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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1/05/31 02:58:48
Name fd테란
Subject [일반] 2011년 어느 늦은 밤 - 기센 여자 상대하는법 -
7.

오빠!!!

괜히 회사앞에서 기다린다고 헛짓거리 했습니다.
드디어 만났네요.



'니는 사람말을 왜 그리 못믿냐? 그리고 진짜 칼퇴근 했네?
나 계속 개찰구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언제 빠져갔냐?'

'뭐야! 언제왔어? 회사앞에서 기다린거야? 나 못봣는데? 어디 있었는데?'

'기둥 뒤에 숨어있었는데 전화 받고 있었으니깐 목소리듣고 쫓아갈려고 했지
근데 전화 되는순간 니가 딱 지하철 탄거 같다.
난 당연히 회사언니들이랑 같이 나올 줄 알았는데 암만 기다려도 여자들 무리가 안보이더라.'

'오늘 열쇠 집에다가 놓고와서 혼자 빨리 나왔다. 내가 30분에 빨리 나오면 32분 열차 탈 수 있거든.
근데 연락도 없이 오고 뭐야? 솔직히 바로 얼굴 보기전까지 안믿었었는데...
난 진짜 데이트 하러 간 줄 알았다.'

'내가 데이트 할 여자가 어디있다고..?
아 굳이 부산안와도 낚을 수 있었는데 괜히 온건가 그럼?
근데 10년전쯤이랑 변한게 없네 그때 만났을때도 이렇게 서로 엇갈렸는데...
우리는 영 아닌 인연인갑다!
아 진짜 현실은 드라마가 아니다!'



작년 가을에 보고 초여름을 앞에두고 재회하게 된 자매님입니다.
약간 짧은 청바지 뭔지 티에 남방 또 머리띠 음...
여름에 보니 더 이뻐졌네요.


'오랜만이다. 이뻐...졌나? 아 머리 또 기른거냐?!'
'나 이거 엄청 짧게 자른거거든. 이렇게 짧게 자른게 진짜 몇년만인데!' 그리고 '이뻐..졌나?'는 뭔데?'

'어 더 짧아진거냐? 부산이 좋긴 좋다. 여기 오면서 너보다 이쁜 여자 100명도 더 봤거든!'
'웃기시네! 나보다 이쁜 여자 누구? 언제 어디서?'

'부산에서 내리자마자 버스타고 지하철 타고 오는 동안 100명쯤 봤다!'
'웃기시네! 아무튼 성미 조금 있다 여기로 온다고 했으니 기달려라! 밥 안먹었지?'


오랜만에 만나자마자 이런저런 잡담을 나눕니다.
자매님은 얼굴 보기 전까지 제가 부산에 온걸 전혀 몰랐던 눈치입니다.
뭐 그렇다고 해서 완전 깜짝 놀라거나 엄청 반가운 눈치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금요일 저녁 일상에 작은 서프라이즈 정도는 된거 같습니다.


'아 진짜 승기오빠 같은 사람이 왔어야 좀 기분이 좋았을텐데...
내가 와서 좀 그렇긴하네 그치?'

'승기 오빠 아닌데 승기랑 나랑 친구거든...'

'아 승기랑 친구냐? 니가 승기보다 한살 많지 않나?'
'아이다! 승기가 빠른 87이다. 어 성미 다 온거 같다.'


몇년째 같이 살고 계신다는 자매님의 룸메님을 만나게 되는군요.
예전에 메신져에서 한번 살짝 같이 대화한적이 있는데...
대뜸 저보자마자  '우리집 여자 아직도 좋아해요?' 라고 일갈하신 무시무시한 분입니다.

자매님이 맨날 지보다 이쁘고 착하고 피부도 좋고 성격 좋고 돈도 잘번다고 자랑질을 했는데...
전화통화할때마다 옆에 있으면 한번씩 바꿔달라고 졸랐었는데 질투난다고 안된다고
맨날 꽁꽁 감쳐두고 거부하던 바로 그 룸메님입니다!



8.

오 핑크색 가디건을 걸치고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오십니다.
조금 쬐깐 하긴 합니다만...포스있네요.
이쁘기도 하지만 그 보다는 뭐랄까 겉으로 풍겨지는 분위기가 장난 아닙니다.

'안녕하세요!'
상냥하고 씩씩하게 인사를 건넵니다.

'아 네..'

그리고 1초도 안되서 '저거 뭔데?' 하는 표정으로 자매님에게 눈길을 돌립니다.
자매님이 전화랑 문자로 만나기전에 잠깐 이야기를 한거 같긴 한데...
아무래도 제 존재는 평화롭고 조용한 금요일 저녁에 뜬금없이 날아든 부나방인가 봅니다.

'좀 전에 말했지? 갑자기 오빠가 놀러와가지고...!'
'죄송해요. 제가 갑자기 찾아와서 혹시 불청객인건가요?'

룸메님은 웃지도 그렇다고 찡그렇지도 않고 그냥 무표정으로 '아니요 괜찮아요' 라고 합니다.
음 괜찮아 보이는 표정이 아닌거 같은데 원래 캐릭터가 저런가 싶기도 하구요.
아무튼 지하철역에서 가만히 서서 있기도 뭐하니 자리를 이동했습니다.


자매님과 룸메님이 앞에서 나란히 찰싹 붙어서 걸어가고...그 뒤를 따라서 걸어갑니다.
앞서가던 룸메님이 한말씀 하시더군요.

'이런날은 소주보다는 막걸리를 먹어줘야 한다.'

연산동에 살지만 이동네에서 잘 안놀아봤는지 이리저리 구석구석 헤멥니다.
그냥 아무데나 들어가도 상관 없는데 꽤 동네 구석으로 깊숙하게 들어갑니다.

'에이 먹을만한데가 없네 걍 아무데나 들가자'

제가 잘못 들은건지 앞에서 자꾸 '똥꼬' '똥꼬'하면서 술집이야기를 하는거 같은데...
도대체 똥꼬 똥꼬가 뭔지 잘 모르겠네요.

연산동에 있는 작은 선술집에 들어왔습니다.
메뉴판을 슬쩍 들추고 포스있는 룸메님이 주문을 합니다.

'저기요! 2통1반이랑요. 정구지찌짐이랑요 치즈계란말이 하나주세요!'

주문을 마치고...드디어 룸메님이 저를 쳐다 보시고 말을 걸어니다.

'어디서 오셨어요?'
'아 인천에서 왔습니다. 제가 누군지는 아시죠?'

'아 네 뭐 알거같기도 한데..인천이요?'
'인천이 아이고 부천이다. 아까 4시쯤에 왔댄다.'

뭔가 차도녀 포스가 납니다.
금방 저에 대해서 흥미를 잃었는지 다시 자매님과 대화를 나눕니다.
회사이야기랑 친구이야기 뭐 대충 그런잡담을 합니다. 약간 투명인간이 된거 같기도합니다.
굳이 분위기를 어색하게 깨트리지 않고 얌전히 그녀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타이밍을 기다립니다.


'아침에 출근할때 집에서 나오는데 뒤에서 '바보야' 부르는기라.
그래서 막 쳐다봤는데 다시 '바보야' 그러는거다. 그래서 난 둘째오빠야가 와서 장난치는 줄 알았는데 모르겠다.'
'미쳤나? 아직도 금마 생각하나? 치아라. 그리고 너무 재지마라 노산한다'

'노산이라니! 내가 왜 노산을 하는데? 빨리 남자 잡아서 시집갈꺼다 내 노산안한디!'
'안그래도 아버님이 접때 부산왔었을때 너 서른살 되기전까지 잘부탁한다고 신신 당부를 하고 가셨는데...
내 보니깐 너는 노산할 거 같다.'

'아이다! 노산 안한다니깐!!!'


...음 가만히 들어줄려고 했는데 노산이야기가 나옵니다.
노산 그러니깐 애 늦게 낳는 여자들 뭐 그런 이야기 맞죠?


'아, 저는 서른살되기전까지 성미씨가 숙이 보살펴주신다고 이야기를 들어서
본인의지로 그런걸줄 알았는데 숙이 아버님이 따로 부탁을 하셔서 하는건가 보네요?'

'아, 접때 재네 아버님이 집에 오셨을때 잘 부탁한다고 말씀하셨거든요.
근데 여까지 내려 오는데 얼마나 걸리셨어요?'

'아 6시간 정도 걸렸습니다. 기차타고 오면 더 빨리 오긴 하는데
기차역까지 가는 시간도 좀 있고 버스타고 오는게 훨씬 편해서요!'

'나도 이렇게 멀리서 내 보러 오는 남자 있었으면 좋겠다.'

'하하, 이게 좀 괜찮은 남자가 와야 기분이 좋고 뭔가 그럴듯하지.
저같은 사람이 오면 기분 좋을거 같지는 않은데요? 오히려 귀찮을 수도 있지 않나?'

이건 좀 자폭멘트 같습니다.


'사실 회사앞에서 기다리고 있었거든요.
근데 둘이서 길이 엇갈려서 다시 연산동에서 만난거에요.
예전에 한 7~8년쯤 숙이가 저 보러 충주에서 올라온적이 있었거든요.

제가 강변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저 녀석이 저희동네 부천으로 놀러온거에요.
그때 제가 한 2시간은 돌아갔죠. 정말 옛날이나 지금이나 저희는 발전된게 없네요 하하.'

'맞나? 언제 그랬나?'
'예전에 수능 끝나고 명은이랑 같이 오빠네 동네로 놀러갔었는데 둘이 갈린적 있었다'


룸메는 또 무 표정으로 핸드폰을 만지작 만지작 거립니다.


9.



그래도 아까보다 조금 분위기가 부드러워진거 같습니다.
이제 술이랑 안주가 나왔습니다.
룸메님이 다시 말을 건넵니다.


'술 잘해요?'
'술 먹어도 되냐구요? 아 혹시 숙이가 저 술먹으면 안되는 몸이라고 미리 말해놨나요?'

'아니요 그게 아니고요. 술 잘 드시냐구요?'
'아 미안해요. 잘못들었네요. 네! 자주는 안마시는데 마실땐 잘 마십니다. 술 좋아해요!'

룸메님이 주전자에 담긴 2통1반을 따라 줍니다. 시원하고 달달하니 좋네요.
그리고 정구지찌짐이를 시식하더니 한 마디 하네요.

'아, 맛에 임펙트가 없다.'

맛에 임펙트가없다.
어디가서 써먹어야 겠네요.

또 한참 자매님 룸메님 둘이서 떠듭니다.


'아, 영화본다 했나? 내 그러고보니 캐리비안의 해적을 봤는데!
거기서 너무너무 이쁜 인어가 나오는거야. 진짜 눈돌아갈정도로 이쁜 인어가 샤악 하고 나오는데!
그 이쁜 인어가 사람을 살짝 홀려놓더니 확!!!!!!! 하고 그냥 잡아먹는다! 진짜 놀랬디!
그리고 또 죠니뎁 멋있어서 그거보는 재미로 보고 3D로 보면 좋을거 같다!'

'인어가 사람을 잡아먹는다고?'

'진짜진짜 이쁜 인어가 남자를 그냥 확 잡아먹는다. 완전 무섭다! 3d로 보면 괜찮을거 같다.'
'맞나? 3D로 볼까 그러면...내일 7시에 서면에서 연극도 봐야되는데!'


슬쩍 한마디 꺼내봅니다.

'제가 아까부터 봤는데요. 저기 역에서 여기 술집까지 들어와서 두 사람을 가만히 지켜보는데...
숙이가 계속 쉴세없이 성미씨한테 징징징 대는거 같거든요.
가끔 투닥 투닥 거린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실제로 보니깐 딱 판단이 서네요.
모든 문제의 원인은 숙이 재 때문이네요. 정말 데리고 사는라 고생이 많으십니다.'

'뭘요, 하루이틀도 아닌데 그냥 그런갑다 생각하고 삽니다.'

'아니요. 저도 가끔식 징징대는거 받아줘서 아는데
그거 매일매일 얼굴보고 데리고 살면서 받아주시는거 잖아요. 진짜 대단한 일이에요. 존경합니다!
전 오기전에 딱 사위보는 마음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왔거든요?
근데 지금 보니깐 강아지 한마리 키우는 주인님 딱 그런 수준이네요'

'재가 강아지라구요? 아인데요? 완전 고양인데?'
'네? 생긴거랑 하는짓 맨날 낑낑대는게 강아지 같지 않나요?'
'아인데요. 고양인데, 맨날 할퀴고 때리고 그러는데 고양이 맞아요'

'할퀴고 때린다구요? 이야 못됐네
그리고 정말 이쁘시다고 말씀 많이 들었거든요.
가끔 이야기하면 허구언날 '우리 룸메랑~'  '우리 룸메가~'
이런이야기 지겹도록 듣거든요!!'

'보니깐 별것 없지요?'

'아니 뭐 솔직하게 말하면 하하...'



둘의 대화를 가만 가만 듣고 있던 자매님이 빽! 소리를 지릅니다.



'아부 좀 하지마라!!! 성미한테 관심있나? 남자친구 있다 건들지 말라고!'

'이 정도로 아부는 무슨! 이 정도로 아부 축에도 못끼지.
남친있는 여자한테 한번 고백했다가 까인 전과가 있긴해도 내 그렇게 경우없는 사람은 아니다.'

'쓸데없는 소리하지말고, 술이나 마셔라!'



으흠 분위기 좋나?



10.



2통1반 주전자가 이제 반넘게 비운거 같네요.

'저희가 원래 이렇게 자주 연락하고 얼굴보고 그런 사이가 아닌데요.
요 근래 저녀석이 하도 징징대는 횟수가 많아져서 이렇게 찾아오게 됐거든요.
지지난주에는 아침에 울면서 전화하면서 죽고싶다고 막 징징댔다니깐요.'

'지지난주에? 아침에요? 울면서요? 뭔데 또 질질 짰지.'

'넵, 그러게 말입니다. 오죽 했으면 제가 여기까지 내려왔을까요.
뭐 지난주에 문자로 장난친것도 있고 요즘 좀 우울해하는거 같아서 놀러온거에요'

'쓸데 없는 소리 하지마라, 오빠 얼른 술 한잔 받아'
'니 지금 술주면서 이야기 못하게 막는거 보니 내한테 뭐 찔리는거 있는갑제?'

'완전 예리하시네. 짱이에요. 그게 뭐냐면요...'
'술 마시라고! 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고! 그 소리 할려고 여까지 내려왔나!'

'알았다 알았다. 흥분하기는...'


역시 싸움은 관전자가 있어야 재미가 두배가 되는거 같습니다.

다시 룸메님에게 말을 건네 봅니다.

'근데 아까 둘째 오빠야 어쩌구 하던데 제가 모르는 오빠들이 많나보죠?'
'글쎄요. 재는 오빠야들이 하도 많아서 저도 잘 모르겠네요.'

'둘째오빠면 셋째오빠도 있고 넷째 오빠도 있는건가?
야 거기 자매님 나는 그럼 몇순윈데? 내가 첫째 오빠야?'

'음 모른다. 내 남자 관계 다 알지 않나! 오빠는 0순위다! 0순위!'
'와, 감동받아서 눈물나 돌아가시겠네 거짓말안하고 진짜 0순위?'

룸메님이 한마디 끼웁니다.

'0순위가 한명이 아닐지도 모르죠. 왜 꼭 한명일거라고 생각함?'

'아, 맞다 그럴수도 있구나. 역시 얼굴 보길 잘했다. 이런 대화를 하고 싶었거든요.
저놈이 맨날 저보고 특별하니 뭐니 하면서 절 묶어둘려고 하는데 한번 와서 실체를 벗겨보고 싶었거든요.
완전 고맙네요 진짜. 아 그리고 최근에 저랑 잠깐 메신져에 대화하신날 집에가서 재 보고 어장관리 한다고 한 소리 해주셨다면서요?'
그리고 저 놈이 정색하면서 아니라고 해서 둘이 한판 하셨던데 좀 미안하기도 했지만 쫌 후련했어요.'

'뭐 싸운거 까진 아닌데 언제 그랬는지도 기억도 안나고...'

'짝사랑 오래하니깐 폐인되겠더라구요. 못해먹겠어요 정말!
오늘 여기서 끝장을 봐야 제가 다른 여자를 찾든지! 아님 다른 이현숙을 만들던지!
그게 아니면 게이남자를 찾든지 그럴 수 있을거 같아서요.'


뜬금없이 좀 끈적끈적한 나갔습니다. 이런 말 들으면 좀 불편할까요?
자매님이 딱 여기서 말을 끊습니다.

'맞다! 내 게이남자 빨리 소개시켜줘!'

'봐요? 이런다니깐요? 제정신 아닌거 같아요. 이태원으로 와라.
밤 11시 넘어서 거기 이태원 파출소 건너편 앞에 우리나라 게이,레즈,트렌스젠더 90%가 거기 다 모여있댄다.'

'내가 거길 어떻게 가냐! 빨리 게이남자 만들어서 소개시켜줘!'
'니가 가서 만들어야지 내가 어떻게 만들어서 해주냐 나보고 게이되라고? 확 그냥!'

뻘소리를 듣고있던 룸메가 한마디 끼웁니다.

'그냥 니가 가서 '안녕? 나 레즌데 내랑 친구할래? 하면서 레즈친구 만들어라'
'안된다. 레즈친구는 어렵다. 그런거 말고 게이친구...'

어우 증말...

'제가 게이는 만나본적이 없는데 바이는 만나본적이 있거든요. 혹시 바이가 뭔지아세요?'

치즈계란말이를 씹던 룸메가 대답합니다.  '그거 양쪽다..'

'네, 아시네요. 뭐 만날려고해서 만난건아니고 어쩌다가 술 한두번 같이 먹은적있었는데요.
갑자기 남자도 좋고 여자도 좋다고 고백을하는데 아 순간 감당이 안되더라구요.
전 평소에 엄청 오픈마인드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막상 그런 사람이 닥치니깐 제가 막 어려워하는거에요.
들었냐? 니가 게이게이 타령해도 진짜 만나면 지금처럼 막 못한다니깐!'

'아 뭐야, 그럼 그 사람 소개시켜줘!!!'

'몰라 이제 연락 못한다. 원래 친하지도 않았고 그리고 남자바이다.
뭐 사실 그 사람이 남자가 아니라 여자 바이였으면 그렇게 어렵지 않게 놀 수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처음에는 여자 둘이서 노산이 어쩌구 저쩌구를 하더니...
남자는 한술 더 떠서 게이가 어쩌구 바이가 어쩌구를 합니다.
둘끼리는 알고 지내지만 한쪽은 처음만나는 사인데 뭔가 좀 정상적인 대화인지는 모르겠네요.
그나저나 부산까지 쳐내려와서 게이드립을 치다니 이 망할놈의 인터넷을 어서 끊던지 해야지.




11.


이제 슬슬 안주도 다 떨어지고 술도 다 비워 갑니다.

'아 얼마전에 제가 성미씨한테 전화 바꿔달라고 막 해서 저녀석이 안바꿔준다고 막 뭐라 하다가...
저희 둘 사이에 휘말리신적 있잖아요. 그게 처음에는 장난으로 시작했었는데...
저놈이 질투가나네 안되네 막 하면서 그러길래 제가 좀 재미있기도 하고 약간 오기가 생겨서 놀려본거거든요.
그래서 저 바꿔주시고 아무말도 안하시고 끊으신다음에 둘이서 또 그걸로 한판하셨는데...그때 기분 상하셨다면 죄송해요'

'아니 뭐 기분상한건 아닌데 장난으로 안보이던데?
왜 그래요? 유치하게...그런걸로 싸움질이나 하고?'


'아 싸움으로보였나요? 저희 막 사귀는 사이도 아니고 진짜 장난친건데!
음 그게 미묘한 자존심싸움 뭐 그렇게 보일 수도 있는거구나.'

'그거 그런싸움 맞는데요? 암튼 좀 이상했음, 뭐 다음날 둘다 싹 잊었으니 상관없어요'

뭔가 여기서 한마디 더 보태면 제대로 찌질한 낙인이 찍힐거 같아서 말을 못 끼워넣겠습니다.
괜찮았던 분위기가 한방에 싸해집니다.


또 앞에 여자 둘이서 이애기 저애기 합니다.
주로 남자이야기네요. 음 그러다가 아는 남자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최원묵이? 그 애한테 요즘도 연락오나?'
'아 뭐 그렇긴한데 잘 모르겠다.'



최원묵은 자매님이랑 초딩때부터 고등학교 3학년때까지 쭉 사귀던 뭐 그런 사이입니다.
뭐 제대로 사귄건지 아닌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자매님의 첫남자죠.
아참 저쪽 자매님과 룸메님도 초등학교 동창입니다.

'아 최원묵이 저도 알아요. 옛날에 숙이가 저한테 메일로 문자 보냈을때 닉네임이 '묵이살앙' 이였거든요.'


!!!


'묵이사랑요? 묵이사랑? 꺄하하하하 묵이사랑이래 묵이사랑!! 이거 완전 대박!
진짜 완전 웃긴다 꺄하하하하하하하. 다 소문내야지 묵이사랑 꺄하하하'

'미쳤나!!! 니 그거 말하면 진짜 내랑 끝이다. 아 뭔데!! 그걸 말하면 우짜는데
아 쪽팔리다 진짜 왜 말하는데!!'


저는 묵이사랑이 왜 웃긴지 모르겠습니다.
근데 분명한 것은 제가 날린 '묵이사랑'이 저 시크하고 도도한 룸메님에게 아주 큰 빅재미를 선사했다는 점이네요.


'아 그게 묵이사랑이 아니고요. 묵이'살앙'요 '살앙' 그리고 뒤에 하트도 붙어있었어요.
저 한동안 그 아이디로 메일 많이 주고 받았었는데...요런거 좋아하시는구나. 또 뭐 있냐면요....'

'시끄럽다!!!!!!!!! 거기서 한마디만 더 하면 진짜 죽는다! 술 마셔라 술!
야 너도 그만웃어라. 이거 말하고 다니면 진짜 내랑 끝이다!'

'술 이제 없는데?'

'묵이살앙 키읔키읔키읔 아 웃겨 진짜 묵이살앙이래 키읔키읔키읔'


생각지도 못한 대박이 났습니다.
저에게는 10년넘게 알고 지낸시간이 있습니다.
저쪽 자매님의 흑역사 몇개 건져내는거야 쉽습니다.



'이제 2차 갈거가? 뭐 딴거하나 아 그리고 나는 다른데로 건너가서 마셔야겠다.'
'아 가시게요? 다른데서 약속있으세요?'
'네, 뭐 그냥요. 일단 나가죠'


자매님이 계산을 하고 나왔습니다.
전 애시당초 오늘 손님으로 얻어먹으러 왔습니다.
작년에 종로에서 데이트할때 적금들어놓은것도 있구요.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럼 저는 가볼게요. 놀다 가세요. 묵이사랑 키읔키읔키읔'
'아, 네 제가 민폐끼쳐드리는거 같아서 정말 죄송하네요. 다음에 또 뵈요.'
'아니에요 묵이사랑 키읔키읔키키읔'
'너 진짜 어디가서 그거 말하면 죽는다! 진짜 끝이다! 끝!'


룸메님 고개만 까딱하고 저 멀리 종종걸음으로 사라집니다.
살짝 아쉽기도 하고 뭔가 억눌렸던 중압감에서 풀려난 느낌이기도 합니다.


'내가 불편하게 해서 간건가? 미안한데 진짜..'
'아니 뭐 그런건 아닌데 그냥 가고 싶어서 간거겠지.'

'아님 니가 가라고 눈치줬나? 뭔가 좀 살짝 아쉽기도 한데...'
'그런건 아닌데 그냥 눈치봐서 나간거 같다.'



아무래도 제가 중간에 좀 노골적으로 끈적끈적하게 오늘 뭔가 작정하고 왔다는듯이 뉘앙스를 풍겼기 때문에
괜히 옆에서 껴들었다가 지루하고 재미도 없는 싸움구경 하고 싶지않아서 자리를 피한거 같은 느낌입니다.

뭐 얼굴도 봤고 나름 이야기도 충분히 나눴기 때문에 볼일은 다 본거 같네요.
살짝 미안한 마음은 계속 남지만요.


이제 다시 둘만 남게 되었습니다.


시간은 아직 9시도 안됐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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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5/31 04:08
수정 아이콘
달달하네요 :)
토쿄일파
11/05/31 09:36
수정 아이콘
좋네요 이글.
Darwin4078
11/05/31 10:37
수정 아이콘
조용히 추천 누르고 갑니다.
죽자군
11/05/31 11:50
수정 아이콘
예전 글부터 읽어왔는데, 좋네요. 덤덤하면서도 뭔가 터질랑말랑 하는 느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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