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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7/11/11 08:20:41
Name kama
Subject [연재]Daydreamer - 14. 이방인(4)


  예선을 취재하기 위해 현장에 와있는 윤하는 잠시의 틈을 내서 살며시 PC방을 나섰다. 미리 사전에 부탁받은 전화를 하기 위함이었다. 해외전화 연결 서비스의 번호를 눌러놓고 통화버튼을 누르기 직전에 그녀는 핸드폰을 든 상태에서 잠시 손을 멈추었다. 솔직히 말해 부담이 되는 전화긴 했다. 단순히 해외전화 비용 때문은 아니었다. 이미 부탁을 했던 사람이 통화료는 모두 자신이 부담하겠다고 말해두었기에 그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다만 태양이 하늘 꼭대기에 박혀서 가을답지 않은 열기를 지상에 흩뿌리기 시작한 한국과 달리, 비행기로 13시간 정도 걸리는 머나먼 스웨덴은 여전히 밤의 영역 속에 있을 시간이라는 점이 좀 마음에 걸릴 뿐이었다.  
  
  ‘자기가 부탁한 거니 불평하지는 않겠지.’

  그녀는 통화버튼을 누르고 핸드폰을 귀로 가져갔다. 교환원의 연결. 그리고 통화음. 처음 편집부를 통해 연락이 왔을 때는 사실 누군가의 장난이라고 생각했었다. 서로 아예 모르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취재를 하는 기자와 취재를 당하는 게이머 간의 관계였고, 그마저 예전의 일이었다. 그가 한국에서의 활동을 접은 이후에는 그저 인터넷 연락망을 통해서 정보를 얻기만 할 뿐. 그래서일까, 실제로 전화기 저편에서 목소리를 들었을 때는 혹시나 사적인 관심표명이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살짝 떨렸기도 하였다. 물론 망상은 망상으로 그치고 말았다. 뭐, 사적인 연락이기는 했지만.
  뚝, 통화음이 끊어지고 젊은 남자의 목소리로 바뀐다. 살짝 피곤함이 들어있지만 여전히 깔끔한 느낌을 주는 정확한 한국어 발음. 음, 설마 이 시간까지 자고 있지 않고 깨어있었다는 소리인가? 윤하는 살짝 고개를 흔들었다. 게이머들이 야행성이라고는 하지만, 단지 즐기기 위한 아마추어와는 달리 직업으로 삼는 프로라면 자신의 몸 관리도 필수적이다. 더욱이 라이센 신은 유럽의 자유분방한 연습 분위기의 유럽스타일이 아닌 철저한 스케줄을 소화하는 선수로 유명하지 않던가.

  ‘그만큼 신경을 쓰고 있다는 이야기겠지?’

  “윤하 씨인가요? 전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였기 때문일까, 왠지 모르게 그의 목소리에서 약간의 초조함이 엿보인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하긴 예선 결과를 빨리 알기 위해 자신에게 미리 연락을 했을 정도임을 생각하면 오히려 침착한 편이라 할 수 있을지도. 그녀는 시간을 끌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 곧바로 그가 원하던 정보를 알려주었다.

  “그런가요. 번거로운 부탁이었는데 이렇게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요, 어려운 일도 아니고. 한국에 오시면 단독 인터뷰라도 해주세요. 편집장 허락을 받을지는 모르겠지만.”

  “알겠습니다. 그럼 한국에서 뵙죠.”

  뚝. 연결이 끊어지자 윤하는 핸드폰 줄을 잡고 빙글빙글 돌렸다. 통화는 짧았다. 즉, 분명 이 이야기를 듣고 싶어 했던 것은 분명한데, 생각보다 반응이 없었던 것이다. 실망, 혹은 만족. 라이센 신은 그 어느 쪽의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으음, 재미없군. 나름 재미있는 기사거리가 될 것 같았는데.’

  결국 그녀는 지금 나온 결과가 그가 바라던 것인지, 아니면 바라지 않았던 것인지 예측할 수 없었다.



  웅성거리는 소리, 그리고 자신을 바라보는 눈들. 진희는 ‘시선이 따갑다’라는 표현이 관용어구가 아닌 아주 직설적인 표현이라 생각했다. 관계자들이 돌아다니면서 선수들의 경기를 관람하는 것은 예선장의 일반적인 관례이기도 했고, 스스로도 누군가가 보고 있을 때 좀 더 자신감을 가지고 게임을 하는 타입이라 여겼기에 관중들이 자신의 시합을 보고 있다고 해도 크게 신경을 쓰진 않았었다. 실제로 그다지 유명하지도, 경력이 많지도 않은 자신의 예선 경기들을 관심 있게 바라보는 이들도 그렇게 많지는 않았고.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랐다. 좀 지나치다, 라고 말해도 될 정도의 사람들이 등 뒤에 장사진을 치고 있는 상황. 오전조의 마지막 경기이고 여기서 이기는 사람이 본선의 16명에 들어가게 되는 만큼 관심이 모이는 것도 당연하겠지만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 인원은 조금 지나쳤다.
  스태프에게 이야기를 해서 조금 비켜달라고 할까. 그 정도의 부탁도 들어주지 않을 정도의 사람은 이곳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는 대신에 그는 잠시 휴식을 요청하고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쩌면 정작 초조한 것은 나일지도.’

  아니, 이런 상태에서 초조해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일 거다. 여기서 이기느냐, 지느냐에 따라서 게이머 인생이 바뀔 만큼의 중요한 시합이니까. 간만의 방송대회, 상금과 게이머로서의 명성이 달려있는 본선무대에 올라가야만 할 필요성은 무궁무진하다. 오히려, 부담감을 느끼기는커녕 저렇게 싱글싱글 웃으면서 태연히 앉아있는 사람이 일반적인 상식에 의하면 소수에 속할 것이다.  

  ‘자자, 정신 차려!’

  상대에게 너무 휘둘릴 필요는 없다. 지금 중요한 것은 일단 자신을 추스르는 일. PC방문을 열고 바깥바람을 쐬면서 진희는 자신의 뺨을 탁탁 두들겼다. 보통 이럴 때는 맵과 앞의 일전들을 검토하면서 빠르게 시합의 운영 틀을 세우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현재 상대는 그런 틀을 세우는 것 자체가 사실상 어려운 인물이다. 종족도 랜덤, 거기에서 무슨 플레이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 스타일. 오히려 깊게 생각했다가는 휘말리기 딱 좋은 까다로운 상대. 지금처럼 막무가내로 자신의 흐름을 밀어붙이는 방식이 더 현명한 대응책일 것이다.
  .......과연 그럴까? 순간적으로 좋지 않은 느낌이 목덜미를 스치고 지나갔다. 이유 없는 불안감이 머릿속에서 피어오른다. 뭐라 딱 집어서 말하기는 힘들지만 뭔가 중요한 것을 놓친 듯한, 그런 요상한 기분. 하지만 이미 알고 있듯이 그건 정작 그 상황이 닥치지 않는 한 파악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다. 생각한다고 나올 성격의 예감이 아니다. 진희는 살짝 눈가를 찌푸렸다.
  그리고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 별로 달라진 것도 없음에도 조금은 떨리던 마음이 진정되었을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을 품고선 그는 PC방의 문을 열었다. 곧바로 내부의 후끈한 열기로 얼굴이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동시에 그가 나가있는 동안 약간은 산포되어있던 사람들이 제각각 자세를 갖추면서 경기가 치러질 컴퓨터 근처로 속속들이 모이는 모습도 보였다. 우와, 그는 자동적으로 멈칫하는 발을 보면서 자신의 믿음이 얼마나 헛된 것인지를 깨달았다.
  툭, 마지못해 내부로 몸을 들이밀던 도중 진희는 뭔가가 입구에 부딪치는 소리를 듣고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손에 잡힌 것은 습관적으로 가지고 나왔던 휴대폰. 원래대로라면 놓고나왔겠지만 어쩔 수 없이 전원을 꺼놓은 상태에서 들고 있던 물건이었다. 어차피 연락 올 곳은 없었지만 아직 여유시간도 있는 편이었고 무엇보다 모여드는 사람들이 부담스러웠던 만큼 그는 뭔가 놓고 왔다는 듯이 빠르게 몸을 내보내며 휴대폰을 꺼내들어 전원을 눌렀다.  

  ‘문자.......가 와있었네?’
  
  으음, 그런 거 보낼 만한 사람은 없는데. 호기심에 능숙한 손놀림으로 문자 관리함을 열어본다. 보낸 시간은 예선이 시작했을 무렵.

  ‘약속 아직 유효한 거다?’
  
  누가 보냈는지는 살펴볼 필요가 없다. 휴대폰의 전원을 끄면서 그는 자연스럽게 웃음이 입가에서 얼굴 전체로 번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아직도 기억하고 있을지는 몰랐는데. 다시 주머니 속으로 빠르게 집어넣고는 몸을 돌렸다. 그리고 방금 전까지와는 다르게 주변을 살피지 않고선 곧바로 준비된 자리로 향하였다. 이번에야말로 시작한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좀 더 적극적인 몸놀림들로 모여들었지만 그는 거침없이 걸어가서 자리에 앉았다. 방금 전까지의 긴장감과 불안정이 모두 안개속의 허상이었던 듯이 모두 증발되어 사라진 것 같은 기분. 예전에도 한 번 이랬던 적이 있었다. 그 때와 마찬가지로 그를 집중하게 만드는 장본인은 이 장소에 있지 못했지만 역시 마찬가지로 그건 아무런 방해요인이 되지 못했다. 아아, 그래. 이걸 이제야 깨닫다니.
  천천히 주변의 사람들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진다. 한 명 한 명 빛에 비쳐진 그림자처럼 허공으로 날아가고 배경마저 하얗게 탈색되어버린 지금, 그의 눈에는 네모난 모니터와 그 안의 세계만이 들어올 뿐이었다.

  “준비되었나요?”

  “네.”

  뚜뚜뚜뚜. 몇 번 마우스 움직임을 확인한 후에 진희는 곧바로 준비가 되었음을 알렸고, 이미 모든 준비를 맞추어 놓았던 유우지도 고개를 끄떡이자 마지막 시합을 알리는 시작음이 헤드폰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화면 전환. 진희는 모니터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몰입감에 빠져들었다.


  
  “정말 가까이 가서 구경하지 않아도 괜찮겠어요?”
  
  예선 A, B조 결승의 최종전이 시작한 시간, 휴게실 쪽에 앉아있다 몸을 일으킨 성훈은 곧바로 뒤를 돌아보았다. 뒤에는 진희를 찾아왔던 소녀, 민혜가 어설픈 미소를 짓고 있었다.

  “네, 아무래도 여기서 기다리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성훈은 살짝 고개를 흔들었다. 이러면 응원 온 보람이 없지 않느냐, 라는 말이 목구멍에 대롱대롱 매달렸다. 그것도 3번째로. 그래서일까, 그는 새삼 오기가 오르는 걸 느꼈다. 손이라도 잡고 잡아끌까. 하지만 그는 자신과 그녀는 만난 지 1시간 정도 밖에 되지 않은 관계임을 떠올렸다. 그 시간 동안 적극적으로 나서서 꽤 많은 대화를 나누었지만 어디까지나 이제 안면을 익힌 사이에 불과한 것. 더욱이 관계자가 아닌 완전한 제3자를 예선장 내부로 데려가는 건 확실히 규칙위반인 것도 사실이었다. 그래서 그는 약간의 생각 끝에 곧바로 작전을 변했다.

  “시합, 안 보세요?”

  민혜는 약간 당화한 눈으로 자신의 옆 자리에 털썩 주저앉은 성훈을 바라보았다. 성훈은 그 시선을 살며시 바라보면서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괜찮아요. 어차피 현호 형이 보고 있기도 하고, 리플레이도 구할 수 있으니까요.”

  솔직히 말해 관심은 있었다. 둘 모두 뛰어난 실력의 소유자이자 곧바로 맞부딪칠 가능성도 큰 경쟁자들이었으니까 오히려 없다면 이상한 일이다. 하지만 방금 꺼낸 말처럼 이번 기회를 놓쳐도 얼마든지 연구할 수 있는 시합이었고 두 선수와는 별다른 인연도 없는 편이었기에, 더 큰 목적을 위해선 포기할 수 있는 요소였다. 일종의 기회비용이라고 할까나. 성훈은 모처럼 이어진 대화의 끈이 끊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화제를 전환하면서 계속 문장을 꺼내었다.

  “학교 선배라고 했죠?”

  “네? 아, 네.”

  “음, 이런 말 하기는 좀 그렇지만 그렇게 유명한 선수도 아닌데 같은 학교에 워3선수가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죠?”

  “그래도 TV에 나왔잖아요?”

  아아, 한 번 나가기는 했었지. 거기서 금방 떨어지긴 했지만.

  “아무래도 공부 외에는 특별한 활동이 없는 학교이니까요.”

  “으음, 난 꽤 많이 나왔었는데 왜 워3 가르쳐달라는 후배가 없었을까?”
  
  민혜는 약간 쑥스러운 듯이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뭐, 저야 이런 저런 오해들이 있었기 때문이죠. 그래도 부탁하길 잘 했던 것 같아요.”

  “흐음. 그래, 워3는 재밌어요?”

  “...네. 사실 고등학생이란 게 재미가 없는 일이잖아요. 학교 가서 공부하고 학원가서 공부하고. 그러다보니 이런 일탈이 즐겁기 마련이죠.”

  “하하, 그거 다행이네. 혹시 더 배우고 싶으면 우리 길드에 가입해볼래요? 각 종족별로 고수들도 있으니까 좀 더 자세히 가르쳐 줄 수 있을 것.......인데, 아니 마음 내키면 그러세요.”

  그는 말을 얼버무리면서 속으로 자신에게 악담을 퍼부었다. 젠장, 습관이 도져버렸잖아. 마치 배틀넷에서 솜씨가 괜찮은 사람들에게 길드 권유하는 듯이 말하다니. 상대는 그 자신처럼 학교도 제치고 PC방으로 달려가는 종류의 인간과는 동떨어진 세계의 사람인 것이다 그는 억지로 웃음을 지으면서 살짝 민혜를 훔쳐보았다. 윽, 역시 분위기가 어색해지고 있어.

  “하긴 학교 다니면서는 좀 힘들겠죠?”

  “아, 네, 아무래도 학업이 우선되어야 하니까요.”

성훈은 난감한 상황에 빠졌다. 원래부터 민혜는 딱히 대화를 이어나가려는 의지는 없었다. 아니, 오늘 처음 본 사람과 계속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가 부담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런 그녀를 계속 끌어들이면서 어떻게든 다리를 이어가려 한 것인데 방금 대화로 허약했던 연결고리가 끊어지면서 결국 붕괴될 상황에 처하고 만 것이다. 그는 남아있는 이야깃거리의 잔고를 뒤적거렸지만 마땅한 소품을 찾는 일에 실패했다. 무엇보다 게임이 아닌 다른 소재, 그것도 여고생이 흥미를 가질만한 내용이 그의 머릿속에 들어있을 리가 만무. 결국 그는 찾아온 침묵 속에서 ‘이거, 아이돌 이름이라도 외워야 하나.’ 식의 쓸데없는 고민에 빠져들었고, 그래서 그를 향한 현호의 시선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현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진희가 알았다면 아아, 그거, 라고 말했을 그런 기분. 하지만 게임의 내용은 딱히 이상할 것은 없었다. 역시나 랜덤을 선택한 유우지의 종족은 언데드로 결정되었고, 따라서 시합은 휴먼과 언데드 간의 일반적인 양상을 보였다. 우선 진희는 빠른 앞마당 멀티를 선택했다. 앞의 두 경기에서 초반부터 끊임없는 견제와 압박을 반복했던 것에 비하면 수비적이고 후반지향적인 플레이었지만 어차피 방향은 같았다. 주도권을 잡는다는 목적. 효율적인 전술이라고 현호는 생각했다. 경기의 진행 상태를 자신이 먼저 휘어잡아서 제멋대로인 상대를 자신의 흐름에 끌고 들어온다. 정석 싸움이라면 밀릴 이유가 없으므로. 상대가 끌려오지 않는다면? 정석이란 원래 가장 날카롭고 빠르게 강해질 수 있는 길을 의미한다. 상대가 빙빙 돌면 자신은 벌어놓은 자원으로 이에 맞춰나가기만 해도 충분히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나쁠 것 없다.
  그리고 전체적인 운영도 휴먼의 의도대로 흘러갔다. 유우지는 일반적인 대응처럼 소규모 병력과 영웅으로 멀티를 건설하는 일꾼들을 노려주었지만 이득을 챙기지 못한 상태로 중반을 맞이하게 되었다. 특히 진희는 교전을 가능한 삼가고 정찰을 꼼꼼히 하여 상대 유닛의 이동 경로를 파악하면서 차근차근히 사냥을 하는 식으로 최대한 변수를 줄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확실히 스타일이 파악됐어. 이정도로 철저하게 대응하는 상대는 처음인데 과연 어떻게 극복을 할 거지?’

  진희의 뒤에서 바라보는 화면으로는 딱히 눈에 띄는 움직임이 잡히지 않았다. 사냥을 하고 있는 걸까. 하지만 이 상태로 휴먼의 기계화 체제가 완벽히 구성되게 되면 아무리 높은 레벨의 언데드 영웅들이 무섭다고는 해도 당해내기 힘들다. 제대로 된 연습을 못했다고 하더라도 그 정도도 모르지는 않을 텐데. 멀티도 아니고, 게릴라전을 펼치는 것도 아니고 무엇을 노리는 걸까. 여기에 아마 그가 느끼는 의아함의 해답이 있을 것이다. 젠장, 성훈이 녀석이 있었다면 확실히 뭔지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인데. 그는 살짝 고개를 돌려 휴게실 쪽을 바라보았지만, 성훈은 다른 생각에 빠져있었는지 그의 그런 시선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흐음, 잘 안 풀리나 보네.’

  그가 이유모를 흐뭇한 웃음을 지으려는 순간 반대쪽, 그러니까 유우지의 뒤에 서서 화면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작은 소요가 스쳐지나갔다. 그건 순식간에서 사라졌지만 확실한 웅성거림. 이러한 자리에서는 작은 반응 하나하나가 선수의 경기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칠 수 있기에 자이펀의 노예들처럼 존재감을 내보이지 않는 것이 기본이다. 그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아님에도 이런 반응이 있었다는 건,

  ‘뭔가가.......있다는 소리인가.’

  현호는 곧바로 달려가려는 다리를 억지로 붙잡았다. 서두르지 말고 조용히, 하지만 신속하게. 하지만 그가 다시 몸을 움직이려 할 때 그럴 필요성이 사라져버렸다. 그 소란의 정체가 어둠이 깔린 맵 저편에서 날아 들어왔기 때문이다.

  ‘날아왔다?’

  일련의 디스트로이어(Destroyer)들이 휴먼의 멀티로 날아 들어와 급습하기 시작했다.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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