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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6/12/18 02:53:07
Name 신불해
Subject [일반] 유방의 북벌과 제갈량의 북벌이 다른 점



초한쟁패 시절 한신을 얻고 북벌을 한 유방의 행적과, 삼국시대 위나라에 대한 제갈량의 북벌은 언뜻 비슷해보여서 같은 선상에서 비교하는 경우도 왕왕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론 이 두 북벌은 기본적인 상황에서부터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이를 한번 간단하게 살펴보도록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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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진짜 험준하고 깊숙한 파촉' 은 가 본 적도 없는 유방



진나라 장한을 물리치고 함양을 정복한 항우는 18제후왕 분봉을 통해 유방을 파-촉 지방의 왕으로 임명합니다. 이에 유방은 낙담했고, 수하 장병들 중에는 도망가는 사람까지 있었습니다. 이렇게만 보면 정말 엄청난 오지로 들어가는 듯 하나...


파-촉의 군주가 유방의 도읍지는 남정(南鄭) 입니다. 남정의 위치를 지도에서 살펴보면 알겠지만, 훗날의 성도와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말하자면 유방은 자기 생전에 훗날의 '익주' 지역은 아예 가 본 적도 없습니다. 어디까지나 섬서성 지역에 머물렀을 뿐이죠.



이 '남정' 은 훗날 제갈량의 북벌에서는 '북벌을 시작하는 최전방 군사기지' 로 작동합니다. 제갈량이 출사표를 올리고 군수물자와 병력을 잔뜩 끌고 남정까지 온 다음 거기서 짐을 풀고 기지를 만들고 장수들과 향후 움직임을 논의하는.... 그 유명한 위연의 자오곡 계책도 남정에서 제장들이 논의할때 나온 이야기입니다. 



즉 삼국시대에서는 상대적으로 평화로운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변경' 이었는데, 수백년전의 유방에게 그 변경은 '욍이 사는 수도' 였습니다. 때문에 당장의 군사 작전은 똑같이 남정에서 시작한다 한들, 여러모로 그 양상은 달라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재밌는 것은 삼국시대의 기준에서 보면 '파-촉으로 통하는 입구' 지나지 않는 남정이, 초한쟁패 시기에서는 정말로 '이루 말할 수 없는 오지 중의 오지' 취급을 받았단 사실입니다.


項王、范增疑沛公之有天下, 業已講解, 又惡負約, 恐諸侯叛之, 乃陰謀曰:「巴、蜀道險, 秦之遷人皆居蜀.」乃曰:「巴、蜀亦關中地也.」故立沛公爲漢王, 王巴、蜀、漢中, 都南鄭. 而三分關中, 王秦降將以距塞漢王. 項王乃立章邯爲雍王, 王咸陽以西, 都廢丘. 


천하를 나누어 여러 장수들을 후(侯)와 왕으로 세우는데, 항왕과 범증은 패공이 천하를 차지할까 의심했으나 이미 그와 강화했고 또 약조를 어기는 것이 꺼림칙하고 제후들이 그를 배반할 것이 두려워서, 은밀히 모의하기를 “파(巴), 촉(蜀)은 길이 험하고 진나라의 유배자들이 모두 촉에 살고 있다.”라고 하고, 이어 말하기를 “파와 촉 역시 관중의 땅이다.”라고 하고는 패공을 한왕(漢王)으로 세워서 파, 촉, 한중(漢中)의 왕으로 봉하고, 남정(南鄭)에 도읍하게 했다. 그리고는 관중을 삼분해 항복한 진나라 장수들을 왕으로 삼아 한왕을 견제하게 했으니, 항왕은 장한을 옹왕(雍王)으로 삼아 함양 서쪽의 왕으로 봉하고 폐구(廢丘)에 도읍하게 했다.




初,諸侯相與約,先入關破秦者王其地。沛公既先定秦,項羽後至,欲攻沛公,沛公謝之得解。羽遂屠燒鹹陽,與範增謀曰:“巴、蜀道險,秦之遷民皆居蜀。”乃曰:“蜀漢亦關中地也。”故立沛公爲漢王,而三分關中地,王秦降將以距漢王。漢王怒,欲謀攻項羽。周勃、灌嬰、樊噲皆勸之,何諫之曰:“雖王漢中之惡,不猶愈於死乎?”漢王曰:“何爲乃死也?”何曰:“今眾弗如,百戰百敗,不死何爲?《周書》曰‘天予不取,反受其咎’。語曰‘天漢’,其稱甚美。夫能詘於一人之下,而信於萬乘之上者,湯、武是也。臣願大王王漢中,養其民以致賢人,收用巴、蜀,還定三秦,天下可圖也。”漢王曰:“善。”乃遂就國,以何爲丞相。何進韓信,漢王以爲大將軍,說漢王令引兵東定三秦。語在《信傳》


당초에 제후들이 서로 함께 약속했는데, 먼저 관중에 입관하여 진을 파하는 자가 그 땅의 왕이 되기로 하였다.  항우가 뒤늦게 들어와서는, 패공을 공격하고자 하니, 패공이 사과하여 그 노기가 풀어졌다. 항우가 떠나면서 함양을 도륙하고 불지르고, 범증(范增)과 모의하길 "파촉(巴蜀)의 길은 험하여 진의 유배받은 백성들은 모두 촉(蜀)에 거주합니다."라 하니, 이에 "촉한(蜀漢) 또한 관중 땅이오."라 했다. 그래서 패공을 세워 한왕(漢王)으로 삼고, 관중 땅을 3분하여, 진의 항복한 장수들을 왕으로 삼아 한왕을 막게 하였다. 


한왕은 노하여 항우를 공격하는 것을 모의하고자 하였다. 이에 주발(周勃), 관영(灌嬰), 번쾌(樊噲)가 모두 찬성하여 이를 권하였는데, 소하가 간언하길


"비록 한중의 좋지 않은 땅에 왕이 되셨지만, 이는 죽는 것 보다 낫지 않겠습니까?" 라 하였다. 


한왕은 "네가 죽고 싶으냐?" 라 하니, 이에 소하는 


"지금 상황이 여의치 않아 백번 싸우면 백번 지는데, 죽지 않는다한들 어찌 되겠습니까? 주서(周書)에 "하늘은 먼저 취하지 않고, 도리어 그 허물을 수용한다(天予不取, 反受其咎)"고 했습니다.  옛 말에 "천한(天漢)"이라고 했는데, 그 칭송함이 매우 아름답습니다. 무릇 능히 한 사람의 밑에서 굽힐 수 있으면, 만승의 윗에서 펼칠 수 있으니, 탕왕과 무왕이 바로 그것입니다.  원컨대 대왕께서는 한중의 왕이 되어 그 백성을 기르고 현인을 초치하고, 파촉을 수용하여 돌아와 삼진(三秦)을 평정하면, 천하는 가히 도모할 수 있습니다" 라 했다. 

한왕이 "좋다."라 했다. 이에 봉국으로 가서, 소하를 승상으로 삼았다. 소하가 한신(韓信)을 천거하니, 한왕이 그를 대장군으로 삼았는데, (한신이) 한왕을 설득하여 영을 내려 군대를 거느리고 동쪽으로 향하여 삼진을 평정했다. 이에 관한 말이 "한신전"에 있다. 


한서 소하전





항우와 범증은 사전에 모의하여 유방을 곤경에 빠뜨려야 겠다고 하면서 유방의 수도를 남정으로 잡고, 그런 사실을 알게 된 유방은 엄청나게 화가 난 나머지 전력에서 상대조차 되지 않음에도 항우와 이판사판으로 싸워볼려고 까지 하다가 소하의 설득으로 그만 두었습니다. 남정으로 보내는 쪽이나, 남정으로 가는 쪽이나 남정을 '사람으로서 갈 수 없는 곳' 정도로 여기고 있었다는 이야기 입니다.



만약 이런 초한쟁패 시대에 항우가 유방보고 "너 성도 지역으로 가라" 라고 했으면,  유방은 정말로 항우와 바로 전투를 벌였을지도 모릅니다.... 이 시대, 특히 중원 지역에서 온 사람들의 기준에선 성도 지역은 '문명을 가진 중원의 인간이 이곳에 가는 것은 그야말로 끝장 나는 것' 정도로 여겨진 셈입니다. 


아, 물론 촉 지방에 아예 문명이 없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촉은 상나라 시절 갑골문에도 '촉을 쳐야 하는가' 라는 점을 친 기록이 있을 정도로 오래 되었고, 춘추전국시대에도 초나라를 친 적도 있고 진나라와 싸우기도 했던 역사가 오래된 국가 문명이 있었습니다.


다만 진나라의 장의가 '이런 곳과 전쟁을 하는건 중원에서의 왕업에서 멀어지는 일이다.' 라고 하기도 했고, 이에 반대하여 '촉을 쳐서 그 이익을 취한 다음 중원을 공격하는게 좋다' 라고 주장한 사마착(결국 그 의견이 받아들여집니다)의 발언도 '서해의 이익을 몽땅 취했다고 해서 천하는 이것을 탐욕하다고 하지 않을 것이다(利盡西海而天下不以爲貪)' 라는 발언이었습니다.



여기서 사마착이 말한 '서해'가 무슨 뜻이냐 하면... 고대 중국인들은 세계가 바다로 뒤덮여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즉 동서남북 땅 끝으로 가면 바다가 나온다는 소리입니다. 즉 사마착이 말한 촉을 가리키며 말한 '서해' 라는 것은 '세상의 끝' 이란 말로, 훗날 장건이 서방을 탐험하기 이전까지 중국인들은 촉을 넘어서 조금만 더 가면 이 세상의 끝이 나올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당시 유방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2. 파-촉의 풍부한 물산을 이용하여...운운은 전부 잘못 알려진 사실


실제 유방이 파촉 깊숙한 곳은 고사하고 남정에 머무른 시기만 해도 길게 잡아봐야 3개월 ~ 4개월에 지나지 않습니다. 촉 지방에 항구적인 거점-국가를 건설하고 이를 바탕으로 싸운 제갈량의 촉나라와는 달리 유방은 그 촉나라의 '입구' 에 지나지 않는 남정 부근에서 잠깐 몇개월 머물렀을 뿐입니다. 그 기간은 1년은 고사하고 반년도 되지 않습니다.


제갈량의 북벌이 촉의 인적 자원과 물리적 자원을 꼼꼼히 챙기고 끌어들이고 체계적으로 싸운 전투라면, 유방의 경우는 '왕부터 졸병에 이르기까지 전부 당장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미칠듯한 사람들' 이 우당탕탕 한번에 이를 끝내버린 셈입니다. 북벌 이후 삼진을 평정하고 항우와 대결구도를 이룰 때부터는 촉의 물산을 이용했을 수 있겠지만, 적어도 북벌하는 과정에선 그럴 틈 조차 없었습니다.






3. 색다른 유방의 지원군



앞서 말했득 유방은 남정에 불과 3,4개월 정도 머무르고 있었을 뿐이기에 파촉의 인적자원은 고사하고(애당초 이 험지에서 사람들을 소집하여 징발할 행정력도 없음) 당장 집으로 돌아가려는 탈영병들 억누르는 것만도 힘든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파촉에서 병력 수집이 전혀 불가능 했는가? 그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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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미지였을 수도 있고..







至高祖爲漢王, 發夷人還伐三秦. 秦地旣定, 乃遣還巴中, 復其渠帥羅·朴·督·鄂·度·夕·龔七姓, 不輸租賦, 餘戶乃歲入賨錢, 口四十. 世號爲板楯蠻夷. 閬中有渝水, 其人多居水左右. 天性勁勇, 初爲漢前鋒, 數陷陳. 俗喜歌舞, 高祖觀之, 曰: 「此武王伐紂之歌也.」 乃命樂人習之, 所謂巴渝舞也. 遂世世服從


고조(高祖)가 한왕(漢王)이 되었을 때, 이인(夷人)을 징발하여 삼진(三秦)을 정벌하였다. 진땅이 평정되자 다시 파중지역으로 귀환시키고, 그들의 거수(渠帥)인 나씨(羅氏) 박씨(朴氏) 독씨(督氏) 악씨(鄂氏) 도씨(度氏) 석씨(夕氏) 공씨(龔氏) 7성(姓)에게는 세역을 면제하여, 조세와 부역을 거두어 들이지 않고, 나머지 호에게는 매해 종전(賨錢)만 내도록 하였는데, 구(口)마다 40전이었다. 대대로 판순만이라고 불렸다. 


낭중(閬中)지방에 투수(渝水)가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강의 좌우 연안에 거주하였다. 천성이 강하고 날쌔어 원래부터 한 조정을 위하여 전봉에 서서 자주 [적의] 진지를 함락시켰다. 습속이 노래와 춤을 좋아하였는데, 고조가 이를 보고, “이는 무왕(武王)이 주왕(紂王)을 정벌하는 노래이다.”라고 하였다. 이에 악인(樂人)들에게 이를 습득하도록 명하였는데, 이른바 파투무(巴渝舞)이다. 결국 [판순만이들은] 대대로 [한조]에 복종하였다.



─ 후한서 남만서남이열전 판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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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순만이 살던 낭중(랑중)의 위치.




남정에 있을 당시 유방은 남정의 아래쪽(성도보다는 북쪽)에 있는 낭중 지역에 살던 판순만이라는 이민족을 끌어들입니다. 유방은 그들을 징발했는데, 이 판순만은 강하고 날쌔어 선봉부대에서 대활약 했습니다. 삼진의 병사들은 난데없이 선봉에서 달려드는 이민족 부대를 보고 모르긴 모르되 상당히 놀랐을 겁니다.



유방은 삼진을 무찌르고 옛 진나라 지역 평정이 대략 끝내자 이들을 다시 집으로 돌려보냈고 협조한 판순만의 주요 우두머리들에겐 세역을 모조리 없앴고 나머지 판순만이에 대해서도 최소한의 세역만 걷었습니다. 용맹무쌍하던 그들을 굳이 유방이 곧 돌려보낸 점, 이후 유방이 그들에게 보여준 호의적인 태도, 그리고 징발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끌려온 사람들 같지 않게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웠던 판순만이의 적극적인 태도를 생각하면 유방과 판순만 사이에 어떠한 딜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4. 지도로 한번 살펴보자


앞에서 언급했지만 유방은 파촉 지방에서부터 떨치고 나왔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잠깐 거기 구경 좀 하다가' 다시 '되돌아' 온 것에 가깝습니다. 그 와중에 협상을 통해 판순만의 이민족을 얻을 수도 있었고, 한신의 계책을 따라 옛 길을 이용해서 진군한 것도 있었고 여하간에 꽤 쉽게 여러 지역을 돌파했고, '진창' 에서 장한을 상대로 한번 대승을 거두면서 그대로 돌파 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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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량의 북벌과 비교해봅시다. 



1차 북벌 당시 제갈량이 진창을 거치지 않고 기곡 방면으로 군사를 보내자 위나라는 지체없이 조진을 파견해 바로 저지에 나섭니다. (진창 방면으로 가지 않긴 했지만) 진창 정도 위치로 북상하기도 전에 위나라 쪽에서 빠르게 저지에 나서는 셈입니다. 이 점이 진창까지는 별 어렵지 않게 진군했던 유방의 북상과 다릅니다. (물론 여기서는 기곡 방면 진군은 속임수였고 우회군이 주공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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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예 진창 방면으로 똑같이 진군했다가 학소의 수비에 막혔던 제갈량의 2차 북벌과 비교봅시다. 좀 더 확실하게 차이를 알 수 있습니다.


이번엔 진창까지 향하는 촉군을 위군이 중간에서 요격 시도를 하진 않았지만, 이 당시 위나라는 첫 북벌에서 기곡 방면에서 촉나라가 저지되었으니 다음에는 진창으로 올 것이다 라는 판단 아래 이미 진창성의 수비를 강화하여 준비가 된 상태였고, 그런 준비를 바탕으로 버티는 와중에 왕쌍 등이 이끄는 중앙군이 지원 병력으로 속속 도착하자 제갈량은 퇴각 합니다.




유방의 북벌 당시에는 이렇습니다. 앞서 말했듯 남정에 자리 잡은지 불과 3~4개월 정도 만에 곧바로 움직인 유방의 돌발적인 움직임에 옛 길을 이용한 루트 때문에 별 대비도 안되어 싱거울 정도로 간단하게 진창까지는 가고, 장한은 헐레벌떡 진창에서 맞서 싸웠으나 대패 합니다. 유방이 남정에 자리 잡은지 3~4개월도 안되었다는 소리는, 마찬가지로 장한 역시 삼진에 자리를 잡은지 3~4개월 정도밖에 안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막 왕으로 부임하여 주변 정리를 하기에도 정신없는 시기지 진창의 방비 따위를 제대로 학소만큼 했을리가 없었습니다. 특히나 신안대학살 사태로 현지 주민들의 민심도 뒤숭숭하고 적극적인 협조도 기대하기 힘든 상황에서는 더욱 그랬을테고.



또 이 학소의 수비 당시에도 학소가 제갈량을 직접 격퇴했다기보다는 버티면서 시간을 끌고 그 사이 지원병이 도착하자 제갈량이 물러났다고 한다면, 이 당시 유방을 상대하는 항우의 경우는 제나라를 평정하기 위해 떠나 지원군 따위는 기대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만약의 일이지만, '한중' 정도만 항우의 세력권으로 남아 영향력을 미치면서 있었다면 유방의 행보는 크게 제약 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도를 보면 알 수 있겠지만 한중은 그야말로 남정의 코 앞에 있습니다. 남정에서의 모든 군사적 움직임은 한중에서 포착이 가능합니다. 유방이 군사적 행보를 시작한다면 한중은 잠시도 버티지 못하고 넘어가버리겠지만, 그 과정에서의 불온한 행보는 곧바로 장한에게 보고 되었을 테고 장한은 이를 바탕으로 좀 더 준비가 가능했을 겁니다. 



그렇다고 장한이 유방을 저지해낼 수 있는가 장담할 순 없지만, 최소한 시간은 더 끌 수 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동예, 사마흔 등 다른 삼진의 세력과 연계를 꿰할 수도 있고, 조금 더 버티면 항우가 제나라에서의 싸움을 끝내고 올 수도 있을 겁니다. 유방은 진나라를 평정하며 질척거리는 싸움을 계속해야 할 수도 있구요.




하지만,


이 한중은,



장량에게 뇌물을 받은 '항백' 의 설득을 들은 항우가, 아주 시원하게 유방에게 '그냥' 덤으로 줘 버리고 맙니다....




john cena aa big show and edge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5. 사실 '존나쎄' 였던 유방의 세력




제갈량의 북벌 당시 촉과 위의 싸움은 각국의 '국력 싸움' 양상이었다면, 이 당시 유방의 북벌은 '제후들의 세력 싸움'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유방의 한나라가 항우의 초나라를 무찌르며 북벌한게 아니라, '제후 유방' 이 '제후 장한 및 사마흔 동예' 와 싸웠던거죠.



비록 남정에 봉해지는 와중에 항우가 유방의 군사 일부를 해산시키는 불상사가 있었으나, 유방은 당초 중원의 제후들 중 항우 다음가는 2번째 세력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오히려 힘으로는 어지간한 제후들은 전부 찍어누를 위치에 있었습니다. 항우가 유방의 군단을 해산시켜 3만명만 남겼지만 기록에 따르면 그 3만 외에도 유방을 따르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을 정도로 유방은 영향력 있는 제후였습니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 판순만의 지원군도 있었고. 



일단 제대로 방비도 되어 있지 않은 진창으로 나아가는데 성공했다면, 이제 막 옹왕이 되어 자기 세력을 제대로 만들지도 못한 장한과 일대일 싸움에서 크게 밀릴 이유도 없습니다. 



진창에서 유방을 막아 세웠던 옹왕 장한은 본시 진나라군을 자기 세력으로 가지고 있던 장수입니다. 그런데 그 병력은 거록대전에서 왕리가 항우에게 대패하며 사라졌고, 그 과정에서 상당수의 장수들 역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또한 남아있던 병력도 항우의 신안대학살에서 거의 몰살 당했습니다. 장한은 자신이 본시 가지고 있던 세력은 모조리 날려버렸고, 왕으로 봉했다 한들 장한에게 주어진 3~4개월 남짓한 시간으로는 유방을 능가하는 세력을 재구성할순 없었을 겁니다. 또한 신안대학살 사건으로 진나라 사람들에게 협조를 구하기 어려워진 장한으로서는 자신의 세력을 크게 키우기는 커녕 왕으로 막 즉위하여 주변 정리를 하는것만으로도 3~4개월은 버거웠을 텝니다.



'삼진' 이라고 하지만, 기록으로 보면 유방과 적극적으로 싸운 사람은 오직 장한 뿐입니다. 사마흔과 동예는 장한이 계속 패퇴하는 동안 제대로 협조를 하지도 못했고, 장한이 모조리 패퇴당한 다음에야 유방의 침공을 받고 바로 항복했습니다. 어째서 그들이 유방과의 싸움에서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했을까? 모르긴 모르되, 이 두 사람 역시 이 시점에서 그렇게까지 강력한 세력을 구성하고 있진 못했을 듯 합니다. 




즉 촉나라의 진격루트와 전략에 고심하여 방어를 탄탄히 준비하고 떄에 따라 대규모 중앙군이 곧바로 지원을 오는 등 '열세' 를 기반으로 싸우던 제갈량의 북벌에 비해, 유방은 단순히 세력만으로도 방어측에 우위를 점했고, 거기에 적의 수비 역시 국가 단위 시스템을 굴리던 위나라에 비해 헐거웠습니다. 더구나 한중을 가지고 있고 한신의 작전으로 '옛날 길' 을 통해 가느라 기습의 효과까지 거두어 정보전에서 승리했고, 결정적으로, 언제든지 중앙군이 파견나와 현지 수비군을 지원하던 위나라와 달리 이 당시 항우는 제나라에서 학살에 저항하는 백성들과 싸우느라 발이 묶여 있었습니다.




재밌는 것은 불필요한 학살로 삼진의 기반을 모조리 날려 그들을 약화시킨 것도, 

유방을 남정에 박아두었으면서도 경계심 없이 한중을 넘겨주어 유방의 움직임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하게 된 것도, 

실패한 분봉 조치로 제나라에서 대규모 저항을 겪게 되어 발이 묶이게 된 것도 


모두, 전부 항우의 자업자득이라는 사실입니다.  이 3가지는 모두 항우가 조금만 신경 썼어도 굳이 당하지 않아도 될 일이었으며, 만일 그렇게 되었다면 유방의 북벌은 우리가 지금 알고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지독한 난이도가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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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쓰우와와
16/12/18 03:06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결국 항우는... 정말 한숨만 나오네요.

p.s. 4번에서 쓰신 지도가 보이지 않습니다.
신불해
16/12/18 03:29
수정 아이콘
수정했습니다. 이제 나올겁니다.
톰슨가젤연탄구이
16/12/18 03:25
수정 아이콘
초한쟁패기의 항우를 볼때마다, 어떻게 하면 지도자의 트롤링으로 망하는지의 교과서의 느낌입니다.
언어물리
16/12/18 03:36
수정 아이콘
항우는 망한 지도자이고, 동시에 망했어야만 한 지도자네요;; 좋은 글 고맙습니다^^
해피바스
16/12/18 03:42
수정 아이콘
추천드립니다
제갈량 북벌지도같은 이미지는 어디서 얻으신건가요?포함해서 삼국지 전장 지도같은걸 볼수있는 곳이있을까요
푸른음속
16/12/18 04:10
수정 아이콘
정말 재밌게 보고 갑니다
AeonBlast
16/12/18 07:54
수정 아이콘
저는 유방의 북벌이라길래 흉노에게 개발살난 그건가 싶었는데 초한지이야기였군영.
키스도사
16/12/18 08:12
수정 아이콘
추!천!
16/12/18 08:54
수정 아이콘
그리고 유방이 한중왕에서 북벌 성공한걸 제갈량이 또하는건 한번 한걸 또 해야 하는거니까 쉽지 않겠죠. 저 유방의 북벌은 그당시에는 너무도 유명한 이야기고요. 잘읽었습니다.
candymove
16/12/18 09:24
수정 아이콘
삼국지에서 허구한날 한신이 이용한 옛길 운운했던게 이 얘기였군요.. 초한지라도 다시 읽어봐야...
16/12/18 09:54
수정 아이콘
추천합니다. 유방과 제갈량은 상대했던 적의 세력 자체가 너무 크게 달랐죠....
모리건 앤슬랜드
16/12/18 10:37
수정 아이콘
그정도 전력차임에도 유비가 '내가 한고조께서 그리하였듯이 지금 이땅에서 한중왕으로 일어나 조조 널 멸하고 한조를 다시 세우리라'라고 선언한게 지금에서도 전율이 이는데, 당시에는 어마어마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촉땅은 현재 기록된바에 의하면 상주시대에는 삼성퇴 청동기문명으로 따로 놀다가, 춘추전국시대부터 충칭부근에 파, 성도부근에 촉 해서 치고박고 싸우는데 그나마 인접해있던 가까운 문명국인 진, 초도 야 쟤들 계륵이네 내버려둬라하고 선긋고있던 상황이었던거죠. 근데 무왕벌주하던 시절 이동네에서도 군을 보냈니 어쨌니하는걸보면 존재자체는 인지하고있었던것같기도 하고 애매하네요
남광주보라
16/12/18 10:40
수정 아이콘
항우 멍청이. . . 까야 제맛.

그리고 천하의 역적 스파이 항백놈. .

전 초한쟁패에서 딱히 항적을 편들고싶지도 않지만 항백 이놈이 역적질하는 거나, 항우는 항우대로 답답하고. .
Liberalist
16/12/18 12:25
수정 아이콘
항씨 일족이 제대로 X맨이었죠. 무능한 주제에 뒤에서 칼이나 꽂아대고... 크크;;
뻐꾸기둘
16/12/18 11:06
수정 아이콘
세력 강한 것도 강한건데, 그렇게 항우에게 쥐어 터지면서도 never give up 하던것이 묘하게 존시나랑 비슷하네요.
홍승식
16/12/18 11:17
수정 아이콘
위성지도로 보니 한중 주변의 산지가 어마어마하네요.
남정으로 가게되었을 때 유방이 낙담한 이유를 알겠습니다.

그리고 본문의 판순만이는 그 자체가 민족이름이 아니었을까요?
한자로도 板楯蠻夷 라고 적는 것 같은데요.
판순만 이라고만 적으면 안될거 같은데요.
신불해
16/12/18 17:06
수정 아이콘
판순만 같은 경우는 '판순만이' 라고 부르기도 하고 그냥 '판순만' 이라고 불러도 딱히 틀린 용례는 아닌듯 합니다.

https://zh.wikipedia.org/wiki/%E6%9D%BF%E6%A5%AF%E8%9B%AE(중국어 위키백과 판순만 항목)
http://baike.baidu.com/view/193194.htm (바이두 위키백과 판순만 항목)
Liberalist
16/12/18 12:27
수정 아이콘
확실히 유방이 삼진 정벌할 당시는 제갈량 북벌에 비교한다면 이지모드였네요. 유방 때 삼진왕이야 유방이 쉽게 누를 수 있는 수준이었다지만, 제갈량은 한타 제대로 붙어도 이길 각 제대로 안 보이는, 황제인 조예부터 시작해서 후방의 온갖 백업 다 받는 옹양주 방위군과 싸웠어야 하니까요.
16/12/18 13:10
수정 아이콘
재밌는 건 유비는 이걸 이겼다는거죠... 한중공방전에서... 그것도 무려 조조의 친정을 상대로.
Liberalist
16/12/18 13:31
수정 아이콘
그래서 저는 유비 과소평가하는 사람들 보면 코웃음부터 나옵니다.
아니, 세력 갖춘 조조랑 저렇게 전면전해서, 그것도 공격자 입장에서 쳐들어가서 이긴 군웅이 유비말고 또 누가 있다고.
적토마
16/12/18 12:39
수정 아이콘
한대에 이르러 쓰촨은 천부지국 소리 듣고 풍요로움의 대명사가 되지 않았나요?
그런점에서는 후대의 제갈량이 유리한 면도 있었을 것 같은데 궁금합니다.
카서스
16/12/18 14:12
수정 아이콘
상업은 매우 발달했을 겁니다. 촉의 화폐가 위와 오에 통용된 이유가 신용도가 높아서 였으니까요.
하지만 위도 병호제 둔전제 호조제 같은 제도로 어느정도 경제부활과 군사확보가 이루어진 상태였고 무엇보다 인구자체가 달랐습니다. 고대사회에서는 노동력이 가장 큰 재화였고 이때문에 고대의 세제는 인두세형태를 띄고 있죠.
그럼에도 군세 자체는 크게 차이가 안납니다. 위가 대촉전선에 전군을 투입할수는 없으니까요. 대신 병종의 질적차이가 어마어마한게 북방이민족 용병을 무한정 긁어모을수가 있었습니다. 이게 문제가되어 250년쯤되면 이민족이 너무많이 잡거해 사융론이 빈번하게 발생하긴 하지만요.
카바라스
16/12/18 14:54
수정 아이콘
결국 저 시대 국력과 유용할수 있는 병력의 수는 인구수로 결정됩니다. 익주가 아무리 풍요로운 곳이라 해도 13개주 중 인구 백만인 1곳일뿐이고 하북과 중원 알짜배기 9개주를 점유하고 있던 위나라와 비교불가죠. 애초에 전문가들도 촉이 중앙집권이 아무리 잘되있었다해도 지방호족들 눈치봐야했던 오나라보다도 약했다고 보는게 대다수입니다. 인구와 영토의 규모가 달랐으니까요. 그런의미에서 형주를 상실한건 국력 절반을 날린거였죠. 북벌의 성패는 가정전투나 단곡대전에서 결정난게 아니라 이릉에서 결정됐어요..
bemanner
16/12/18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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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유방의 북벌은 삼국지에서 장로가 이곽.곽사를 치러가는 가상의 상황 정도로 보면 되려나요? 초한지를 이야기 형식으로 풀어내는 책에서는 항상 항우가 유방을 압살할 수 있는데 꼬이고 꼬여서 진 걸로만 나왔는데 유방이 저정도 세력이 있었는지는 몰랐습니다.
으와하르
16/12/18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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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유방과 삼국지 장로를 비교할 수가 없죠. 장로는 전혀 쓸모없는 양씨 호족들 제외하면 장수다운 장수도 없던 세력이었지만 유방은 이미 저 때 초나라에서 출발해서 진나라 남부를 휩쓸고 무관으로 진입, 함양을 점령한 전력이 있습니다. 초한지 소설에서는 10만을 일컬얻고 정사에서도 수만 단위의 병력은 가지고 있었다고 봐야죠.
항우에 비해서 쳐져서 그렇지 명실공히 초나라 넘버2의 군벌이었어요. 장수진이야 패현의 장수라인+장량+한신까지 영입해 있는 상태고...
16/12/18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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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하전투까지 몰리지 말고... 저때 항우가 친정해서 조졌으면 나오지도 못 했을 텐데 항우는 왜 다른 제후들부터 조지고 있었을까요. 유방이 항우 다음가는 세력이면 가장 우선해서 싹을 잘라야 했을텐데 저렇게 치고나오고 있는데 항우는 직접 친정을하지 않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이유가 있나요?
으와하르
16/12/18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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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씨의 제나라와 전쟁중이었죠. 당시 제나라의 왕 전영은 제나라를 세 조각으로 나눈 항우의 분봉에 반발해 다른 두 나라의 왕을 죽이고 제나라를 도로 합쳐놓은 다음 항우의 속을 이래저래 긁고 있었거든요.
그 제가 꽤나 강력한 전력인 것이, 나중에 한신이 그 제나라를 손에 넣자 괴철이 한신에게 천하 3분을 제안합니다. 물론 제 뿐만 아니라 조, 연까지 합친 세력이긴 했지만 결국 조, 연을 상회하는 국력이 제나라에 있었다고 봐도 이상할 게 없고요. 실제로 해하 대전에서 항우군을 대파한 한신의 군대가 그 제나라에서 모병한 병력이 주력이기도 했고요.
이치죠 호타루
16/12/18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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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자면 수수깡을 꺾는 것과 통나무를 꺾는 정도의 차이쯤이라고 보면 되겠군요. 그럼에도 농서를 위협했던 제갈량이 더욱 돋보이는 것 같습니다.
카서스
16/12/18 14:21
수정 아이콘
게다가 유비가 이릉전투에서 인재들을 날려먹어서...
장량 한신 소하급 인재가 한둘이라도 더 있었으면 몰랐을겁니다
마스터충달
16/12/18 14:33
수정 아이콘
항우도 까야 제맛이로군요...
Agnus Dei
16/12/18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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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와 초한지는 기간부터가 엄청 차이나죠. 당연히 동등 비교가 힘든데 무작정 비교하면서 평가하는 사람들이 생각외로 많더군요.
16/12/18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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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부의 사람드에 의해 제갈량은 각 제후를 격파한 한신과도 비교되면서 폄하당하는데 국가적 시스템이나 국력 등을 봐도 무조건 폄하할수는 없죠.
어떤 사람들은 국가 정비 상태와 혼란기 상태륻 구분하지못하고 단순히 비교하는 경향이 큰데 게임으로 역사를 이해하는 일이 될수 있다 하겠습니다.
태평양
16/12/18 19:08
수정 아이콘
또 제갈량 무오류설을 기반으로 이야기들 하시네요.

제갈량은 신이 아니에요. 제갈량보다 훨씬 더 어려운 상황에서도 이겨낸 사례들이 인류 역사에 많이 있었습니다.

제갈량은 군재는 원래 딱 A급 정도 였습니다. 제갈량이라 못한거지 이길수 없었던 조건인건 아니죠.
신불해
16/12/18 19:30
수정 아이콘
음, 본문에서 제가 이야기한 이야기는 제갈량은 용병의 신인데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상황이라 실패했다는 이야기보다는 종종 비슷한 사례처럼 언급되곤 하는 유방의 북벌과 제갈량의 북벌은 기실 상황이 많이 달랐다는 측면을 이야기하고자 한 이야기입니다.
Agnus Dei
16/12/18 21:29
수정 아이콘
'많이' 있었다고 하는데 예시 좀 들어주시죠.
태평양
16/12/18 21:38
수정 아이콘
그냥 삼국지 안에서만 해도 많습니다. 여포가 배신하기 전까지 정원군이 동탁군 이긴거나 세력이 더 컸던 공손찬이 결국 원소에게 잡아 먹히고 그 원소도 결국 조조에게 관도 대전에서 패배하고 원가가 결국 조조에게 먹히죠. 또 손책이 유요 왕랑 보다 세력이 작아도 결국 다 잡아 먹었고 유비도 세력이 보잘것 없어도 결국 형주 익주 먹고 한중왕이 되죠. 세력이 작고 군사 규모가 작아도 상대를 이긴 경우는 이렇게 삼국지 안에서만 봐도 많이 있습니다.
뻐꾸기둘
16/12/18 22:56
수정 아이콘
반박 증거라고 내시는게 본문에 가져다 대기에는 여러모로 한참 모자라 보입니다만.

본문에서 여러 차원의 접근을 통해 비교해 놓은 것을 겨우 [세력이 작아도 큰 세력 이길 수 있다] 정도로 단순화 시켜놓고 반박하는게 어떤 가치가 있는지 의문이군요.
태평양
16/12/18 23:01
수정 아이콘
저는 제가 이야기 한 '제갈량보다 훨씬 더 어려운 상황에서도 이겨낸 사례들이 인류 역사에 많이 있었습니다.'를 윗분이 예시 들어달라고해서 예시 든건데요?

본문의 내용과는 전혀 무관합니다. 제대로 읽고 댓글 달아주세요.
kartagra
16/12/18 23:45
수정 아이콘
딱히 님이 드신 사례가 제갈량보다 어려워 보이진 않네요. 상황도 다르고요. 난세에 필요한 능력과 이미 국가 기틀이 어느 정도 갖춰진 상황에서 필요한 능력은 그렇게 단순비교 할 수 있는건 아니죠. 물론 인류 역사에서 제갈량보다 어려운 상황을 이겨낸게 없다는 건 아닙니다만, 극히 드문건 맞고 그 극히 드문 사례들은 그렇게 단순비교하기보다는 세심하게 따져야 할 부분이죠. 애초에 그런 식으로 따지면 주원장 능력이 세계제일이겠네요.
Agnus Dei
16/12/19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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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량과는 상황이 여러모로 다른데 그게 어떻게 예시가 되죠? 원소의 경우만 봐도 관도대전 이후에 원소의 급사와 원가의 내분이라는 중대한 변수가 있었는데, 이걸 제갈량의 상황과 동급비교로 놓는건 억지죠.

[세력이 작아도 큰 세력 이길 수 있다] 같은 단순한 사례를 들어달라는게 아니라 '구체적으로 제갈량과 비슷한, 혹은 훨씬 더 어려운 상황에서 오로지 자신의 능력으로 이겨낸 사례'를 얘기해달라는겁니다. 논점 파악 못하고 전혀 엉뚱한 얘기를 하고 있네요.
태평양
16/12/19 05:59
수정 아이콘
''그럼 님이 '많이' 있었다고 하는데 예시 좀 들어주시죠 ''라고 할게 아니라 구체적으로 '구체적으로 제갈량과 비슷한, 혹은 훨씬 더 어려운 상황에서 오로지 자신의 능력으로 이겨낸 사례' 를 이야기 해달라고 했어야죠. 엉뚱한 어쩌고 하기 전에 본인부터 질문 똑바로 하세요.
Agnus Dei
16/12/19 10:15
수정 아이콘
본문 내용부터가 상황을 제대로 따져보지도 않고 [세력이 작아도 큰 세력 이길 수 있다]로 뭉뚱그려서 유방의 북벌과 제갈량의 북벌을 단순 비교하면 왜 안된다는건지 자세한 설명이 나와있는건데, 그런 글에서 댓글로 똑같은 주장을 하고 있네요. 이러니 글을 제대로 읽은거 맞냐는 말이 계속 나오는겁니다.
태평양
16/12/19 16:25
수정 아이콘
''제갈량보다 훨씬 더 어려운 상황에서도 이겨낸 사례들이 인류 역사에 많이 있었습니다.'' 라는 댓글에 님이'많이' 있었다고 하는데 예시 좀 들어주시죠.라고 이야기해서 이야기 한것 뿐입니다.

님이 언제 처음부터 '구체적으로 제갈량과 비슷한, 혹은 훨씬 더 어려운 상황에서 오로지 자신의 능력으로 이겨낸 사례'를 요구 했습니까?

''제갈량보다 훨씬 더 어려운 상황에서도 이겨낸 사례들이 인류 역사에 많이 있었습니다.'' 라는 댓글에 예시 들어 달라는 요구 뿐이었지.
16/12/19 10:35
수정 아이콘
손책이 유요 등을 이긴 건 딱 위의 제후가 제후를 이긴 유방의 사례와 비슷한 것이고,
조조는 관도대전에서 이겨도 원소가 죽기 전까지 진격 할 엄두조차 못냈습니다.
유비 역시 익주의 경우 내부반란이 아니었으면 그대로 시간만 끌리다 죽었을 가능성이 높고요.

님이 말씀하시는 훨씬 더 어려운 상황에서도 이겨낸 사례들에서 가장 중요한 조건은 개인의 군재보다는 운이 아닐까 합니다.
태평양
16/12/18 19:14
수정 아이콘
정작 중국 본토에서도 최근에 제갈량 거품이 걷히는 추세인데 아직도 삼도까페에 의해서 제갈량은 질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는걸 절대 가정하면서 제갈량의 북벌이 대단하다고 찬양하다니...

제갈량은 그냥 딱 조진에게 막히고 사마의에게 막힌 인물입니다. 물론 불리했죠. 그런데 그거보다 더 불리한 상황에서도 이기는 경우가 있었으니 제갈량의 한계가 거기까지인것 뿐이죠.
Agnus Dei
16/12/18 21:29
수정 아이콘
글 제대로 읽은거 맞으세요?
태평양
16/12/18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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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결론이 결국 항우가 삽질해서 진거지 항우가 삽질 안했으면 유방이 절대 못 이겼다 그러니 초한지랑 비교해서 제갈량 북벌성공 못한거 까지 마라 이거 아닙니까?
kartagra
16/12/18 23:38
수정 아이콘
중국 본토에서 제갈량 거품이 걷히고 있다는 근거 부탁드립니다. 애초에 거품이 뭔지도 모르겠지만요.

그리고 당연히 초한지랑 비교가 안된다는겁니다. 항우를 떠나 '기본적인 상황' 자체가 달랐다고요. 그 기본적인 상황이 뭐였는지 글에서 설명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태평양
16/12/19 06:06
수정 아이콘
在历史上,对诸葛亮北伐的看法态度不一

同时代东吴张俨默记评价为“孔明起巴、蜀之地,蹈一州之土,方之大國,其戰士人民,蓋有九分之一也,而以貢贄大吳,抗對北敵,至使耕戰有伍,刑法整齊,提步卒數萬,長驅祁山,慨然有飲馬河、洛之志。仲達據天下十倍之地,仗兼并之眾,據牢城,擁精銳,無禽敵之意,務自保全而已,使彼孔明自來自去。若此人不亡,終其志意,連年運思,刻日興謀,則涼、雍不解甲,中國不釋鞍,勝負之勢,亦已決矣。”认为诸葛亮若非过早去世,其北伐将获得成果。

https://zh.wikipedia.org/wiki/%E8%AF%B8%E8%91%9B%E4%BA%AE%E5%8C%97%E4%BC%90
태평양
16/12/19 06:08
수정 아이콘
争议

一直以来,有不少人质疑 诸葛亮 的北伐策略,其中讨论最集中的就是为什么不采用 魏延 的“ 子午谷奇谋 ”,甚至有不少人臆断,如果诸葛亮肯听从此计,则历史将会改变

不过,纵观诸葛亮的五次北伐,从中可以隐约看到,也许诸葛亮不以奇兵出 子午谷 而是挥转大军向祁山,只是现实导致的一种必然选择。

http://baike.baidu.com/view/56347.htm

보시면 알겠지만 북벌에 대해서 다양한 각도로 바라보고 이야기 합니다.

한국처럼 제갈량은 엄청나게 잘 했고 그 상황에서는 제갈량의 북벌이 최선의 방법이었지만 국력때문에 어쩔수 없었다 이렇게 이야기 하지 않고 말이죠.

한국에서는 삼도 까페의 영향력에 의해서(제갈량을 찬양하지 않으면 운영진급 회원과 일부러 격하게 논쟁 붙여서 운영진급 회원은 경고주고 상대 회원은 까페 강퇴 시켜서 입막음 하는등의 방법으로 오로지 제갈량 무오류설을 절대적으로 밀어 붙임) 위연의 자오곡 계책은 제갈량에 반대한는 주장이라서 그저 무시하고 멍청한 장수의 멍청한 작전이라고 실패 확률이 100프로라고 단언하지만 중국에서는 그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서도 이루어낸 등애와 비교하면서 성공 가능성에 대해서도 논하고 있죠.

실제로 자오곡 계책은 먼 과거 한니발의 알프스 원정이나 최근의 만슈타인의 낫질작전등 위험을 각오 하는 대신에 성공하기만 하면 일사 천리로 풀리는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인 계획이고 역사적인 대승의 상당수는 이러한 위험성을 감수하고 작전에 임해서 성공시킨 경우가 많습니다.
kartagra
16/12/19 12:24
수정 아이콘
역사를 다양한 각도로 바라보는건 당연한거고 자오곡 얘기야 한국에서도 의견이 분분한데요? 이게 무슨 중국에서 제갈량 거품이 있으며 걷히고 있다는 근거가 되는겁니까 대체. 님같은 분이 있으니 한국에서도 그럼 제갈량 '거품'이 걷히고 있는거에요? 동문서답하시는 재주가 꽤 뛰어나시네요. 삼도 카페야 제가 알 바 아니고요. 여기 pgr인데요?
그래서 카르타고나 독일이 최종적으로 이겼나보죠? 이 경우는 국력이 압도적으로 차이나는 국가대국가로 붙어서 이긴 사례를 들어야 맞는 것 같습니다만. 오히려 님의 얘기는 뛰어난 기책 아무리 펼쳐봐야 압도적인 국력 앞에서는 의미없다는 얘기로 밖에는 안들립니다.
태평양
16/12/19 16:22
수정 아이콘
제갈량은 한니발처럼 북벌에서 전과를 보여준적이 없는데요? 최소 장안 정도는 먹고 나서 망했다면 모를까요.

위연의 자오곡 계책에 대해서 한국이 의견이 분분하다니요.. 그 이야기 꺼내면 삼알못 취급받는게 현실인데요..

우리나라처럼 중국에서는 제갈량 무오류설을 이야기 하지 않아요. 한국에서는 제갈량이 했던 북벌이 당시 촉나라가 할수 있었던 최선의 방법이라 이야기 하지만 중국에서는 그냥 제갈량이 북벌을 여러 차례 감행하다가 결국 나이들어 죽었다고 평가합니다.
kartagra
16/12/19 16:43
수정 아이콘
아 네. 그래서 한니발이 로마 이겼나보군요. 저도 한니발의 군재가 제갈량보다 나았을거라고 봅니다. 그런 한니발도 국력 차이는 뒤집지 못했죠. 그만큼 국가간의 싸움에서 국력 차이를 개인이 뒤집는건 힘든겁니다.

님같은 분이 있으니 의견이 분분한 것 맞죠. 어디서 삼알못 취급받고 여기서 화풀이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삼알못 취급 받으셨으면 거기 가서 따지시죠. 저는 아닌 것 같으니. 그리고 정 자오곡 얘기가 억울하시면 글 새로 쓰시든가요.

그게 중국 학계 주류 평가라는 근거 부탁드립니다. 위키에서 이런 논란이나 의견도 있다 수준 말고요.
집에서나오지맙시다
16/12/19 02:40
수정 아이콘
글을 읽을 줄 모르시는 듯...
언어물리
16/12/19 05:20
수정 아이콘
본문을 읽긴 했어요?
16/12/19 13:02
수정 아이콘
'그러니 초한지랑 비교해서 제갈량 북벌성공 못한거 까지 마라' 이것은 독자의 주관적인 해석입니다. 본문 내용에 그런 주장은 없습니다. 비슷한 두 사례의 비교를 한거지, 거기서 특정한 결론을 주창한 문구는 없네요.
16/12/18 21:27
수정 아이콘
심심해서 나무위키 봤는데, 유비가 이릉대전을 하지 않고 형주를 쥔 채 옹주만 얻었어도 양주는 자동적으로 얻게 되고...이러면 한왕실 부흥이 꿈만은 아니었을 것 같네요.
16/12/18 21:33
수정 아이콘
잘 읽고갑니다^^
Liberation
16/12/19 00:41
수정 아이콘
그런데 왜 1차 북벌에서 기산도를 조공으로 놓고 진창을 주공으로 치지 않았을까요?
16/12/19 10:59
수정 아이콘
http://fun.jjang0u.com/articles/view?db=105&search_field=&search_value=&no=120591&page=1

예전에 제가 쓴 글을 누가 불펌한 글인데 참고하시면 좋을듯 합니다.
손금불산입
16/12/19 19:41
수정 아이콘
추천합니다. 좋은글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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