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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6/08/23 21:05:35
Name 눈시BB
Subject [일반] 청일전쟁 - 풍도 해전 (수정됨)
https://pgr21.net/?b=8&n=45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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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글... 입니다 -_-; 3년만이군요. 매년 다시 하자하자 해놓고 손 놓고 있었으니... 간만에 쓰는거니 전 글들과 중복되는 부분도 그냥 넣겠습니다.
청나라 말, 태평천국 운동이 일어납니다. 하지만 청군은 이걸 막지 못 합니다. 열강이야 강했다 치더라도 국내의 반란조차도 막지 못 하는 상황이 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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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청나라를 구한 이가 바로 증국번, 그는 자신의 고향 비내리는 호남후난(湖南) 성으로 가서 의병을 조직하니, 이를 상군(湘軍)이라 했습니다. 또한 자신의 제자에게도 의병을 만들게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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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이름은 이홍장이었죠. 그도 자신의 고향 안후이(안휘) 성으로 가서 의병을 만드니, 이를 회군(淮軍)이라 불렀습니다.

+) 각 이름들은 그 지역을 말하는 다른 명칭이라 합니다. 위에 지도가 있지만 좀 쉽게 다가오게 설명드리자면, 후난성은 유비가 형주 얻고 남부 4군을 먹었던 그 쪽이고, 안휘성의 수도로 이홍장의 고향이 바로 합비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그가 만든 의병이 이후 가장 강력한 군벌이 되었다는 거겠죠. 그는 양무운동을 이끌었고, 회군에도 서양식 제도를 도입하면서 키웁니다. 청을, 베이징을 지키는 가장 큰 힘이 됐겠지만, 시작이 그랬던만큼 사병의 성격이 강할수밖에 없었죠. 이 북양 군벌은 가장 강했고, 쑨원(손문)도 위안스카이(원세개)와 협상해야 했습니다. 장제스(장개석)이 군벌들을 잡을 때도 가장 큰 적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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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함

한편, 1871년에 청의 해군도 근대식으로 재편됩니다. 4개 수사가 나왔는데, 보통 함대라고 바꿔 부릅니다. 상하이의 남양함대, 복건함대, 광둥함대, 그리고 산둥성 웨이하이의 북양 함대였죠. 원래는 남양함대가 가장 강력했지만, 청불전쟁으로 (복건함대도 같이) 망합니다. 한편 북양함대는 시작은 가장 약했지만, 이홍장이 북양대신에 임명되면서 급성장합니다. 청불전쟁 때 이미 남양함대와 비슷해졌고, 남양함대가 망하자 최강의 함대가 되었죠. 그는 영국과 독일에서 군함을 사들였고, 여기엔 7천여톤급 철갑함 정원과 진원이 포함돼 있었습니다. 강력한 방어력과 12인치 주포를 탑재해 공격력도 강한, 열강의 주력함과 비교해도 그리 딸리지 않았습니다. 중국에서 가장 강한 함대는 물론이고 아시아 국가들 중 가장 강한 함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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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츠시마함

일본도 해군을 계속 키우고 있었지만 이걸 따라갈 순 없었습니다. 일본의 예산은 한계가 있었으니까요. 그 예산 7천만엔 중 2천만을 조선을 먹기 위해 쏟아붓고 있었지만 말이죠. -_-; 여기에 일본의 군항도 그 정도 전함을 감당할 수 없었다 합니다. 이 때문에 프랑스에서 에밀 베르텡이란 설계사를 불러 방법을 찾게 하는데... 중형함에 대구경포를 싣고, 조함을 잘 해서 2척 1조로 상대하자는 거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4천여톤급 순양함을 프랑스에서 사들였는데, 사기로 한 4척 중 3척만 의회에서 통과됩니다. 마츠시마, 이츠쿠시마, 하시다테 세 척이었죠. 이를 삼경함三景艦이라 불렀다 합니다. 여기에 실린 주포가 무려 12.5인치, 정원급이 12인치라는 걸 생각하면 엄청난 과무장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쏘는 건 물론 포를 회전하는 데에도 배가 휘청거릴 정도였다 합니다. 실제 해전에서도 별 역할을 못 했고 말이죠. 이후 일본은 영국으로 상대를 바꿨고, 화력이 밀리니 기동력을 살리자고 생각해 고속 순양함을 사들입니다.

이 전략은 잘 맞아떨어집니다. 해전에서 중요한 건 배의 크기만이 아니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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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년 전인 1893년, 동학의 보은집회 당시 동학군이 서울로 올라오면 어떻게 막을지 의논하다가 나온 말입니다.

고종 : 서울의 군사는 아직 파견해서는 안 될 것이다. 다른 나라의 군사를 빌려 쓰는 것은 역시 각 나라마다 전례가 있는데, 어찌 군사를 빌려다 쓰지 않는가?
심순택 : 그것은 안 됩니다. 만일 쓴다면 군량은 부득이 우리나라에서 대줘야 합니다."
조병세 : 군사를 빌려 쓸 필요는 없습니다.
정범조 : 군사를 빌려 쓰는 문제를 어찌 경솔히 의논할 수 있겠습니까?

고종 : 중국에서는 일찍이 영국 군사를 빌려 쓴 일이 있다. (태평천국 때겠죠)
정범조 : 이것이 어찌 중국 일을 본받아야 할 일이겠습니까?
고종 : 여러 나라에서 빌려 쓰려는 것이 아니라 청 나라 군사는 쓸 수 있기 때문에 말한 것이다.
정범조 : 청나라 군사를 빌려 쓰는 것은 비록 다른 여러 나라와는 다르다고 하여도 어찌 애초에 빌려 쓰지 않는 것보다 더 나을 수 있겠습니까?

 교조(최제우) 신원운동이 규모도 커지고 정치성을 띄게 되었을 때였죠. 고종의 경계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보여주지만, 아직 제대로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외국군을 불러오자고 한 겁니다. 에라이 이 군밤왕아라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나름의 속사정도 있었습니다. 고종에게는 임오군란과 갑신정변의 기억이 있었습니다. 거기에 흥선대원군은 심심하면 고종을 노리고 있었고, 동학에도 배후에 그가 있을거라 생각한 것이죠. 전봉준은 대원군의 식객 출신이었고, 1차 봉기도 대원군의 입김이 들어간 거라는 설이 있습니다. 언제 또 쿠데타를 노릴지 모르는데 서울의 군사를 뺄 순 없다는 거겠죠. 

 뭐 이게 얼마나 정상참작이 되든간에, 고종의 선택은 최악의 결과를 부르게 됩니다.


청군은 아산만에 상륙합니다. 반면 일본군은 제물포에 상륙했죠. 그들의 상륙지에서부터 이미 의도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전주를 점령하고 승승장구하던 동학군은 외국군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빠르게 전주화약을 맺습니다. 조선 정부도 양국 군대의 철수를 요구하지만, 일본은 그러기는커녕 내정간섭을 하며 병력을 증원시켰죠. 일본도 처음엔 둘이 함께 조선에 내정간섭을 하자는 식으로 나왔지만 청은 거절했고 철군을 요구합니다. 일본은 거부했고, 청이 러시아와 영국의 힘도 빌렸지만 역시 듣지 않습니다. 영국이나 러시아도 적극적으로 나서진 않았지만요.

양력 7월 23일(음력 6월 21일), 일본은 경복궁을 점령했고, 흥선대원군을 다시 집권시킵니다. 그저 명목상일뿐 실권은 그들이 만든 친일내각에 있었죠. 그들의 요구야 뻔했죠. 청으로부터의 독립, 이렇게 해서 일본군은 조선에서 청군을 몰아낼 권리를 얻게 됩니다. 조선군도 일본군을 돕구요.

+) 어쨌든 명분은 조선을 독립시켜주고 근대화시켜준다는 것 -_- 네 이렇게 해서 갑오개혁이 나오게 됩니다.

그 직전, 일본 해군은 최초로 연합함대를 만듭니다. 태평양 전쟁 때 일본해군의 대명사나 다름없던 연합함대의 시작이었죠. 그렇게 7월 25일, 교전이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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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도는 아산만 근처의 섬입니다. 행정구역상 경기도 안산시에 소속돼 있죠. 일본군이 계속 증원되고 전쟁을 벌이려는 게 확실해지면서, 청도 땅으로 바다로 병력을 증원하고 있었습니다. 어느새 조선의 일본군은 팔천여명, 청군은 사천이 안 됐고 북쪽은 일본군이 막고 있었습니다. 나름 대군이 압록강을 넘어 오고 있었지만, 충청도의 청군을 증원하려면 바다가 빨랐고, 바다로 온다면 바로 이 곳이었죠.

이홍장은 영국 상선 3척을 빌려 병력을 수송하려 했습니다. 영국배가 좋기도 했겠지만, 그보단 영국 국기를 단 배를 보내서 일본을 위압하고, 공격받을 가능성을 줄이려는 거였죠. 이를 호위하기 위해 제원, 광을, 위원함을 보냈죠. 이 중 제원함과 광을함이 1차 수송을 마치고 돌아가는 중 일본 해군과 마주치게 됩니다.

그들은 1유격대 소속 요시노, 아키츠시마, 나니와였습니다. 일본이야 청군에서 먼저 쐈다고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낮습니다. 일본군은 3~4천톤급이었고 제원함은 2천여톤급, 광을함은 천톤급이었거든요. 전투가 시작하자마자 청군이 도망치려 한 모습 등을 보면 청군이 먼저 공격했을 가능성은 낮죠. 거기에 나니와의 함장도 자신들이 먼저 공격했다고 일기에 썼다 합니다. 선전포고도 안 하고 공격하는 첫걸음입니다. 뭐 이 경우는 선전포고라는 요식행위를 하지 않았을 뿐 두 차례나 청군에게 조선에서 나가라는 절교선언-_-;을 했으니 다르게 볼 여지는 있습니다.

제원은 단 몇분만에 큰 피해를 입고 도주합니다. 광을 역시 싸우다가 도주하지만 좌초돼버렸고, 화약고가 폭발해서 불타버립니다. 생존자는 영국 측에서 소수나마 구해냈다고 합니다.

이렇게 빠른 승리를 거둔 일본군은 제원을 추적합니다. 하지만 곧 그보다 더 중요한 목표가 나타났죠. 영국 상선 고승과 포함 조강이었죠. 고승에는 약 천이백여명의 청군이, 조강에는 대포 등 물자가 있었습니다. 보내주면 안 되는 상대였죠. 문제는 고승호에 휘날리는 영국 국기 유니언 잭이었습니다.

일본군은 우선 배를 정선시켰고, 조사하겠다고 합니다. 사실상 항복하라는 거였죠. 이 때 조강은 도망가지만 아키츠시마의 추격을 받아 침몰합니다. 일본군의 주력 고속순양함의 속도는 23~25노트, 속도만으로는 세계 최고였습니다. 반면 청군은 10노트 중반이었죠. 조강에 있는 서양인 승무원들은 일본군의 요구에 따르려 합니다. 하지만 청군들은 이걸 거부했고, 돌아가자고 했죠. 항복이냐 아니냐가 걸린 상황에서 네 시간이 흐릅니다. 청군은 항복하지 않았고, 일본군은 공격을 결심하죠.

전투는 30분만에 끝납니다. 수송선이 뭘 할 수 있었겠어요. 일본군은 침몰된 배에서 선장을 비롯한 영국인 일곱명과 독일인 세명을 구한 후 떠납니다. 천이백여명의 청군 중 독일 등의 서양 배에 구출된 게 250~350여명이라고 합니다.

이 사건은 나름대로 국제사회에 파문을 일으킵니다. 중립국, 그것도 세계최강 영국 배를 침몰시킨 거였으니까요. 영국의 여론은 들끓었고, 일본은 이에 반론을 했죠. 중립국이라 해도 적의 병력을 수송하는 이상 일본의 요구가 정당했다는 거였습니다. 거기에 선장을 비롯한 영국인들은 일본군의 요구를 들으려 했고 청군이 거부했다는 것, 즉 당시 상황은 청군이 영국 상선을 불법 점거한 상태라는 거였죠. 이걸 위해 네시간을 고민한 거였고, 서양인 승무원들을 구출한 거였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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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나니와의 함장이 그 유명한 도고 헤이하치로입니다. 러일전쟁에서 그랬듯, 이 때도 그는 "황국의 흥망"이 걸린 전장에 있었습니다.
영국에 유학을 갔다 왔고, 국제법에 빠삭했죠. 그는 이 풍도 해전에서 일본군이 선제공격한 게 맞지만 모두 정당했다고 주장합니다.

청은 이걸 통해 영국이 일본과 척을 지길 원했지만, 상황은 반대로 흘러갔습니다. 영국 내에서 이 공격이 정당했고 국제법상 합법이었다는 쪽으로 여론이 흐른 것이죠. 판결에서도 해전과 침몰의 원인이 청군에 있다고 내려졌구요. 애초에 만국공법, 국제법에서 이 상황은 참 애매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법이 확실하더라도 힘 가진 자의 결정으로 가게 되죠. 피해자인 영국조차 일본 편을 드는 상황, 청이 뭘 할 수 있었겠습니까.

청은 나름대로 영국에 기댔지만, 영국은 그럴 생각이 없었습니다. 겉으로는 청을 돕는 척 했지만, 뒤로는 일본과 비밀 협약을 맺고 있었죠. 양쯔강까지 전쟁이 확대되지만 말게 하라는 거였습니다. 당시 영국에게 중요한 건 러시아의 세력 확대를 막는 것, 동양의 경우 거기 적합한 건 청이 아니라 일본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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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풍도 해전은 끝납니다. 일본군의 피해는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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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의 청군 병력이 사천여, 한양과 경기도의 일본군 병력이 팔천여였습니다. 일본군이 확실히 유리했죠. 청군의 주력과 싸우기 전에 이들을 처리해야 했습니다.

조선주둔군 사령관 오시마 요시마사는 병력의 절반을 충청도로 보냅니다. 청군은 아산에 고립될 것을 우려, 북상해서 현 천안시 성환역 근처에서 일본군에 맞서죠. 전장은 월봉산, 투입된 청군의 병력은 이천여였습니다. 일본군이 모두 투입됐다면 병력면에서 일본군의 확실한 우세였겠죠. 29일, 전투는 다섯시간만에 끝납니다. 육박전으로 가면서 청군은 전의를 잃고 도주했다고 하네요. 청군의 사상자는 200~500여명이었고 일본군은 80여명이었다고 합니다.

+) 그런데 이 전투를 치른 섭사성과 사령관 엽지초는 이홍장에게 승전이라고 보고했다고 합니다. (...)

일본군은 승리했지만 청군을 추격하진 못 합니다. 쉽게 이겨서 적의 계략으로 봤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보급의 문제도 컸습니다. 경기도에서 충청도까지 진격하는 데만도 일본군의 보급이 버티질 못 했거든요. 덕분에 청군은 도주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일본군이 있는 경기도로 갈 순 없었죠. 충추부터 춘천까지 동쪽으로 빙 둘러서 힘들게 도주했다고 합니다. 목표는 평양, 도주를 시작한 8월 2일부터 20일간 이홍장은 이들의 소식을 들을 수 없었다고 하죠.

아무튼 한반도 남부에서의 청군의 저항은 이렇게 끝이 났습니다. 이홍장은 결전의 장소를 평양으로 결정했고, 병력을 끌어모읍니다. 일본도 평양을 공격하기 위해 병력을 모아야 했죠. 8월 1일, 양국은 정식으로 선전포고했고 조선을 건 결전을 준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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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조선인들이라고 가만히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조선땅에서 벌어지는 전쟁, 조선인들의 민심을 얻는 게 중요했죠. 양쪽 다 제대로 근대화되지 않았고, 철도는 물론 제대로 된 도로도 없는 상황에서 수송은 조선인들의 역할이 컸습니다. 이 점에서 일본군에 대해 얘기가 두 가지로 나뉩니다. 첫째는 역시 반감, 일본군에 대한 반감으로 일을 거부하거나 하더라도 대충 하고 도망치거나 했다는 얘기죠. 애초에 있었던 일본인에 대한 반감, 개화 과정에서의 반감, 감히 한양을 공격한 것에 대한 반감 등이죠.

반면 일본군이 군기가 잘 잡혔고 대민피해를 입히지 않아서 이미지가 좋았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이 역시 외국인들의 이야기나 매천야록 등 조선인들의 이야기에도 나와 있습니다. 뭐 둘 다 맞겠죠. 자기들에 대한 이미지가 안 좋은 상황을 이겨내고, 청에 맞서서 조선을 돕는다는 명분을 위해서는 좋은 모습을 보여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기에 청에 대해 가지고 있던 반감까지, 이런 점으로 일본에 우호적이거나 돕는 사람도 얼마든지 있었을 겁니다. 이걸 도와준 게 있으니, 청군이 대민피해를 많이 입혔다는 것이겠죠. 청군이 엉망일수록 일본군이 더 좋게 보일수밖에요.

+) 그렇다고 이들이 신사적인 군대라고 한다면... 일단 위에서 바다에 빠진 청군을 구조하지 않았죠? 앞으로 더 확실히 볼 사건도 있네요.

하지만 어느 쪽이 컸냐고 하면, 역시 반일, 항일 쪽일 겁니다.

동학군은 전주화약을 한 후 돌아갑니다. 외세를 끌어들일 순 없다는 것도 컸지만, 농민군이니 농사를 지어야 한다는 것도 컸습니다. 그리고 한 번 해산한 상황에서 다시 일어나긴 힘든 법이죠. 하지만 일본군이 본격적으로 움직이는 이상, 항일 움직임은 커져 갔습니다.

여기에 이들의 결심을 더 확실히 해 줄 인물이 나타났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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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에 의해 다시 정권을 잡은 대원군, 하지만 그가 꼭두각시일 뿐이라는 건 애초에 알고 있었을 겁니다. 몰랐더라도 곧 알게 됐겠죠. 그라고 일본의 간섭이 좋은 게 아니었고, 개화파가 이끄는 개혁이 좋은 게 아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은 청군과 싸우려 했죠. 어떻게 평가하든, 대원군은 그리 만만한 사람이 아니었죠.

그는 남으로 북으로 밀서를 보냅니다. 북의 청군에, 남의 동학군에 말이죠. 일본군을 남북으로 압박해서 잡자는 것, 그리고 친일내각을 없애자는 것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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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는 몰라도 2차 봉기에서 대원군의 영향이 있는 건 정설 수준입니다. 물론 이것만으로 남접과 북접이 합류해 십수만명이 일어난 2차 봉기를 폄하할 순 없을 겁니다. 항일이라는 목표가 그 어느때보다 확실해져서겠죠. 남북으로 협공한다는 대원군의 계획은 청군이 너무 빨리 무너지고, 농민군의 재봉기는 늦어지면서 실패했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농민군은 일어났습니다.

+) 참고로 1차 봉기에 일본의 입김도 들어갔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조선인인 척 변장해서, 혹은 조선의 개혁을 돕는 단체인 척 해서 동학 수뇌부에 접근하고 선동했다는 것이죠. 크게 통한 것 같진 않지만, 접근했고 얘기가 있었던 것 자체는 맞는 것 같습니다.

전장은 조선의 제 2도시 평양으로 옮겨집니다. 청군은 열심히 남하했고, 일본군은 열심히 북상했죠. 전장이 북쪽이 될수록 청이 유리했고, 시간이 흐를수록 청이 유리한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이긴 건 일본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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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편은 또 언제 나올 것인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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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 ne sais quoi
16/08/23 21:50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전 기다리고 있었어요~~ 흐흐 다음편도 기다립니다~
16/08/24 17:59
수정 아이콘
오래 기다리셨죠? ㅠㅠ;;; 이거 참... 감사합니다 ~_~
키스도사
16/08/23 21:51
수정 아이콘
잘봤습니다. 언제나 외세의 힘을 빌리면 결과는 최악으로 되는 군요..
16/08/24 19:41
수정 아이콘
최소한 그걸 감당할 국력과 외교력은 있어야 하는데 말이죠
16/08/23 22:42
수정 아이콘
전장이 북쪽이 될 수록, 시간을 끌 수록 청이 유리한데 청군은 왜 내려온 건가요!!!!
16/08/24 19:41
수정 아이콘
그그건 스포일러입니닷!
16/08/24 00:32
수정 아이콘
잘봤습니다! 다음편 빨리 써주셔야 합니다 헠헠+_+
16/08/24 19:41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닷 +_+) 노오력하겠습니다
펠릭스
16/08/24 00:59
수정 아이콘
어라 눈시님이다?

이제 게임이 시작되는군요.
16/08/24 19:41
수정 아이콘
네 접니닷?
ㅠ_ㅠ 그렇죠
카랑카
16/08/24 01:09
수정 아이콘
눈시님의 글이네요. 이런 글을 놓치면 안되죠.
16/08/24 19:42
수정 아이콘
크크 감사합니다~~
무무무무무무
16/08/24 06:43
수정 아이콘
10년을 팽팽 놀면서 허송세월한 댓가를 치를 때가 왔군요.
16/08/24 19:43
수정 아이콘
대가가 커도 너무 크지만 그게 국제정세죠... ㅠ
하심군
16/08/24 09:59
수정 아이콘
이 때의 싸움은 외세를 빌리느냐 마느냐를 떠나서 말그대로 먹느냐 먹히느냐의 싸움이라...요즘 중국에서 속속 나오는 19세기말~20세기초의 상황을 묘사하는 영화들이 나오면서 중국인들의 시각들이 재밌는데 공산군 이전의 상황은 좋게 말하면 백가쟁명이고 나쁘게 말하면 한 나라를 세울 수 있는 마적떼 정도로 묘사하더군요. 이런 상황에서 메이지 유신을 열어버린 일본이 상당히 운이 좋았다고 봐요. 조선은 일본 테크트리를 탈 수 있었지만 일본의 사다리 걷어차기에 당해버렸고 중국은 너무 맛나보여서 열강들에게 갈기갈기 찢겨져서 한 입 사이즈로 변해버렸고요. 그러고보면 19세기말과 20세기초는 운명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치는 시대였네요.
겨울삼각형
16/08/24 11:25
수정 아이콘
조선이 일본 데크를 타는 천운을 얻었다고 해도,
결국 조선을 놓고 일본 청 러시아가 경쟁하는 구도자체는 그대로지요.

차이점은 비근대화된 조선에서 근대화 시도를 하던 조선으로 바뀔뿐, 위 경쟁에서 승자가 독식하던, 나눠먹히던의 큰 차이는 없었을겁니다.

그 이유가 일본의 메이지유신으로 시작된 근대화의 왕성된 시기가, 청일전쟁승리로 조선을 일본영향권안에 편입한 시점으로 보기때문입니다.

근대화된 군대를 조직하고 해외원정에 승리, 청나라와 불평등조약체결로 세계에서 열강으로 인정받은것이 이때 이기 때문이죠.

이시기 배경인 빅토리아2를 해보면 확실히 채감하게되지요.(안그래도 빅토2 소개글을 쓰고있는데 넘나길어지고 있...)
하심군
16/08/24 11:36
수정 아이콘
일단 조선왕조가 일본의 사례를 보고 벤치 마킹을 하려는 시도가 있었던 건 사실이니까요. 그 과정에 있었던 사단이 갑오개혁이고...사실 저는 그와는 별개로 누가 먼저 테크트리를 탔느냐라는 가정에서 본다면 훨씬 하이 리스크에 하이 리턴이 오지 않았나라는 생각은 있습니다. 망하면 경복궁이 불타오르거나 흥하면 뭐...
16/08/24 19:45
수정 아이콘
공산당 정권이니 별 수 있나요 크크. 거기에 그런 군벌들 + 강대국들 틈바구니에서 중국을 먹은 게 대단한 건 맞으니...
이래저래 머리 아픕니다 '-'a 정말 잘 해도 말씀하신 일본의 사다리 걷어차기를 피할 수 있었을런지...
하심군
16/08/24 19:59
수정 아이콘
사다리 걷어차기를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사다리에 먼저 올라가서 걷어차는 것이니 이 이후부터는 전형적인 if 시나리오죠 뭐.
이치죠 호타루
16/08/24 16:01
수정 아이콘
전쟁이란 것을 글감으로 놓고 이야기하는 입장에서 보면 한 가지 재미있는 게 있군요. 저는 주로 전황도와 전술, 그리고 타임라인에 따른 양군의 움직임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눈시님은 전쟁을 움직여 가는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16/08/24 20:18
수정 아이콘
어라 그렇네요. '-'a 스타일 차이겠죠? 재밌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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