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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23 21:58
일단 박동희 기자와 인터뷰한 것을 보면 홍성흔 선수 자체가 이제 포수석에 설 일이 없을 거라고 했습니다. 그러고 싶지도 않다고 했고요. 망신만 당할 것 같아 그러고 싶지 않다고 했습니다. 일단 포수 연습을 너무 안 한 것도 있지만, 홍포도 발목 부상과 팔꿈치 부상이 있어서 예전 같은 송구가 전혀 되지 못한다고 했어요. 송구가 안 되니까 투수 리드, 블로킹 등 모든 게 무너져서 포수를 그만뒀다고 했고요. 지명타자로 전향한 건 아마 2007년부터였던 것 같은데...
도움이 될까 싶어서 관련 인터뷰 첨부합니다. 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295&article_id=0000000439&date=20100723&page=1
10/07/23 21:59
07년도에 부상을 심하게 입고 08년도에서부터 포수로 나오지 않고 지명타자로 나오면서 타격에 각성했습니다.
그후 본인이 두산에서 포수를 맡지 못 하고 지명타자로만 돌리자 이에 불만이 생겼고 같은 DH 라면 돈 많이주는 롯데로 FA 때 간거죠. 그전 08 시즌에인가 아주 간간히 포수로 나왔는데 송구나 블로킹 같은 기본적인 포수로서의 능력치 자체가 크게 퇴보했더군요. 부상당하기 전 포수로서의 모습은 S급은 아니지만 방망이 괜찮은 포수? 정도 였죠.
10/07/23 22:10
2008년 4월 30일 KIA전을 마지막으로 더이상 마스크를 쓰고 출전하지 않았죠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부상등의 이유로 더이상 포수는 무리라고 생각한 김경문 감독이 지명타자를 권유했고 몇년간에 고심끝에 2008년 5월부터 지명으로 출장하기 시작했습니다
10/07/23 22:12
07년 햄스트링 부상당하고 그 기간에 채상병이 등장하면서 복귀후 지명타자로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홍성흔은 07년 시즌이 끝나고 포수로 뛰고 싶다면서 트레이드 요청하면서 한바탕 시끄러웠습니다.
홍성흔은 99년 대졸신인으로 OB에 입단했고 김태형 현 두산 배터리코치와 현 삼성포수 진갑용을 밀어내고 주전포수로 화려하게 등장하며 규정타석 미달에도 불구하고 신인왕을 수상했습니다. (이에 대한 여파로 진갑용 = 이상훈 + 4억으로 진갑용이 삼성으로 갑니다.) 그리고 06년까지 국가대표 포수로 뛰었습니다. 포수 홍성흔의 장점은 역시나 파이팅 넘치는 모습과 자신있는 투수리드였지만 도루저지율이 매년 낮아지면서 고생했습니다. 05년부터 김경문 감독이 외야전업을 요구한 이유도 결국 이것 때문이었습니다. 도루저지율이 낮아지면서 송구 스트레스로 인해 블로킹도 안 좋아지고 투수리드도 안 좋아졌습니다. 여기에 각종 부상까지 더해지면서 점점 포수능력이 퇴보했습니다. 아주 뛰어난 포수는 아니었지만 충분히 국가대표 레벨에서 뛸만한 포수였습니다.
10/07/24 00:04
2007년 부상 이후 두산 김경문 감독의 판단으로는 더이상 포수의 역할은 맡기 어려웠다고 판단되서 지명타자로만 활용했었습니다.
많은 경험이 있었지만 포수에게 가장 중요한 풋트웍이나 송구 능력이 떨어졌다고 판단됐기 때문이죠. 포수에게 있어서 경험은 제일 큰 장점이긴 하지만 (박경완, 진갑용) 풋트웍이나 송구 능력이 떨어지는건 치명적인 약점이 됩니다. 발빠른 선수들을 보유한 팀에게 완전 농락당하기 때문입니다. 대신, 홍성흔 선수는 타격 능력 만큼은 최고였었기 때문에 지명타자로 활용하게 된 것이죠. 지금 롯데에 가서 더 큰 활약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트레이드 되기 이전 두산 시절에도 타격만큼은 역대 포수 타격랭킹 1, 2위를 다투었습니다. 평균 타율은 박경완 보다 높습니다. 포수 포지션을 포기한 것이 그의 제2의 야구 인생이 시작됐다고 할 수 있겠네요. 다만, 질문하신 것처럼 포수로서의 능력은 그다지 대단하진 못했습니다. 화이팅이 넘치고 덕아웃 분위기를 이끌어 가는 선수였었다고 할 수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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