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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1/05/31 01:20:43
Name 네로울프
Subject [일반] 오래 전에 잃어버린 남방에 대해

오래 전에 잃어버린 남방에 대해 -


얼마 쯤 전이었는 지 모르겠다.
금방 햇 수를 꼽아내기엔 먼 시절인가 보다.
아끼던 남방이 한 벌 있었다.
혼자 마음에 무척 좋아하던 남방이라
몇 년을 입었다. 종내엔 소매 끝이 헤어지고
튿어져 실줄이 비어져 나왔었다.
주위 사람들이 보기엔 그 모양이 흉했던지
퉁박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좋아하는 것엔 이유가 통하지 않는다.
계절이 되면 옷장에서 꺼내어 입고, 때가 지나면
다시 곱게 빨고 개어 다음 계절을 기약하며
넣어두곤 했다. 그렇게 제법 몇 년을 입었다.
특히 빨래를 하고 갓 말린 그 남방을 입을 때마다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다른 옷들보다 훨씬
자주 빨아입곤 했었다.

그 날도 해가 높고 바람이 좋았다.
두어 번 덧 입었던 녀석을 또 금방 챙겨들고
몇가지 옷들을 더해 빨래를 해 널어 놓았다.
외출을 나갔다 서산 녘이 늬엿거릴 때
돌아와 널어둔 빨래를 거둘려니 남방이
사라지고 없었다. 다른 옷가지들은 널어 둔
그대로인데 그 남방 자리만 휑하니 비었다.
바람에 날려갔나 싶어 집주변 까지 꼼꼼히
찾아봤지만 종적이 없었다.
누가 들고 갔다면 멀쩡한 새옷도 가만 두고
왜 낡고 소매끝 마저 헤어진 남방을 가져
갔을까? 어디 욕심 낼만한 품새도 아닌 것이다.
뭔가 아련하고 쓸쓸하고 알싸했다.

많은 시간을 지나와 되짚어보니
어쩌면 다행일지도 모를 일이었단 생각이 든다.
쓰임새는 떨어져가는데 아끼는 마음은 여전해
언제고 제 손으로 처분하진 못했을 것 같으니 말이다.

비가 몇 방을 듣다 그쳤다.
빨래 널어둔 것이 있어 호들갑을 떨었는데
오는 듯 마는 듯 그쳐버리니 조금 전의 야단이
열없다. 이왕 비를 그을 만하게 처치했으니
좀 더 내려도 좋겠는데 말이다.

생각 속엔 어느 새 볕이 바르고 바람이 분다.
수 몇 해 전에 잃어버렸던 남방이 팔락거리며
말라간다.


                                                  ..zz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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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asice
11/05/31 01:29
수정 아이콘
참...저도 일년전쯔음에 5년넘게 아끼고 아끼던 남방하나를 제손으로 버렸습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첫월급으로 상설매장에서 저렴하게 구입했던 제품인데 너무너무 이뻐서 참 자주입었었죠..
어차피 군대 다녀오면 그전에 사둔옷 못입는다는 소리 참 많이들었지만 그래도 그 남방을 바라보며
여전히 군대다녀와도 나는 잘입을수있다...라는 생각을 꿎꿎히 갖곤 했죠..

그렇게 좋아하는 옷이었는데 어느날 겨드랑이 부분이 찢어지더니..겉잡을수없게 너덜거리더라구요..

너무 많이 빨아입어서 누더기가 다 되서 이젠 자그마한 충격에도 쉽게 찢어져버리는 모습을 보고 참 마음이 아팠습니다.

생명이 담긴 것도 아니었지만 저에겐 나름 사연이 많았던 옷이었고 제 사상이 절대 제손으로 산 옷은 버리지 않는다.
언젠간 다시 입는날이 돌아온다..였는데...수명이 다해버린 셔츠를 결국 제손으로 버리고야 말았죠...

이젠 좀 잊혀졌나 싶은데 오늘 이글을 보고 다시 추억이 떠오르네요;
룰루랄라
11/05/31 01:40
수정 아이콘
느낌 좋은 글이네요.
저도 옷장속에 너무 낡았지만 정들고 추억이 배어 못 버리는 옷들이 그득한데..
nalrary76
11/05/31 08:43
수정 아이콘
아... 느낌 좋네요... 어떻게 이런 글을 쓰실수 있는건지... 부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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