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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1/08/29 04:15:28
Name OrBef
Subject [일반] 잡담 (부제: 출근 첫 주)
요즘 사는 게 너무 바쁘고, 결정적으로 운영진이 되고 나서부터는 글을 거의 올리지 않게 되었지만, 저도 원래는 수다스러운 성격입니다. 별  것도 아닌 일에 어떻게든 의미를 마구마구 부여해서 두어 시간씩 수다를 떨어야 직성이 풀리곤 하고 그렇지요. 해서 간만에 마음 편하게 자게에서 수다 좀 떨고 싶어서 놀러 왔습니다.

1. 미국 학생 vs 한국 학생? 미국 학생 = 한국 학생

글에 앞서서 미리 말씀드리지만, 저는 미국으로 건너온 지 7년이 지났습니다. 해서, 현재의 한국에 대해서 약간 잘못된 이해를 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긴 합니다.

미국에 처음 와서는 18살 학생이 70살 교수님한테 Hi John 이라고 부르고 그러기에, '이곳은 만인이 만인에게 평등하구나!' 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몇 년 지나고 나서 요즈음 느끼는 것은, 그건 언어적 차이 (영어에는 존댓말이라는 개념이 아주 약하죠. 전혀 없지는 않습니다만) 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한 것 같습니다. 말하는 톤에서 느껴지는 약간의 차이, 눈빛, 손짓 등의 미묘함 등등을 보면, 이 친구들도 연장자에게 나름대로 예의를 갖추긴 합니다. 더구나 제가 학생들을 가르치는 곳은, 무려 조지 부시 아저씨의 홈그라운드인 텍사스! 입니다. 당연히 캠퍼스 분위기가 상당히 보수적이지요. 학생들도 질문할 때 'Professor?' 라고 (이건 Professor nim? 이라고 하지 않았을 뿐, 한국식으로 따지면 딱 '교수님?' 의 느낌이 드는 어휘입니다) 말하면서 시작하고 그렇습니다.

문제는, 제가 일반적인 미국인 이상으로 '상호 간 의견을 교환할 때만큼은, 장유유서는 백해무익하다고 강하게 믿는다'는 점 입니다. 그러다 보니 학생들이 좀 자기 의견도 자유롭게 내놓고 그랬으면 좋겠는데, 'What do you think?' 라고 물어보면 대답 없는 것은 여기도 마찬가지더군요.

신임 교수들에게 제공되는 '수업 잘하는 법' 에 대한 워크샾에 가도 같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초/중등 교육 12년 동안, 특히나 공교육을 받은 경우라면 더더욱, 아이들은 '선생이 원하는 답' 을 주는 것이 자기의 의무라고 배웠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자기 의견을 내놓기 꺼리지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고 고민하다가, 무기명 조사를 한번 해봤습니다. 그랬더니 반응 좋더군요.

문: 넌 이 과목을 왜 신청했어? 답: 전공 필수니까. 다른 이유는 없지.
문: 비선형 방정식은 왜 어려울까? 답: 몰라. 근데 그게 어렵다는 건 알아.

등의, 속내가 좀 나오더라... 이겁니다. 해서 앞으로 종종 활용할까 합니다. 물어보려는 질문들은 아래와 같은데, 오른쪽에 쓰여 있는 답들이 나오면 대to the망입니다.

문: 내 강의의 난이도가 적절해? 답: 아니. 너 너무 못 가르침.
문: 내 영어 듣기 쉬워? 답: 너 영어 너무 못함.

2. 노예처럼 일하기 vs 거드름 피우면서 일 시키기

전혀 예상과는 반대로, 후자가 더 힘들더라 이겁니다! 연구원들을 고용해서 일을 시키는 데, 이 친구들이 연구하는 방향이나 이런 것에 대해서 조언을 해줘야 하는 상황이 종종 발생합니다. 이때, 제 조언은, 제가 월급을 주는 사람인 이상, 절대적인 영향력을 지닙니다. 조언 = 명령이죠. 근데 그 명령이 나중에 알고 보니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면, 이 친구들 커리어는 완전히 꼬여버리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 인생에 강한 영향력을 지닌다는 것은, 꽤나 부담되는 일이더군요.

3. 젊은 학생들 사이에서 일한다는 것.

물론 저도 젊긴 합니다만, 그래도 10대 후반 ~ 20대 중반에 비할 건 아니니까요.

참 기분 좋더군요. 젊은 친구들이 옆에서 커피 마시면서 잡담하는 것만 봐도 기분이 좋습니다. 은퇴하는 그날까지 불로불사의 느낌으로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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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 ne sais quoi
11/08/29 04:20
수정 아이콘
교수님 이야기 나오기 시작하나요~ 바쁘시겠지만 종종 글 써주세요. 잘 읽겠습니다 ^^
SCVgoodtogosir
11/08/29 06:20
수정 아이콘
제일 쉬운건 돈 주고 교육받기, 좀 어려운건 돈 받으면서 일하기, 제일 어려운건 돈 주면서 일시키키.. 로군요.

저도 중, 고등학생 많이 가르쳐봤는데 (과외 8년 정도?) 과외할때 그 느낌이 정말 좋긴 합니다. 가르칠 때 신이라도 내리는 듯한 느낌;;
나름 자부심도 가지고 있고 성과도 있었지만.. 이제는 직장 다니느라 접었는데, 경제적 여유가 된다면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도 해보고 싶긴 합니다. 뭐, 사내에서 사내 강사로 강의 뛰는 것도 가능하지만요.

수고 많으십니다^^ 바쁘신 와중에도 글 종종 올려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마나부족
11/08/29 07:15
수정 아이콘
텍사스면 OrBef님 학교 풋볼팀이 제 학교로 원정올 수도 있겠군요..;
승리의기쁨이
11/08/29 08:16
수정 아이콘
이런글 좋습니다. 바쁘신데 운영진일까지 해주시고 항상 감사합니다.
11/08/29 09:02
수정 아이콘
아랫(?)사람도 나름 고달프기는 하지만 윗사람은 그 몇배나 고달픈 법이군요 ㅠ_ㅠ
위로 올라갈수록 책임이 커져가기만 할텐데 벌써부터 걱정이 앞섭니다.. 으헝- (울며 뛰어간다)
이강호
11/08/29 09:17
수정 아이콘
저희 집은 옆동내 little rock인데 텍사스로 오셨군요! 반갑습니다
그나저나 남쪽 사투리는 알아들을만 하신지요..?! 첨에 오신 분들 적응이 안되서 많이들
힘들어하시던데, 하여튼 근처에(?) 사시니! 반갑군요.
Noam Chomsky
11/08/29 10:02
수정 아이콘
다음 무기명 조사 결과 꼭 알려주세요.
11/08/29 10:46
수정 아이콘
크크크 professor nim 까지는 아니어도 아이들 가르치는 입장에서 1 2 3번 모두 다 공감 100%입니다. 특히 3번. 이녀석들이 뿜어내는 에너지만으로도 불노불사할 것 같습니다. 크크 그럼 저는 다시 이녀석들과 전쟁을 하러 이만.. [m]
진리는망내
11/08/29 10:57
수정 아이콘
학교에서 보면 확실히 교수분들은 나이에 비해서 젊게 사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중고등학교 교사분들도 그렇구요.
11/08/29 11:03
수정 아이콘
율님, 진리는망내님//
그렇지요.. 사실 젊은 친구들 가르치는 것을 업으로 삼는 큰 이유 중 하나가 그 젊은이들한테 묻어서 나도 좀 젊게 살려고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XellOsisM
11/08/29 11:39
수정 아이콘
1. 저도 외국생활한지 10년이 넘어가는데 어릴때부터 동서양친구들과 부대끼며 살아보니 느끼는 건 한국이나 여기나 사람 사는데는 다 똑같구나~ 같아요. 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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