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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2/03/30 15:29:26
Name 구밀복검
Subject [일반]  매직 마자르에서 바르셀로나까지 - (2) 1954년 스위스 월드컵
매직 마자르에서 바르셀로나까지 - (0) 서론
https://pgr21.net/?b=8&n=36149

매직 마자르에서 바르셀로나까지 - (1) 1953년 11월 25일
https://pgr21.net/?b=8&n=36181



1.


헝가리의 월드컵 첫 상대는 잘 알려져 있듯이 한국이었다. 기존의 주전이었던 자카리아스와 히데쿠티는 결장했다. 비록 경기 전체를 볼 수 없어 그 전모를 알기는 어렵지만, 경기가 일방적이었음은 분명한 듯 보인다. 6월 17일 양 팀은 베른에서 경기하게 되었다.

치보르---푸스카스---코치시---부다이
-----------팔로타스------------
--------쵸지카-----보직--------
란토스--------로란트-----부잔스키
------------그로시츠-----------

12분, 부다이가 오른쪽 사이드에서 크로스한 것을 푸스카스가 강렬한 슈팅으로 연결지어 선취골을 올렸다. 이 골을 계기로 헝가리의 화력은 폭발했다. 21분, 란토스의 강렬한 프리킥이 한국의 수비벽 사이를 뚫고 들어갔고, 3분 뒤에는 푸스카스의 패스를 받은 치보르가 왼쪽 사이드를 돌파하다가 낮은 크로스를 날렸으며, 기다리고 있던 코치시가 이를 가볍게 받아 넣으며 점수는 3-0이 되었다. 이후 36분에 코치시가 추가골을 넣었고, 그로써 전반은 4-0으로 마무리 되었다. 헝가리의 지속적인 공격 속에서, 한국은 중앙선을 넘는 것조차 어려워했다고 한다.

후반 들어서도 경기 양상은 마찬가지였다. 시작한지 5분 만에 코치시의 골이 터지면서 5-0이 되었다. 9분 뒤에는 푸스카스와 월패스를 주고받은 부다이가 페널티 박스 오른쪽으로 침투했고, 이를 받은 치보르가 재차 골로 마무리하며 6-0이 되었다.

이후로 소강상태가 잠시 이어졌으나, 중앙과 오른쪽을 오가며 한국의 수비진을 농락하는 패스가 이어졌으며, 그 과정 속에서 75분 경 부다이로 추정되는 선수에게 짧은 로빙 패스를 받은 팔로타스가  재차 한 골을 넣었다. 이 때 쯤 하여, 한국 선수들은 헝가리의 패싱과 무브먼트를 쫓아가지 못한 나머지 근육 경련을 일으키며 의욕을 잃고 경기장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가혹하게도 경기 종료 1분 전에 푸스카스가 마지막 골을 추가하면서 경기는 9-0으로 마무리 되었다.



2.


3일 뒤인 54년 6월 20일, 조별 예선 승자전이 치러졌다. 당시의 월드컵 방식으로는 이 경기의 승자는 8강으로 바로 직행하였으며, 패자는 최종 진출전으로서 패자전의 승자와 플레이오프를 거쳐야 했다. 1조의 4개 팀이 더블 엘리미네이션을 펼쳤다. 때문에 이 경기에서 이기면 8강으로 직행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서독은 헝가리를 이길 수는 없으리라고 판단하고, 터키-한국 경기의 승자가 올라올 플레이오프에서 전력을 다하기 위해서 주전 중 7명을 뺀 채 경기에 임했다.

서독은 결코 약팀이 아니었다. 그 이전 경기에서도 터키를 4-1로 격파했었다. 터키 역시 약팀이 아닌 것이, 한국과의 패자부활전에서 7-0으로 승리한 팀이었으니 말이다. 서독은 헝가리와의 경기 뒤에 가진 플레이오프에서 터키를 재차 7-2로 이겼으며, 8강과 4강에서 유고와 오스트리아를 2-0, 6-1로 가볍게 이겼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헝가리를 상대로 이길 엄두를 내지는 못했다. 당시 헝가리의 전력이 어떤 평가를 받았는지 알려주는 대목이다.

다만, 한 가지 고려해야할 점은, 오늘날의 월드컵은 조별리그에서 1위를 차지하면 16강 토너먼트에서 다른 조의 2위 팀과 겨루게 되어 있는 것에 반해, 1954년의 월드컵은 이상하게도 각 조의 1위가 준준결승을 치렀고, 역시 각 조의 2위가 준준결승을 치렀다는 점이다. 즉, 조 1위 진출이 2위 진출에 비해 불리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서독의 입장에서는, 베스트 멤버를 출전시켜 헝가리를 이기기를 기대하기 어려운 이상, 플레이오프에서의 승리를 확실하게 가져가면서 조2위를 노리는 것이 이후의 토너먼트에서 더 유리하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당시 월드컵 규정이 얼마나 졸속적이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치보르---푸스카스---코치시---J.토드
-----------히데쿠티------------
-------자카리아스---보직--------
란토스--------로란트-----부잔스키
------------그로시츠-----------

메버스-------헤르만-----------란
---------F.발터-----파프-------
--------바우어------엑켈--------
콜마이어------리브리히------포지팔
----------퀴아트코프스키--------

시작하자마자 서독의 빠르고 거친 공격이 한 차례 행해졌고, 치보르는 혼자서 왼쪽부터 오른쪽을 대각선으로 가로지으며 서독을 흔들어 놓으며 오른쪽에서 코너킥을 얻었다. 토드는 파포스트 근처로 길게 코너킥을 처리했는데, 골키퍼 퀴아트코프스키와 바우어가 서로 부딪히면서 볼을 놓쳤고, 코치시가 가볍게 때려 넣으며 쉽게 리드를 잡았다. 3분 경의 일이었다. 4분 뒤 메버스가 득점을 올렸지만 이는 명백한 오프사이드였고, 점차 경기는 헝가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풀려나기 시작했다. 17분, 푸스카스는 히데쿠티의 패스를 받자마자 페널티박스에서 서독 수비수 3명을 제친 뒤 그 답지 않게 오른발로 슈팅을 시도하여 득점에 성공함으로써 서독 수비를 초토화 시켰다. 그에 그치지 않고, 푸스카스는 4분 뒤 페널티박스 오른쪽 외곽 지역에서 날카로운 스루패스를 찔러 넣으며 코치시의 골을 어시스트하며 서독을 무장해제 시켰다. 25분에 파프가 패스하듯이 슈팅하며 한 골을 따라 붙었고, 푸스카스와 보직 등이 몇 차례 골문을 위협했지만, 다행히도 그 이상 스코어가 벌어지지 않아 3-1로 전반이 마무리 되었다. 그러나 헝가리의 승리는 명약관화였다.

후반 역시 헝가리의 주도 하에 흘러갔다. 시작하자마자 코시치의 헤딩이 크로스바를 때리고 나왔다. 이윽고 후반 7분, 문전 혼전 상황에서 푸스카스가 뒤로 내준 볼을 히데쿠티가 강한 중거리로 마무리지으며 이 경기의 결승골을 넣음으로써 이변의 여지를 없앴다. 그리고 찬스는 거듭되었다. 히데쿠티는 2분 뒤에 미드필더에서 흘러온 킬패스를 받은 뒤 가볍게 수비수를 따돌리며 단독 찬스를 만들었으며, 재차 득점에 성공하면서 점수를 5-1로 벌렸다.

승부는 이미 결정된 상태였다. 여기에서 헝가리의 승리를 소득 없는 것으로 만드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리브리히의 거친 태클에 의해 팀의 핵심인 푸스카스가 부상을 당한 것이다. 부상은 경미하지 않은 수준이었고, 이로 인해 토너먼트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헝가리는 에이스를 잃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기의 흐름은 동일했다. 69분에는 코치시가 미드필더에서부터 쇄도하여 수비 사이로 빠져 들어가 오프사이드 트랩을 간단히 박살낸 뒤 골을 만들어냈고, 75분에는 토드가 2대 1 패스 한 번으로 서독의 왼쪽을 무력화 시킨 뒤 박스로 들어가 강한 슈팅을 날려 골을 뽑아냈다. 헝가리가 간단한 부분 전술적인 연계 플레이만 가지고도 당시의 서독 정도 팀은 아무렇지도 않게 손목을 비틀 수 있었음을 알려주는 장면들이었다. 그 직후, 헬무트 란이 라이트에서 골키퍼를 바깥으로 끌어낸 뒤 빈 골대에 골을 넣으며 헝가리가 방심한 틈을 잘 공략했지만, 바로 1분 뒤에는 치보르가 수십 M를 혼자 드리블하여 레프트를 유린한 뒤 코치시에게 땅볼 크로스를 주어 완벽한 득점 찬스를 만들어주었고, 이것이 득점으로 이어지면서 스코어는 그대로 유지가 되었다. 이것으로 코치스는 한 경기에 네 골을 넣은 셈이 되었다. 82분에 헤르만이 그림 같은 2:1 플레이로 헝가리의 중앙을 그대로 관통해버린 뒤 골키퍼까지 제치며 서독이 녹록하지 않음을 과시하긴 했지만, 그 이상의 기적은 없었고, 이미 압도당할 대로 압도당한 경기였다.  



3.


한국에 이어 서독을 꺾고 조 1위를 확정지음으로써, 헝가리는 조 2위인  서독에 비해 험난한 대진을 헤쳐 나갈 수밖에 없게 되었다. 8강 상대는 전 대회 준우승팀인 브라질이었다.  일주일의 휴식을 취한 뒤, 헝가리는 첫 경기가 펼쳐졌던 베른에서 브라질을 맞이하게 되었다.

치보르---M.토드----코치시---J.토드
-----------히데쿠티------------
-------자카리아스---보직--------
란토스--------로란트-----부잔스키
------------그로시츠-----------

푸스카스의 결장은 타격이었지만, 여전히 헝가리는 브라질보다 우위에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러함이 경기 초반부터 드러났다. 브라질은 경기 시작 즈음에는 잠시 공격적인 플레이를 했지만, 곧 이어 이어진 헝가리의 공세에 압도당했다. 헝가리 특유의 강력한 전방 압박이 가해졌고, 브라질은 하프라인을 넘기는커녕 페널티 에어리어 안쪽에 감금  당했다.

전반 4분, 히데쿠티가 페널티 박스에서 찬 슈팅이 골키퍼를 맞고 나왔고, 브라질 선수들은 이를 클리어링 하려고 했지만 전방을 장악하고 있던 헝가리 선수들에 의해 저지당해 문전 혼전 상황이 벌어졌다. 흘러나온 세컨드 볼을 히데쿠티가 슈팅해봤지만 골키퍼를 맞고 나왔으며, 치보르가 다시 슈팅을 시도했지만 재차 골키퍼를 맞았다. 하지만 공은 다시 히데쿠티 앞으로 떨어졌고, 이것까지 가로막히지는 않았다. 3경기 연속 헝가리가 선취점을 올렸다.

기세가 오른 헝가리는 중원을 잡아나가면서 특유의 유려한 빌드업을 이어나갔다. 소위 반코트 경기가 이어졌는데, 그 와중에 볼을 돌리던 보직이 한 번의 긴 롱패스를 페널티 에어리어 근처로 찔러주었고, 코치시가 헤딩을 성공시키며 불과 7분 만에 점수는 2-0으로 벌어졌다. 경기가 80분 이상 남은 시점이었지만, 이미 경기는 기울어진 것으로 보였다.

물론 브라질이라고 잠만 자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측면을 이용한 빠른 역습을 몇 번 가하던 브라질은, 18분 한 방의 다이렉트 패스로 오른쪽을 열어젖힌 뒤 페널티 박스로 진입하는 데에 성공했다. 로란트와 부잔스키는 볼을 뺏으려 했지만 마음이 급한 나머지 상대 선수와 충돌해 버렸고, PK를 허용하게 되었다. 브라질의 에이스였던 산토스가 왼쪽 포스트로 강하게 슈팅하며 그나마 한 골을 따라붙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경기의 주도권은 헝가리에 있었다. 보직을 비롯한 미드필더들은 중원을 튼튼히 틀어쥐고 있었으며, 이는 치보르와 토드의 측면 침투를 원활하게 했다. 브라질은 어디를 틀어막아야 헝가리를 잠재울 수 있을지 알 수 없었고, 이리저리 흔들리는 와중에 간신히 중심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전력을 기울여야 했다. 4년 뒤의 58년 월드컵에선 골든볼리스트가 될 선수였던 디디 역시 헝가리의 중원 장악 앞에서 악전고투해야 했다.

브라질 선수들 개개인의 탄력과 운동 능력이 헝가리에 밀리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헝가리만의 특질이라고 할 수 있는 강한 프레싱, 볼소유의 안정적인 유지, 템포의 완급 조절, 전원 수비 전원 공격의 토탈사커 등의 요소들이 통일성 있게 운용되면서 브라질은 점차 궁지에 몰려 나갔다.

하프타임 이후로도 이러한 경기 흐름은 지속 되었고, 그 와중, 코치스가 상대의 파울을 유도해내며 PK를 얻어냈다. 란토스는 믿음직하게도 왼쪽 상단으로 강한 슈팅을 날리며 득점을 성공해냈고, 이것이 결승골이 되었다.

그러나 경기가 끝난 것은 아니었고, 브라질은 지금까지 헝가리가 상대해온 팀들보다는 한 수 위에 있었다. 5분 뒤, 디디의 패스를 페널티 에어리어 오른쪽 부근에서 받은 주리뉴가 칭찬받아 마땅할 정도로 탁월한 아웃사이드 킥을 날리며 득점에 성공했고, 필드의 긴장감은 이어졌다. 그렇다 하더라도, 승자가 바뀔 경기는 아니었다. 경기 종료 2분을 남겨둔 상태에서, 왼쪽에서 컷 인사이드 하던 히데쿠티가 벼락같은 중거리를 성공시켰고, 그것으로 경기는 마무리 되었다.



4.


* 해당 동영상의 링크로 가시면 후속 동영상도 볼 수 있습니다.

6월 30일, 헝가리는 로잔에서 4강전을 치렀다. 4강 상대는 디펜딩 챔피언이자 당대 최강이라고 할 수 있는 우루과이였다. 우루과이는 당시 조별 예선과 8강전을 포함하여 3경기에서 13득점 2실점을 했고, 헝가리는 3경기 21득점 5실점을 거뒀다. 각기 남미와 유럽의 정점에 있는 팀이었기에, 사실상의 결승전이라고 할만한 경기였다. 그리고 실제로 그러한 모양새를 갖춘 경기였다.

치보르---팔로타스---코치시---부다이
-----------히데쿠티------------
-------자카리아스---보직--------
란토스--------로란트-----부잔스키
------------그로시츠-----------

비록 8강전으로부터 사흘 밖에 휴식을 취하지 못하고 가진 경기였지만, 헝가리의 경기력은 여전했다. 히데쿠티와 코치시, 팔로타스 등의 공격수들은 2대1 패스와 날렵한 탈압박을 활용하여 미꾸라지처럼 우루과이의 수비 사이를 빠져나갔고, 볼이 돌다가 보직의 발끝으로 떨어졌다 싶으면 날카로운 롱패스가 페널티 박스로 투입되어 우루과이 수비수들을 긴장시켰다. 두 세 차례 아슬아슬한 찬스가 이어졌다. 결국 13분 경 첫 골이 터졌다. 후방에 있던 히데쿠티가 길게 감아 찬 롱패스를 코치스가 헤딩으로 받아 떨어뜨렸으며, 이것이 치보르에게 절묘한 패스로 이어졌다. 치보르는 당황하지 않고 왼발로 슈팅을 밀어 넣어 득점에 성공했다.

한 번 우위를 점한 헝가리는 주도권을 놓지 않았다. 빠르게 드리블을 치고 나가다가도 상대가 볼을 탈취하기 위해 근접하면 무리하지 않고 볼을 키핑하며 템포를 컨트롤 했으며, 경기장을 넓게 쓰면서 공간을 최대한 활용했다. 때때로 우루과이의 공격이 헝가리의 골문을 위협하긴 했지만 단발적이고 직선적인 형태의 공격이었던 터라 다소 뻔할 수밖에 없었으며, 방어하기에 어렵지 않았다. 헝가리는 오히려 이런 때를 틈타 보직의 패스와 부다이, 치보르 등의 측면 침투를 통해 뒷공간을 노리는 플레이를 종종 시도하면서 우루과이의 배후를 공략했다. 이와 같은 공격들을 통해 헝가리가 우루과이를 후퇴 시킨 뒤 전선을 위로 올려놓고, 볼을 돌리며 볼소유를 유지하기 시작하면, 이를 다시 아래로 내리기는 어려웠다. 이렇게 전방에서 참호전을 벌이다보면 란토스나 부잔스키 등이 오버래핑을 벌이며 측면을 교란하곤 했다. 늘상 일어났던 일들이 똑같이 일어났다.

하지만 전반 중반 즈음부터, 헝가리의 압박에 종종 균열이 생겼고, 우루과이는 그 틈을 날카롭게 파고들곤 했다. 두어 번의 유효한 슈팅이 헝가리의 골문 언저리에서 날아다녔다. 그렇다고 해서 헝가리가 열세에 몰렸던 것은 아니고, 비교적 팽팽한 공방이 이어졌으며, 그 상태에서 전반은 평화롭게 마무리 되었다. 1-0의 스코어는 전반의 경기양상을 놓고 볼 때 공평한 결과라는 데에 양 팀 모두 동의할 만 했다.

후반이 시작되자마자, 부다이의 크로스를 히데쿠티가 헤딩슛으로 연결하여 한 골을 추가하면서 스코어는 2-0이 되었다. 8강과 마찬가지로, 무난하게 헝가리가 승리를 해나가는 듯 했다.

그러나 우루과이는 당대 최강을 논할 만큼 강한 팀임을 증명했다. 우루과이는 몇 차례의 공방 속에서 위기를 넘겨가며 더 이상의 실점을 허용하지 않았고, 열세 속에서도 끈질기게 버텨나갔다. 그리고 마침내는 그런 노력의 결실을 맺었다. 후반 30분, 호베르크는 자신을 향해 정확하게 날아온 패스를 받아 두 명의 수비수 사이에서 득점에 성공하여 한 점을 만회했다. 한 골을 먹은 직후 위기의식을 느꼈던 헝가리는 파상공세에 나서 여러 번 우루과이의 수비진을 휘저었지만, 아슬아슬하게 득점으로 연결되지는 못했다. 코치스가 골문 앞에서 볼을 탈취한 뒤, 빈 골대에 슈팅을 한 것이 상대 수비수의 육탄 방어에 의해 무위로 돌아간 것이 결정적인 장면이었다. 상호 간의 공방의 수위는 올라갔고, 경기는 치열해졌다. 그리고 경기 종료를 3분 남겨둔 상태에서, 호베르크가 킬패스를 받은 뒤 골키퍼를 제쳐내며 동점골을 넣는 데에 성공하였다. 그리하여 승부는 연장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서로 극도로 지친 상태였기 때문에, 연장은 소강상태로 흘러갔다. 유의미한 플레이가 몇 번 나오긴 했지만, 서로의 두터운 수비벽을 꿰뚫기에는 예리함이 결여되어 있었다. 연장 전반은 서로 무득점을 기록했고, 연장 후반도 그리 달라질 것은 없어보였다.

그러나 헝가리는 이변을 허용하지 않았고, 또 다시 코시치가 경기를 결정지었다. 그는 114분 자신의 뒤편에서 전해진 패스를 받아 기회를 놓치지 않고 득점에 성공하며 평형을 깨뜨렸고, 경기 종료 1분 전에는 오른쪽에서 올라온 부다이의 크로스를 헤딩 슈팅으로 처리하면서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모든 사람들이 전 대회 준우승팀과 우승팀을 연속으로 꺾은 헝가리의 상대가 될 만한 팀이 전세계에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하던 시점이었다.




5.


이렇게 하여 헝가리는 결승에 올랐으며, 4일의 휴식을 취한 뒤, 결승전을 치루기 위해 베른으로 갔다. 결승 상대는 조별 예선에서 8-3으로 물리친 바 있는 서독이었다. 이전 경기에서 양 팀의 전력 차가 너무 극심하게 나타났으며, 브라질과 우루과이를 물리치던 당시 드러난 헝가리의 기량이 압도적이었기 때문에, 헝가리의 우승은 확실시 되었다. 이 때 세베시는 전술적인 변화를 주었는데, 조별 예선에서 부상당했던 푸스카스를 다시 주전으로 기용했고, 왼쪽 윙이었던 치보르와 오른쪽 윙이었던 토드의 위치를 바꾼 것이다. 현재로서는 이런 전술 변화의 의도는 명확히 포착하기 어렵다. 아무튼 7월 4일 17:00, 역사적인 결승전이 시작되었다.

토드----푸스카스---코치시---치보르
-----------히데쿠티-----------
------자카리아스---보직--------
란토스--------로란트-----부잔스키
------------그로시츠-----------

슈하퍼-------O.발터-----------란
---------F.발터----몰로크------
---------마이------엑켈--------
콜마이어------리브리히------포지팔
--------------투렉------------


전반 6분, 중앙 지역에서 보직이 앞에 있는 코치시에게 짧은 패스를 연결해주었고, 코치시는 이를 슈팅으로 연결했다. 이 슈팅은 포지팔을 맞고 왼쪽으로 흘러나갔고, 그 자리에 있던 푸스카스가 왼발로 간결하게 볼을 차 넣어 점수는 1-0이 되었다.

잠시 뒤, 콜마이어가 코치시를 따돌리기 위해 골키퍼 근처에서 백패스를 한 것을, 골키퍼 투렉이 실수로 놓쳤고, 뒤따라오던 치보르는 거저 득점을 챙겼다. 불과 8분 만에 점수는 2-0으로 벌어졌고, 조별 예선 때의 결과가 그대로 재현되는 듯 했다.

2분 뒤, 란은 왼쪽에서 요행을 노리는 크로스를 날렸는데, 자카리아스는 이를 막기 위해 발을 뻗었으나 볼은 오히려 적절히 굴절되어 몰로크의 앞으로 떨어졌다. 몰로크는 방금 전 치보르가 그랬던 것처럼 거저 골을 챙겼고, 서독이 한 점을 따라붙었다.

경기는 불이 붙었고, 양팀의 공방이 이어졌다. 푸스카스의 문전 드리블이 서독의 수비진을 흔들면, 서독은 짜임새 있는 연계로 전진하여 크로스 기회를 만들어냈고, 보직이 오른쪽의 치보르에게 향하는 다이렉트한 롱패스에 의해 서독을 괴롭히면, 서독은 이에 대항하여 빠른 역습으로 헝가리의 후방으로 치고 들어가려 했다. 히데쿠티는 최전방의 턱밑에서 일타일격의 패스를 줄 기회를 호시탐탐 노렸으며, 몰로크는 개인 돌파로 이를 되갚아주며 코너킥을 따냈다. 서독의 코너킥이 올라왔고, 부잔스키가 골라인으로 이를 걷어내어 다시 코너킥이 되었다. 2번째 코너킥은 파포스트 쪽으로 날아갔는데, 골키퍼 그로시치는 장신인 슈하퍼와의 경합에서 밀려 자신의 머리 위로 지나가는 볼을 펀칭해내지 못했고, 란은 오른쪽으로 뛰어들어 발리슛을 때려 넣어 승부는 원점으로 돌아갔다.

이후 헝가리가 경기를 지배하고 서독은 평형을 지키는 흐름이 이어졌다. 헝가리는 열심히 서독의 골문을 두드렸지만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했다. 특히, 23분 경 골키퍼의 바로 앞에서 히데쿠티가 찼던 발리슛을 골키퍼가 얼떨결에 선방해낸 것이 결정적인 장면이었다. 1분 뒤, 히데쿠티의 헤딩슛은 다시 골키퍼의 캐칭에 힘을 잃었으며, 잠시 뒤 정면 지역에서 손 쓸 수 없게 때린 슈팅은 좌측 골포스트에 맞고 나왔다. 그 외에 코치시와 푸스카스, 치보르 등이 번갈아 가며 한 수 위의 개인 역량을 바탕으로 위협적인 공격을 시도했다. 물론 서독 역시 당하고만 있던 것은 아니며, 엑켈이나 몰로크, 르한, 월테르 등의 선수들이 간간히 반격을 시도했다. 그러나 어느 팀도 득점에는 성공하지 못했고, 그 상태로 전반은 마무리 되었다.

53분엔 심지어 토드가 골키퍼까지 제친 상태에서 슈팅을 해봤지만, 콜마이어의 육탄 방어로 인해 찬스를 놓치기까지 했고, 57분엔 토드의 크로스를 코치시가 헤딩으로 연결했지만 크로스바를 때리고 나왔다.

경기를 총체적으로 고려할 때, 서독 선수들은 활력과 속도 면에서 헝가리 선수들을 전혀 따라잡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이 경기에 대해 흔히 알려진 이야기 중 하나는, 헝가리가 그 전 날 과음을 해서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못했다는 것과, 비로 인해 필드가 엉망이었다는 것이다. 헝가리 선수들은 나태함과 피로 속에서 이전과 같은 움직임을 보여주지 못했으며, 비로 인해 엉망이 된 필드에서 헝가리 특유의 롱볼에 의존하지 않는 빌드업은 위력을 잃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헝가리는 체력과 기술 모든 면에서 서독을  압도했다. 서독 선수들의 축구화는 아디다스에서 제공한 최신형이었고, 헝가리에 비해 진흙탕이 된 경기장에서 활동하기에 여러 모로 유리했지만, 그 정도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67분엔 오른쪽에서 온 패스를 코치시가 흘려주며 서독 수비진을 혼란시켰고, 쇄도하던 푸스카스가 코치시의 왼쪽으로 빠져 들어가며 볼을 받아 노마크 찬스를 맞이했다. 그러나 볼은 다시금 투렉의 선방에 막혔다. 78분에는 1:1 상황에서 투렉이 치보르를 막아냈고, 각이 좁은 상태에서 오른쪽에서 세컨볼을 받은 히데쿠티는 이를 허공으로 날렸다. 비록 헝가리가 찬스를 놓치긴 했지만, 경기의 흐름 상 그 때까지도 서독의 승리란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러나 우세함이 승리로 항상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진부한 사실이 이 경기에서도 증명되었다. 슈하퍼를 향해 문전 근처까지 깊숙하게 날아온 크로스를 란토스가 헤딩으로 클리어했지만, 이는 아크 서클 부근에 있던 란에게 떨어졌고, 수비진은 크로스를 막기 위해 지극히 낮은 지점까지 내려온 상황이었기 때문에 란은 자유로이 놓여 있었다. 란은 슈팅을 저지하기 위해 달려나오는 란토스를 그가 달려나온 방향으로 움직이며 가볍게 따돌린 뒤 구석으로 슈팅을 찔러 넣었고, 그대로 득점이 되었다. 후반 84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부는 끝난 것이 아니었다. 헝가리는 최후의 여력을 다해 서독을 궁지로 몰아넣었고, 87분 푸스카스가 드라마틱하게 골문 안으로 볼을 넣었다. 그러나, 심판은 오프사이드를 선언하면서 푸스카스의 득점을 무효 처리 했다. 이후의 검토 결과, 푸스카스의 득점은 온사이드 상황에서 이뤄진 것임이 명백하게 드러났으며, 헝가리는 억울하게 동점골을 날린 셈이 되었다. 이는 지금까지도 월드컵 최악의 오심으로 회자되고 있다. 이런 역경 속에서 헝가리는 포기하지 않고 종료 직전인 90분에 찬스를 만들어냈다. 치보르가 2대1 패스를 토드와 한 번, 푸스카스와 한 번 주고받으며 서독 수비진 전체를 붕괴시키고 페널티 에어리어 오른쪽에서 슈팅을 날린 것이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투렉은 기적처럼 다시 한 번 선방을 해냈다. 그리고 휘슬이 울렸다.

이것이 세간에 알려진 <베른의 기적>의 실상이었다. 물론 서독은 우승할 자격이 있는 팀이었다. 또한, 전력의 우위가 승리를 가져다주지 못하는 경우는 종종 있으며, 이에 대해 하소연을 하는 것은 구태의연한 것이다.

게다가, 헝가리의 패인으로 제시될만한 것들이 분명 있었다. 헝가리의 팀컬러가 공격적이었다는 것은 그만큼 실점할 위험이 컸다는 것이며, 실제로 월드컵 내내 헝가리리는 5경기 동안 27득점을 하는 동안 10점을 실점했다. 또한, 전날의 과음은 헝가리 선수들의 컨디션에 악영향을 주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다. 여기에, 결승 당일 우천으로 인해 필드 상태가 좋지 못했다는 것과, 축구화를 비롯한 경기 장비의 측면에서 서독이 헝가리에 비해 우위에 있기도 했었고, 조 2위로서 토너먼트를 무난하게 거쳤던 서독에 비해 헝가리는 조1위로서 당대 최고 수준의 팀인 브라질과 우루과이를 맞상대했어야 했다는 어려움도 겪어야 했다. 전술적인 측면에서든, 본인들의 과실에서든, 조건의 불리함에서든, 헝가리에게 불안 요소는 충분히 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헝가리가 경기 내내 서독보다 우세했다는 점에서, 이러한 설명들은 부분적이고 지엽적인 지위 이상을 차지할 수는 없다. 매직 마자르의 가장 직접적이고 핵심적이며 설명력이 높은 패인은, 서독 골키퍼 투렉의 선방과 심판의 오심이었다. 따라서  패자에게 발언권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일상의 법칙을 고려하더라도, 헝가리는 항변할 자격이 있었다. 숱한 찬스가 투렉의 선방에 막힌 것은 승복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지만, 최소한 푸스카스의 득점이 오프사이드로 처리된 것은 그렇지 않았다.

위안이 될만한 것은, 승자인 서독팀에 비해 패자인 헝가리가 지금까지 더 많이 회자되고,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서 더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이다. 역사는 승자의 역사이며, 우승이란 것이 역사 속에 남기 위해 행해지는 것이라면, 우승과 무관하게 역사 속에 불멸자로 남겨진 매직 마자르야말로, 본질적인 의미의 역사적 승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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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밀복검
12/03/30 15:30
수정 아이콘
헉....전문이 실리질 않네요. 짤리는 듯 하여 코멘트 처리합니다.


7.
패배의 원인이 대중에게 전파되자, 비난 여론이 대대적으로 일어났다. 선수들이 경기 전날 음주를 했다는 것은 대중들의 분노를 일으켰고, 선수들이 서독에 의해 벤츠를 지원 받았다거나, 정부가 서독으로부터 경제 지원 약속을 받고 승부를 조작했다거나 하는 이런저런 의혹이 발생했다. 매직 마자르의 수장인 자신의 아버지를 자랑스러워하던 세베시의 아들은 패배자의 자식이라는 이유로 학교에서 구타를 당했다. 정치적으로 곤란해진 헝가리 당국은 조사 위원회를 결성하여 희생양을 골라내기로 했다. 골키퍼 그로시츠는 월드컵 시 상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억류당해 조사를 받았고, 푸스카스는 체중 관리를 못한 것을 꼬투리로 잡혀 질책을 당했다. 사냥이 끝난 사냥개가 삶은 솥에 들어가듯, 정치적 선전 효과를 잃은 골든팀은 당국의 입장에서 골칫거리에 불과했다.

물론 매직 마자르가 월드컵 패배 이후 바로 무너진 것은 아니었다. 월드컵 직후, 55년까지 1년 반 정도의 기간 동안 15승 3무를 거두며 건재함을 알렸다.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 것은 56년부터였다. 터키에게 3-1의 충격적인 패배를 당한 이후, 유고와 무승부를 거뒀으며, 체코에게 패배했다. 그 직후 벨기에에게 3-1의 리드를 지키지 못하고 30분 동안 역전을 당하며 5-4로 패배하는 무력한 모습을 보이자, 당국은 더 이상의 관용을 허용하지 않았고, 세베시는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후임 감독으로는 MTK의 감독이자 세베시 밑에서 코치직을 수행하고 있던 부코비가 선임되었고, 첫 상대였던 포르투갈과 비긴 다음부터는 5연승을 달렸다. 다소 삐걱거리긴 했지만, 적어도 당대의 강자 반열에서 탈락할 정도로 망가지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10월에 헝가리 혁명이 일어났고, 이에 대한 유혈 진압이 이뤄지면서 축구 역시 타격을 받았다. 스페인에서 친선 경기를 치루고 있던 푸스카스와 치보르, 코시츠 등 혼베드 소속의 선수들 몇몇은 스페인으로 망명했고, 여타 선수들도 20만의 망명자들 속에 섞여 헝가리를 떠났다. 국가대표팀은 풍비박산 났고, 팀을 재구성하기까지는 6개월이 걸렸다. 매직 마자르의 신화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8.
매직 마자르의 사례는 축구가 정치권력의 영향권 하에 있기 마련임을 알려주는 동시에, 정치권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경우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를 보여주는 비극이다. 골든팀이 헝가리 정부의 프로파간다의 도구로 전락하지 않았다면, 그리 쉽게 몰락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은 물론 참이지만, 애초에 헝가리 정부가 권위주의적으로 국가대표팀을 조직하지 않았다면 매직 마자르의 신화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이 사례로부터 두 가지 진술이 도출된다.

1. 축구는 내셔널리즘 등의 이데올로기 - 허위의식을 포괄하기도 하며, 그 이외도 해당되는 - 및, 정치권력의 작용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2. 하지만 축구는 위와 같은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이는 우리에게 난처함을 가져다준다. 현실을 현실 그 자체로 받아들이면서도, 동시에 현실을 극복해야 한다. 곧, 우리는 축구가 축구일 뿐일 수 없는 것이 현실주의적임을 지적함으로써, 축구 외부의 현실적 역학 관계로부터 축구가 독립적이라는 입장들이 얼빠진 판타지에 불과함을 공격하는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축구는 축구 그 자체로서 존재해야 한다는 주장을 병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매직 마자르는 외압으로부터 자유로웠어야 했지만, 외압으로부터 자유롭기란 불가능했다는 말은, 그저 혼란스러울 따름이다.

물론, 사실 진술과 가치 진술은 다르다. 가령, 혼인이란 것이 가족관계나 친지, 관례 등의 외부적 영향으로부터 독립적일 수 없음을 직시하면서도, 이로부터 자유로운 혼인을 영위하려 하는 것은 전혀 모순되지 않는다. 양자는 양립 가능한 것이다. 검은 빛깔의 털을 가진 강아지가, 검은 강아지가 되어야 할 당위성이 있어서 검은 색인 것은 아닌 것처럼 말이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 그 자체와 이를 받아들이는 우리 개개인에게 어떤 정신분열적인 정체성을 가질 것을 요구한다. 현실을 회피하지 않는 비관주의, 현실을 극복하려 하는 낙관주의를 둘 다 놓치지 않으면서 특정한 입장을 일관성 있게 취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이는 우리에게 거듭된 질문을 던져준다. 권력 기구로서의 피파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월드컵은 단지 전세계의 축구일 뿐인지, 국가대표팀이 가지는 정치적인 함의는 무엇인지 등의 일상적인 문제들은, 쉽게 결론내리기 어려운 쟁점들을 야기한다. 그런 점에서, 매직 마자르는 신화로서 남아있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상기하기 꺼림칙한 망령이기도 한 것이다.
사티레브
12/03/30 15:37
수정 아이콘
이 또한 축구로 일면을 알려주어 모든 사회 각 부분들이 정치에 혹은 권력에 종속되어있는가 자유로울순 있는가 라는 질문을 떠올리게 만드는 축구의 한 역사겠고 곧 나올 유러피안컵 5연패의 주인공들 또한 그렇겠구요
Batistuta
12/03/30 15:42
수정 아이콘
퀄리티가 후덜덜한 글이네요. 대단합니다. 저녘에 돌아가서 자세하게 읽어봐야겠네요. 계층?이랄까 전문성이 강한만큼 댓글이 많이 달리지 않던거 같던데 저처럼 고맙게 읽고있는 놈도 있으니까 꼭 시리즈를 계속해주시길바랍니다.
스치파이
12/03/30 15:52
수정 아이콘
추천을 안 드릴 수가 없습니다.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Go_TheMarine
12/03/30 16:51
수정 아이콘
선추천 후감상!!!
사티레브
12/03/30 17:01
수정 아이콘
6.에서 헝가리리는 오타요!
그리메
12/03/30 17:13
수정 아이콘
헝가리의 경우 2연속 준우승 아닌가요. 혹시 그 다음 월드컵도 같은 방식 대전에 같은 멤버였었는지요? 제가 기억하는 준우승 연속 두번은 50년대의 헝가리와 70년대의 네덜란드 30년대의 우루과이 3팀으로 알고 있어서요.
운차이
12/03/30 21:14
수정 아이콘
30~50년대 남미의 기존 최강 우루과이, 58년 디디를 시작으로 이후 월드컵을 쓸었던 브라질
34~38 월드컵 2연패의 이탈리아, 원더팀 오스트리아, 축구 종주국 잉글랜드(60년대까지는 뻥글이라고 할 수는 없이 정말 강하던 시절)
그리고 역시 탄탄한 전력을 가진 독일, 50년대 유렵의 초강국 스웨덴 등...이 있었지만

헝가리의 매직 마자르 시절에는 이 모든 팀들을 압도 할만한 실력이 있는 팀이었죠..
운차이
12/03/30 21:33
수정 아이콘
헝가리가 비운의 최강팀이라지만
실상 내용을 보면 당대의 적수란 적수는 다 압도적인 모습으로 꺾었었죠...

나이제한이 없던 시절 올림픽을 우승했다는건 당시 월드컵에 비견될만할 실력을 입증한거고

월드컵 본 무대에서 푸스카스가 부상,
50년대다 보니 그랬는지 몰라서 8강전에서 브라질과의 대기실 난입 난투설도 들리고
결승 독일전은 약물 의혹이나 잉글랜드 주심의 편파 의혹도 상당히 있죠.

그래도 준우승을 한건 사실이니 이런걸 다 변명으로 친다 하더라도
월드컵 준우승 자체로도 훌륭한 기록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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