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KapH님이 좋은 글을 써 주셨지만, 티포시이자 르끌레(미끌레?)의 팬으로써 특별한 레이스였던 모나코 그랑프리에 대해 몇 가지 소감을 써보려고 합니다.
1. 왜 중요한 그랑프리인가?
몬자(69,이탈리아), 실버스톤(53, 영국)과 더불어 Top3 개근 서킷이 몬테카를로(66, 모나코)입니다. (4위는 스파프랑코샹, 벨기에)
동시에 특별히 인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3대 모터스포츠 이벤트로 꼽히기도 합니다.
F1 모나코 그랑프리, 르망 24시, 인디 500. - 이 3개를 다 달성하는 걸 트리플 크라운이라고 부르죠. (그레이엄 힐이 유일합니다.)
무엇보다, 샤를 르끌레르(모나코 발음으로는 샤르흘 르끌렣-(아) 정도)의 홈 그랑프리입니다.
워낙 작은 도시(공국, Prince(공작 정도로 번역되는 작위)가 지배하는 나라)이다 보니 F1 드라이버가 거의 없었습니다. F1이 정식 챔피언쉽을 갖춘 1950 이전에 루이 시롱(부가티 시론의 어원이 됩니다.)이 1931에 모나코에서 우승한 적은 있지만, 그 이후로는 Monegasque 드라이버가 포디엄에 올라간 적도 없습니다. (사실, 영주권을 얻은 선수들을 따지면 많이 있긴 합니다만(세금 혜택 땜에), 실제 모나코 태생은 극히 드물 수 밖에 없습니다.)
2. 샤를 르끌레 - 서사의 신이 사랑하는, 행복의 신이 외면하는 드라이버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없지만, 페라리에 앉아 불행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 라는 말의 카운터 짤
르끌레는 모나코 출생입니다. 아버지에게 이끌려 카트를 탔고, (드라이버가 되기에는) 넉넉치 않았지만 좋은 후원자를 만납니다.
바로 F1 드라이버가 된 쥘(영어로 쥴스) 비앙키인데, 그의 대부가 됩니다.
맥스 베르스타펜과 치고박고하는 카트 경력(시즌 성적은 4:1정도로 맥스가 이겼습니다.)을 쌓고, 차근차근 피더시리즈(F3, F2같은, 자체 챔피언십이 아니라 상위로 올라가기 위한 시리즈)로 진출합니다.
F3 유러피언 풀시즌 첫해인 2015년, 그의 대부 쥴스 비앙키가 일본 그랑프리에서 사고로 세상을 떠납니다(사고는 2014년에 있었음). 페라리 드라이버로 기대되고 있던 촉망받던 신인 드라이버의 죽음은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주었고, 그 결과 지금의 헤일로가 도입됩니다.
F2에서 역대급 승률로 챔을 찍고 F1에 콜업되기 얼마 전, 아버지까지 세상을 떠납니다. 아버지에게 "저 F1 계약했어요"라고 미리 거짓말했던(일부 소스에 따르면 아예 페라리랑 계약했다고 말했다고도 함) 약속은 2018 자우버(이후 알파로메오를 거쳐 현 킥자우버, 당시 페라리와 느슨한 자매팀처럼 운영되고 있었음)를 거쳐 2019년 젊은 드라이버를 쓰지 않는 관행을 깨고 극적으로 페라리로 콜업 되면서 현실이 됩니다.
2018년 F1 데뷔 첫 해 벨기에GP(스파프랑코샹)에서 아이러니하게도 대형 사고에 휘말리지만 쥘 비앙키의 유산인 헤일로 덕분에 무사하게 됩니다. 그것에 대해 소회를 밝히기도 했죠.
그리고 페라리의 데뷔 첫 해, 르끌레르는 2라운드(바레인) 만에 폴포지션을 따고, 레이스를 줄곧 리드합니다. 그러다가.... 파워유닛이 터지면서 노오오오--를 외치며 뒤로 밀려가던 중 극적인 셒카에 의해 3위를 합니다. (저주의 시작 혹은 페라리의 시작)
시즌 중반, 적응을 대충 마친 르끌레르는 다시 벨기에GP에서 폴포지션을 땁니다. 그리고 기대되는 본 레이스를 앞두고, 그의 절친인 앙투안 위베르가 F2 경기에서 사고로 세상을 떠납니다. (F2경기가 F1과 같은 주말에 있을 때는 F2레이스(피처레이스)가 F1보다 먼저 열립니다.)
For Antoine을 차에 붙이고 나선 벨기에 GP에서 르끌레르는 첫 F1 승리를 따내고, 카메라를 끌고와서 카트 시절부터 오래 함께한 친구의 이름을 클로즈업 합니다. (가슬리도 엄청 친해서 가슬리가 르끌에게 "야 너 폴이니까 앙투안을 위해서 꼭 우승해라"라는 당부도 했습니다.)
그리고, 르끌 입덕 계기로 가장 많이 꼽히는 이탈리아GP(몬자)에서, 2010년 알론소 이후 9년만에 홈(컨스트럭터) 그랑프리 위닝을 차지합니다. 풀레이스 자체가 꿀잼이라 추천합니다. 스카이스포츠 캐스터 크로프티의 "He won in Spa, He wins in Monza!!!" 가 아주 멋졌습니다.
티포시 뽕의 극한을 보여주는 몬자 우승, 이때까지만 해도 그는 자신의 모든 불운과 저주(아버지, 대부, 친구)를 뒤로하고 영웅의 서사를 완성하나 싶었습니다만...
3. 르끌레, 페라리, 모나코의 대환장 조합
2019년, 페라리의 엔진 치팅은 FIA와의 합의를 통해 대충 넘어가고 대신 페라리는 귀여운 엔진을 갖게 됩니다.
2021년, 페라리는 형편없는 퍼포먼스에도 불구하고 미케니컬 그립(기계적인 제어로 타이어를 땅에 잘 붙이는 능력, 에어로와 별개)의 안정성을 바탕으로 느려도 해볼만한 모나코를 노립니다. 당연히 그 선두에는 르끌레르.
모나코는 추월이라는게 마치 여러분들의 여친과도 같은 것이라 폴을 따면 어지간해서는 우승하기 좋은 환경입니다. 그런 곳에 느려도 해볼만한 페라리, 숏런(한 랩, 즉 퀄리파잉)의 천재 르끌레르, 홈타운 모나코의 조합이니 이건 뭐 국밥같은 느낌이다! - 였고 실제로 환상적인 퀄리로 폴을 따냅니다. 그러나 Q3에서 폴을 따낸 후 두번째 시도에서 벽에 박았고, 다행히 폴은 유지한 채 퀄리가 끝나지만.
다음날 본 레이스에서 포메이션 랩(출발 위치에서 시동을 걸고 서킷 한 바퀴 돌아서 다시 출발 위치로 오는 과정. 차가 무사히 출발할 수 있는지를 테스트하고, 시동을 걸어두고 타이어를 데우는 역할. F1카는 그냥 시동이 걸리지 않음)에서 차가 고장났다는 걸 발견합니다.
"Nooooooo......." (찾아보시면 세상 슬픈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결국 DNS(Did not start)로 마감하는 2021 모나코 GP.
2022시즌은 페라리가 초반에 레드불을 앞설 정도로 좋은 기세를 보입니다. 물론 이몰라에서 바로 미끌하면서 얘는 진챠 왜이러냐 소리를 듣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엎치락뒤치락하던 와중 모나코가 돌아옵니다. 안그래도 잘하는 모나코와 숏런인데 이번엔 3각구도 중에 페라리(차)는 해결됐다? 이건 국밥이다.
역시나 보란듯이 폴을 따내는 르끌. 이번에는 박지도 않고 I'm Stupid(아제르바이잔GP에서 시가지 구간에 박고 남긴 유명한 팀라디오.)도 없었습니다. 이제 폴투윈만 남았다!! 라고 하는 와중에...
비내리는 모나코, 페라리가 페라리하면서 타이어 전략을 조지는 바람에 페페레레에서 레레페페로 포지션이 밀리고, 게다가 사인츠와 동시 핏스탑을 걸어서 순식간에 4위가 되어버린 르끌레르. (유튜브 링크가 깨지네요 ㅠㅠ)
아니 왜 폴을 따내는데 햄볶하지모테!! (물론 그런 경우가 생각외로 꽤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다니엘 리카도의 2016년..., 키미의 2017은 좀 다르고)
얼마 전 마이애미에서 무관의 최고 드라이버를 벗어난 랜도 노리스처럼, 르끌레르도 모나코를 우승해야 성불한다는 이야기가 나올법 했습니다.
르끌레르 - 잘 미끄러짐. (따로 이야기할 기회가 있겠지만, 2023 하반기부터 일부러 스타일을 바꾸면서 2024에는 꽤 안정화되었다고 봅니다.)
모나코 - 추월은 거의 안되는데 이상하게 폴투윈이 안남. 홈 그로운 위너가 없었음.
페라리 - 차를 못만들거나 전략을 조지거나 둘 다 하거나 약팀호소인임.
4. 드디어 모나코 2024
르끌레르는 시즌 초 사인츠에게 조금 밀리면서도 안정적으로 계속 점수를 쌓는 모습을 보입니다. 스즈카의 타이어깎기를 비롯해서 어떻게든 해내는 모습을 보여주더니 최근 몇 레이스에서는 컨디션도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모나코를 위해서...!
FP1부터 꾸준히 좋은 기록을 보여준 페라리와 르끌레르는 중간에 카본 부품을 밟고 지나가 플로어 수리하는 등의 사소한 문제는 있었지만, 무난히 퀄리 폴을 따냅니다. 무난히라고는 했지만, 1,2,3,4,5까지의 간격이 매우 좁았던 상향 평준화 속에서 1-2차이가 제일 큰 숏런 장인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온보드를 보면, 헤어핀 근처에서 살짝 스티어링 재조정하는 한 순간 이외에는 정말 깔끔하게 끝냈습니다.
그리드 순서는 페(르끌)-맥(피아스트리)-페(사인츠)-맥(노리스). 사인츠는 시작 전부터 "나 르끌이 우승하는거 도와줄거임"을 천명하면서 팀 플레이를 암시했고, 팀 플레이를 위해서 제일 좋은 위치는 2위라는 점을 생각했을 때, 스타트부터 조지려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예상대로, 사인츠는 생드보(첫코너)에서 피아스트리 오른쪽 인코너를 공략하고 거의 경쟁이 될 뻔한 진입을 했지만, 인코너의 브레이킹 존이 아웃코너에 비해 먼저일 수 밖에 없다는 점 때문에 결국 약간 뒤로 밀리고 그 와중에 피아스트리의 옆구리와 타이어가 부딪히며 펑쳐가 납니다.
으아아. 르-모-페 중에 페인가! 페라리의 저주인가!
그러나, 위기의 페라리를 구하러 페라리의 시스터팀인(아님) 하스가 간다! 마그누센이 정신 못차리고 스타트 조진 페레즈의 우측을 무리하게 파고들다가 대형 크래쉬를 내버리고, 레드플랙(정지)을 통해 사인츠는 구제받아 다시 P3가 됩니다.
문제는 유일한 변수가 될 수 있는 핏스탑이 사라졌다는 것. 2개의 컴파운드(타이어 종류)를 써야하는 규정이 있지만, 레드 플랙 동안 수리와 타이어 교체를 해도 인정되기 때문에 상위 4명 드라이버(르피사노)들은 모두 미디엄에서 하드로 바꾸었고, 결국 하드로 78랩을 다 돌면 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페라리의 병스탑을 막아준 마그누센! 기억할게!
르피사노는 페이스 차이가 별로 없을 것으로 기대됐고, 어차피 타이어를 아껴야 하는 관계로 4명의 드라이버들은 다닥다닥 붙어서 달리게 되었습니다. 이제 유일한 문제는 프리(공짜) 핏스탑.
르-피-사-노-----(갭)-----러셀 의 구도에서 노리스와 러셀 사이의 갭이 커지면 노리스는 핏스탑을 해도 그대로 4위가 됩니다. 싱싱하고 상대적으로 속도 빠른 타이어(미디엄이나 소프트)로 갈고 나오면 손해 하나도 없이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상황. 페라리는 당연히 이게 싫을 수 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프리 핏스탑을 한 베르스타펜과 해밀턴이 몇 랩 만에 러셀 뒤에 바로 다시 붙게 됩니다. 물론 추월은 못했지만.)
그래서 선택은? 응, 더 느리게 가면 그만이야~~~. 르끌레르는 살벌하게 속도를 낮춰서 뒤의 피-사-노를 자꾸 밀어냅니다. 추월 당하지 않을 정도로만 간격을 아코디언처럼 밀고 당기면서 노-러의 갭이 프리 핏스탑(20초, 여유있게는 22초)이 되지 않게 유지합니다. (츠노다도 같은 이유로 페이스를 늦추느라 앞차와 수십초 이상 벌어집니다.)
사인츠가 계속 피아스트리의 상태를 살피며 팀에게 조언을 건네고, 노리스는 페라리와 맥라렌의 타이어 상태를 비교하며 계속 전략을 고민합니다. 그러나 속절없이 흐르는 레이스.
앗! 알론소가 억지로 막아주고 프리 핏스탑을 탄 스트롤이 추월 시도하는 전략을 수행하던 도련님(스트롤)이 새 타이어를 끼자마자 펑쳐! (아 도련님 진챠..) 나더니 핏레인 들어가기 직전에 펑쳐난 타이어가 차에서 분리됩니다!! 이거 애매하게 레이스 트랙에 남으면 세이프티 카 나오는데? 그러면 노리스-러셀 갭이 세이프티 카 핏스탑(15초 안팎)은 되는데?
기적적으로 바퀴가 핏레인 벽 쪽으로 굴러서 서면서 옐로우 플랙 하나 없이 진행.
레이스 후반, 르끌레르는 이제 핏스탑 해봤자 뒤에서 추월시도하기는 늦었다고 보고 페이스를 올립니다. 순식간에 8초까지 벌어지며 무난히 크루징, 패스티스트랩을 시도하려다가
"I'll Just bring it home" 얌전히 완주할게
"Thank you" 고마워(너도 쫄리지?)
라는 라디오를 남기고, 체커기를 받으며 드디어 성불합니다.
모나코 대공비님의 미모는....
5. 그 외 이모저모
알베르 모나코 대공(Prince) 부부는 원래 르끌레르와 친분이 있습니다. 아니 뭐 워낙 모나코 출신이 적어서 당연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래서 너무 기쁜 나머지 평소에는 하지 않던 샴페인 세러모니를 직접 하지를 않나, 수상 순간에 눈시울이 붉어지질 않나 아주 행복한 주책을 보이셨습니다.
위에 언급된 지옥의 핏스탑에서 Stay out (스떼이 아웃)의 주인공이자, 평소에도 뭐 물어보면 We are checking(위 아 쩨낑) We'll come back to you(위일 꼼빽뚜유)로 답답하게 만들었던 (그러나 사실 르끌과 사이는 좋았던) Xavi의 후임이 된 봇치..아니 Bozzi(브라이언 보찌)의 단호한 캐릭터가 재미를 주었습니다.
아까 말한대로 정상 속도에 비해 엄청 느리게 달리고 있던 르끌레르가 팀 라디오로 말을 겁니다.
Just for your info, I think I have around... 알려주고 싶은게 말야, 내가 대략 이정도...
I mean do you want to know the margin? 그러니까 내가 마진(여유, 최대 속도에서 얼마나 지금 느린지)이 얼만큼인지 알려줘?
- No Charles, we're not interested. We know. 르끌아 놉. 관심없어(다른 팀 듣잖아 임마). 그 마진 우리가 알아.
You said no, right? 너 지금 "싫다"고 한거임?
- No, we are not interested. 응. 안물안궁.
That's rude 넘하네
- Sorry. 미안(헤헷)
F1 해설이 덧붙인 부분도 재미있는데, It's right thing for Brian (Bozzi) to say on the radio, "Don't say how quickly you can go!" (보찌가 옳은 말 했네요. 니가 얼마나 빨리 갈 수 있는지 말하지 말라고!)
시즌 전망은? 알 수 없습니다. 당장 완전히 성격이 다른 캐나다GP(쥘 빌너브)에서 차들이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모릅니다. 현재로서는 맥라렌이 의외로 올라운더의 세팅을 찾은 것으로 보입니다. 상하이, 마이애미, 이몰라, 모나코 4연속으로 우승권 퍼포먼스를 보여주는데, 서킷 특성을 고려했을 때 굉장히 놀라운 일입니다.
레드불은 이몰라와 모나코에서 다소 어려움을 겪었지만, 여전히 페이스를 갖고 있습니다. 캐나다에서 다시 경쟁자들을 레이스 페이스 0.4초 이상으로 앞지른다면, 올해도 무난할 것이고 그렇지 않고 레페맥이 모두 0.4 안에 있게 된다면 레드불은 골치아파 질겁니다. 세 팀 중 드라이버 구성은 제일 안좋으니까요. 드라이버 라인업은 개인적으로 페>=맥>레 라고 봅니다. 페라리와 맥라렌은 거의 동급이지만, 아직은 레이스 운영에서 사인츠가 피아스트리보다 나아 보입니다. 베르스타펜은 모두에 비해 반 급 위에 있지만, 페레즈는 한 급 아래에 있습니다.
페라리는, 놀랍게도 바수르가 감독이 된 이후로 지극히 정상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레이스페이스 위주의 개발과 세팅, 적어도 뒤로는 안가는 업그레이드. 혼란스럽지 않은 전략. 기존의 강점인 드라이버 라인업과 섀시의 기계적 안정성을 더한다면, 2022년보다 올해가 훨씬 더 우승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만 드라이버 우승은 쉽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캐나다GP는 새벽에 합니다. 추천하기 어렵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