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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1/12/17 13:25:07
Name 눈시BBver.2
Subject [일반]  한국의 역사서 -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역사를 보는 태도는 의고(疑古)와 신고(信古)로 나뉜다고 합니다. 옛날 신화, 설화의 사건, 인물들을 의심하느냐 믿는 쪽으로 가느냐이죠. 사마천의 사기부터 유학자들의 태도는 의고로 많이 기울었습니다. 다만 그들도 초고대문명 (...) 에 대한 환상은 어쩔 수 없었는지 요순과 주나라의 주공 같은 이들은 유학적 신화로 남았죠. 태공망을 등용하는 과정에 신화는 없고, (대신 신화처럼 남은 게 봉신연의겠죠) 하늘에서 내려온 단군보다 주나라에서 책봉을 받았다는 전설을 신뢰한 것도 그런 흐름입니다. 어쨌든 천제의 아들보단 그럴 듯 하거든요 -_-;

고증학이니 하는 어려운 얘기는 저도 모르고 정리해봐야 재미도 없겠죠. 어차피 우리에겐 이 차이를 가장 쉽게 알 수 있는 두 사서가 있으니까요.

이번 편에서는 현재 남아 있는 역사서들에 대해 얘기해 보려 합니다. 아무래도 제가 직접 본 것들이 위주가 될 수밖에 없겠지만 @_@)/ 이런 것들이 있다는 걸 잘 봐 주세요.

+) 덤으로 일제가 우리 역사서들을 다 말살하고 삼국사기 삼국유사 두 개만 남겼다는 것에는 그냥 웃어 줍시다. ( ..)

... 실패. 시험 끝나고 마저 정리해서 올리죠 뭐 _-)/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역사책이 한둘이 아니라서;;; 일단은 고려시대까지만.

1. 삼국사기

"해동에 국가가 있은 지는 오래되었다. 기자가 주 왕실로부터 책봉을 받으면서부터 한 초에 위만이 스스로 왕을 칭할 때까지 세월의 흐름이 매우 오래되었지만, 문자기록이 소략하여 상세하게 고찰할 수 없다. 삼국이 정립(鼎立)함에 이르러 전세가 더욱 많았다. 신라는 56명의 임금 992년, 고구려 28명의 임금 705년, 백제는 31명의 임금678년이다. 그 처음과 끝을 가히 고찰할 수 있으므로 삼국의 연표를 만들었다.

고려 인종의 명으로 김부식이 팀장(-_-)이 되어 만든 역사서입니다. 1145년(인종 23년)에 완성되죠. 본기 28권(신라 12, 고구려 10, 백제 6), 연표 3권, 지 9권, 열전 10권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 때 인종은 김부식에게 이렇게 말 했는데, 뭐 지금이나 그 때나 다를 건 없어 보여요. -_-a

"(중국 건 잘 알면서) 우리 나라의 사실에 이르러선 도리어 막막하여 그 시작과 끝을 알지 못하니 매우 유감된 일이다, 더구나 신라, 고구려, 백제의 세 나라가 세 발 솥처럼 나란히 서서 (중국과 외교해서 중국 기록에 있지만 외국이라서 내용이 매우 적고) 또 그 옛 기록으로 말하면 글이 거칠고 졸렬하고 역사적 족적을 놓친 것이 많아,"

좀 정리하자는 것이죠. 그 때까지도 꽤 많은 역사서들이 난립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구삼국사, 아마 새로 삼국사기를 만들었기에 구(舊) 자가 붙었겠습니다만 삼국사를 정리한 게 있었고, 김부식이 인용하는 사료들도 꽤 많죠.

고기, 신라고사, 삼한고기, 제왕연대력, 화랑세기, 고승전, 계림잡전,
삼국지, 후한서, 위서, 진서, 송서, 남북사, 구당서, 신당서, 자치통감

이후 한국쪽 책들은 모조리 소실돼 버립니다만 (...)

삼국사기야 워낙에 많이 알려진 것이니 오해만 몇 가지 깨뜨리자면...

맨 위에 적었듯, 김부식은 고조선을 부정하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그노무 고조선 부정 진짜...) 다만 기록이 워낙 적어서 상고할 수 없다고 했을 뿐이죠. 그나마 중국과 한국 기록을 통해 연대를 고증할 수 있는 삼국시대를 고른 것이죠. 문제는 -_-; 그렇게 하고도 어마어마한 모순과 오류들이 있다는 거겠지만요. 이 때 제대로 정리해야 될 정도로 수준 낮은 사료들이 많았나 봅니다. 자세한 건 아래에서 다시.

사대주의라는 것도 부당합니다. 애초에 송이나 금에 사대하는 입장으로 썼으면 본기가 아니라 세가가 돼야 했죠. 거기다 을지문덕, 연개소문 같은 중국이랑 맞선 고구려의 인물들을 열전으로 만들 이유가 없죠. 삼국사기 만들어진 2년 후에 중국에 바치게 되는데, 중국 비위 맞추려면 그런 인물들부터 고구려가 중국에 맞선 기록들은 다 안 실었겠죠. 애초에 중국 기록과 한국 기록이 차이나면 한국 기록을 따른 게 김부식이었습니다.

신라 위주로 갔다는 것도 좀 그래요. 구삼국사가 고려 초에 만들어진 걸로 추정되는만큼, 고구려 계승 위주로 하기는 했을 겁니다. 하지만 신라 계승을 위해 신라 쪽 사료들을 추가했으면 모를까, 고구려 쪽을 삭제하진 않았을 겁니다. 허구헌날 "모르겠다" "알 수 없다" 이렇게 징징댄 게 김부식인데요. -_-;

특히 이규보의 동명왕편 때문에 그렇게 까이는데 비교하면 김부식이 왜 잘랐고 어떤 부분을 잘랐는지 충분히 이해가 되요. (...)

기본적으로 유학은 괴력난신을 말 하지 않고, 술이부작, 있는 그대로 쓴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습니다. 김부식은 이 쪽이었죠.
반면 이규보는 구삼국사를 보고 "동명왕본기의 내용은 요술이 아닌 성(聖)이요, 귀신이 아닌 신(神)이라고 하며 동명왕 기사를 줄인 것을 비판했었습니다. 그럼 두 개를 비교해 보면서 뭘 어떻게 줄였는지 보죠.

동명왕편 : 해모수가 유화와 두 동생들에게 술을 먹여 (여자 취하게 해서 뭘 하려는 거지 -_-) 뭔 짓을 하려고 하자 여자들이 달아나는데 유화는 잡혔다 (뭐?) 하백이 보고 노해서 이를 따지자 천제의 아들이고 청혼하려고 한다고 했고 하백이 "그럴 거면 정식으로 해야지 왜 감금해두냐?"고 했다. 유화를 보내주려 했는데 유화는 이미 해모수에게 빠졌고 -_-; 정식으로 데리고 청혼하자 "신통한 재주를 보여 달라"고 해서 변신 놀이 (잉어 vs 수달, 사슴 vs 승냥이 꿩 vs 매) 를 해서 이기고 유화와 결혼했다. 그런데 왠지 도망갈 것 같아서 유화에게 못 도망가게 하려고 술 맥이고 가죽 수레에 용거(龍車)를 넣었는데 해모수가 술 깨서 황금비녀로 가죽을 뚫고 도망. 하백이 열 받아서 유화를 우발수로 추방.

삼국사기 : 모든 걸 유화가 금와를 만나서 하는 얘기로 바꿈 (...) "천제의 아들 해모수랑 잤는데 중매도 없이 남자랑 잤다고 아빠가 쫓아냈어요 ㅠㅠ"


역사랑 전설은 다르지 ㅡㅡ

이 정도면 -_-; 김부식이 뭘 없앴는지 알 만 하죠? 흔히 주몽의 얘기로 나오는 좋은 말 혀에 바늘을 꽂는 가혹행위도 동명왕편에 나옵니다. 이렇게 전설이다 할 만한 내용들을 크게 축소시킨 겁니다. ... 그런데도 삼국의 시조가 다 전설인 걸 보면 참 ( ..)

현대의 입장으로 보면 이런 옛 설화들이 소실된 것도 역시 안타깝지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거죠. 그리고 바꿔 말하면, 구삼국사 등에서 얻을 수 있는 것도 생각보다 없다는 거구요. 이 구삼국사가 없어진 게 (국가 지정 역사서가 있으니) 국가 정책이었느냐, 그냥 시대가 흘러 소실됐느냐 하는데 후자인 것 같아요. 이규보가 김부식보다 100년 후 사람인데 알게 됐으니까요. 조선시대 신숙주도 구삼국사를 참조하지 않았나 하는 의견도 있구요.

고구려의 유기와 신집, 백제의 서기, 신라의 국사 같이 세 나라에서 역사서를 만들었다 하는데 (신라 것조차도) 김부식 대에는 전해지지 않은 모양입니다. 대체 관리를 어떻게 했길래 -_-; 다만 고구려의 신집 같은 경우 김부식이 참고했거나, 신집에서 이어진 역사서가 있었지 않아 하기도 합니다. 신집의 내용이 소수림왕 때까지로 추측되는데, 삼국사기도 소수림왕까지의 기록이 참 자세하거든요. 권수도 딱 5권이구요.

아무튼 한계는 있지만 김부식은 할 만큼 했다... 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아무래도 맨 앞에 있는 사람은 두들겨 맞기 마련이죠. -_-; 현대 사학계의 이병도랑 비교하면요. 그러고보니 삼국사기를 맨 처음 국역한 것도 이병도였죠.

신채호가 당시 처한 시대 상황은 이해가 가지만, 안타까울 수밖에 없어요. 삼국사기가 사대하는 책이라고 욕 먹게 된 시작이 신채호거든요.

그러고보니 일본서기가 참고했다는, 백제의 역사서가 세 개 있습니다.백제기, 백제신찬, 백제본기죠. 백제 쪽이든 고구려 쪽이든 오히려 일본에서 더 많이 남아있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_-;

김부식이 얼마나 사료 부족에 시달렸는지, 얼마나 고민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 하나 있습니다. 김유신의 행전이 있었는데 무려 10권짜리였죠. 김부식은 이 중에 "허황된 것을 없애고 현실적인 것만 골라" 김유신 열전을 싣습니다. 그런데... 그게 열전 10권 중에 3권을 차지하죠. (...) 과장된 건 그만큼 과장돼 있고, 없는 건 정말 없는 상태였던 겁니다.

2. 삼국유사

"대저 옛 성인은 예악으로 나라를 일으키고 인의로 가르침을 베푸는 데 있어 괴력난신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여기까진 어라? 하지만 바로 반전이 나옵니다.

"그러나 제왕이 장차 일어날 때 (중략) 반드시 범인과 다름이 있은 연후에야 능히 대업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어디서 뭐가 나왔고 어디서 뭐가 나왔고 복희가 무지개에서 나왔고 염제가 용에게서 나왔고 어쩌고 저쩌고 중국에 이런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 이런 거 다 무시하고) 이후의 일들을 어찌 다 기록할 수 있겠는가?

"그런즉 삼국의 시조가 모두 신이한 데서 나왔다는 것이 어찌 괴이하다 할 수 있겠는가! 이 기이가 모든 편의 첫머리에 실린 것은 그 뜻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전설이 허황된 얘기일 뿐이라고? -> 스님 그림을 못 구함 ㅠㅠ

삼국유사. 그는 이렇게 아무리 봐도 삼국사기를 대놓고 저격합니다. (...) 옛날부터 전해져 내려오던 이야기들을 담은 삼국유사를 엮으면서요.흔히 삼국사기=사대, 삼국유사=자주 이렇게 외우지만, 삼국유사는 자주 쪽으로 흐를 수밖에 없죠. 고려에서 전설로 내려오는 얘기가 고려에 불리할 리가 없잖아요. 김부식은 그걸 허황된다 해서 빼 버렸고, 일연은 "이것도 자랑스러운 우리 옛 얘기다"면서 담은 겁니다.

전체적으로 재밌는 옛 이야기들이 많죠. 그리고 그 사이에 숨겨져 있는 이야기들은 삼국사기를 보조하기에 충분합니다. 네 뭐 -_-; 아무리 충분하다 해도 부족한 게 사료지만요. 그렇다고 마냥 좋다고 전설만 옮기지도 않았습니다. 가령 이런 게 있죠.

[신라 김유신이 소정방과 당군을 죽이고 구덩이에 묻었다고 하지만 믿기 어렵다]
"신라고전에 이르기를 “ 소정방 이 이미백제와 고구려를 토벌하고 또 은밀히 신라까지 토벌하려 계속 머물렀다. 이 때 유신 이 그 음모를 간파하고 당 나라 병사들에게 잔치를 베풀고 독주를 먹여 모두 죽이고 그들을 구덩이에 묻었다. 지금의 상주 외곽에 당교가 있는데 이곳이 그들을 묻은 땅이라 한다"

... 아니 대체 무슨 얘기가 내려져 오고 있었단 겁니까 -_-;;;;

일연은 이 부분을 조목조목 반박합니다. "당사에는 그냥 죽었다고 한다. 그럼 당나라에서 꺼린 건가 우리나라 얘기가 틀린 건가? 이 때 소정방이 죽였으면 나중에 고구려 칠 때는 어떻게 했는데? 우리 게 근거 없는 거다. 그러니까 우리는 [당을 신하로 섬기지 않고 고구려 땅을 멋대로 점령했을 뿐 소정방과 이적을 죽이는 것 까진 안 했다.]"

참고로 삼국사기에는 김유신이 늦었다고 "신라 니들 다 죽인다 ㅡㅡ"고 하니까 김유신이 칼을 뽑아 들고 "우린 최선을 다 했거든? 이럴 바에야 고구려보다 니들 먼저 칠 끼다"고 한 부분이 있습니다. 황산벌 엔딩을 장식한 바로 그 장면이죠. 이 부분이 와전됐다고 봐야겠죠? 그리고 뒷부분을 보면 사대가 김부식이랑 정말 달랐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_-a

그 외에 김부식 등이 찾은 것 외에도 다른 사료까지 본 것 같은데, 대표적으로 가락국기, 가락기찬 등 가야에 대한 게 있습니다. 이게 김부식은 다른 이유로 뺀 건지, 못 찾은 건지 알 수 없군요. 문제는 가락국기 등의 내용이 그게 다였던 건지 김수로 전설과 후대의 왕들만 적어놔서 그 이상을 알 수 없다는 거 -_-; 그리고 가락국기는... 없어졌습니다.

아무튼 우리 것을 최대한 얘기하지만 그 나름의 객관성은 최대한 가지고 있었고, 그게 개인의 노력으로 이루어졌다는 것. 유학자들처럼 단지 역사만 기록하는 게 아니라 구전된 설화와 전설들을 최대한 담으면서 삼국유사는 역사학뿐만 아니라 국문학(향가 >_<)에도 정말 소중하게 쓰입니다. 사대, 자주 따질 게 아니라 이게 가장 큰 가치라고 봐요. 유학자인 김부식과는 시각이 다른 승려의 시각으로 쓰여졌다는 것.

다만 그래서 기이편을 제외하면 거의 불교 얘기죠 -_-; 단군 신화가 기록돼 있지만, 불교와 도교로 채색된 게 아닐까 합니다. 삼국사기에 나와 있는 [평양의 수호신] 왕검과 기타 고려의 사료에 등장하는 단군의 모습은 조금 다르거든요. 삼한 전에 나라를 세웠다거나 2000년 전에 나라를 세웠다거나 하는 등 이게 우리가 아는 단군의 원형에 가까울 거거든요. 그 외에 해모수가 단군이랑 동일시되기도 하는데... 단군은 따로 글을 올릴게요. 아무튼 이 때문에 "환인"은 힌두교의 인드라에서 모티프를 딴 게 아닌가 하는 주장도 있습니다. 실제 현재 남아 있는 모든(이라고 해도 되겠죠) 건국 신화가 창조신을 미륵 등으로 묘사하고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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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사서는 없어진 중국의 25사에 비해서는 한참 부족하긴 합니다. 옛 사서들이 더 남아 있으면 다행이련만 그렇지도 않죠. 그래도 그 두 분은 정말 많이 노력했습니다. 사대와 자주의 문제가 아니죠. 둘 다 우리 역사를 기록해야 된다는 생각으로 만들었고, 하나는 국가에서 만들고 하나는 개인이 만든 차이, 하나는 유학자의 시선이고 하나는 불제자의 시선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더 다른 게 나오지 않는 이상 우리는 이걸 최대한 붙잡고 살아야 되죠. 비판할 게 많다 하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우리의 보물입니다.

옛 사서 없어져서 누가 없앴다 누가 없앴다 하지만, -_-; 삼국사기도 없어질 뻔 했어요. 태종 때 남은 삼국사기가 없었고 활자도 한 줄에 3~4글자만 볼 수 있을 정도가 됐죠. 겨우 전국을 뒤져 찾아내서 복구했습니다. 생각해보면 정말 아찔한 순간이죠.

조선이 기록 덕후가 된 건, 어쩌면 이에 대한 반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유학의 나라인데 하도 없으니까 우리라도 제대로 좀 하자구요.

그 외에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이규보의 동명왕편이나 이승휴의 제왕운기가 있습니다. 둘 다 시로 이루어졌죠. 무언가 확실한 과거 연구보다는 과거를 보면서 현재의 상황을 생각하자 이런 목적이 강합니다. 동명왕편은 역시 주몽 신화를 통한 자긍심 고취이고, 제왕운기는 중화와 고려의 차이를 명확히 하면서 역사의 왕과 신하들을 평가,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제시합니다.

제왕운기의 경우 고조선을 중화와 다른 별천지에 소중화라고 하면서 확실히 분리했고, 발해의 얘기도 꺼내면서 자주적인 걸 강조하지만, 사실 그 이면은 조금 다릅니다. 오히려 당시 현실 인식을 확고히 했죠. 원나라를 중화라 하고 금나라도 대국으로 인정하면서 그 사이에서 고려가 나아갈 길을 찾았거든요. 그래서 "우리는 오랑캐에게 무릎 끓은 게 아니라 대국을 소국으로서 사대하는 거다"는 자위적인 느낌도 좀 있죠.

아무튼 제왕운기 때는 전조선(단군)-후조선(기자)-위만조선-한사군, 삼한-신라, 고구려, 백제-발해와 후삼국의, 지금도 (기자조선만 빼고) 통용되는 한국사의 계보를 만들었습니다. 이건 조선에도 이어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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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2/17 13:33
수정 아이콘
좀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네요..

일제가 삼국유사, 삼국사기 빼고 역사서를 말살했다니요?

우리나라엔 원래 역사서가 없었던건 더 잘 아실텐데요 어떤 역사서를 말살하셨다는건지..

무엇 하나 빠질수 없는 보물인 역사서이긴 하지만 그것은 우리나라에 위 2개의 역사서밖에 삼국시대를 고증할 역사서가 없기 때문이겠죠

글의 논조가 어떤걸 말씀하시는지 잘 모르겠네요.. 김부식이 사대를 안했다고 말씀하시려고 하는건가요?
11/12/17 15:33
수정 아이콘
인종의 말 부분에 오타있어요.
신라, 고구려, 신라의 세 나라라고 되어있네요.
박하선
11/12/17 16:12
수정 아이콘
삼국사기와 삼국유사하니 생각난건데
저희반 아이들에게 가르칠때
삼국사기는 판타지같은내용으로 사기쳐놓은거
삼국유사는 유사 즉 역사가 있는것으로 진짜 역사를 적은것 이라고 가르쳤는데...
요즘 5학년들 참 많이 햇갈려들 하더라구요 하하
HealingRain
11/12/18 00:16
수정 아이콘
삼국의 역사는 공부하시는분 입장에선 정말 골치아플거 같아요.
남아있는것도 적고, 남아있는것들도 이게 정확한 사실인지 믿기가 어려운 부분도 많을거고...

그래서 더더욱 눈시님 말씀대로 이 두 역사서가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보물이겠죠.
우던거친새퀴
11/12/18 17:36
수정 아이콘
김부식, 이병도 이사람들이 필요이상의 욕을먹고 있는건 사실인거 같아요.
사대주의로 욕먹고, 이병도는 식민사학의 대부로 욕먹고

가끔 보면 정말 답답한분들을 가끔봐요.
삼국사기는 사대주의라서 가치가 없다.
이병도는 식민사학자에다 일제앞잡이... 라서 이병도의 논문이나 의견은 읽을 가치도 없다.
일본서기는 판타지소설이라서 가치가 없다.
도대체 이러면 고대사는 뭘 연구해라는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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