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자소서를 쓰려 클라우드를 뒤지다 예전에 써놓은 글을 발견했습니다. 팩트가 적절하게 섞인 픽션이고 한번 피지알에 올려보고 싶다고 생각해서 써 놓았던 글인데 방치하다가 오늘 간만에 다시 보게되었습니다. 자소서 시즌도 슬슬 마무리가 되어가고 유게의 망한 결말에서 파리의 연인을 보기도 했고 비도 오고 예전에 쓴 것 보니 기분이 멜랑꼴리하기도 하고..... 사실상 마음이 동했습니다. 이왕 쓴거 마무리 짓고 올리고 싶어서 한번 올려보려구요.
피지알 자게의 무거움을 알지만 이런 가벼운 이야기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아서 한번 올려봅니다.
엄근진도 좋지만 가끔은 이런 실없고 달달한 이야기도 필요하잖아요?
*혹시나 내용에 문제가 되는 부분이 있다면 바로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하나.
가끔 그 때를 돌이켜보면 굉장히 추웠던 것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사실 파리가 서울보다 실제로 추운지 따뜻한지는 모르겠다. 집주인 누나의 말에 따르면 확실히 작년보다는 훨씬 따뜻하다고 했다. 이 정도면 꽤 다닐만하다고 했지만 그래도 너무나 추웠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가 살던 집은 당연하게도 한국식 보일러가 없었고 창문 아래에 군대에서나 보던 라디에이터가 난방 시설의 전부였다. 서울의 보일러와 전기장판 아래 한없이 여려진 우리의 몸에 라디에이터는 거의 도움이 되지 못했고 결국 우리는 군대에서와 같이 내복 생활화의 실천과 함께 햇빛을 막기 위해 있는 채광창을 불어오는 바람을 막기 위해 굳게 걸어 잠그고 자게 되었다. 집 밖도 마찬가지였는데 한겨울에도 따뜻한 서울의 지하철 역과는 다르게 파리의 지하철 역은 너무 추웠고 난방도 없었으며 화장실도 없었다. 물론 역 안에 오줌냄새가 있었고 바람이 쌩쌩 부는 출구가 플랫폼 바로 옆에 있었고 그 옆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있었으며 당연하게도 그 옆에는 술을 마시는 사람도 있었다.
심각하게 정신이 없었던 나는 비자 발급이 늦어지는 바람에 이미 학기가 시작하고 일주일이 지난 뒤에야 파리에 도착했다. (물론 첫 주는 어차피 필요 없어! 라는 그릇된 생각으로 나는 나의 늦은 비자 신청과 진행을 정신적으로 무마했다. 사실은 비자 발급에 필요한 서류 작성을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어느새 그렇게 되어 있었다.) 파리에 도착해서 열흘은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를 정도로 정신 없이 지나갔다. 살게 된 집에 이사를 직접 하게 되었고, 세탁기가 이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가전제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옷장과 침대와 책상이 조립이 가능하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가장 놀라웠던 것은 그 조립을 내가 직접 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엘리베이터가 없는 집, 그 중에서도 5층은 정말 후쌔드..
도착하자마자 학교, 보험, 교통카드 신청, 핸드폰 신청까지 할 일이 엄청나게 많았다. 그 와중에 나는 불어 실력은 말할 것도 없고, 영어조차도 영 신통치 않았는데 문제는 프랑스 사람들도 영어에 신통치 않아서 나와 프랑스 사람들과의 대화는 정말 서로 하고 싶은 말만 했다. 이건 뭐 바보들도 아니고 서로 자기 이야기만 하는데 도와준 불어과 친구들이 없었다면 나는 아마 아무것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살던 곳이 라데팡스였기 때문에 교통카드를 1-3존으로 신청해야 했고 그렇다면 하루라도 더 놀러 다니는 게 이득이야! 라고 외치며 학교가 끝나기가 무섭게 열흘간 파리 이곳 저곳을 헤매고 다녔다. 처음에 지하철을 탈 때면 가방을 벽 쪽에 붙이고 지갑과 핸드폰을 손으로 확인하며 노래도 듣지 않고 흉흉한 눈으로 사람들을 지켜보며 긴장을 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며 이어폰을 끼고 다닐 수 있게 되었다. 그때쯤부터 점점 이곳이 일상이 되는 것을 느꼈다.
둘.
나는 같은 학교에서 온 두 명의 룸메이트와 살게 되었다. 성격도 다들 무난하고 군대도 다녀와서 단체 생활에 어느 정도 익숙했기 때문에 큰 문제 없이 지내게 되었다. 빨래나 설거지 같은 것들의 순서를 정하고, 아침에 일어나서 누가 먼저 씻을 것 인가에 대해서 자기 전에 가위바위보를 하며 순서를 짜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물론 제일 늦게 일어나는 것이 최고였다.
나는 요리를 할 줄 몰랐었고, 룸메이트들은 이전에 혼자 살아본 경험이 있어서 어느 정도 요리를 할 줄 알았다. 나는 그들에게 요리를 배웠으나 나의 요리 실력은 도통 늘지 않았다. 요리를 알려준 친구는 어떻게 넌 이렇게 늘지 않냐고 궁금해 했으나, 요리 실력이 늘지 않는 만큼이나 나의 혀는 굉장히 둔감했기 때문에 나는 내가 만든 파스타와 스테이크를 항상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그날은 정말 평범한 날 중 하나였다. 우리는 순서대로 밥을 해먹었고, 설거지를 하고, 간식으로 사다 놓은 하리보 젤리에 맥주를 마시고 있었는데 건축학 개론 이야기가 나왔다. 아직 건축학 개론을 안 봤다는 나의 말에 룸메들은 놀라며 '이 영화는 남자라면 꼭 봐야 하는 영화라고!' 강력하게 주장했고 결국 우리는 셋이서 함께 노트북으로 건축학 개론을 보았다. #남자만 셋, #건축학개론 #수지 #성공적 이런 느낌.
가볍던 시작과 다르게 영화가 끝나고 김동률의 기억의 습작이 울려 퍼지는 집에서 건축학 개론을 본 남자들이 흔히들 그렇듯 텅 빈 방안을 응시하며 우리는 알 수 없는 누군가를 떠올렸다. 그렇게 한참을 말없이 누군가를 떠올리다가 우리는 깨달았다. 여기는 프랑스 파리이고 여기는 한국인 여자가 없고 우리는 불어도 못한다는 것을. 그리고 가장 큰 것 역시 깨달았다. 그 동안은 정신이 없어서 몰랐는데 우리가 많이 외로워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고작 하리보 젤리와 노숙자들이 배게로 쓴다는 크로넨버그 같은 걸로는 위로 할 수 없는 외로움이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결심했다. 여자를 만나자고.
셋.
우연하게도(우연하게 라고 쓰고 당연하게 라고 읽는다) 우리는 셋 다 여자를 좋아했다. 호색한이라기 보다는 20대 중반 남자들이라면 으레 그럴 정도로 여자를 좋아했다. 건축학개론 이후 우리는 전투적으로 여자 찾기에 돌입했는데 전투적이고 가득한 열의가 우스울 정도로 빠르게 현실을 파악했다. 없다..한국 여자가 없다... 없어... 파리에는 한국 관광객도 많고 유학생도 많은데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진지하게 샹젤리제에 서서 하루종일 헌팅을 해보는게 어떨까 하고 생각하기도 했다. 파리 한인 커뮤니티가 있기는 했지만 거기다가 대고 놀자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우리는 유학생도 아니고 관광객도 아니고 그냥 교환학생이니까. 결국 우리는 또 쓸쓸하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해병대를 나와 우리 중 가장 행동력 있는 친구가 인터넷을 한참 뒤지더니 이층 침대에서 뛰어 내려와 우리에게 기쁜 소식을 전했다.
불타는 의지와 열의로 한참을 찾던 친구는 정보의 바다 인터넷을 헤매고 헤매다 유x이라는 카페를 발견했고 그곳에는 여행지에서 즉석 만남을 하는 게시판이 있었다. 친구는 그 곳에서 파리로 여행 온 여자들이 올린 글을 찾게 되었고 어느새 약속까지 잡아 놓은 상태였다. 오오 인터넷의 위대함이여.. 물론 원래 글은 여자들이 여행 와서 허리를 삐끗하여 파스를 구할 겸 맥주 한잔을 하자는 글이었고, 우리는 파스를 주기 위해 만나는 것이었다.
물론 우리에게 파스 같은 것은 없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