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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2/02/28 23:27:35
Name 글곰
Subject [일반] 저는 일찍 퇴근하고 싶은 공무원입니다
  저는 7급 공채 출신의 공무원입니다. 모 지방자치단체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국가직과 지방직을 포함해서 몇 군데 동시 합격했지만, 그중에서도 굳이 지금 근무하는 곳을 택한 데 딱히 대단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사실은 여기저기 이사 다니기 귀찮았기 때문입니다. 국가직은 발령받는 곳에 따라 전국을 돌아다녀야 할 수도 있으니까요.

  대략 십삼년 전, 대학교 원서를 쓸 때 저는 국어국문과를 가겠다고 했습니다. 부모님은 기겁하셨습니다. 국문과 가서 뭘 먹고 살려고? 절대 안 돼! 그러나 십대 시절의 저는 지금보다 좀 더 고집불통이었고, 나름대로 잔머리를 굴릴 줄도 알았지요. 며칠을 티격태격하다 저는 나름의 해결책을 제시했습니다. 졸업하면 공무원 시험을 봐서 공무원이 되겠습니다, 라고요. 시험에 강한 편이어서 나름대로 자신이 있기도 했습니다. 결국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저는 고집대로 국문과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약속대로 졸업 후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여 공무원이 되었습니다.

  저는 글 쓰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좋아합니다. 사실 제가 꿈꾸던 공무원 생활은 여섯시 오 분 칼퇴근 후 집으로 달려가 글을 쓰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이상과 꽤, 상당히 다르더라고요. 저는 입사 이틀째 되는 날 밤을 샜습니다. 다섯 해 동안 평균 퇴근 시간은 대략 열시 전후였고, 저는 일곱 시에 집을 나서서 열한시에 들어왔습니다. 공무원은 죽을 것만큼 힘든 직업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생각한 것만큼 편한 직업도 아니었습니다.

  사실 늦게 퇴근하는 것은 짜증나는 일이었지만 딱히 부담스러운 건 아니었습니다. 그러니까 혼자 살 때는 말입니다. 그러나 결혼 후에는 달라지더군요. 열두시가 넘어 집에 들어가면 아내가 거실 소파에 누워 이불을 덮고 졸고 있곤 했습니다. 깨워서 침실로 들어가 쓰러진 듯 잠들고, 다음날 여섯시 반에 일어나 출근준비를 하고 삼십 분 만에 허겁지겁 집에서 나오는 것이 일상이었습니다. 집에 늦게 들어오는 것이 매우 싫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또다른 일이 겹쳐 버렸습니다. 작년 말, 저는 좀 더 바쁘지만 한두 해 후에는 승진할 수 있는 자리로 이동했습니다. 그러나 상황이 묘하게 꼬였습니다. 그 부서가 사라져 버렸거든요. 그동안 나름대로 일하는 능력을 인정받아 왔기에, 몇 군데 부서에서 승진 기회를 줄 테니 오라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다른 길을 찾아보고 있었습니다.

  아는 분 중 누구에게나 능력을 인정받으며 상당히 빠르게 승진한 선배분이 계십니다. 하지만 퇴근 시간은 대체로 저보다 늦었고 주말 출근도 저보다 많았습니다. 그분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물었습니다. 만날 퇴근이 늦으셔서 가족들이 싫어하지 않으세요? 당연히 싫어하지. 그분은 대답했습니다. 특히 아내가 외로움을 많이 타더라고. 특히 임신했을 때와 아이가 어렸을 때는 더욱 그랬고. 직장에서의 성공이 가족보다 더 중요한 것일까요? 저는 그렇게 묻고 싶었지만 묻지 않았습니다. 그건 개개인의 가치관 문제일 뿐 정답이 있는 문제는 아니었으니까요.

  저는 지금 일하는 곳을 떠나 다른 기관으로 옮겨가기로 했습니다. 민간기업으로 치면 대기업에서 중소기업으로 이직을 하는 셈입니다. 아마도 지금 있는 곳보다 퇴근이 빨라질 것 같습니다. 아내 얼굴을 좀 더 많이 보고, 아내와 좀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반대급부는 승진의 포기입니다. 물론 그곳에서도 승진이야 할 수 있겠지만, 여기 남아있을 때보다 적어도 삼 년 이상은 차이가 날 것 같습니다. 내가 잘 선택한 것일까? 한 달 내내 고민해 왔고, 사실 지금도 모르겠습니다. 그동안 주위 사람들과 상담을 많이 했습니다. 제 선택을 지지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격렬히 반대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제 마음도 몇 번이나 바뀌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동안 쌓아 왔던 인간관계와, 나름대로 좋은 평판과, 눈앞에 있는 승진 기회를 걷어차고 다른 곳으로 떠나는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마음을 정했고, 이제는 되돌릴 수 없습니다.

  물론 지금 옮겨간다고 해서 바로 여섯시 칼퇴근이 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공무원이 아닌 분들에게는 의외의 이야기겠지만, 사실 칼퇴근이 가능한 부서는 공무원 조직을 통틀어서도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쨌거나 지금보다는 퇴근시간이 빨라질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겠지요. 저도, 아내도 벌써부터 그 기대에 부풀어 있습니다. 제게는 아무래도 가족이 일보다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제부터,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좀 더 많아져야 할 이유도 생겼습니다.
  아내의 뱃속에 아주 작은 꼬마 글곰이 있거든요.

- From m.oolz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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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3일
12/02/28 23:32
수정 아이콘
저도 일보다 가족이 중요합니다. 글쓴분을 응원합니다. 힘내세요!
만수르
12/02/28 23:32
수정 아이콘
승진보다야 본인의 행복이 중요한거겠죠 당연히 화이팅하시길 바랍니다
스테비아
12/02/28 23:33
수정 아이콘
마지막 순간에 '일 좀 더 할 걸....' 하고 후회하는 사람은 없다죠?
글곰님을 잘 모르지만... 지금의 선택이 평생에 가장 잘 한 일 중 하나가 될 것 같네요!
힘내라공무원
12/02/28 23:34
수정 아이콘
저도 공무원에 대한 그런 환상을 갖고 있었어요

진짜 칼퇴근하고 게임하려고 공무원했는데 현실은 녹록치 않더라고요.

뭐 그래도 일반 사기업보다는 널널한게 사실인거 같아서 나름 만족하고 삽니다.

파이팅!
핸드레이크
12/02/28 23:36
수정 아이콘
흑 전 늦게 퇴근해도 공무원이 되고 싶어요. 제가 .아직 사회경험이 없어서 그러겠지만;
효주찡
12/02/28 23:38
수정 아이콘
저와 비슷한 가치관을 가지신거 같아 공감대가 형성되네요.
개인사정상 혼자 집을 이끌어나가야 하는 상황이라
저 개인의 취향이나 뜻과 달리 취업만을 위한 기계과에 진학하였고, 목표 또한 보수가 좋은 대기업입니다.
근데 주변상황의 제약이 풀리면 안할거 같습니다.
저 또한 돈보다는 함께 지내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 과의 시간이 돈의 가치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물론 돈도 중요합니다만 주변 사람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그런 성향이 많이 강합니다.)
아직 사회에 정말 쓴 맛을 보지못해 현실과 동떨어진 생각을 하는지 모르지만
저라도 글쓴분처럼 선택했을 것 같네요.^^
그리고 글곰님께서는 아내분과 꼬마글곰이 계시니 더욱 그러하시리라..^^

일찍 퇴근하셔서 가족과 행복한 시간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올빼미
12/02/28 23:38
수정 아이콘
너무 칼퇴근해서..야근좀 해보고싶기는 합니다.....대신 월급올려주면-_-..
아자아자!
12/02/28 23:50
수정 아이콘
제목이 딱 지금 제 심정이라서 깜짝 놀랐네요. 제목 보자마자 클릭했어요.
저도 공무원인데 이제 퇴근해서 씻고 컴퓨터 앞에 앉은거거든요.
저는 공무원들 중에서도 너희는 편하고 칼퇴근하잖아라는 평을 듣는 교육행정직인데
웰빙교행이란 말은 대체 어디서 나왔는지 발령받고 지금까지 칼퇴근은 별로 못해봤네요.
학교회계를 마감짓고 새학년을 준비하는 가장 바쁜 시기에 다른 학교로 인사발령까지 받아서
저번 토,일요일 내내 학교 나가서 일하고 이번주도 삼일절이나 주말휴일은 날리게 생겼네요.
kogang2001
12/02/29 00:15
수정 아이콘
그래도 저보다 행복하시겠죠... 저는 3일에 한 번씩 24시간 야근을 하는 3부제 교도관입니다...
아직 시보기간이지만 저놈의 24시간 야근때문에 피곤해서 죽을거 같네요...
야근때 잠을 자는 시간이 있기는 하지만 진짜 피곤합니다...
이틀쉬는 날인 쌍피와 연가를 쓰지 않으면 거의 365일 수용자들과 함께 생활하니 반 징역살이네요...
전 잔업으로 늦게 퇴근해도 좋으니 야근만 안했으면하네요...
냉면처럼
12/02/29 00:19
수정 아이콘
일찍 퇴근하고 싶은 7급 공무원 준비생으로서 안타까운 글이네요ㅠㅠ
근데 저라도 무조건 승진보단 가족입니다!!
결정에 미련 갖지 마시고 가족과 행복하시길 바랄게요!
근데 서울시에 근무하시는 건가요? [m]
새벽바람
12/02/29 00:19
수정 아이콘
저도 그렇습니다. 가족(현재는 여자친구)과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고 솔직히 많은 돈은 필요도 없고 그저 여유있는 시간만 주어지는 직업이면 무조건 오케이인데..
현실은 박사과정이라서 오늘도 실험걸어놓고 밤새고 있군요..
그냥저냥 휩쓸려 살다보니 제가 생각하는 삶과는 반대의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아서 항상 기분이 우울하네요.
sad_tears
12/02/29 00:50
수정 아이콘
어제 유게에서.

성공한 삶을 살고 싶지 않습니다
행복한 삶을 살고 싶어요.
12/02/29 09:06
수정 아이콘
5시 칼퇴근하는 1인입니다만...
아내와 제가 둘다 공무원이고 맞벌이하면서 두돌반된 혈기왕성한 애를 키우는지라
5시 퇴근후 저녁준비하고 밥먹고 설거지 이후 애랑 아내랑 가벼운 산책이나 마트가서 장보고 좀있다 쓰레기 버리고
애 목욕시키고 잠투정이 심한녀석 재우고 다음날 점심 도시락 준비하고 나면 11시에요.
잘시간이죠 아내가 피곤한 관계로 손만잡고 잡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아내에게 적게번다고 (평균연봉ㅠ.ㅠ) 구박받을때면 그냥 차라리 많이받고 늦게까지 일해야하는 직종을 고를걸 그랬다라는 생각이들어요. 물론 가족이랑 굉장히 많이 시간을 보낼순 있습니다. 자는시간빼고 깨어있는 시간만해도 주말까지 합치면 직장에서 근무하는 시간과 비슷할겁니다.
해보시면 알겠지만 이건 천국과 동시에 지옥입니다.
예술가
12/02/29 11:53
수정 아이콘
현재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근무하는 9급 현직입니다.
칼퇴는 커녕 매일 10시 이후 퇴근에 주말에도 출근하고 있습니다 ㅠㅠ
칼퇴근이 그립습니다. 흑흑흑. [m]
12/02/29 12:49
수정 아이콘
힘내세요. 가족과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
IVECO-Stralis
12/02/29 13:41
수정 아이콘
축하 합니다.작은글곰...
잘 키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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