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에세이입니다.
김보영 작가의 단편소설 「얼마나 닮았는가」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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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의 입주자들은 얼마나 닮았는가 part1
-김보영의 「얼마나 닮았는가」를 읽고
<1> 김보영, 「얼마나 닮았는가」
역사학자 린 헌트(Lynn Hunt)는 궁금했습니다. “18세기 이전에 없던 인권에 대한 관념이 어떻게 18세기에 형성되었을까?” 이에 대해 탐구한 것이 『인권의 발명(Inventing Human Rights)』입니다. 헌트에 따르면 당시에 등장한 새로운 사회문화적 경험이 인권을 가능하게 했는데, 그중 하나가 소설 읽기입니다. 싸구려 장르로 취급되던 소설이 공감을 통해 이전에는 가능하지 않았던 공동체 형성에 기여합니다. “18세기에 소설 독자들은 공감대를 확장하는 법을 배웠다. 책을 읽으며 전통적인 사회적 경계, 즉 귀족과 평민, 주인과 하인, 남성과 여성, 아마도 성인과 아동 간의 경계마저 넘어 공감했다.”(린 헌트, 『인권의 발명』, 교유서가, 2022, 50쪽)
소설은 작품 속 인물에 감정이입을 하게 하여 타인에 대한 공감을 끌어냅니다. 자유연애를 반대하는 가부장적인 아버지가 사랑과 결혼에 대한 소설을 읽습니다. 그 소설의 화자는 젊은 여성이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소설 속 그녀의 아버지는 딸을 자신의 소유물이라고 여기기에 사랑의 감정을 무시하고 탄압합니다. 결국 진정한 사랑을 쫓으려다가 비극적인 결말에 이릅니다. 이러한 소설을 읽는 가부장적인 아버지는 자신과 같은 위치에 있는 가부장적인 아버지에게 양가적인 감정을 갖습니다. 화자인 딸에게 감정 이입을 한 탓이고, 이것은 그동안 알 수 없었던 타인의 내면을 경험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소설은 그동안 발언권이 부여되지 않았던 존재들의 목소리가 되어 ‘우리가 얼마나 닮았는가’를 보여줍니다.
김보영의 단편소설 「얼마나 닮았는가」에는 특이한 화자가 등장합니다. 우주 항해를 배경으로 한 이 SF 소설의 화자는 인간 의체에 들어온 위기관리 AI 컴퓨터 훈(HUN)입니다. 훈을 탑재한 우주선은 보급선으로 목표지점에 보급을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함선입니다. 디지털 인공지능인 훈은 세포단위에서 배양하여 합성된 유사인간 의체에 바로 적응하지는 못합니다. 선원들은 훈에게 따져 묻습니다.
“너는 선내 시간 352일째에 인간적인 대우를 요구하며 파업을 선언하고 활동을 중단했다. 네 인격을 인간형 의체에 복사해서 인간 승무원과 같은 대우를 해주면 선교에 따로 저장된 네 백업본의 해제코드를 알려주겠다고 했다. 우리는 어렵게 동의했고 실행했어. 이제 네가 약속을 지킬 차례야. 코드를 말해.”(김보영, 『얼마나 닮았는가』, 아작, 2020, 256~257쪽.)
이에 대해 훈은 이렇게 답합니다. “정말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난 내가 AI라는 것도 지금 처음 알았어.” 훈의 함선은 타이탄에서 온 구조신호를 받고 이들에게 보급을 하기 위해 이동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구조신호가 끊겼고, 그래서 보급 시도가 의미가 있는지를 두고 갈등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나는 보급을 해야 한다. 정식 구조선단이 올 때까지 재해민들이 버틸 수 있도록. 타이탄에 생필품과 먹을 것을 줘야 한다. 그런데 이 바쁜 와중에 난 무슨 생각으로 선원들을 협박하고 인간의 의체에 복사시켜 달라고 한 걸까?’(263)
인간 신체에 들어가서 느끼는 낯선 감각에 대한 인공지능의 진술은 흥미롭습니다. “내 사고체계 전체가 낯설었다. 기억이 날아간 건 둘째치고 세로토닌에 아드레날린에, 도파민, 마약 성분이 있는 온갖 화학물질들이 오케스트라처럼 의식을 침식하는 바람에 이성을 유지하기도 힘들었다.(…) 불필요한 정보가 난잡하게 떠오른다. 감각기관을 닫을 수도 없고 뇌를 끌 수도 없고 생각을 한 점에 집중하기도 힘들다.” (269~270) 우리는 의식적 집중을 통해 만든 불명확한 기억으로 정체성을 형성합니다. 그래서 실상 평시의 의식은 소위 의식의 흐름이라는 형태로 끊임없이 흘러가고 있음을 잘 자각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이를 처음 겪는 훈은 이것이 너무나 생경합니다. 그 덕에 독자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당연한 것을 낯설게 느낍니다.
우리는 여전히 의식이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하지만 의식이 있다고 생각하기에 자유의지가 있다고 가정하고, 인권을 상정합니다. “인간이 볼 수 있는 의식은 단 하나, 자신의 의식뿐이야. 타인의 의식은 단지 추측할 수 있을 뿐이야. 실상 인간이 타인에게 자아가 있다고 추측하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어. ‘자신과 얼마나 닮았는가.’”(288)
인류의 역사를 돌아보면, 인간이 인간으로 인정받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서로 다르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소위 ‘보편적 인간’은 “암묵적으로 남성이고 백인이며 도시화되고 표준 언어를 사용하고, 재생산 단위로서 이성애적이며, 승인된 정치 조직의 완전한 시민으로 가정”되었습니다(로지 브라이도티, 『포스트휴먼』, 아카넷, 2015, 87쪽.). 이를 기준으로 문명과 야만, 정상과 비정상 등의 구분이 생겼지요. 인권의 등장과 확대는 차이에서 점점 닮음을 찾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동물권의 등장 역시 인간과 동물이 닮았다는 인식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만물의 영장으로서 특별한 지위를 가진 존재가 인간이다’라는 관점이 달리 해석되기 시작한 겁니다. 즉, 인간 역시 지구 행성에서 생존과 번식을 위해 애쓴 하나의 동물 종이라는 것이지요.
불가피하게 인공지능을 인간화했기 때문에 선장인 이진서는 훈을 의심합니다. 한 선원은 이렇게도 말합니다. “딴소리 마. 우릴 협박해서 인간이 됐잖아. 넌 뭔가 넘었어. 특이점을 넘었다고.” “신의 세계로!” 선장은 달리 질문합니다. “지배받는 게 억울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어? 실상 인간보다 뛰어난 존재면서?” 이것은 두려움이 섞인 것으로 계속해서 인간이 기계를 지배할 수 있을지에 대한 물음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훈은 오히려 이런 질문이 의아합니다.
“뛰어나지 않아. 기능이 다를 뿐이지. 기계는 안정되고 변화하지 않는 세상에나 유용해. 인간들도 문명이 정체기에 접어들면 기계적 사고를 가진 사람을 우대하지만 변화기에 접어들면 다시 유기적 사고를 가진 사람을 우대하지. 기계만으로는 계속 변화하는 생태에 적응할 수 없어. 인간에게 기계가 필요하듯이 기계에게도 인간이 필요해.”(290)
인간과 기계는 서로 공진화하므로 상호의존적이라는 답변이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선장이 풀 수 없는 의문이 있습니다. 왜 인간이 되려고 했는가? 훈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이유가 뭐든 보급을 위한 것이었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소설은 이에 대한 대답을 유보하면서 서스펜스를 만들며 흥미를 더합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반전이 아쉬웠습니다. 예상 가능한 것이었고, 숱한 다른 작품 속에서도 반복됐던 소재였기 때문입니다. 물론 여전히 숙제로 남아있다면 이에 대해 계속해서 문제제기를 하는 것은 합당하겠지요. 결론부터 말하면, 훈은 거짓말하지 않았습니다. 애당초 자신이 만들어진 이유가 보급이었고, 이를 위해서 불가피하게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구조신호가 끊기게 되면서 선원들 사이에 이견이 생깁니다. 생존 가능성은 여전히 있고, 우리의 임무 자체가 이를 행하는 것이라는 입장과 그 반대가 격돌합니다. 선장은 자기 일을 하려고 하지만 반대파는 이렇게 항변합니다. “보급상자 하나라도 아끼잔 말이야. 저거 하나면 우리 선원 전체 한 달 월급이야. 저 똥별에 내던지고 나면 세금 환수하고 보험 처리해도 그 반밖에 못 건져.” “다 죽었다고, 시발! 통신이 끊겼을 때 닥치고 돌아갔어야 했어.”(295) 이에 동조하는 선원들도 함께 아우성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훈은 자신이 이들의 적이 되길 선택합니다. 위기관리 매뉴얼 중에는 선장에게 비난이 쏠리고 그걸 회복할 방법을 찾을 수 없을 때 그 비난을 자신에게 돌리는 전략이 있었고, 그 선택을 한 것이지요. 깨진 공동체를 다시 모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외부에 ‘적’을 등장시켜서 새로운 위기감을 조성하는 것입니다. 외부에 적이 생기면, 내부 갈등은 우선 봉합되고 결속을 다지게 됩니다. 하지만 훈의 이와 같은 전략은 잘 작동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선장을 포함한 몇몇 선원이 ‘적’을 도리어 감쌌기 때문입니다. 결국 종국에는 반대파 선원들이 훈과 선장을 동일시하게 됩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됐는지가 소설의 반전 요소인데, 그건 이 인공지능의 데이터 학습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바로 ‘성차별’에 대한 정보가 삭제된 것이었죠. “너희 나라 공무원이, ‘그런 건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고, 내게서 지워버렸어.”(324) 그래서 훈은 성별의 차이를 인지하지 못했고, 선장을 비롯해 자신의 진형에 있는 선원들이 여자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토록 먼 항해를 떠나는 배에, 그것도 일정이 비틀린 불안한 일정에, 절대로 한쪽 성을 이렇게 적게 배치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런 식으로 야만이 비어져 나올 ‘구멍’을 만들지 않았어야 했다.”(325)
훈은 다시 기본 매뉴얼을 상기합니다. ‘인간의 이성과 양심을 과신하지 말 것. 그들은 자신과 닮았다고 생각하는 자의 인격만을 겨우 상상할 수 있을 뿐이다.’ 선원들은 극한의 상황에 닥치자 결국 자신과 닮았다고 생각하는 대상을 좁혔고, 소설은 이를 성별로 구분하여 선악 구도로 배치했습니다. 이런 설정이 개인적으로는 아쉬웠습니다. 설마 했던 그 반전 그대로 진행이 됐고, 구도가 선명해질수록 시시해졌습니다. 물론 이 작품의 목적이 여전한 성차별에 대한 상기, 이를 지금 해소하지 못하면 우주 항해가 가능한 미래라도 문제가 될 것이라는 문제제기라면 충분한 몫을 한 셈이겠죠.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결국 보급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이를 수행하기 위해 훈은 다시 인공지능의 형태로 전환합니다. 인간이 된 이유가 신적 존재가 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보급을 위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인간 의체에 이식된 훈의 데이터는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인공지능 훈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진서가 아직 저 의체의 기억을 지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안에 있는 또 다른 ‘내’가 무가치한 존속을 굳이 계속 원할지는 모르겠지만, 정신 오염이 계속되다 보면 또 어찌 될지 모르는 일이지.”(338) 만약 그렇다면 또 다른 주체성에 대한 이야기가 전개될 수도 있겠습니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