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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4/06/16 22:27:09 |
Name |
글곰 |
Subject |
[경기분석] 기동성은 전황을 좌우한다 - 드랍쉽과 벌처의 활용. |
오늘, 헥사트론 드림팀이 패배했습니다.
그런 고로, 소심하기 서울역에 그지없는 글곰에게 오늘은 어두운 골방 구석에 틀어박혀 궁시렁거리기나 해야 하는 날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석글을 남기려 키보드를 붙잡는 건, 탄성이 절로 나오는 경기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하 존대는 생략합니다.
2004년 6월 16일 스카이배 온게임넷 프로리그
SK T1 대 POS 제 2경기: 임요환(T) 대 박정길(P). 네오 기요틴
1라운드 결승 진출이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위해 앞으로 남은 경기 모두를 2:0으로 잡아내려 하는 T1. 중위권 도약과 순조로운 2라운드 경기를 위해서라도 오늘 경기가 중요했던 POS. 일단 팀플레이를 T1이 잡아내며 좋은 출발을 보인다. 그리고 제 2경기는 임요환 선수 대 박정길 선수.
맵으로 보았을 때 POS의 선택은 십중팔구 프로토스 유저 박정길 선수. 여기에 대응해 주훈 감독이 꺼내든 카드는 뜻밖에도 임요환 선수. 프로토스 쪽으로 기울어진 맵 네오 기요틴에서, 프로토스에 약한 모습을 보이는 임요환 선수를 기용한 것은 확실히 예상 밖이었다.
이 시점에서 이미 경기는 시작되었다. 얼마 전 T1의 최연성 선수가 전태규 선수를 상대로, 동일한 맵에서 마린-벌처라는 기막힌 전략으로 압도적인 승리를 따낸 적이 있다. 박정길 선수로서는 이를 감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그 상대는 희대의 전략가로 불리우는 임요환 선수. 구태여 그가 이 맵에서, 상대를 100% 예측하고 등장한 이상 무언가 비장의 무기가 있다고 봐야 한다. 박정길 선수의 머리 속은 얼마나 복잡해졌을까.
게임은 시작되고 세로 방향에 위치한 양 선수. 임요환 선수는 7시, 박정길 선수는 11시. 무언가 특별한 전략을 쓰기에는 테란에게 좋은 위치였다. 보통 일꾼 정찰은 가로 방향으로 먼저 가기 때문에, 세로 방향이면 프로브가 정찰에 성공할 확률이 매우 낮기 때문이다.
여유있게 입구를 막은 임요환 선수. 마린을 뽑지 않고 팩토리를 올린다. 한편 늦게 상대 위치를 파악한 박정길 선수는 기요틴에서 프로토스의 정석, 즉 원게이트-빠른 사업드라군을 준비한다. 입구에서 서플라이를 두드리는 프로브를 통해, 임요환 선수가 마린을 생산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바카닉도 마린벌처도 아니라는 것을 파악한 이상, 강력한 초반 압박을 시도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그러나 정확한 타이밍에 생산된 탱크와 빠른 시즈모드 업그레이드를 통해 임요환 선수는 박정길 선수의 압박을 막아내고, 이미 스타포트가 올라가고 있었다. 전형적인 원팩 원스타 투탱크드랍 빌드. 드랍쉽의 예상 경로에 위치해 있던 프로브를 절묘하게 피해 임요환표 드랍쉽이 출동한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박정길 선수의 전략은 빠른 사업드라군 이후 리버 활용이었다. 즉 셔틀이 이미 나와 있었던 것이다. 언덕을 이용한 탱크 견제가 여의치 않을 듯하고 박정길 선수가 드라군을 회군시키자, 임요환 선수는 무리하지 않고 드랍쉽을 되돌린다.
여기서 생각해 볼 점 한 가지. 투탱크드랍 빌드의 단점이 무엇인가?
일단 첫 번째는 지상군 물량이 부족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가스가 부족해 벌처의 속도 업그레이드와 마인 업그레이드가 늦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첫 번째 단점은 오히려 박정길 선수 스스로가 보완해 주었다. 리버 테크를 올림으로 해서 박정길 선수의 지상군 물량 역시 그다지 많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임요환 선수는 두 번째 단점, 즉 [가스가 부족하다]는 명제를 정반대로 뒤집어 버린다. 즉 [가스가 부족하다]라는 명제가 [미네랄이 남는다]로 바뀐 것이다.
남는 미네랄을 어디다 활용하면 좋을까? 이미 리버까지 나와 있는 마당에 마린을 뽑는 것은 최악의 선택이다. 벌처를 뽑는 것은 차선책이나, 그 이전에 벌처를 뽑을 팩토리 자체가 부족하다. 팩토리 역시 가스를 100이나 소비하는 건물이기 때문이다. 미네랄이 남는다 해서 탱크 대신 벌처를 뽑다가는 지상군에 훌러덩 밀릴 공산이 크다. 더군다나 벌처의 업그레이드도 아직 제대로 된 상태가 아니었다.
임요환 선수는 최상의 선택을 감행한다. 즉, 가스는 모두 드랍쉽과 탱크에 투자하며 남는 미네랄로 저그식 몰래멀티를 가져간 것이다. 12시 30분 위치에 시도한 첫 번째 몰래멀티는 금새 들켜 버렸지만, 2시 위치에 시도한 두 번째 몰래멀티는 안정적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멀티가 늘어난다 해도, 그 자원이 병력으로 환원되려면 많은 시간이 걸린다. 일단 서플라이와 팩토리를 건설해야 하고, 유닛을 생산해야 하는 것이다. 그 동안의 시간을 버는 것이 테란의 선결 과제. 임요환 선수가 택한 방법은 바로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드랍쉽이었다.
탱크를 싣고 두 기씩 짝을 지어 날아다니는 드랍쉽은 프로토스를 지지리도 괴롭히기 시작한다. 본진 미네랄 뒤에 떨어져 프로브를 괴롭히다가, 어느 순간엔가 세 번째 멀티를 견재하기 시작하고, 급기야는 언덕 드랍 후 넥서스 일점사를 통해 박정길 선수의 첫 번째 멀티를 파괴해 버린다. 박정길 선수 역시 드라군과 셔틀을 동원해 방어에 나서나 드랍쉽의 기동성을 미처 따라갈 수 없었으며 중간에 셔틀마저 레이스에 잃는다.
지속적인 드랍쉽 게릴라를 통해 시간과 자원 양면에서 이득을 많이 본 임요환 선수. 2가스의 힘을 바탕으로 해 그의 팩토리는 늘어나 있었으며, 이미 세 번째 앞마당 멀티마저 돌아가고 있었다. 팩토리 수가 늘어나고 벌처의 업그레이드가 끝나자 이제 벌처가 활개를 치기 시작하고, 마침 멀티 지역으로 이동하던 프로브마저 대거 잡아주며 경기는 임요환 선수 쪽으로 기울어진다. 그리고 멀티 견제를 견디다 못한 박정길 선수가 파일런과 포지로 입구를 틀어막아 버리자, 마인을 심으며 파일런과 포지 사이를 뚫고 지나가는 엽기적이자 환상적인 플레이를 보여 주기도 했다.
그리고 동시다발적으로 수많은 커맨드센터를 건설하는 임요환 선수. 박정길 선수 역시 드라군을 동원해 멀티 견제에 나서지만 이미 늦은 타이밍이었다. 잔뜩 축적한 자원을 병력으로 환원한 임요환 선수가 치고 나가자, 견디지 못한 박정길 선수는 GG를 치고 만다.
이번 경기는 기동력이 힘을 누른 경기였다. 임요환 선수는 초반부터 지속적으로 많은 드랍쉽을 활용, 끊임없이 박정길 선수의 멀티를 견제해 주었다. 덕분에 박정길 선수가 생산한 드라군들은 하늘만 쳐다보며 드랍쉽을 쫓아 어정어정 걸어다니기만 할 뿐이었다. 임요환 선수의 견제가 얼마나 지독했는지, 박정길 선수가 시도한 제대로 된 공격은 오직 한 번 뿐이었으며 그나마도 별 피해를 주지 못했다.
드랍쉽이 공중을 활개친 이후, 그 역할을 대신한 것은 업그레이드 벌처였다. 벌처와 드랍쉽의 공통점은 그 기동성에 있다. 즉 상대적으로 소수인 병력으로도 상대의 다수 병력을 묶어놓을 수 있는 것이다. 또한 프로브 사냥을 통해 자원적인 우위를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
박정길 선수는 임요환 선수의 이런 플레이에 어떤 식으로 대처해야 했을까? 어차피 리버를 위해 로보틱스 서포트베이까지 건설한 이상, 셔틀의 속도 업그레이드를 해 주고 다수 드랍쉽에 맞서 셔틀을 운용해야 했다고 본다. 2셔틀에 4질럿 2드라군을 싣고 다니면 2드랍쉽 4탱크를 막지 못할 이유가 없다. 속도 업그레이드가 되어 있으면 상대의 레이스 공격으로부터 벗어날 수도 있고, 셔틀을 하나 둘 추가해 드라군을 늘리면 소수 레이스는 도망다닐 수밖에 없다. 박정길 선수가 그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이 다소 아쉽다. 하기야 관전자의 입장에서도 임요환 선수의 플레이는 정신이 멍해질 정도였다.
과거부터 계속 지적받아 온, 임요환 선수의 물량 부족. 하지만 오늘 경기는 그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 자신의 단점을 보완한 훌륭한 경기였다. 그리고 마인 매설로 파일런과 포지 사이를 뚫고 가는 플레이는 그의 천부적인 센스를 여지없이 보여 주었다. 앞으로도 그의 훌륭한 플레이를 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
-글곰 이대섭. www.gomnara.com / blog.naver.com/sipdae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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