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관계나 돈을 들여야 하는 것 외의 일로 제일가는 소소한 즐거움은 더는 소용이 없지만 멀쩡해서 구석에 처박아 두었던 것들의 용처를 발견했을 때 생긴다. 43인치 모니터를 사면서 필요 없어진 27인치 모니터가 보조 모니터 역할을 하게 된다. 한번 더 읽게 될 리 없지만 증정 문구가 들어 있어 밖에 내놓기는 좀 그런 논문들과 사용하나 안 하나 차이를 느낄 수 없는 거실용 오디오 진동 방지 고무 받침대 (매직 헥사)가 43인치 모니터의 위치를 높이는데 동원된다. 쫄깃한 반탄력이 마음에 들었지만 텐키리스여서 비행시물게임용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던 키보드가 버튼이 많은 쓰로틀과 조이스틱을 마련하면서 다시 책상위로 올라온다. 텐키리스만큼 여유 공간이 생겨 조이스틱을 놓는 위치가 더 적당해지기도 했다. 거금을 들여 마련했지만 당시에는 날씬했던 몸에 비해 좀 크게 느껴져 (둔부와 상체를 탄탄히 감싸는 느낌이 없어) 3만원 자리 의자에 의해 대체되었던, 다리 높이 조절이 가능한 시디즈 의자가 불쑥 높아진 메인 모니터 화면에 맞춰 시선을 높이는데 이용된다. 버렸으면 누군가 금방 가져갔겠지만 한달 수입이 100만원도 안될 때 40만원 가까이 들여 마련한 데다 너무나 멀쩡한 지라 버릴 수는 없었다. 마침 체중이 10kg이나 불어나 있어서 그런지 이럭저럭 앉을만하다. 허리 바로 아래와 등받이 사이에 애들용 베개같은거 하나 받치면 될것 같다. 마침 한달전 새로 마련한 탁자 다리가 좀 높은 편이어서 의자 다리가 상당히 높아졌어도 타이핑하는데 불편하지 않다. 아마 나한테 맞지를 않아 관계를 끊은 사람도 이렇게 나의 변화에 따라 나에게 맞는 사람으로 재발견될 수 있을 것이다. 아마 내가 애초 기대했던 것을 내게 주지를 못해 관계를 끊었던 사람도 이렇게 내게 새로 생긴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사람으로 재발견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래 본적이 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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