을 느꼈었다. 내 일이 굴러가서 다른 사람들의 일과 엮이고 연관이 되고, 그 결과로 새로운 과정이 나오고. 결과물이 만들어지고. 그 속에서 사람들과 섞여서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 명의 사회인으로써, (전 회사가 정말 무슨 시트콤 속 개그 같은 느낌이었다면) 이곳은 리얼 월드였었고. 난 그 속에서 한 사람의 몫 이상으로 내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적어도 스스로를) 보듬어 안아줄 수 있게 됐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드라마인, ‘나의 아저씨’에서 가장 좋아하는 씬 중 하나인
동훈의 첫째 형이 지안 할머니 장례식에 화환 폭탄해 놓고 이 순간 내가 가장 좋다는 그런 느낌.
업계를 15년 넘게 다녔지만, 이 회사 이후 다른 곳에서 이런 감정을 느꼈던 적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두 번 정도 있긴 한데 크크 이때의 감흥이 가장크다.)
잡소리가 많아서 죄송.
각설하고, 정말 오래 다닌 것 같이 (읽으시면서도 느끼셨을텐데) 생각했던 회사인데
1년 반도 못 다니고 나오게 됐다. 내가 나오고 3개월만에 문 닫은 건 함은정.
“염불씨, 대표님 관련 전화 오면 좀 잘 받아주고 앵간하면 동의 해 줘요.”
퇴사하고 반 년이 채 안 됐을 때였던 걸로 기억한다. 친하게 지낸, 이 회사 인사팀 여직원한테 전화가 온 건 말이다. 개인적으로 다른 친한 사람들과 술자리에서 어울렸었고, 나이도 동갑이라 친하게 지냈는데 조심스럽게 온 메시지는 저런 말과 함께 온 다음 내용이었다.
회사 다른 분들한테 소송이 걸렸다는 것. 그래서 탄원서 같은 걸 제출하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사실 왜 탄원서를 내야하는 거지? 잡혀 들어간 건가? 싶기도 했지만 안 물어봄)
정말 끝까지 버라이어티한 회사구나…싶었다.
뭐, 동의는 해 줬다. 돈 드는 것도 아니고, 굳이 그렇게 할 필요야 있겠냐 싶어서.
(그런데 정말 버라이어티 한 건 내가 하고 있었었다. 왜냐하면, 밀린 월급은 (조금 덜 받았지만) 그나마 받았는데 퇴직금은 못 받았었다. 그래서 결국 체당금 신청을 해서 받았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내 업계 두 번째 회사와는 이별하게 됐다.
이제 세 번째 회사.
흠…
이 회사는, 당시에는 물론이고 지금도 손에 꼽히는 ‘장난감회사’를 모 회사로 삼고 있는 곳이었다.
더불어, 업계인이나 사업, 영업, 마케팅 이런 분야에 몸을 담고 있는 분이면 알 수도 있을 만한 ‘C회장님’을 보유하고 있는 회사였다. (그 양반 용돈으로 만든 회사니까 당연 크크)
이 회사도 나는 고마운 회사였던 게
어려운 시기(월급 3개월 미납, 갓난쟁이 태어난 삼십대 들어선 급한 상황, 업계 경력 이제 2년 정도 됨)를 벗어나게 해 준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아직도 기억나는 게, 당시 가요 차트를 휩쓸었던 ‘브아걸’의 엘오브이를 들으면서 갔던 면접이었다.
“스토리가 어떤 거 같으세요?”
“네? 스토리요?”
“네. 이 캐릭터하고 이 사건이 어떤 구성으로 연결 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아, 이 캐릭터는 좀 성격이 사건하고 안 맞고, 구성은 캐릭터하고 따로 노는 것 같은데….아, 그런데 말이죠. 전”
레벨 디자이너로 지원했거든요?
왜 스토리를 물어보시는 거죠?
그렇다. 난 이 회사를 ‘레벨러’가 되기 위한 발판으로 삼고자 지원했고
연락이 와서 뛸 듯이 기뻤고
드디어, 당대를 휩쓸기 시작한 ‘언리얼엔진’을 사용하는
(죄송하지만) 후잡스러운 게임브리오 엔진 따위 안 쓰고, 이제 당당히 언리얼 엔진을 쓰는 레벨러야 라고 사람들한테 말할 수 있는 기획자가 됐어!
라고 말할 수 있을 줄 알았었는데.
“네, 너 님 아니오. 너 님은 시나리오를 하셔야 합니다.”
“아니, 왜죠?”
“그 쪽을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요.”
“누구 맘대로요? 님 맘대로요?”
“네. 내가 기획팀장이니까. 반박시 꺼지시고요.”
물론 저렇게 이야가하지 않았지만. 크크
저런 느낌이었다.
아니, 맥락도 저런 맥락이었고. 크크
난 분명히 레벨 디자이너로 지원했고
레벨 디자이너의 희소성, 가치, 가오(?)를 기대하면서 면접을 봤는데
시나리오 추가 포트폴리오를 내라고 하고
내 코가 석자니 나름 성의있게 써서( 그래봤자 한…두 시간 했나 싶은데) 보냈는데
접수한 그 다음날 합격 통지와 함께 팀장이 전화를 했던 것이다.
너 님, 시나리오 및 퀘스트, 설정 기획 쪽을 몽땅 담당해 주셔야 하겠음미다.
반박 시 님 선택은 읍씁요.
그렇게 3번째 회사에서의 생활이 시작됐다.
*잠이 안 와서 한 편 더 써서 올려 봅니다. 도배 죄송함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