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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5/05/13 02:41:21 |
Name |
sylent |
Subject |
MSL 관전일기 - 게임의 법칙 |
MSL 관전일기 - 우주 MBC게임 스타리그 패자조 1회전(2005년 5월 12일)
게임의 법칙
승부의 세계에서 승자란 운과 역량이 어우러질 때 좋은 결실을 거둘 수 있는 법이다. 사고thought를 뛰어넘는 동물적인 감각은 한 편으로는 운처럼 보이기도 하고, 다른 한 편으로는 수없이 반복되는 연습 속에 체화된 본능처럼 보이기도 한다. ‘천재’ 이윤열 선수를 서바이버 리그로 추락시킨 ‘폭풍’ 홍진호 선수의 저글링도 그렇고, 앞뒤에서 몰아치는 ‘정석’ 김정민 선수의 대규모 병력을 간발의 차이로 막아낸 ‘퍼펙트’ 서지훈 선수의 드랍십도 마찬가지이다. 적확한 타이밍에 적절한 규모의 병력이 극적으로 임무를 수행한 것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이다.
오늘의 경기는 그 아무리 ‘천재’라 할지라도, 절대적으로 유리해 보이는 전투라 할지라도 언제든지 전복될 수 있는 균열과 틈을 내재하고 있다는 걸 보여준 교훈적인 ‘게임의 법칙’에 다름아니다.
1경기 <러시아워>/<루나>/<네오레퀴엠> : 이윤열(T) vs 홍진호(Z)
‘투신’ 박성준 선수와 홍진호 선수가 이윤열 선수에게 유난히 약한 모습을 보여 왔던 이유는 플레이 스타일의 상성과 깊은 연관이 있다. 경기 시작 후 비교적 오랜 시간동안 상대와 같은 자원량으로 힘을 겨루는 싸움꾼을, 이윤열 선수는 정확한 칼놀림으로 요리해온 것이다. 그들의 신경전에 반응하지 않고 업그레이드에 충실하며 다수의 베슬을 운용하는 이윤열표 SK테란이 바로 그 비결이다.
레어 업그레이드와 히드라리스크덴의 타이밍을 맞추지 못하는 초보적인 실수부터, 부적절한 성큰콜로니의 위치로 바이오닉 병력의 본진 입성을 허용할뻔한 점, 이레디에이트 한 번에 모든 뮤탈리스크를 잃은데다가, 다크스웜을 펼치기도 전에 병력이 달려드는 느슨한 컨트롤 등등. <러시아워>에서의 첫 경기는 박성준 선수와 박태민 선수에게 저그 최강자의 자리를 빼앗긴 폭풍의 기세가 급격히 떨어지고 있음을 반증하는 듯 했다. 하지만, 팬들의 불안한 기대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홍진호 선수는 <루나>와 <네오레퀴엠>을 차례로 정복하며 패자조 2회전에 안착하는데 성공하였다.
이윤열 선수가 <루나>에서 빠른 멀티에 욕심을 내고, <네오레퀴엠>에서 전진 팩토리로 경기를 풀어나가려 한 데는 ‘승리’ 이외의 또 다른 명분이 있었을 것이다. 적을 향해 불나방처럼 달려드는 홍진호 선수의 스타일을 이윤열 선수가 모를 리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기를 풀어가는 그 어떤 전략과 전술도 선수의 정치적인 목적(예를 들면 조금 더 손쉬운 경기를 위해 모험적인 플레이를 한다던지 혹은 멋진 경기를 위해 쇼맨십을 발휘한다던지 하는 것) 역시 그 선수가 감당해야 하는 몫임을 인정한다면 그로인한 승부의 결과는, 오늘의 실력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것이기에 시종일관 저글링으로 맵을 휘저은 홍진호 선수의 선택이 이윤열 선수에게 유효했다고 납득해야 한다. 경제란 석탄을 아끼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불타고 있는 동안 시간을 효과적으로 이용하는데 있다. 홍진호 선수는 스스로 얼마나 경제적인 경기 운영을 하는지 증명한 셈이다.
영원히 춤을 출 수 있는 발레리나도 존재하지 않고, 모차르트의 악곡도 언젠가는 끝나 버린다. 이윤열 선수의 서바이버 리그행으로 인해 테란의 한 흐름이 끝을 맺었다. 그렇게 여겨지며 다시 시작할 수 있음은, 선수에게 있어서는 하나의 훈장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혹은 그 반대가 될지도.
2경기 <레이드어설트2>/<러시아워>/<루나> : 서지훈(T) vs 김정민(T)
테란이 동일종족전을 펼칠 때에는, 정원사가 나무 하나하나를 손질하면서 조경을 생각하듯이 거시적인 운영과 미시적인 운영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넓은 시야가 요구되는 경기의 밑그림과 섬세한 손길이 필요한 전투의 색깔을 훌륭히 그려낸 서지훈 선수와 김정민 선수는 골수 테라노이드terranoid임에 틀림없다.
‘맞춰 잡기’의 달인인 서지훈 선수는 상대의 체제에 유연히 대처하며 <레이드어설트2>의 주요 요소를 장악하여 승리의 기반을 다졌다. 김정민 선수의 2스타포트 체제를 확인하자마자 2기의 탱크를 모두 던져 시간을 번다든지, 클러킹 레이스로의 발빠른 체제변환을 통해 골리앗 생산을 강제하는 등의 플레이는 서지훈 선수의 닉네임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주기에 충분했다.
김정민 선수의 빠른 멀티가 돋보인 <러시아워>에서의 두 번째 경기는 양 선수의 역량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스릴을 선사하였다. 좁은 다리를 사이에 두고 팽팽히 맞선 서지훈 선수와 김정민 선수는 승리의 열쇠를 ‘드랍십‘에서 찾기로 약속이나 한 듯이, 드랍십 운용과 지상 병력의 움직임을 적절히 조율하여 난전을 펼쳤다. 밀고 밀리는 전세 속에서 서로의 멀티를 교차 폭격하며 승부의 결과를 미궁속으로 빠뜨렸지만, 결국 자원의 우위를 점한 김정민 선수가 힘겹게 승리하였다.
<루나>에서 펼쳐진 마지막 경기 역시 몇 번의 드랍 공격을 통해 미묘한 차이를 벌린 김정민 선수의 승리로 마무리 되는 것 같았으나, 단 한차례의 교전, 센터지역에 자리 잡은 상대의의 병력을 포위공격하려 했던 전술이 서지훈 선수의 절묘한 드랍십 지원에 막히며 결국 서바이버 리그로의 일보 후퇴를 감내하게 되었다.
오늘 보여준 두 선수의 차이는 다만 분홍과 초록의 차이일 뿐이었다. 분홍은 분홍으로서 훌륭하고, 초록은 초록으로서 훌륭할 뿐, 어느 것이 더 나은 빛깔인 것은 아니다. 김정민 선수는 천천히 가는 것을 두려워 말고, 가다가 멈추게 될까를 두려워해야 한다. 꿈꾸는 자는 멈추지 않는 법이다.
by sylent, e-sports 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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