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평범한 하루였던 그 날 젊은 남자가 물리치료실로 들어왔습니다. 차트에는 산재로 체크됐었고 제가 치료를 맡게 됐죠.
그 남자를 보는순간 제 동생이 떠올랐습니다 . 엄청 마른체구에 크지 않은 키, 귀염상인 얼굴에 동글동글 안경을 썼고 무엇보다 생산직이라는 직업까지.. 주 야간으로 일하는 동생이 항상 걱정이었는데 그 남자를 보자 저도 모르게 입에서 탄식이 나오더군요.
1:1로 이루어지는 치료는 참 어색합니다. 그때는 졸업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저는 말주변도 없어서 치료를 할때는 필요한 대화 이외에는 침묵이지만 그 남자를 치료 할때는 달랐습니다. 일단 이상하게 마음이 편했거든요. 그렇다고 수다스럽지도 않았고 그 남자도 딱히 말이 많은 편은 아닌지라 형식적인 대화도 부담스럽지 않을만큼 편했습니다. 그렇게 3일쯤이 됐을때 그 남자가 취미가 뭔지 물어봅니다. 갑자기?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냥 하는 말이겠거니 싶어서 게임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게임을 좋아합니다. 중학생때 혼자 스타리그도 보러다녔고 잘 하지는 못하지만 스타도 종종 했었고 그때는 한창 와우를 하던때라 그렇게 대답하니 그 남자가 저를 빤히보다가 빵 터지며 웃더군요. 제 머리위로는 온통 물음표가 떠있었고 왜웃어? 하는 제 표정이 보였는지 그 남자가 대답합니다. 너무 의외라구요. 게임 좋아하는 여자 많다고 했더니 제 분위기가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다네요.
그때 제 머리가 허리까지 왔었고 생머리는 관리하기 귀찮아서 살짝 펌을 했었는데 그런 모습이 그 남자가 생각하기에는 꽂꽂이가 취미인.... 여자로 보였었나 보더군요. 그 대화 이후로 이 남자는 이것저것 물어봅니다. 무슨게임 좋아하는지 좋아하는 프로게이머가 누군지 어떤경기가 제일 재밌었는지 등등 시시콜콜한 얘기도 하더군요. 그 후로 며칠 뒤 이 남자가 오늘 시간있냐고 묻습니다.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인데? 하는 생각에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니 커피를 사주고 싶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카페에서 이 남자가 5분을 말없이 커피잔을 바라보더니 고개를 들어 저와 마주하고는 저를 좋아한다고 고백합니다. 제게 여러 사정이 있어서 바로 받아들이진 못했지만 저도 그 남자가 좋았기에 고백을 받았고 그렇게 만나게 됐어요.
그 남자가 지금 제 옆에 있습니다. 문득 생각이 나서 자기가 전에 나한테 이브날에 고백했다고 하니 자기가 그랬냐며 웃더군요크크크크 그러면서 그딴건 중요한게 아니야 하고 모른척하네요 크크크크크 맞아요. 그딴건 중요한게 아니죠.
사랑하는 남편과 그런 남편을 꼭 빼닮은 우리 아들.. 그리고 이 남자 둘을 너무 사랑하는 저.. 이렇게 세사람이 지금 함께 있고 행복하다는게 중요한거겠죠. 오늘은 그날의 추억으로 더 행복한 밤이네요.
피지알 여러분들 메리크리스마스 입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