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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1/04/11 04:33:54
Name 눈시BB
File #1 전라경상.JPG (75.2 KB), Download : 69
Subject [일반] 임진왜란 해전사 - 1. 불멸의 원균


지도에서 거제도와 사천의 거리를 잘 봐 주세요.

생각해보니 저번 편 타이틀인 "조선에는 이순신이 있었다"는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선조 편 타이틀입니다. 어느 걸로 보나 이이가 주인공이 됐어야 했는데 이순신을 넣을 수밖에 없었다고 하는군요.

몇 번의 시행 착오 끝에 bgm을 넣었습니다만, 무한재생이네요. 중간에 끄는 것도 안 되고 -_-; 그래서 bgm은 그냥 링크로 돌립니다.
http://oqualizard.blog.me/90107987936
파워재생을 눌러주시구요 (접기 펴기도 배워야 되나요 ㅠ) 왠만한 거라면 그냥 무한재생하거나 하겠는데 bgm이 너무 웅장... 아니 웃길 수도 있는 관계로 보시는 분의 판단에 맡기겠습니다.

뭐 가사 뜻은 다들 아실테니 왜 이 글에 그렇게 넣으려고 노력했는지는 아시리라 믿습니다 :) 혹시 제가 시험삼아 급히 올렸다 지운 글 보신 분들은 그냥 살포시 웃어주세요 ㅠ 다음 편부턴 진짜 나갑니다.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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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종 30년, 원준량이라는 인물이 아들을 무과에 응시하게 한 것 때문에 비리 문제로 욕 먹습니다. 이 원준량이라는 인물은 실록에서 여러 가지 문제로 미친 듯이 까이죠.
원준량에게는 세 아들이 있었는데 둘째 원연은 문과였고, 셋째는 나이가 어렸습니다. 여기에 관련될 만한 아들은 딱 하나 뿐이죠. 원균입니다. 시작부터 참 화려했습니다.

한편, 20세기 말에 원균옹호론이 등장합니다. 이재범이라는 사람은 "이순신이 혼자 몰래 장계를 올려서 원균이 피해받았다"고 하면서, 원균이 뒤늦게 그 사실을 알고 장계를 올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내용이 이거였죠.

"경상 수사(慶尙水使) 원균(元均)의 승첩을 알리는 계본(啓本)은 바로 얼마전 이순신(李舜臣)이 한산도(閑山島)(옥포의 오기) 등에서 승리한 것과 한때의 일입니다"

이 실록의 기록 중 이재범의 원균 정론(후에 원균을 위한 변명으로 다시 출판되니다)에서 추가한 건 [옥포의 오기] 하나였죠. 이거 하나로 저 장계는 옥포해전의 기록이며 진짜 이순신이 그 때까지 혼자 장계를 올려서 원균이 피해 봤고, 원균이 뒤늦게 장계를 올린 거라고 주장하게 됩니다.
... 근데 저 실록의 기록은 8월 24일. 그 때는 이미 이전의 해전으로 이순신은 물론 원균도 상을 받은 때였습니다. 이재범이라는 사람이 지식 수준이 얼마나 되든 저걸 헷갈렸을 일은 없죠. [옥포의 오기] 이거 하나로 역사 왜곡을 시작하게 된 겁니다.

원균은 시작부터 저렇게 더러웠습니다. 그리고 원균옹호론 역시 시작부터 저렇습니다.

1. 경상우수영의 규모
처음에 각 수영의 규모는 다 비슷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각 왜변을 겪으면서 주로 침입하는 곳 등 각자의 상황에 맞추어 변형되었다고 하는군요. 임란 즈음에는 각 좌수영은 작아지고 우수영은 커졌다고 합니다. 임란 중에도 심심하면 바뀌고 후에도 바뀌면서 당시 확실한 숫자를 찾기는 어려운 듯 하네요. 가장 확실한 것은 전라좌수영의 5관 5포입니다. 경상좌수영은 현재의 부산 다대포부터 시작해서 동해로 울산 등으로 올라가면서 8포, 전라우수영의 경우 8~11관으로 예상하더군요. 어차피 지도에 나온 보성 왼쪽부터 전라도 해역은 모두 전라우수영 걸로 생각하면 될 겁니다.

그렇다면 경상우수영은? 일단 기본적으로 알려진 건 8관 16포입니다. 이 중 웅천, 진해, 고성, 거제, 사천, 남해, 곤양, 하동의 8관은 확실하다고 보시면 될 듯 하네요. 인터넷에 퍼진 여러 논의를 보면 8관 20포, 11관 19포 등 다양합니다. 전쟁 당시 시점(8관)이나 전쟁 중 시점(11관)에 따라 다르겠습니다만, 일단 제 지식으로 확신할 수 없으니 이 정도로 해 두죠.

이런 비율로 추산할 수 있는 경상우수군은 최소 40척, 통설로는 70척, 최대 100척입니다. 징비록 등 당대 기록에서도 그렇게 나오구요.

전쟁이 시작하면서 병력들이 도망가서 다 모이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전 글에서 적었듯 경상좌수사 박홍 휘하에 경상우수군은 집결했습니다. 이 병력을 천오백에서 이천으로 추산하니 그 때 모일 수 있는 병력은 다 모였다고 봐도 되겠죠. 1, 2군은 주로 동북쪽으로 움직였고 구로다 나가마사가 상륙한 게 19일이니 부산포 서쪽 경상우수영 영역은 아직 적이 오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직격타를 맞은 경상좌도의 병력들이 집결했는데 우수영이 집결하지 않은 건 이상하죠. 최전방에서도 집결에 모두 성공하는데 경상우수영만 안 된다? 이게 사실이라면 원균에게는 시작부터 도망간 다른 장수들보다 더 죄가 있다고 봐야 됩니다.

위에 언급한 8관 중 전쟁 초기에 함락되었다고 기록된 곳은 웅천, 진해, 고성 세 곳 뿐입니다. 그나마 진해는 파선되서 육지로 표류한 60명에게 당했고 현령은 원균과 함께 도망갔다고 돼 있죠.
원균의 공문이 이순신에게 도착한 게 15일, 임란 당일에 보냈다고 생각하면 이틀 거리죠. 전라좌수군이 집결하기 위해 각 관포에 공문을 보내서 모이는 기한을 3일로 잡았습니다. 경상우수영에도 같은 시간을 적용한다면 임란 발발 당일, 혹은 다음 날에 집결을 명령해도 3군이 김해에 상륙하기 전에 모일 수 있으며, 그 두 배로 잡아도 김해 근처가 아니라면 충분히 모일 시간이 있었습니다.

끝으로 이탁영의 정만록에는 개전 직전 경상감영의 검열이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개전 전 달인 3월달에 경상우수영의 모든 관포를 점검했다는 거죠. 대마도에서의 최후통첩 때문에 이일과 신립이 전국을 돌아다니며 점검하던 때였고, 전쟁광인 김수가 점검하던 때입니다. 예정대로의 숫자가 없었다면 분명 문제가 되었겠죠. 준비가 안 돼 있어서 판옥선이 네 척밖에 없었다는 것 역시 말도 안 되는 것입니다.

2. 원균의 도주 시점
원균이 초기에 도망갔다는 기록은 실록, 난중잡록, 연려실기술 등에서 공통되게 나타납니다. 다만 두 가지로 나뉘어 있죠. 모두 옮기면 너무 길어지니 간단히 넣어 보면...

6월 28일 김성일 장계 - 군영을 불태우고 격군만 있는 배로 사천에 숨어 있음 -> 고성에 적이 없어 가라고 몇 번이나 독촉하니 "19일"에 고성으로 갔다가 적이 오는 걸 보고 다시 후퇴. 전라도 수사와 힘을 합쳐 다시 치겠다 함. 남해는 기효근이 이순신이 군량을 다 불태워서 기효근이 돌아와서 어렵게 지키고 있음. 거제 현령 김준민은 혼자 성을 지키다가 근왕하자고 김수가 불러서 육지로 가니 적이 거제도를 점령함
같은 날 김수의 장계 - 조라포, 지세포, 율포, 영등포 등이 비었고 김준민만이 성을 지키고 있음. 원균은 육지로 피하고 우후 우응신에게 관고를 불태우게 함. 웅천 현감 적이 오기 전에 도주.
김수의 다른 장계 - 남쪽 변방을 침범한 적은 수사 원균이 잡음. 자기는 18일에 근왕하러 전주에 왔고 지금 곧바로 님 보러 감.

(이상은 같은 날에 적힌 걸로 봐서 늦게 오거나 그 때 가서 다 같이 적은 걸로 보입니다. 저 장계들은 5월 중에 쓴 것일 겁니다.)

같은 날 전라도 절도사 최원의 장계 - 5월 7일에 옥포 해전 승전 전함

난중잡록
적이 거제도로 가니 원균은 백천사로 갔는데 어선을 보고 적인 줄 알고 노량으로 후퇴. 우후는 백성들을 내쫓아서 백성들이 혼란해졌는데 도망이 늦을까 무서워서 활을 쏘면서 강요. 여기에 임신한 여자 둘이 맞는 등 많이 죽음. 기효근은 창고를 불 태우고 달아났는데 정작 적은 남해에 아직 안 옴 (경상 순영록에서 베낌)
삼도 수군이 가덕도 앞바다까지 가서 크게 이김. 근데 원균이 이전에도 한 번 갔었는데 적이 많아서 퇴각. 원균은 전함 다 침몰시키고 도망가려고 하는데 이운룡이 막아서 이순신에게 구원을 청함.


자. 이것들을 보면 뭔가 어긋나 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우선 원균의 도주 시점이죠. 김성일의 장계에는 원균이 이미 도망갔고 자기가 명령을 내려서 19일에 고성을 탈환하러 갔다고 하죠. 임란이 벌어지자마자 도망갔다는 얘깁니다. -_-; 문제는... 김성일은 이즈음 전쟁이 안 일어난다고 했다는 죄로 잡혀갔을 때라는 거죠. 난중잡록에는 가덕도 (요새 화제가 됐던 그 가덕도 맞습니다. 앞으로 자주 나옵니다)까지 갔다는 기록이 있고 백천사까지 갔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 백천사는 지금의 사천 지방에 있습니다. 거제도보다 뒷편이죠. (이렇게 서로 상이한 기록이 있을 경우 다 같이 적어서 후세의 판단에 맡기는 게 당시, 특히 난중잡록의 저자 조경남의 방침이었습니다)

이외에도 전쟁 초반이라 그런지 혼란스러운 내용이 많습니다. 난중잡록에서 원균이 이순신에게 구원을 청할 때 "전라좌우수군이 모두 모여 있었고" "적이 사천과 남해에 가득 차 있다"고 했죠. 둘 다 사실에 맞지 않은 내용입니다. 전부 의심해 가면서 봐야죠.

일단 맞는 것끼리 맞춰보면
"가덕도까지 갔다가 도망가서 거제도의 우수영 본영 불태우고 전선 다 자침하고 도망"
"사천에 있다가 고성 먹으러 가다 백천사에서 적을 보고 노량으로 도망" (지도 보시면 이것도 웃기죠)
으로 볼 수 있겠죠. 이걸 난중일기에 대입시켜 보겠습니다.

15일 - 90척이 영도 앞바다에 정박
16일 - 부산진 함락
18일 - 동래성 함락
20일 - 김수의 지원 요청 (을 조정에 허락 받기 위해 장계 보냄 -_-; )
한편 임진장초에 보면 20일 김수의 장계에서는 원균에게 출동 명령 내렸다고 함.
26일 - 좌부승지 민준의 서장에 전라좌수군도 지원해야 될 거라고 해서 경상도 각 장수들에게 그 곳의 상황과 집결지 설정해 달라고 함.
27일 - 민준의 서장(23일 작성)에 원균이 출동할 거라 해 왔으며 전라좌수군도 지원하라고 함.
29일 - 적선 500척이 부산, 김해 등 장악 후 각 해변고을 침입. 10척을 깼으나 본영 함락. 당포로 헬프

23-25일분은 없습니다.

경상우수영 본영에서 전라좌수영 본영까지 걸린 시간을 이틀이라고 치면 저기서 -2를 시켜야겠죠. 김수가 20일에 "원균에게 출동 명령을 내렸다"는 공문이 도착한 걸 보면 원균에게 출동명령을 내린 건 17~18일 쯤이라고 봐야겠습니다. 이 때 원균이 가덕도로 갔다가 도망쳤다면 김성일이 어떻게든 우도 내에서 반격을 시도하면서 원균에게 고성을 점령하라고 한 것도 이해가 갑니다. (같은 기록에 여러 장수들을 거느려서 고성을 탈환하려 했다가 후퇴한 게 나옵니다. 원균에게만 명령을 내린 게 아니라 여러 장수들이 함께 간 거죠)
즉, 원균이 김수의 출동 명령에 곧바로 출동했고 곧바로 퇴각했다면 -_-; 원균은 개전 직후에 도망갔다는 게 됩니다. 이 때 경상우수영에서 버틴 시간은 불과 3~4일. 당연히 적은 거제도는 둘째 치고 김해까지도 오지 않은 시점입니다. 이렇게 볼 경우 옥포해전 전까지 원균의 말은 모두 훼이크가 됩니다. 적이 무서워서 도망가놓고 "싸울 거다" 이랬다는 거죠. 그리고 원균이 100척을 가라앉힌 것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짓이 됩니다.

반면 김수, 민준의 공문이 원균의 훼이크가 아니고 그 때까지 경상우수영에 있었으며, 거제도 부근까지 적이 오자 도망갔다면 경상우수영에서 도망간 시점은 20~27일 사이가 됩니다. 이 경우 어느 정도의 교전은 있을 수 있었겠죠. 이 시기 김해, 웅천 등지에 200척이 상륙했다고 하니 (물론 수송선이었습니다) 여기에 겁 먹었을 가능성은 있습니다. 하지만 연려실기술에 나오는, 거제도를 향한 적 병력은 겨우 20척 -_-; 거기다 이 때 경상우수영을 지키고 있었다면 사천 쪽에 있는 백천사에서 적을 보고 무서워서 도망갔다는 거랑 다릅니다. 지도 보면 알겠지만 거제도에 적이 나타났다는데 사천에서 놀라서 도망갔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죠.

재밌는 건 원균옹호론자들의 성경이나 다름 없는 원균행장록의 기록입니다. 거기에는 "휘하에 4척밖에 없어서 우후에게 본영을 맡기고 곤양으로 물러났다"고 돼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저는 원균이 도망간 시점을 임란 직후, 늦어야 18일 정도로 추측하며 그 이후 원균의 행적은 곤양-사천-고성 수준으로 배가 있기는 하지만 김성일 혹은 김수의 지휘로 육전에서 싸우기를 명령 받은 상태고, 원균은 김수, 민준, 이순신을 모두 속이면서 아직 경상우수영의 전력이 남아 있는 쪽으로 주장했다고 추측합니다. 그 훼이크를 변명하기 위해 4월 20일-30일쯤에 원균은 남해 등의 아직 안전한 후방에서 병력을 다시 집결하고 고성 쪽으로 진격하려고 했으나 다시 후퇴했고, 이순신에게는 남해까지도 적이 가득 찼다는 쪽으로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는 거죠. 그 때문에 나온 게 이순신의 남해 부근 4개 포구의 군량을 방화한 것으로 이어졌습니다. 이순신으로서는 원균이 "싸우다가 졌고" "적이 남해까지 진출했다"는 걸 믿을 수밖에 없었을 테니까요.

경상우수영을 방화하고 100척을 가라앉힌 시점은 확신할 수 없습니다. 어쨌거나 자기는 피하고 휘하 병력은 우후에게 맡겨서 보존했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적이 거제도로 오는 상황에서 가라앉혔을 것은 확실합니다. 그게 원균이 초기에 도망갔을 시점이든 적이 거제도로 오던 시점이든간에요. 그리고 연려실기술에 나오는 "거제도로 온 적의 규모"는 20척 정도였습니다.

결론을 내리면, 원균은 4월 20일 전에 부산포 쪽에 적이 많은 걸 보고 사천-곤양 쪽으로 도망갔고, 늦어도 적이 거제도로 올 때는 우후를 시켜 본영을 불태웠으며, 자신은 김수나 김성일의 명에 의해 육지에서 작전을 수행하는 "척"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병력을 모아서 치러 간다고 김수와 이순신에게 훼이크를 쳤습니다.

임진왜란을 집필하신 김경진-윤민혁-안병도님 트리오(?)가 있는 워포그(warfog.net)에서는 우후가 경상우수영 본영을 불태운 걸 4월 22일로 추정하시더군요. 음... 일단 제 생각은 저렇습니다.

3. 10척, 30척 분멸설
29일 난중일기에는 "원균이 10척을 분멸했다 카더라"라고 돼 있습니다. 5월 10일에 선조와 선전관 민종신의 대화에는 "원균이 30척을 깨뜨렸다 카더라" 가 기록돼 있습니다.

원균옹호론의 골자 중 하나죠. 임란 최초의 승전은 원균이 (4척밖에 없는 상황에서) 기록했다는 거죠.

글쎄요. 이 모든 건 원균이 했다 카더라일 뿐입니다. 문제는 위에 적었듯 그 때 원균은 곤양-사천 땅에 있었으며 적이 그 때까지 거기에 오지도 않았다는 거죠.
워포그에서 보니까 창원에 상륙한 적이 조선 수군을 깨뜨렸다는 기록이 있다고 하는군요. 하지만 그 내용이 불분명하며 원균이 거기에 참전이나 했을지 의심합니다. 글쎄요. 위에 적었듯 전쟁 극초반에 가덕도로 갔다는 것 말고는 원균이 거제도 쪽으로 갔다는 기록 자체가 없습니다.  백천사(기록에는 배천사로 합니다만 한자가 백천사네요)가 사천에 있는데 이게 잘못된 거고 알고보니 이 배천사는 거제도 동쪽에 있더라... 이게 아닌 이상 원균은 후퇴한 후 거제도 동쪽으로 간 일이 없습니다.

거기다 이순신에게는 10척이라고 해놓고 선전관에게는 30척으로 알려진 것, 원균이 정말 30척이라는 나름 대승을 거둔 거면 이순신에게 가장 먼저 알렸어야 했죠. 원균행장록과 옹호론자들은 이걸 "승첩"이라고 하지만 원균이 이순신에게 알릴 때 이건 "패전"이었습니다. 10척을 깼지만 졌다 이런 뉘앙스였죠.

이것과 위에 말한 원균의 "훼이크"를 합치면, 어디까지나 이건 원균 자신의 체면 살리기용 훼이크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과 원균이 남해까지 적이 진출했다는 훼이크 때문에 이순신은 남해의 포구의 물자를 방화했고, 옥포 해전에서 만날 때 "단 한 척밖에 없었다"면서 원균에게 실망하는 단서가 되는 거죠. 원균이 애초에 단 한 척밖에 없으니 살려달라 이렇게 말했으면 그런 말이 없었겠죠.

원균은 이순신에게 아직 싸우고 있다는 식으로 말 한 겁니다.

원균의 10, 30척 분멸설이 "승첩"이라고 주장하는 건 원균행장록밖에 없으며, 그렇게 원균을 찬양하던 선조도 "원균이 제일 먼저 이겼다"고 하지 않고 "원균이 구원을 청하고 경상도에서 이겼으니 원균의 공"이라고밖에 못 했습니다. 선조의 강력한 지지를 받은 원균도 임진왜란 극초반의 행각에 대해서는 절대 승리라고 말 하지 못 한 겁니다.

여담으로 원균행장록은 칠천량 해전도 "지는 상황에서 8척이나 깼으니 대단하다"고 적혀 있습니다. ... 대단하네요.

그리고 위에서 나온 김수가 "남쪽 바다에서는 원균이 이겼다"는 건 시기상 옥포해전의 기록으로 봐야 될 것입니다.

4. 결론
2차 진주성 전투에서 전사한 김준민은 거제현령이었습니다. 진주에서 기꺼이 전사한 것처럼, 그는 절대 적을 피할 인물이 아니었죠. 실제 임진왜란 초기에 그는 원균이 도망간 상황에서도 거제성을 지켰습니다. 실록에 나오는 기록이나(원균이 김준민 욕 했는데 구라다) 이순신의 옥포해전 장계(김준민은 원균이 불러도 안 오니 왜 이럼?)를 보면 원균은 그를 욕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상황을 보면 김준민은 원균이 도망가는 걸 보고 실망하고 후에도 거제성을 지키기 위해 움직이지 않은 걸로 보입니다. 김성일의 기록에 "김수가 근왕을 위해 불러서 김준민이 거제도를 떠났고, 그 후에 적이 거제도에 가득 찼다"는 걸로 봐서 거제도가 완전히 함락된 시점은 김수가 근왕군을 소집해서 전주로 향했을 때이며, (전주에 도착한 게 18일이죠) 옥포해전 이후로 볼 수 있습니다. 그 이전까지 거제도는 경상우수영 전체가 괴멸될 정도의 타격을 입지 않았습니다. 원균이 싸우려는 의지가 있었다면 해전에서 밀려도 거제도에서 김준민과 함께 싸웠겠죠. 그가 김준민을 욕한 것은 김준민이 거제도를 지키고 있다는 것 자체가 자기에게 해가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할 때 경상우수영의 전력은 최소 40척(윤민혁님의 추정이더군요 보니까)에서 아예 전라좌수영과 비슷한 20척으로 봐도 충분히 적과 상대할 수 있는 상황이었으며, 최대 100척에 이르는 병력이 흩어지고 경상우수영 본영을 방화한 것은 모두 원균의 죄로 봐야 됩니다. 그리고 그는 그걸 숨기기 위해 다른 장수들에게 최대한 훼이크를 쳤습니다.

뭐 그 때 경상도의 장수들이 신나게 도망갔으니 원균만 딱히 욕 할 필요는 없을 겁니다. 그냥 원균의 병력이 그들보다 좀 심하게 많았을 뿐이죠. 그래도 이운룡의 말을 듣고 어떻게든 싸우려고 했으니 무작정 도망만 간 장수들보다는 나을 겁니다. 의지는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그 후의 결과를 생각해 보면 그냥 죽거나 멀리 도망가 버리는 게 낫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순신은 불안한 진군을 계속 합니다. 대체 경상도 해안이 어디까지 먹혔을까 걱정 됐겠죠. 원균을 만나기까지 계속 각 포구를 정찰하면서 진군합니다. 근데 희한하게 적을 처음 만난 곳은 거제도 동쪽 옥포였죠. 경상우수영 본영이 있던 오야포는 거제도 서쪽이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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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와서 생각합니다만, 원균옹호론이 없었다면 원균이 이리 탈탈 털리면서 욕 먹을 이유는 없습니다. 그저 당시 썩은 장수들처럼 도망가고, 잘 싸우는 장수 모함하고 한 것 뿐이죠. 그냥 규모가 좀 심하게 커서 욕 먹었고, 하필 비교 당하는 상대가 이순신이라서 욕 먹은 것 뿐이죠. 그런데 원균옹호론이 기승을 떨치면서 이순신과 비슷한 급으로 연구를 당해서 더 욕 먹게 되었습니다.
거 참... 왜 그럴까요?

사실 원씨 분들은 억울한 게, 원균옹호론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원균에 대해서는 조용히 있었죠. 그런데 선조를 띄우기 위해 원균을 옹호하면서 힘을 얻어서 원균옹호론이 발전합니다. 자기 조상이 죄가 없다는 데 얼마나 기뻤겠어요? 그런데 그 결과가 이렇죠. 원균은 분명 부끄러워할 조상이 맞습니다. 하지만 그 조상을 변명하는 것도 모자라 띄우려고 하면 더 욕 먹을 뿐이죠.
김경진님은 말씀하셨죠. "같은 전주 이씨 가문에서 세종대왕도 나오고 연산군도 나온다"구요.

아무튼, 아직도 bgm 틀고 있으신 분들은 같이 외쳐주세요. 개~쉑 개 개~쉑 개 개~쉑 오 오오오오 ( . .)

그럼 다음 글, "태산과 같이"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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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수마자용
11/04/11 05:37
수정 아이콘
신기하네요. 싸움을 못하는 것을 떠나서 아예 겁쟁이면서 이순신 모함해서 자기가 통제사가 될 생각은 어찌 했을까요? 그것도 전쟁중이라 필히 싸워야 하는데 -_-
낭만토스
11/04/11 07:24
수정 아이콘
공익이 공익이 버스를 20번이나 혼자타네
개애새애개새애새 -_-;;

잘 읽고 갑니다. 다음이 기대되네요
11/04/11 07:39
수정 아이콘
뭔가 배경지식이 없어서 그런지 이해하기가 임진왜란 편보다 조금 더 어려운 거 같네요.
임진왜란 편은 당시 그림이 머리속으로 그려지면서 이런 이런 사건이 이렇게 흘러갔구나..라고 그려지는 반면,
해전사편은 약간 막막하네요-_-;;
찬찬히 다시 한 번 읽어봐야할 거 같습니다.

그리고 질문이 있는데 위에 5관 5포할 때 관과 포는 무엇을 의미하는 건가요?
11/04/11 07:53
수정 아이콘
원균의 키워드는 아첨,모함,비겁,무임승차. 이 네가지 단어만 숙지하면 어떤 행동도 이해(?)할 수 있죠;;
모모리
11/04/11 08:35
수정 아이콘
원균행장록의 칠천량 개드립이 사람을 화딱지 나게 만드는군요. --; 선조가 어찌 그렇게 원균바라기였는지가 정말 궁금하네요.

Embed 태그 넣으실 때 주소 다음에 한 칸 띄우고 loop=0 넣고 꺾인괄호 닫으시면 반복이 안 될 거에요~ [칰]
빨간당근
11/04/11 08:37
수정 아이콘
원균.... 그닥 할말이 없네요.
한숨밖에는~ 에휴~;
벤카슬러
11/04/11 09:59
수정 아이콘
원래 히어로가 빛이 날려면 그 상대인 안티히어로가 대단해야 하는데...
원균은 성격+삽질로 대단했다는 점이 참 안타깝고 화가 날 뿐입니다.
능력도 안되는 양반이 욕심만 많아서 -_-;;;

그저 못난 조상 둔 원주 원씨 분들에게 애도를 표합니다.
각 집안마다 못난 조상 한 두 사람은 있을 수 있는데(탐관오리, 호색한...)
원균은 너무 그 전과가 화려해서 역사서에 길이길이 남게 되었으니 말이죠.

ps) 눈시BB님, 혹시 충무공의 부관들(정운, 나대용, 입부 이순신, 김완 등...)에 관해 나중에 따로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역덕후, 밀덕후 분들 많다는 엔하위키에도 따로 항목이 나와있는 분이 김완, 입부 이순신 장군 빼고 없더군요 ^^;;;
성야무인Ver 0.00
11/04/11 10:41
수정 아이콘
원균 옹호론을 하자는건 아니지만 원균의 경우 임진왜란만 아니었다면 조선사에 그런 저런 높은 자리에 올라가서 가문에 이름을 빛낸 장수중에 하나로 올랐을 겁니다. 뭐 예를 들자면 능력유무는 고사하고 영의정, 좌의정, 혹은 우의정 오른것만 해도 우리 가문은 명문이다 하듯 말이죠. 원균의 경우 선조의 사랑을 정말 지나치게 받은 장수였습니다. 꺼꾸로 이야기 하자면 가문빨도 있겠지만 그 만큼 정치에 강했다는 이야기도 되고 인맥도 상당했다는 이야기도 되겠죠. 따라서 객관적인 사료와 원균이 올린 공훈서하고는 정말 다른 경우도 많고 그걸 그냥 조선상위층에서 통과해 주었다는 건 그 군사적인 능력은 빵점이지만 정치적인 능력은 대단히 높았다라고 볼수도 있을겁니다.
블루마로니애
11/04/11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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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좋은 글 잘 읽고 있습니다. 매일 기다려 지네요..하하
원균이 선조에게 사랑 받았다기 보다 이순신을 미워한 선조가 원균을 띄워 주었다 가 맞을 것 같습니다.
마치 적의 적은 내편이라듯이요. 실제로 선조는 붕당을 그렇게 이용한 전력도 있구요.
원균의 불행은 자기 능력보다 너무 큰 짐을 맞은 것이고, 그걸 자기 스타일(?) 대로 해결한 것이죠. 에휴~
루크레티아
11/04/11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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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재조명의 나쁜(어떻게 본다면 아주 좋은) 예'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이 문장만 쓰도록 하겠습니다.

해전사로 갈 수록 눈시BB님께서 글을 쓰시는데 더욱 힘들어지실 것 같군요.
전쟁사가 다 그렇지만, 이긴 쪽은 부풀리기 바쁘고 진 쪽은 덮어두기 바쁘죠. 전쟁사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려다 보면 역사책을 저술하는 사가들이 얼마나 갈등하고 짜증나는 직업인지를 잘 알 수가 있지요.
11/04/11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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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크큭.. 브금과 어울려서... 원균은 역시 까야 제맛(...)
어째 들리는 가사나, 원래 가사뜻이나.. 은근히 맞는게 또 있네요 흐흐흐..
Siriuslee
11/04/11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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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어른 입장에서 원균은 정말

적보다도 더 무서운 (무능한)아군 이죠.
노력, 내 유일��
11/04/11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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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 밑에 있던 경상도 수군 전멸(제일 많던 곳이니 한척남은건 전멸과 같다고 봅니다), 삼도수군통제사되서 조선수군 전멸(12척남긴 하지만 이건 뭐...) 한번도 힘든 걸 두번이나 해내신 불멸의 원균장군님이시군요.

원균행장록의 칠천량 개드립은 처음 보는데요. 보는 순간 진짜 말 그대로 어이상실...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서 물론 원작 영향이 컸겠지만 원균이 너무 미화됐다는 느낌입니다. 무려 최재성씨가 원균역할에 간간이 봤지만 나올때마다 원균에 대한 몇가지 기록만 살펴봐도 느낄수있는 찌질함은 전혀 없고 되려 남자답고 멋있게 나온 것 같은...

불멸의 이순신 개인적으로 기대가 컸는데 제가 안보게 된 이유입니다. 간혹 볼때마다 느꼈던 지나친 원균 미화...
양정인
11/04/11 15:06
수정 아이콘
불멸의 기록(자신 휘하에 있는 수군을 두번이나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힌)을 세우신 원균 장군...
칠천량해전은 그렇다쳐도... 임란초기 삽질은 환장하죠.
아무리 생각해도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삽질이었기 때문에...
절대 좋게 봐줄래야 봐줄 수가 없더군요.

이순신 장군이 없었더라면... 원균이라는 인물이 이렇게 조명되지는 않았을텐데
어떻게든 이순신을 깎아내리기 위해 억지로 '명장' 이었다고 우기려다 피똥싼 케이스라고 생각합니다.
카서스
11/04/11 15:29
수정 아이콘
쇄미록에도 24척을 분멸했다는 기록이 있지요. 이를 근거로 국편위 한국사에서 원균이 개전 초기 승전을 거뒀다... 라고 적혀있습니다.
여기서 오희문이 만난 사람은 이청이라는 사람인데... 이사람에 대한 자료는 찾을수가 없군요.
어쨋든 5월 말 정도였던것으로 추정되니... 옥포해전인거 같기도 한데, 확실하지는 않군요. 왜 저기록이 초기 승전기록으로 볼수 있는지 필자의 코멘트나 논문도 달려있지 않구요.

아참, 그리고 1~2천명 모였다는 것은 별로 안모인것이라고 볼수 있지 않을까요? 왜냐하면, 당시 조선의 수병은 략 4만5천명 정도였고, 대충 계산해 봤을떄 각 수영당 1만~1만 2천 정도 배치되었다고 볼 수 있으니까요. 하긴 급히 모은 병력이니 그정도만 해도 상당한 수였을 수도 있겠네요. 후에 류성룡이 한양에서 개전 1달쯤 지났음에도 정예무사까지 포함시킨 병력이 겨우 8천이였던걸 보면 말이죠.

어쩃거나, 이로써 임란 해전의 2대명장(?)이 모두 등장했군요.
청산가리향치약
11/04/11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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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원균을 주제로 대학교 레포트를 쓰고 있었는데 참고가 많이 됐습니다. 감사합니다.
발표제목을 '불멸의 원균'으로 해야겠군요^^
Je ne sais quoi
11/04/11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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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원균은 까야 제 맛(?)입니다. 작은(원균은 작지도 않지만...) 거짓말이 점점 더 큰 거짓말을 낳는 전형적인 예로군요.
카서스
11/04/12 00:44
수정 아이콘
아참, 여러 교수님들과 술자리를 가지면서 이야기를 했었었는데,

원균에 대한 평가가 '당시에 다른 장수중 나은축'이 대세더군요.

물론 당시에 다른 장수들이라면야 수없이 도망가던 사람들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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