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들어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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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pgr 회원번호는 242번입니다. 즉, 242번째 회원이라는 것이죠. 아마 온게임넷에서 pgr이라는 사이트의 존재를 언급하고 나서, 큰 시간차 없이 가입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뭐 물론 근 20여년 전의 일인데다, 가입한 시간이 새벽 5시 경이었으니, 그 날 따라 부어라 마셔라 놀고 들어와서 가입했던 것인지 어떤지 솔직히 기억이 나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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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창기에는 그냥 들어와서 그 날 놓친 스타 중계 결과나 경기 반응을 확인하는 수준으로 pgr 생활을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나마도 즐겨찾기에는 한 동안 pgr이 없었고, 2002년에는 개인사 문제와 월드컵이 겹쳐서 pgr에 접속하지 않는 날이 더 많았습니다. 제가 본격적으로 pgr 라이프를 시작했던 건 아마 07년 경 부터인 것으로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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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 낙방 고시생의 pgr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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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pgr은 은근히 현역 법조인들이 서식하고 있는 사이트이기도 합니다. 꽤 오랜기간동안, 어쩌면 지금까지도 금지어 취급을 받았던 퍼 모 운영진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말이죠. 특히, 스타 좋아했던 고시생들이 시간이 흘러 pgr 활동을 계속하거나, 최소한 눈팅을 하고 있는 사례는 꽤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저만 하더라도, 굳이 글을 쓰거나 댓글을 달지 않을 뿐 pgr에 정기적으로 들어와서 댓글만 다는 현역 법조인이라든가, 한 때 나름 유명세를 탔던 XX군(제 대학 동기입니다)이라거나, X별님 같은 분들의 댓글을 읽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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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처럼 글에서 대놓고 저 현역 법조인입니다... 하는 회원들은 위에서 제가 언급한 분들 외에는 몇 분 되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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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를 제대하고 나서, 07년이면 이미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은 제가 하지 않는 게임이 되어버린지 오래였습니다. 그 때 쯤의 스타는 제겐 그저 보는 게임일 뿐, 예전 헌터라든가, 로스트템플에서 밤을 새워가면서 게임하던 때는 이미 지난지 오래였으니까요. 다만, 전역 이후에 시험을 접고 취업을 준비하던 때의 pgr은 제겐 사회 전반적으로 이슈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읽어보는 공간이기도 했습니다. 아마, 그 때부터 제가 열혈 키보드배틀을 벌이고, 지치지 않는 20대의 체력을 무기로 버티는 경우가 꽤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특히나 이명박 대통령 취임 이후로, 그가 제 정치적 성향과 반대편이었기에 더더욱 그랬던 것 같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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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키보드 배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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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을 돌이켜보면, 분노 게이지가 한계를 넘었던 시절이지 않나 싶습니다. 물론 유게에 뻘플도 달기도 했었습니다만... 제 주된 서식지는 pgr자게였었고, 종교나 정치 관련된 글에서 키보드 배틀을 서슴지 않았었지요. 지금이야 생업이 있어서 일에 치이는 시기, 내지 일에 치이는 시즌이 오면 활발하게 댓글을 달지는 않습니다만... 그 때야 그런 것도 없었고, 사실상 백수였으니 시간과 에너지도 넘쳐 흘렀습니다. 정말 가리지 않고 온갖 이슈에 대해 댓글을 달고 토론(을 빙자한 키보드배틀)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절 그 키보드 배틀러의 저는, 좀 재수가 없었습니다. 벌점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논리와 팩트에 기초하지 않은 뻘플에는 사정없는 융단폭격과 더불어서, 지치지 않는 체력까지 겸비했던 시절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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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키배 끝에 이거 답이 안 나올 각이다 싶으면 '아 네 뭐 그러시든가요' 하면서 접어버리거나 그냥 도망가지만, 그 땐 그런 거 없었습니다. 2박 3일 날을 새는 한이 있더라도 키배는 이기고 봐야 했습니다. 모 사이트에 유명한 짤방이 있죠 아마? 키배에서 이겨도, 져도 똑같이 바보가 된다던데, 저는 그래도 기왕이면 이긴 바보가 되고 싶은 생각에 줄기차게 댓글을 달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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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동계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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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제 키보드 배틀러 생의 끝은 2018년 평창 올림픽 때였습니다. 여성 매스스타트 경기에서의 모습을 보고 저 역시 분기탱천했었죠. 그렇게 댓글을 달다가 이후에 밝혀진 이야기들을 듣고 '나 바보짓 했네'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그 이후로는 한 동안 pgr에 발길을 멀리했고, 키보드 배틀도 피하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뭐 잘났다고 키배질이나 하고 있나 하는 현타?가 왔다고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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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엔 그냥 이 놈의 pgr 탈퇴하고 만다.. 뭐 그렇게 댓글을 썼는데.. 막상 탈퇴할까 생각하자니, 제 회원번호가 아쉽더라고요. 242번이면 그래도 나름 오래된 회원인데 굳이 이 사이트를 떠야 하나? 뭐 그런 생각이 들어서요. 그래서 비겁하게(?) 지금까지도 pgr에 들르고 있습니다. 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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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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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슬슬 댓글을 달고,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한 때 옆 동네에서 현역 법조인으로서 생각나는 것들, 알리고 싶은 것들을 적어가면서 였습니다. 아무래도 회원 분들의 계층이 겹치기 때문이겠지만요. 아나필락시스 봉침 사건에 관하여 옆 동네에(지금은 제가 탈퇴하면서 지웠습니다만) 썼던 글을 기억하시는 분이 계시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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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한 동안 눈팅만 하다가 본격적으로 돌아올 때가 현 여당의 삽질이 본격적으로 드러나던 때였습니다. 제 글 읽어보신 분들은 아시겠습니다만... 저는 상대적으로 친 민주당 쪽이긴 합니다만 조국 사건 이후로 짜게 식어버린 입장이거든요. 와.... 이거 실드를 치고 싶어도 못 치겠네? 싶은 사건들도 있었던 반면에.... 까는 거야 그렇다 치는데 이런 건 좀 오바지? 싶은 글들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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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댓글 분위기가... 까여야 마땅한 이슈는 제가 참전(?)하기엔 좀 조심스러웠습니다. 나라도 까고 싶은 경우야 늘 있었으니 말이죠. 굳이 나까지 말을 더하지 않아도 되겠더라고요. 그럼에도 굳이 한 마디 덧붙여서 '나도 까는' 케이스가 있긴 했습니다마는... 뭐 그건 정말 일부 이슈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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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반대로, 이건 좀 불필요하게 까이는데? 하는 것들도 있었습니다. 그런 글을 읽고 있자니, [아니 다른 걸로 까도 충분할텐데 굳이 이런 걸로 이슈몰이를 하다니?]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가 10년에 한 번 우승하는 타이거즈를 버리지 못하는 것처럼, 조국 사태로 짜게 식은 이후에도 민주당을 아예 외면하지는 못하는 것과 비슷하달까요. 해서, 그 이후로도 꾸준히 댓글을 달고, 예전 키배러의 습관을 살려서, 키배를 두려워하지 않는 파이터로 살고 있습니다. 다만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2박 3일 가까이 키배를 계속하는 지구력이 좀 덜해진 것 정도가 아닐까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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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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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pgr에 암약하는 법조인들 수가 꽤 될 것이라는 말씀을 드렸죠. 제 주변의 법조인들도 pgr의 자게와 유게는 꽤 눈팅하고 있습니다. (아마 제 글도 그들의 시야에 포착될 겁니다.) 단톡방에서 pgr유게와 자게 링크를 올리는 이들은 여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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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정치 이슈이든 그와 무관한 사회적인 이슈든 간에... 제 주변의 법조인들은 공개적으로 의견을 제시하고, 댓글을 다는 것을 저어하더군요. 뭐 저야 그들과는 다르게, 딸린 식구도 없으니 글을 쓰고, 피드백 할 시간도 충분하니 좀 다르긴 할 겁니다. 흐흐. 아마 제 주변 지인들은 그런 시간이 허여되지 않으니 저처럼 활동하지는 않는 것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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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법에 관련된 이슈이면서 저도 흥미가 있는 사안 같으면 직접 글을 쓰거나, 예전 열혈 키보드 배틀러의 기질을 살려 놀아보자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다만, 20여년의 시간이 흐른 다음이라 체력이 이걸 허락해 줄지 의문이기는 합니다만.... 직업인으로서의 지식과, pgr에서 부딪히는 이야기 사이의 간극을 살려서... 언젠가 우리 사회 대중들을 위한 법 교양서 정도는 한 번 쓸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습니다. 현역 법조인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가, pgr러를 비롯한 일반 대중들에게는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이 사이트에서 키배하다가 배웠기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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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나와 세계를 이어주는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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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pgr은 그 때나 지금이나... 내 주관이 과연 현 시대를 따라가고 있는지를 점검하는 창이기도 합니다. 단적으로, 페미니즘에 대한 제 주관은 굳이 이야기하자면 (아마도) 이준석 대표의 그것과 비슷할 겁니다. 페미니즘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극단의 페미니즘은 우리 사회에 해를 끼친다는 정도.. 일겁니다. 그 때문에 페미니즘에 관한 글을 한 번 썼다가, 숱한 반론과 이의제기를 마주쳐야 했던 일도 있었습니다. 뭐 제가 당뇨병에 시달리는 스윗한 남자는 아닌지, 아니면 글에 설득력이 부족했는지 다시 생각을 해 보게 됐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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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지금 이 공간이 2030남성들이 서식하는 공간으로 좁혀지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은 있습니다. 그게 아니길 바랍니다. 저는 아직도 이 pgr이라는 공간이 스타에 관심있는 사람들의 커뮤니티로 오래 남아있으면 좋겠습니다. 다만 그건 제 욕심에 불과할 것이고... 스타크래프트라는 공감대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롤과, 그 이후의 게임으로 바뀌어 간다고 하더라도, 2030남성들 뿐만 아니라, 그 이상의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이는 공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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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야만 내가 확증편향에 빠져서 빼도박도 못하는 꼰대가 되는 시간을 최대한 늦출 수 있을 테니 말이죠. 아니 뭐, 사실 이미 꼰대가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꼰대가 되어버린 것이야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어떤 이야기가 오가는지를 아는 꼰대와, 그것조차 모르는 꼰대는 새끼 손톱밑의 때 만큼이라도 차이는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그렇게라도 오늘날의 우리 사람들이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는 공간으로, pgr은 제게 그런 의미로 남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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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맺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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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키보드를 두드릴 힘도 없는 나이까지 살 수 있다면, 그 때의 pgr이 제게 어떤 의미일지 저 자신도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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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그 때에도 기력이 허락한다면 여전히 댓글을 달고, 키보드 배틀을 저어하지 않는 회원으로 남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