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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2/01/15 12:26:59
Name 자이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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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일반] 성곽 답사 다녀왔습니다.2




수원 화성 근처의 사랑채라는 게스트 하우스에서 하룻밤 자고 다음날 아침 임진강으로 출발했습니다. 한반도 최대의 격전장이었던 이곳은 삼국시대는 물론 임진왜란과 한국전쟁까지 한강 유역을 차지하거나 방어하려는 세력들이 충돌하는 주요 전장터였습니다. 답사의 장점은 주변 지형을 보면서 교과서에서나 보던 이론들을 직접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이죠. 임진강은 철원지역의 화산 활동으로 인해 강둑이 15미터에서 20미터의 수직절벽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도강이 무척 힘들었습니다. 따라서 강둑의 높이가 낮아지고 수심이 얕은 곳은 지키는 쪽과 건너가려는쪽의 충돌이 거듭되었습니다. 삼국시대를 한정지어서 말씀드리자면 초기에는 고구려와 백제가, 후기에는 고구려와 신라가 첨예하게 대치했습니다. 양쪽은 서로의 동태를 감시하고 도강이 가능한 지역을 통제하기 위해 강가를 따라 경쟁적으로 보루와 성을 쌓았습니다. 맨 처음 간 호로고루성은 강가의 절벽 위에 위치한 고구려성으로서 여러모로 특이했습니다. 조각케이크처럼 생긴 분지는 삼면중 절벽이 있는 두 면은 목책만 세워져있었고, 땅과 맞닿은 나머지 한 곳만 축성을 했습니다. 성벽 앞에 돌을 쌓은 흔적도 함께 발견되었는데 학자들은 대개 성벽을 보호하기 위한 옹성같은 방어시설이 아니었을까 추정했습니다. 운이 좋게도 집수장 발굴현장을 지켜볼 수 있었는데 성의 규모에 비해 급수시설이 무척 커서 놀랬습니다.  호로고루성 근처에 있는 고랑포는 한국전쟁때도 격전지였습니다.

계속해서 같은 양식의 고구려성인 당포성을 거쳐 신라의 칠중성 유적지로 향했습니다. 호로고루 성 건너편에 위치한 이 성의 유적지를 보고 느낀 점은 '방어지향적'이라는 겁니다. 선입견 때문인 것 같은데 관측이 유리한 위치에 보루에 가까운 소규모 성들을 세운 고구려와는 달리 신라는 방어와 관측이 유리한 지형에 겹겹이 성벽을 쌓아서 방어력을 극대화시켰습니다. 정상에서 본 결과 임진강 건너편에 있는 호로고루성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곳은 고구려와 신라의 전투가 여러차례 벌어졌는데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서기659년 고구려의 공격때였습니다. 현령 필부가 결사적으로 항전하다가 전사하면서 함락되고 말았죠. 아쉽게도 군부대가 주둔하면서 유적지가 상당부분 훼손되고 말았습니다. 다만 군용도로가 뚫리면서 접근은 좀 더 용이해졌습니다. 이곳을 둘러보고 다음에 간 곳은 고구려 유일의 갑옷유물이 출토된 무등리 보루였습니다. 한탄강을 내려다볼 수 있는 곳에 아차산처럼 몇 군데의 소형 보루를 쌓아놨는데 역시 위치 선정이 예술이더군요.

다음은 나당전쟁 최후의 결전이 벌어졌던 매소성으로 갔습니다. 당나라 장수 이근행이 이끄는 20만 대군을 격파하고 수만필의 말을 노획한 전투가 벌어졌지만 생각보다 성은 작았습니다. 동행한 학자들은 성을 둘러싼 공방전보다는 성에서 내려다보는 임진강변과 근처의 평원에서 전투가 벌어지지 않았나 추측했습니다. 남아있는 기록이 워낙 불분명해서 어떻게 전투가 진행되었는지 장시간 토론이 이어졌는데 아무래도 당나라나 말갈족 내부의 변화에 대해서 주목해봐야 하지 않느냐는 얘기가 나왔습니다. 당시 당나라가 신라와의 전투에서 20만이나 동원할 여유가 없었고, 매소성 주변의 지형 역시 20만이나 되는 대군이 이동하기에는 너무 협소했습니다. 아마 기벌포 전투처럼 당군과 이를 막으려는 신라군 사이의 소규모의 교전이 계속 벌어지다가 당군이 퇴각하지 않았을까 추측해봤습니다. 이 모든 논의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4만필에 가까운 말의 노획 기록 때문입니다. 더불어 적병 사살 숫자가 눈에 보이지 않다는 점입니다. 참고로 이곳은 한국 전쟁당시 양군의 주력이 진격했던 곳이며 만약 두 번째 한국 전쟁이 벌어지면 가장 대규모 공세와 기갑전이 벌어지지 않을까 추정하는 곳입니다. 군부대가 삼국시대의 보루나 성 만큼이나 많았고, 성터에 자리잡은 진지의 참호선이 성벽이 세워진 곳과 일치한 곳이 많아서 사용되는 무기와 체제가 변해도 전략적인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직접 볼 수 있었습니다.

매소성을 끝으로 1박2일간의 답사를 끝냈습니다. 기초지식이 많이 부족한 상태였지만 교수님들의 활발한 토론을 경청하면서 나름대로의 가설도 세워봤고, 유물과 발굴현장을 직접 보면서 지나간 역사와 잠시 마주치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답사를 다녀야만 생각할 수 있는 인문서 아이디어들이 무수히 떠오르는 수확을 거두기도 했습니다. 앞으로 기회가 되는대로 자주 다니기로 했습니다. 백수가 되니까 이럴 수 있다는게 행복하긴 하네요. 아쉽게도 후배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서 올릴만한게 없네요. 하지만 바로 다음날 간 공산성 답사때는 사진을 몇 장 찍었습니다.

이번에는 사진을 몇 장 찍었습니다. 이틀간의 답사를 다녀온 다음날은 토요일 아침 7시에 강남역 인근에서 다른 답사팀을 따라 공주로 내려갔습니다. <전쟁과 역사>와 <조선국왕 이야기>를 쓰신 임용한 교수님과 <조선의 9급 관원들>을 쓰신 김인호 교수님을 비롯해서 연구자들과 학생이 주축이 된 팀이었죠. 임 교수님이 렌트하신 스타렉스를 타고 출발해서 공주 공산성에 오전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은 백제의 두번째 도읍이자 충청도 방어의 중심지로 조선시대에도 감영이 자리잡고 있었고, 정유재란때에는 명군이 주둔하기도 했습니다. 이괄의 난 때문에 피난한 인조가 이곳에서 며칠간 머물기도 했죠. 조선시대 만들어진 각종 비석들이 세워진 길을 따라 공산성 정문으로 올라갔습니다.

사실 백제가 방어에 유리한 이곳을 버리고 사비로 천도한 이유가 궁금했는데 지형을 보니 어느 정도 이해가 됐습니다. 이곳은 주변의 평야가 적은 편이라 물자의 생산량이 많이 부족할 것 같았습니다. 물론 금강을 통한 수송은 가능했지만 아무래도 국력을 모으기에는 턱없이 모자랄 것 같았습니다. 산자락을 따라 이어진 성곽은 상당부분 보수된 것으로 백제 시절에는 흙으로 쌓은 토성이었다고 하는군요. 몇 군데 흔적이 남아있었습니다. 성곽이 상당부분 훼손되서 최근에 복원한 부분들이 많았습니다. 산자락을 따라 이어진 구불구불한 성곽길을 따라 어느 정도 걷다가 문득 뒤돌아보면 걷기 전에 봤던 다른 느낌을 받았습니다. 지나온 길이 주는 쓸쓸함이라고 할까요. 자세히 보니까 낙엽들이 쌓여있는 성 바깥 부분에 돌을 쌓은 부분들이 보였습니다. 성벽의 하중을 지탱하도록 하기 위해 성벽은 아래로도 상당 부분을 파서 지반을 다지거나  따로 돌로 보강하기도 했습니다. 답사에 함께 참여한 전직 장교분 말로는 이런 인위적인 구조물들은 비가 내릴때 산에서 내려오는 물의 자연적인 흐름을 방해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책을 철저하게 세워놓지 않으면 금방 무너진다고 하더군요. 공산성은 한때 백제의 수도였고 인조의 피난처였던 만큼 많은 유적지들이 보였습니다. 대부분의 성벽이 급경사 위에 지어져서 올라올 수 없었고, 금강이 자연 장애물 역할을 해줘서 정문 정도를 제외하고는 대규모 병력투입이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성벽 중간 중간에는 백제 시대 흙으로 쌓은 부분이 남아있습니다. 방어력에서 돌로 쌓은 석성보다 약하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지만 사실 공산성처럼 충차나 포차의 사용이 불가능한 산성에서는 이런 토성이 더 유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공산성 답사를 마치고 공주 시내에서 간단한 점심식사를 한 후 백제 역사를 재현했다는 백제문화단지로 이동했습니다. 백제 시절의 생활상을 비롯한 궁궐과 탑들을 복원한 곳입니다. 백제 초기 도읍지인 위례성을 복원한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발굴된 기단을 토대로 복원한 백제시대 탑이 눈길을 끌었는데 자연스러운 곡선과 무한 반복된 것 같은 단청들이 아름다웠습니다.

이렇게 공주지역 답사를 마치고 바로 부여 왕궁지로 향했습니다. 부여 역사박물관 바로 앞에 있는 유적지들을 둘러봤는데 과일이나 채소를 보관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지하 창고와 부서진 기와조각들이 깔려있는 정체불명의 건물터, 그리고 기와를 재활용한 배수로들이 연결된 집수조들이 보였는데 현장에 있는 안내문에는 무려 80미터 길이의 배수로가 발굴되었다고 합니다. 답사에 동행한 교수님들 말로는 현재 사람들이 살고 있는 시내 상당부분도 왕궁 유적지일 것 같다고 하시더군요. 조선시대 세워진 동헌의 주춧돌로 백제시절 왕궁의 주춧돌을 재활용했습니다. 건물을 허물고 발굴중인 모습이 보였는데 무지막지하게 두꺼운 기와조각을 봤습니다. 이곳을 끝으로 답사 일정을 모두 마치고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안쓰던 몸을 마구 쓰던 터라 지치고 피곤했지만 책으로만 봤던 역사를 직접 눈으로 보고 전문가의 설명을 들을 수 있다는 점은 정말 큰 행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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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1/15 16:11
수정 아이콘
성곽 답사는 열명 안쪽 인원으로 가면 몇번은 가게 되는데
대규모 답사에서는.. 여자후배들이 너무 힘들어해서 못가게 되더군요;;
개인적으로는 삼년산성이 제일 기억이 나네요;
자이체프
12/01/15 17:51
수정 아이콘
아무래도 체력 문제가 큰 것 같았습니다. 첫번째 1박2일간의 답사에서도 여학생들이 가장 힘들어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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