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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1/09/20 18:02:03
Name 눈시BB
Subject [일반]  그 때 그 날 - 미래 (2) 오회연교

흔히 알려진 정조의 상상도와는 다르죠? 어진을 베낀 거라 합니다. 어진 원본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걸 토대로 한 박시백 화백이 그린 정조입니다.

1800년 5월 30일, 정조는 어마어마한 말을 쏟아냅니다. 그 발단은 의외로 사소한 거였죠. 이조판서 이만수가 사직하면서 상소를 올렸는데, 김이재가 거기에 딴지를 건 겁니다. 그런데 정조는 크게 화를 내며 언양으로 귀양 보내 버립니다. 정조가 죽기 한 달 전이었습니다. 마치 멀티 다 잃은 테란이 한 방을 터뜨리듯이 그의 말은 엄청났습니다. 이걸로 그치지 않고 보름 후에 한 번 더 터뜨리죠. 그 후 한 달, 정조는 결국 죽게 됩니다. 조선의 르네상스라 불리는 1700년대를 끝으로 1800년대는 조선이 망해가는 100년이었죠. 벽파의 축출과 안동 김씨의 집권 과정에서 이 오회연교는 중요한 키워드가 됩니다. 이전 편에서 다루었던 팔자 흉언과 함께요.

휴... 시작해 보죠.

1. 누구를 향한 화살인가
(1) 분석
헌데... 이게 당최 뭔 내용인지 모르겠습니다. -_- 네, 진짜 모르겠어요. 이게 노론 벽파를 향한 경고라서 겁 먹은 벽파가 정조를 암살했다고 주장하는 이 소장님이 아니더라도 노론 벽파를 향한 거라는 게 통설이긴 합니다. 하지만 그 반론도 만만치 않죠. 안대희 교수는 정조가 심환지에게 보낸 어찰을 근거로 이게 통설과는 달리 노론 벽파를 우대하려고 한 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좀 따져 보면 그럴 듯 한 게 이 떄 귀양 간 김이재는 시파였습니다. 이에 대해 정병설 교수는 중심으로 다루지는 않았지만 "정조가 막후정치에 능해서 뒤로 같은 편인 척 한 거다"는 평가를 내린 듯 합니다. 일단... 이걸 좀 분석해 봐야겠네요. 미친 듯이 깁니다.
이시수 : 어제 김이재 귀양보내라고 하셨던데요. 제가 그거 보진 않았는데 대간이 재상 공격한 거 가지고 귀양보낸 건 지나치지 않나요?

정조 : 내가 오늘 니들 부른 건 이거 확실하게 말해주기 위해서다. 잘 들으라. 일단 이시수 너. 니 말이 더 뜻밖이다. 이게 별 일 아닌 거 같지? 자, 차근차근 말해 줄게.

1. 신축, 임인년의 의리 (신임 의리. 밑줄 칩시다) 를 지키는 사람이 진짜배기거든? 근데 그 폐단이 많아서 영조대왕께서 그들을 붙잡아서 적에게서 구해주셨어. 김이재도 마찬가지야. 니가 지금 하는 게 니네 아빠 이복원이 김이재 할아버지 김시찬 구했던 거랑 똑같은 거 같지? 김시찬은 의리를 아주 잘 지켰고 니네 아빠가 그거 구한 것 역시 그것 때문이야. 하지만 김이재는 아니야. 걔는 의리의 반대편인 [세속]의 무리야. 이게 다 [의리] 때문이야. 니는 지금 아예 반대되는 짓 하고 있다고.

이시수 : 아 제가 원본 못 봐서 경솔하게 말 했네요. 죄송해요.

2. 시끄럽고 계속 들어. 나는 덕이 없어서 30년간 제대로 한 게 없긴 해. 근데 내가 법은 제대로 지켰거든? 일단 을해년(이인좌의 난) 이후에는 정치도 제대도 안정됐는데, 원래 천도라는 게 바뀌는 거라서 성쇠가 반복됐자너? 다들 을해년 이전의 마음(탕평?)을 지키고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겠냐. 그랬으면 어떻게 모년에 의리를 범하는 일이 벌어졌겠냐고.

+) 모년에 의리를 범하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키워드입니다. 해석이 두 가지예요. 신축, 임인년이냐 사도세자를 죽인 해이냐로요.

3. 그 원인이 뭐겠냐. 지 몸만 생각하고 의리는 전혀 생각하지 않아서 그런 거 아니야? 그게 처음에는 [모년의 대의리]에 관계됐지. 두 번은 을미년(영조가 대리 청정을 하려고 하자 홍인한 등이 방해한 것)에 벌어졌고, 세 번은 병신년(정조 즉위년. 홍인한이랑 김귀주 사이좋게 숙청)이었고 네 번째는 정유년(정조 1년. 궁 안에 자객이 들어오기도 했고 홍계능 등을 숙청)이었다. 그나마 그 이후에는 잠잠해졌지. 니들은 다 누구냐. 선조 때부터 대대손손 충성을 바친 자들 아니야? 근데 그놈들은 잘못을 범해서 뿌리 뽑혔으니 이건 자비로운 군자라 해도 방관할 일이 아니었던 거야. 다행히 아직 청의(절개 있는 선비)가 사라지지 않은 게 다행이지. 누구는 그러겠지. 두 척리(홍씨 김씨)의 다툼이 춘추 전국시대 같다고. 하지만 걔네들이 그냥 척신들 뿐일까?

4.나는 오직 이 더러운 [습속]을 새롭게 하려는 것 분이야. 의리를 천명하고 대도(道)로 가는 길을 세우려고 한 거라고. 의리에 관계되는 일은 반드시 못을 자르고 쇠를 끊듯 과감해야 된다고.

5. (한 숨 돌리고) 병신년 이후 (즉위한 이후) 등용한 사람들 보면 내 진의를 알 거다. 아, 홍국영 문제가 있었지만 그게 의리랑은 크게 관련 없어. 채제공(남인), 김종수(벽파)은 마침 병 걸릴 때가 같아서 8년 동안 쉬게 했다가 다시 등용했는데, 그 때 사람이 많아서 윤시동(벽파) 같은 사람도 쉬게 했다가 다시 등용했었지. 대체로 이렇게 8년 주기로 해서 시간을 낭비하긴 했지만 나름 이유가 있었어. 시대 상황이 그랬고 그게 그 사람의 신망을 기르는 방안이기도 하잖아. 우연이긴 했지만, 어쨌든 다들 의리를 지켰기에 등용한 거야. [깊은 뜻이 따로 있어]

6. (그게 무엇인고 하니) 옛날에는 (숙종, 영조 때?) 당쟁을 없애기 위해서 등용하고 물리치는 게 기준이 없었을 수도 있지만 난 이렇게 엄격하게 기준을 뒀다고. 이른바 [시時]자의 의미가 큰 거다. 의리를 지키는 사람이 얼마 없다 하지만, 참으로 의리를 지키는 자는 [우리 당]의 사람이니까, 내 기준은 언제나 이랬어.

이시수 : 에... 제 점수는요는 아니고 솔직히 무슨 뜻인지 모르겠는데요.

7. 요순 얘기 일단 해 줄게. (길게 하고) 의리는 별 거 아냐. 모든 일에서 지극히 옳은 게 의리야. 옛 의리와 오늘날의 의리를 막론하고 지극히 옳은 것에 있어서는 마찬가지야. 지극히 옳으니까 선배들도 모두 법칙에 맞고 가르침을 따르는 쪽으로 갔는데, 겉만 아는 별종들이 기회를 엿보고 있어. 이게 세도의 걱정 아니겠어? 의리는 지극히 정밀하고 엄정하고 면밀히 살펴봐야 된다. 내 학력으로 이런 걸 똑바로 보았다고 자부한다. (정조는 스스로를 유학의 중심으로 여겼습니다. 君師 임금이 스승이라는 거죠.)

8. 을묘년(정조 19년) 이후에 나는 이런 [습속]을 바로잡기 위해 [교속] 두 글자를 끄집어 냈다. 대체로 [인정이 두터운 쪽]에 대해 야박하게 말하고 싶지 않아서 [속]자 하나로 말했는데, 따지고 보면 모년에 의리를 범한 것도 이 [속]이고, 을미, 병신년에 관계된 것 또한 이 [속]이었어. 지금 신하들이라면 아무리 멍청해도 이 [교속]이라는 말이 형벌보다 심하단 걸 모르겠냐? 이조 판서 (이만수)만 해도 사직할 때도 이 교속을 말 했으니 내 뜻을 얼마나 잘 알았겠냐.

9. 몇 년 전부터 돈이랑 벼슬자리만 추구해서 미친듯이 허둥대는 놈들이 많다. 이 놈들은 아비도 없고 임금도 없어. 지 친적들을 이리저리 다 끌어대고 있는데 말이야. 내가 없애려 하고 있는 거야. 정승의 동생을 이조 판서로 삼은 건 말이지. 말도 안 되는 건 아니까 한 거야. 이만수도 그래서 사직한 거지. 내 뜻을 바로 안 거라고. 근데 김이재 이 놈이 문제지. 이 놈이 욕한 건 이조 판서 뿐이지만, 그 말들은 모두 내가 한 교속]을 공격한 거야. 내 뜻 모를 리가 없잖아. 그런데도 이러니까 어쩔까?

10. 김이재는 어리니까 별 상관 없다고 할 수도 있는데, 걔는 옥당(집현전은 아니고 홍문관)의 유학자(스칼라즈 오브 제이드 홀??)고 명문집안이라고(안동 김씨 -_-a) 그냥 무시할 수 없단 말이야. 을묘년 이후에 좀 됐다 생각했는데 된 게 하나도 없네. 내가 늙었지만 이런 거에 어찌 단호하지 않겠냐. 최근에는 사람이 없다는 한탄만 있어서 일단 침묵을 지키고 있는데 요새 정신과 근력이 날로 쇠약해지는 것도 그것 때문일 거야. 참고 참다가 지금 얘기하는 거야. 막말하는 거 아니야.

11. 교서를 내리든가 할 건데 일단 니들한테 먼저 말 한다. 나가서 가엽고 딱한 자들에게 일깨워 줘라. 의리를 지키는 사람은 의기가 북받쳐오를 것이고 죄 지은 놈은 무서워해서 자수할 것이고, 아무것도 모르는 놈도 의리를 지키려 하겠지. 아빠가 자식을 훈계하고 형이 아우에게 [속습]으로 빠지지 않게 하는 거다. 잊지 마라.

이시수 : 네... 다 말할게요. 그런 놈들이 있다면 누가 감히 의리를 범하겠어요.

12. 의리를 천명하든 자수하든 모두 지가 결정해야 된다. 김지애는 가소로우니 더 문책할 생각은 없다. 오늘 나는 맨 먼저 [의리가 시대 상황에 따라 다른 것을] 말했고, 다음은 규모, 다음은 인재 등용, 다음에는 가르침을 펴는 것을 말 했다. 이거 확실히 기록하고 여러 사람들에게 알리고 원본은 반드시 보관해라.

정말 길고, 정말 무언가를 쏟아내고, 정말 절실해 보이는 말이지만... 솔직히 무슨 뜻인지 모르겠습니다. 이후에도 정조는 몇 차례 이 말을 더 하고, 김이재의 처벌을 취소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공격당한 이만수까지 그걸 요청했는데도요. 보름 후쯤에 그는 또 말을 쏟아붙습니다. 이번엔 더 절실하고 급해 보였습니다.

정조 : 내가 지금 병 있는 건 화병 때문이다. 니들부터 내 뜻을 따를 궁리를 해라.
심환지 : 저번에 말씀하신 거라면 정말 맞는 말씀이고 참으로 의리였는데 누가 이론을 제기하겠습니까?
정조 : 너 또한 늙었지만 너도 스스로 반성해야 된다.
심환지 : 참으로 맞는 말씀입니다. 신은 무능해서 조정에 도움 주기가 힘드니 어찌 한탄을 받지 않겠습니까?

1. 후... 또 잘 들어라. 내가 덕은 모자라지만 기준 잡은 다음엔 흔들림이 없다. 내가 가진 의리가 완벽하지 않으면 뭐라 할 수 없겠지만, 내 의리는 확실하다고.

2. 의리란 두 개가 없어. 옛 의리와 오늘의 의리를 두 개라 할 수 없는데 지금 신임 의리를 핑계대는 건 누구 입에서 나온 거야? 내가 신임 의리를 지키는 게 니들보다 부족하겠냐? 대체 왜들 그렇게 고집을 피우냐 이 말이다. 병신년 겨울에 한 건 성과가 조금이라도 있었어. (이 때 화성 완공되는데 뭘 한 건지는 모르겠네요 병진년의 오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바로 다음에 병진년이 나오거든요) 지금은 병진년보다 더 해 위에 적었듯 병진년에 홍인한 김귀주 사이좋게 숙청) 이거 잘 생각해라. 그놈들의 [습속]으로 내 본심을 안다면 마음 고치겠지. 그놈들이 악인들과 사귀면서 서로 막 사주고... 어쨋든 그걸 내가 모를 것 같냐?

3. 내가 입 열면 다치는 놈들 많아. 그것 때문에 일단 참고 있는데 아무도 자수 안 하네? 이놈들 대체 누구 믿고 이러는 거지? 한 쪽도 아니고 사팡 발방으로 교제하면서 서로 내통하지 않는 놈들이 있을까? 이게 사대부들이 할 짓인가? 일단 방치하고 있지만 이걸 더 참고 볼 수가 없어. 세상 무서울 줄을 몰라. 역적놈의 x끼들이.

이시수 : 어조가 과격하시니 몸에 해로우실까 걱정되네요. 좀 쉬시는 게...

4. 니들도 한탄스럽다. 이런 말을 들으면서도 그 이름을 묻지를 않냐? 하지만 난 말 안 할 거다. 조만간 종기에 고름이 잡히는 것처럼 결론이 날 거야. 그놈들이 끝내 고치지 않는다면 나도 어쩔 수 없어.

어렵죠? 저도 어렵습니다. orz 휴...

(2) 벽파인가
오회연교에서 정조는 옛날 일들을 신나게 꺼내들면서 "누군가"를 신나게 욕 합니다. 그 주된 내용은 탕평 정치를 계속했음에도 여전히 자기 당파만 위하고 있고, 김이재가 바로 그랬다는 것이죠. 하지만 그게 누군지는 절대 말 하지 않았습니다. "알아서 자수하라"고 했죠. 인터넷에서 이걸 설명하는 걸 보면 사도세자 얘기만 하는데, 글만 보면 그걸 쉽게 알아차릴 수 없습니다. 정말 돌리고 돌리고 돌리고 돌려서 쓴 거라는 거죠.

제가 미래를 따로 나누면서 시간을 거슬러 가면서 써 보자고 생각했던 이유입니다. -_-; 그가 죽은 후 그의 본심이 뭐였는지는 정말 중요하게 다루어졌습니다. 문제는 시파 벽파 모두 자기에게 유리하게 해석했다는 것이죠. 일단 그것부터 알아보면 당최 그가 원한 게 뭐였는지를 조금이라도 짐작할 수 있겠죠. 여기서 하나 더 나아가서 오회연교가 뭔 말인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어려웠다는 것 자체에도 주목해 보려 합니다. 미래편의 결론이 될지도 모르겠네요.

자. 그 목적이 벽파라는 건 현재의 통설입니다. 본문에서 근거로 삼아 볼 만한 것은 역시 "내가 신임 의리를 니들보다 안 지키겠냐"겠죠. 신임 의리는 경종이 노론을 숙청할 때 노론에게 잘못이 없다고 하는 논리, 곧 영조와 노론의 의리입니다. 이에 대해 채제공을 중심으로 한 남인들이 내세운 것은 임오의리, 세자는 모함당했을 뿐이라는 거였습니다. 정조는 이 두 개의 의리가 다를 수 없다는 것이었고, 즉 벽파에게서 "세자를 추숭하는 것도 니네가 말하는 의리에 위배된 거 아니다. 딴 말 하지 마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의리는 시대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알고 보면 똑같은 거다. 이런 거죠. 당시 정조는 세자를 추숭할 준비를 거의 끝마친 상태였습니다. 혜경궁은 그걸 1804년이라고 적고 있구요. 딱 그 때까지만 참자고 했다고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몸은 급속도로 쇠약해져 가고 죽음이 보이자 초조해져서 했던 이성을 잃은 경고, 그것이 오회연교라는 거죠.

(2) 시파인가
"시파란 말을 쓰기 싫어서 [속]이라는 말을 썼더니 그놈들이 알고 저 지x이네."
"이만수는 색이 다른 것 같아도 알고 보면 친벽파야. 일단 지금은 사직하게 하는 게 낫겠지만 걔를 중용해야 돼."

심환지의 어찰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정조는 심환지에게 보낸 편지에서 시파를 벽파의 논리대로 신나게 욕 하면서 자기가 벽파라고 내세웁니다. 정말 절실하게 말했던 저 내용, 누구를 향한 것인지 말 하지 않았으면서 벽파의 당수 심환지에게는 "저거 시파한테 한 거임 加加(키읔키읔)"이라고 하고 있죠. 이렇게 내용은 아예 뒤바뀝니다.

애초에 문제가 됐던 김이재는 시파, 그가 공격한 이만수는 정조 말대로라면 친벽파입니다. 오히려 시파가 벽파를 공격했기에 이런 말을 한 거라는 거죠. 이렇게 되면 문제가 이상해집니다. 한창 사도세자를 추숭할 꿈에 부풀어 있던 정조가 그에 반대하는 벽파를 공격한 이유는 또 무엇일까요? 또 이 문제는 이 오회연교 때문에 벽파가 정조를 암살한 거라는 말에도 전면 배치됩니다. (실제 이게 주요 주장이죠)

정병설 교수는 이에 대해 "막후 정치를 위해 본심이 아니면서 같은 편이라고 한 거다"고 했지만 그렇게 본다면 말이 아예 안 맞습니다. 어쨌든 벽파를 공격한 거라면, 심환지에게 "시파를 향한 거다"고 하면 효과가 너무 떨어집니다. 거기다 자수까지 하라면서 강경하게 나간 걸 보면요. 정병설 교수의 말대로 반대파도 회유하기 위해서라고 하기엔... 너무 자세하고, 너무 직설적이죠. 이게 벽파를 향한 거라면 어찰 때문에 효과는 없어진다고 봐도 될 겁니다. 이게 최근에 세상에 드러난 심환지 어찰의 위력입니다. -_-;;;

글쎄요... -_- 휴...
이렇게도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저게 정말 말 내용과는 달리 강경한 게 아니었다면이죠. 자수하라는 말과는 달리 그냥 경고 수준이었고 (그래서 직접 이름을 밝히지 않은 것이고) 사도세자와 별 관련이 없는 거였다면입니다. 정조는 어찰을 통해 "평소에 가만히 있다가 칼 한 번 빼들었으니 쟤네들 쫄았을 거다"면서 또 가가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화 낸 것 역시 "쇼"였다는 겁니다. 이런 쪽은 어떨까요? 일단... 이 뒤를 좀 살펴보구요.

2. 의리의 미망인, 정순왕후
어쨌든 정조는 죽고, 11살의 순조가 왕에 오릅니다. 그리고 정순왕후가 수렴 청정을 시작하죠. 60대 후반의 언제 죽을 지 모르는 늙은 왕에게 시집 온 15살의 어린 왕비. 그녀는 정조 재위 내내 꽤나 큰 영향력을 보입니다. 정조가 있을 때 이미 여자 요순이라면서 존호까지 받은 게 그녀였죠. 정조가 죽자 그녀는 순조를 대신해 수렴 청정을 합니다. 그 해 12월, 역시 어마어마한 분량의 언문 하교가 내려집니다. 오회연교의 내용을 하나하나 해석한 것이었습니다.

- 영조 모년의 처분 (사도세자)는 부득이한 것이었다.
- 그런데 이 [모년의 의리를 어긴 자들]이 국본(세손)의 위치까지 흔들려고 했다.
- 그 후 여러 사건에서 찌끄레기들만 벌하고 배후인 홍봉한은 그대로 놔두었다.
- 이들은 영조의 말을 어기고 사도세자를 추숭하려 했으나 영조의 뜻을 그대로 지킨 정조 덕분에 무산되었다.
- 이건 결코 사도세자를 위한 게 아니었다. 그들이 청의 (바른 선비) 들에게 공격 받자 그 죄를 사류 (벽파) 에게 뒤집어 씌우려 한 거였다.

"6월 12일 연석에서 또 하교하기를, ‘그들이 끝까지 자수하지 않는다면 내가 처분을 내리지 않을 수 없다.’ 하였다. 정조의 엄격함이 이에 이르렀으니,  그들이 끝까지 자수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겠는가? 이건 정조의 뜻이니 그만둘 수 없다."

이것으로 오회연교에서 정조가 죄를 물었던 것은 시파, 사도세자를 추숭하려 했던 이들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걸 거슬러 보면 그들은 사도세자를 죽이고 정조가 왕위에 오르는 걸 막으려 했던 것으로 정조를 위해 추숭하려 한 게 아니었다는 게 되죠. 그 중심에 있는 것은 바로 홍씨 일가였죠. 벽파는 자기들에게 반대했던 이들에게 총공격을 가합니다. 특히 채제공을 중심으로 사도세자 추숭에 힘 썼던 남인들이 주요 타겟이었죠. 마침 건수가 제대로 터져 주었으니, 이것이 신유박해입니다. 천주교 자체의 위험도 있지만 정약용으로 대표되는 남인들이 많았죠. 혜경궁은 이 때 자기 동생 홍낙임도 천주교도로 몰렸다면서 아주 통곡을 합니다. 결국 홍낙임은 죽게 되죠.

그녀의 해석을 통해 "모년의 의리를 범한 것"은 "신임의리"가 아닌 "사도세자를 추숭하려 했던 세력"이 되었습니다. 그 이후는 일사천리였죠. 정조의 말이 모두 근거가 되었거든요. 정조는 즉위하자마자 "사도세자 추숭 얘기 꺼내는 놈은 디짐"이라고 엄포를 내 놓습니다. 정조 즉위년, 병신년의 처분이었죠. 이 때 김상로, 문성국, 문녀(과거편에 나왔던 후궁 문씨) 등 사도세자를 모함했다는 세력을 숙청하면서 사도세자를 신원하자고 했던 세력도 "쥐새끼 같은 무리"라면서 같이 숙청해 버립니다. 홍봉한의 죄에는 일물, 뒤주를 영조에게 바친 죄와 함께 정조에게 "사도세자를 추숭하자"고 했다는 죄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아예 극과 극의 죄를 같이 받은 거죠. 혜경궁도 이런 정조의 모습에 억울해 했습니다. 정조 재위 내내 했던 말을 생각하면 정순왕후의 말은 모두 근거가 확실하고 명분이 뚜렷한 말이었습니다.

정순왕후와 심환지가 주축이 된 벽파의 공격은 생각보다 크지는 않았습니다. 이전 편에 권유가 상소했을 때 그들은 김조순에게까지 손을 안 대겠다는 걸 확실히 했죠. 아마 벽파 내부에서도 생각이 갈렸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소론이 비교적 방관자였던 걸 생각하면 벽파의 공세는 남인에게 집중됐습니다. 홍씨는 당연한 거고, 채제공을 비롯한 사도세자 추숭을 주장했던 세력이 집중포화를 받았죠. 이것이 단 3년만에 완료될 정도였으면 그들의 명분은 그만큼 확고했다는 게 될 겁니다. 그리고, 그런 것치고는 생각보다 약했습니다. 채제공의 죽음 후 힘을 많이 잃은 남인만 건드리고 이후 큰 활약을 하는 안동 김씨에는 손도 못 댄 걸 보면요.

그런 걸 생각한다면 오히려 벽파의 힘이 너무 약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정조의 일에 사사건건 반대하면서 악의 축 취급을 받지만, 그렇게 힘이 강했다면 심환지가 죽고 정순왕후가 물러난 지 1년도 안 돼서 상황이 완전히 뒤집힐 수 없겠죠. 애초에 그들은 "임금의 뜻에 따르지 않고 자기들의 의리만을 주장하는 편벽한 무리"였습니다. 왕 정도의 강력한 지지자가 없다면 절대 주류로 오를 수 없는 무리였죠. 이 때문에 벽파를 보존하기 위해 오회연교를 한 거라면 아귀가 상당히 맞아 떨어집니다. -_-; 거기다 정조는 어찰을 통해 심환지에게 어떤 걸 상소해라, 여기까지 가는 건 막아라 일일이 지시를 했고, 심환지는 거기에 따랐습니다. 이것만 본다면 벽파 역시 정조의 손 아래 있었던 것입니다.

+) 뭐 그렇다고 이들이 정조의 말에 따르기만 했다고 보기는 힘들죠. 정조는 어찰 내내 채제공과 친하게 지내라, 채제공은 좋은 신하다 계속 반복했거든요. 그렇다면 정조가 죽은 후 채제공 세력을 공격한 건 여기서 벗어난 거죠. 하지만, 그 역시 정조가 살아 있었을 때 했던 말을 통한 거였습니다.

이전 편에서 정순왕후가 너무나도 쉽게 gg를 쳤던 것 역시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명분을 손에 쥐고 흔들었던 그녀, 하지만 그 명분이 없자 "수렴 청정은 불법"이라는 말 한 마디에 물러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녀의, 벽파의 기반은 그 정도로 약했다는 것이죠. 그녀가 죽은 후, 오회연교의 뜻은 정 반대가 돼 버립니다. 벽파가 오회연교를 멋대로 해석해서 선왕의 뜻을 왜곡했다는 것이죠. 현재의 통설입니다.

3. 선왕의 뜻
그렇다면... 결국 정조의 뜻이 무엇이었느냐가 문제가 됩니다.

정조는 재위 내내 사도세자 추숭의 반대편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꼭 그런 것도 아니었습니다. 사도세자를 모함한 세력은 그 세력대로, 추숭하자는 세력은 그 세력대로 차근차근 밟았죠. 그가 허용한 범위는 딱 "사도세자" "경모궁"까지였습니다. 하지만 은근슬쩍 더 나아가죠. 사도세자의 무덤을 수원으로 옮기고 그 근처에 성을 짓습니다. 이게 수원 화성입니다. 남인들은 지속적으로 사도세자 추숭을 주장했고, 그 앞에는 채제공이 있었습니다. 수없이 많은 공격을 받은 채제공이었지만, 정조는 그를 마지막까지 지켜주고 신뢰했습니다. 여기에 직접 사도세자의 행장을 지어서 그가 억울했고, 영조도 계속 후회했다는 걸 적었습니다. 여기에 더해 "영조가 자기가 후회하는 뜻을 채제공에게 맡겼다"고 하면서 그 증거인 금띠를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한중록에 적힌 모습을 보면 정말 느리면서도 꾸준한 발걸음이었죠.
그래도 말로는 계속 사도세자 추숭에 제한을 두었습니다. 혜경궁이 "개망나니"라고 표현했던 벽파의 김종수, 정조는 "내가 그를 살려준 게 몇 번인지 모르겠다"면서도 끝까지 챙겨 줬습니다. 남인들의 끝없는 요청에 울면서 동감을 표시하면서도 그 뜻을 들어주지는 않았죠. 오죽하면 혜경궁이 "마지막에는 사도세자와 함께 홍씨 집안도 모두 되살리겠다"는 정조의 말에 진짜인지 의심할 정도였죠.

글쎄요... 흠... 한중록의 한 부분입니다.

"1804년은 원자(순조)의 나이 십오 세니 성인이라, 족히 왕위를 전할 만하니, 원자에게 왕위를 넘긴 후 처음 먹은 마음을 이루어, 마마(혜경궁)를 모시고 화성으로 가 경모궁(사도세자) 일을 행치 못한 평생의 한을 풀 것이라. 이 일을 영조의 하교를 받아 행치 못하는 것이 지극히 원통하나, 이 또한 의리상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하지만) 원자는 내 부탁을 받아 내 마음을 미루어 내 행하지 못한 것을 자기가 대신 행하는 것이 떳떳한 의리라. 오늘날 신하들은 나를 따라 [경모궁 추존을 하지 않는 것이 의리요], 후일에 신하들은 [새 임금을 좇아 경모궁 추존을 받들어 행하는 것이 의리]라."

결국 답은 여기서 찾아야 되지 않을까 싶네요. 확실한 결론은 뒤로 묻어 두겠습니다.
다음 편부터 벽파와 시파, 특히 채제공의 남인 사이에 있었던 일들을 다뤄 보겠습니다. 당최 속 마음을 알 수 없는 정조의 마음도 어떻게든 파고 들어가 보죠.

저번 편과 이번 편까지 중요하게 표시해 두었던 부분, [오회연교가 대체 누구를 향하는 건지 애매하게 말한 것] [벽파가 단 3년만에 시파를 몰락시킨 것] [그러고도 반년도 안 돼서 뒤집힌 것 -_-;] [마침내 승리한 시파가 결국 사도세자 추숭울 못 한 것(고종 때에야 됩니다)] 이 부분을 잘 기억해 둡시다. 힘이 될 거예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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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roSpera
11/09/20 19:23
수정 아이콘
한 나라를 통치하는 전제 군주라는게 결코 가볍게 볼일은 아니로군요,
물여우
11/09/20 21:01
수정 아이콘
요즘 너무 재밌습니다. ^^
당시 인물들이나 현재 그 시대를 연구하는 분들은 머리가 아팠겠지만 옆에서 구경(?)하는 입장에서는 아주 흥미진진하네요.
다음편 기대합니다. >_<
Je ne sais quoi
11/09/20 22:08
수정 아이콘
와우... 잘 읽었습니다. 참 어렵군요. 심환지 어찰 공개 이후로 저는 예전에 가졌던 정조에 대한 이미지는 모두 버렸습니다. 이 시리즈를 읽으면서 정리를 해봐야지요.
11/09/21 12:17
수정 아이콘
헐? 뭔가 혼란스럽네요. 아오...
그렇다고 정조에 대한 평가를 다시 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새로운 모습이네요. 잘 봤습니다.^^ [S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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