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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1/08/28 00:41:46
Name 눈시BB
Subject [일반]  단종애사 - 0. 성군의 그림자



하여간 욕 먹는 왕만 하신다니까요 - -a

  1. 성군의 쇠약
"영의정 황희·우의정 하연·예조 판서 김종서·좌참찬 이숙치·우참찬 정인지 등을 부르고 수양 대군과 도승지 이승손에게 명하여 전지하기를," (세종 27년 5월 1일)

이 다음 나오는 말이 세자에게 정무를 맡기겠다는 것입니다. 예고편에 적었던 "내 몸 지키기 급급하다. 왜 내 병은 신경 안 쓰냐"고 했던 바로 그 날의 기록이죠. 이 즈음부터 세종대왕은 직접 신하들과 만나지 않고 주로 여러 대군들을 통해 자신의 뜻을 알렸습니다. 그 중에서 단연 두각을 보인 왕자가 바로 수양대군이죠.

수양대군 이유. 세종 실록에서 그에 대한 평은 그리 호의적이지 않습니다. 보통은 왕이 수양에게 뭘 시켰다, 뭘 시켰다 하는 것들이지만, 하필 이 때 세종대왕은 불교에 기울어져 있었죠. 세종대왕이 시킨 거 같은데 왕을 욕 하진 못 하겠고 수양과 역시 자주 언급되는 안평대군을 욕 한 기록들이 보이네요. 사관들은 당연히 이를 물어뜯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게 있네요.

"임금의 마음이 힘입을 데가 없었다. 이에 수양 대군과 안평 대군 이용이 사설(邪說)에 혹하여 먼저 뜻을 열고 인도하여 궁금 옆에 불당을 두므로, 성덕에 누를 끼쳤으니 이것은 실로 두 대군의 허물이었다." (30년 8월 5일)

하지만 그가 억울하다 할 수 없는 게, 그는 친불이었거든요.

"공자의 도보다 나으며, 정자와 주자가 그르다고 한 것은 불씨를 깊이 알지 못한 것이었다. 천당지옥과 사생·인과가 실로 이치가 있는 것이요, 결코 허탄한 것이 아닌데, 불씨의 도를 알지 못하고 배척한 자는 모두 망령된 사람들이라, 내 취하지 않겠다" (31년 7월 1일)

"내"라는 말을 쓴 걸 보면 왕이 말한 거 같은데... 왕도 세자도 아닌 일개 대군일 뿐인 수양이 말한 겁니다. 이 때부터 뭔가 다르죠. 이미 세종대왕 때부터 그의 무게감은 남달랐습니다.

자기 형제들을 죽이고 내쫓은 태종과는 달리 세종대왕은 왕자들을 최대한 중용했습니다. 세자가 되지 못 한 채 썩을 뻔 했던 자기의 처지가 생각나서였을까요? 아버지의 피가 흐르는만큼 그들 하나하나의 능력도 출중했던 모양입니다. 문종은 그 아버지를 빼닮은 것처럼 유능했고, 수양은 문무 양쪽으로 탁월했으며, 안평은 문 쪽으로 빼어난 기량을 가지고 있어 중국에서도 그의 글씨를 얻고 싶어 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 외에도 금성대군도 유능한 무장이었다고 하죠. 이런 귀엽고도 유능한 자식들을 그냥 둘 순 없었을 겁니다. 그리고 자기가 양녕, 효령과 했던 것처럼 친하게 지낼 거라 믿었겠죠.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말년의 세종대왕은 까칠하고 독단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즉위할 때부터 수많은 토론을 거쳐서 결정을 내렸던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죠. 특히 학자들과 입씨름하며 시간만 잡아 먹을 일 (훈민정음이라든가 훈민정음이라든가 훈민정음이라든가...) 은 주로 자기 자식들을 시켰다고 봐야 될 것입니다. 왕권 강화의 한 방편이었을지도요. 믿었겠죠. 가족의 힘을.

이유가 수양이라는 이름을 얻기 전부터 그는 꽤나 중용됐습니다. 중국 사신을 마중 나가고 접대하고 환송하는 자리에 그를 대신 보냈고, 문종에게 대리 청정을 시키기 전에도 자기 대신에 많은 것을 시키게 했습니다. 그 후에는 그의 말은 무조건 왕의 말이었죠. 그 역시 세종대왕의 뜻을 잘 따라서 훈민정음 창제에도 큰 역할을 하고 후에는 석보상절을 지어 바쳤고, 딱히 세종이 그의 잘못을 탓했다는 기록 역시 찾아볼 수 없습니다. 어머니에 대한 효성 역시 지극해서 소헌왕후는 수양의 집에서 숨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그 때문에 소헌왕후만 살아 있었다면 그 비극이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는 말이 있죠. 세종대왕 역시 심심하면 수양의 집에서 묵었습니다. 병을 치료한다는 핑계로요.

이 정도로 신뢰 받는 종친, 그렇다면 그 위세는 어떠했을까요?

2. 두 형제
문종이 수양을 두려워했다, 수양은 문종 치세에는 감히 다른 꿈을 꾸지 못 했다, 이렇게 두 가지로 얘기가 나뉩니다. 문종을 중심으로 본다면 이렇게 되겠죠. 문종은 수양을 두려워했다, 혹은 문종은 수양을 정말 믿었다.

딱히 둘이 대립한 이야기는 찾을 수 없습니다. 대립할 시간도 없었죠. 따라서 추측이 많이 들어가야 됩니다. 아마 다음 편에 어느 정도 결론 낼 것 같네요.

수양 대에 만들어졌을 문종 실록, 하지만 거기에도 수양을 까는 이야기는 많습니다. 역시 불교 때문이었죠. 하지만 문종은 철저히 수양의 편을 듭니다.

(수양과 안평이 절을 지은 죄를 논하는 황효원의 상소에 대해) "유생은 마땅히 정직하고 진실해야 하는데, 네가 지금 말한 것은 무엇을 이름인지 알 수가 없다. 네가 청을 얻지 못하고서 패만한 말을 발설하였으니, 그것이 또한 선군(세종)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어서인가? 유사에 내리어 추문한다면 마땅히 중죄를 얻을 것이지만, 그러나 좋은 뜻으로써 와서 말하는 까닭으로 처벌하지 않으니 너의 집으로 가라" (문종 즉위년 3월 5일)

(수양과 안평의 죄를 탄핵한 상소에 대해) "이 사람의 말은 경박함이 심하였다" (문종 1년 10월 8일)

(뭐 비슷한 일로 -_-; ) "대체로 사람으로서 거구추섭(몰라용)한 자는 죄가 장 80대에 그치는데, 하물며 대군인 경우이겠느냐? 이러한 작은 일 때문에 직첩을 빼앗겠느냐? 외방으로 내치겠느냐? 사헌부나 종부시에 내려서 추국을 하겠느냐? 모두 불가(不可)하다." (문종 1년 10월 15일)

(중국 사신을 접대할 때 쓸 음악에 대해 얘기하다가) "수양 대군이 음률에는 알지 못하는 것이 없으니, 관장할 만하다" (문종 2년 3월 12일)

참고로 위에서 나오는 수양의 죄라는 건 꽤나 큽니다. 승려인 걸 증명하는 도첩이 없다는 이유로 칼을 씌워 끌고 가던 중을 멋대로 풀어 주게 한 거였거든요. 그런데도 문종은 그를 벌 주지 않았고, 오히려 "그 중이 죄가 있긴 했냐"고 따지면서 "죄 없는 자를 끌고 간 게 더 잘 못 아니냐"면서 그들을 탓 했습니다. 수양이 따로 해명하자 그걸로 끝 났습니다. 그 후로도 탄핵이 계속 올라왔지만 거부했죠.

정말 둘 중 하나죠. 벌을 줄 생각도 못 할 정도로 두려워했거나, 벌을 줄 생각도 안 할 정도로 그를 믿었거나요.

종친의 정치 행위에 대해서는 그 때도 견제가 가해졌습니다. 그에 대해서도 한결 같았습니다.
"말길 만한 사람도 없으며, 또한 권력이 무거운 관사도 아닌 까닭이니 다시 말하지 말라" (문종 2년 4월 24일)

문종이 그를 믿었다 해도 딱히 이상한 부분은 없습니다. 불교 부분에서 그를 옹호한 것은 문종 역시 딱히 억불이 아니었다고 보면 될 것이고, 세종대왕이 죽은 지 몇 년 지났다고 그걸 그만둘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니까요. 문종이 정말 약한 왕이었다면 다른 것에 기대서라도 수양의 권력을 억누르려 했을텐데 그런 모습도 보이지 않습니다. 정말 약해서 "이렇게 잘 해 주면 딴 마음 안 품겠지"라고 하기엔 그는 그렇게 약한 왕도 아니었구요. 이게 조금은 있었을 거라 생각하긴 하지만... 어쨌든 둘은 대립하지 않았고 대립할 틈도 없었습니다. 문종이 죽은 건 겨우 2년 후였습니다. 그 기간 동안 그가 수양에게 보여 준 신뢰는 정말 대단하구요.

그리고 그 신뢰 때문인지, 문종이 죽을 때 수양의 모습도 참 감동적이었습니다.

3. 형의 죽음
문종 2년 5월 14일. 강녕전에서 문종은 눈을 감습니다. 그 때의 모습을 보죠.
"수양 대군이 외정에서 통곡하면서 말하기를, “어째서 청심원(淸心元)을 올리지 않는가?” 하니, 전순의가 비로소 청심원을 올리려고 했으나 시기가 미치지 못하였다."

4일 후, 그의 아들이 즉위했을 때의 기사입니다. 여기서부터 그는 "노산군"으로, 정작 대군일 뿐인 수양은 "세조"로 적히니 유념하세요.

"상제에 곡림할 때 세조께서 애통함이 지성에서 나오니 조신들로 바라보는 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이 없었는데, (중략한 부분은 좀 있다 나와요 ^_^) 세조가 사저로 물러나와 자성 왕비(정희왕후예요)와 더불어 서로 대하고 울어서 비통함이 지나쳐 기운이 막히니 약을 먹고 풀기까지 하였다. 세조가 말하기를"

울다 지쳐 쓰러질 정도가 됐다고 하네요. 오죽 슬펐을까요. 뭐라고 말 했는지 볼까요.

"대행(문종)의 은덕을 어떻게 다 말할 수 있으랴. 내마음을 다하기를 원할 뿐이다. 대행이 천성이 어질고 효도하여 사람들에게 대하여 신의가 두터워서 가볍게 절물을 하지 않았다. (중략~)
"또 나더러 정대하고 충성하고 지식이 다른 사람보다 다르다 하여 항상 더불어 일을 논하였다. 일찍이 진법을 만들었는데 말씀하기를, ‘이정(李靖)·제갈량(諸葛亮)인들 어찌 수양(首陽) 보다 나을까?’ 하였다."
"또 일찍이 내궁에서 칭찬하기를, ‘수양은 비상한 사람이야.’ 하였다. 대저 형제간에 우애하는 마음이 천성에서 나왔으니, 우리 형제가 이로써 감격하여 울기를 끝없이 하였다."

예. 잘 들었구요. 제 점수는요... 아무튼 이어서 이렇게 해설하고 있네요.

"대행왕께서 병환이 위독하자 좌우에 말하기를, “수양이 보고 싶다.”하였으나, 좌우에서 그릇 숙의로 알아듣고 마침내 부르지 않았는데, 대개 후사를 부탁하고자 함이었다."

노산군일기는 다다음 편부터 뜯어보겠지만 참 판타지스러운 책입니다. 그래서 믿을 수 없습니다만... 저게 만약 사실이었다면 어땠을까요. 문종이 정말 수양에게 후사를 부탁하려 했다면...

휴... 위에서 중략한 걸 공개하겠습니다.

"이용만은 한 번도 참여하지 않고 술을 마시고 고기를 먹는 것이 평일과 다름이 없었다"

안평대군 이용. 수양의 라이벌로 기록되고 김종서 등과 더불어 왕위를 찬탈할 음모를 꾸미다 수양에 의해 진압되는 인물입니다. 이전부터 수양과 비슷한 정도로 언급되는 그였지만, 노산군일기의 처음에는 이렇게 악역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등장하게 되죠.

4. 정난의 시작
일부러 소매가 큰 옷을 입어 움직일 때 소리와 동작이 크게 했다든지 (세종은 오히려 "수양 정도의 힘이면 저 정도는 입어야지"라고 했다고 하죠) 한겨울에도 얇은 옷을 입어 근육을 자랑하고, 일부러 약한 말을 골라 쓰러지면 멋지게 착지해서 무인 기질을 드러냈다든지 하는 얘기가 많습니다. 그의 야망을 설명해 주는 것이죠.

수양이 야망을 처음 품었을 때는 언제였을까요? 이미 세종대왕 때부터? 문종이 아픈 걸 보고? 문종이 죽은 이후? 혹은 자기 말대로 대신과 안평이 임금을 (혹은 자기를) 몰아낼 거 같으니까? 알 수 없습니다. 그 자신 말고 누가 알까요? 확실한 건, 그의 야망이 너무도 빨리 나타나고 있다는 점입니다.

문종이 죽은 지 단 5일 후인 5월 19일, 이례적인 조치가 취해집니다. 대군의 집에서 분경을 허용한 것이죠. 분경은 관원이 대신 등의 집에 사사로이 찾아가서 청탁을 하는 행위를 말 합니다. 평시에도 금지된 것이고, 상 중이니만큼 사사로이 찾아가서 의논하는 것 자체를 막으려 한 거죠. 대간의 요청에 의한 것으로 당연한 거였습니다. 여기에 딴지를 건 것이 바로 수양이었습니다. 그 옆에는 수명이 얼마 안 남은 안평 역시 있었습니다.

"우리들에게 분경하는 것을 금하니, 이것은 우리들을 의심하는 것이다. 무슨 면목으로 세상에 행세하겠는가? (중략) 가령 세종 대왕이 다시 세상에 살아난다면 능히 부끄럽지 않겠는가? 우리들이 글을 올려 진소하고자 하였으나 혹 유사의 잘못인지도 모르겠기에 먼저 대신에게 고하는 것이다"

이 때 황보인 등의 대신은 "크게 놀라서" 사헌부 탓만 했다고 합니다. 이를 통해 대군의 집에서는 특별히 분경을 허용했습니다. 사사로이 만나는 걸 허락한 것이죠.

그 한 달 후, 이번에 수양은 다른 일을 물고 늘어지기 시작합니다. 이번에도 동원된 사람은 후에 2등공신에 오르는 강맹경이었습니다. 이번에도 세조는 별 생각 없었는데 강맹경이 그에게 보고했다고 하죠.

"혜빈이 일찍이 대행왕께 청하여 교태전에 들어와 있어 내정을 총괄하려고 하였는데, 대행왕께서 심히 그르게 여기었다. 지금도 또한 들어와서 궐내를 마음대로 하고자 한다. 또 항상 판수와 무당의 말을 가지고 떠들어 말한다."

이 부분은 그 때 같이 있던 안평의 말이었습니다. 앞의 분경과 이 일에서 둘 다 안평을 동원했다는 것을 보면 정말 딴 뜻 없이 했다는 생각이 들 수 있죠. 혜빈이 문종 때도 정사에 간섭하려 했고 지금은 아예 대신과 손 잡고 정사를 마음대로 하려고 한다면 문제 삼을 일이긴 합니다. 에... 그러니까 이 혜빈이 누구냐면요.

세종대왕의 후궁으로 문종의 비 현덕왕후가 일찍 죽자 세손의 유모로 어릴 때부터 그를 키운 여인입니다. 오죽하면 그가 왕이 되고서도 그녀의 거처에서 자려고 했을 정도였죠. 그녀가 뭘 하려 했는지는 둘째 치고, 확실한 그의 편이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홍 귀인은? 문종의 후궁입니다. 딸이 하나 있었지만 일찍 죽었고, 문종의 아들과는 별 관계가 없죠.

홍 귀인은 이렇게 숙빈이 되어 왕실의 큰 어른이 됩니다. 여기서 볼 수 있는 목적은 단 하나, 혜빈의 힘을 견제하는 것이죠. 문종이 죽은 지 단 몇 일 후부터 모든 것이 시작되었습니다.

수양의 목표는 단 하나. 왕좌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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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의 남자를 봐야 되는데 귀찮군요. 흐음... -_-a
수양에게는 많은 종친이 따르고 있었습니다. 그만큼 그가 실세였다는 얘기겠죠. 아무리 문종이 일찍 죽었다고 해도 그에게 이렇게 많은 종친의 힘이 실린 것은, 그 자신의 능력도 능력이지만 다른 데서 원인을 찾아야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결국 다다르는 것은 세종대왕이죠. 그리고 태정태세 동안 종친들은 서로 싸워 왔습니다. 수십년의 태평성대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죠. 수양을 따른 종친들 역시 이런 흐름을 잘 알지 않았을까 싶네요. 무엇보다 (자기가 한 것과는 별개로) 이런 싸움의 희생자였던 양녕대군이 살아 있었고, 수양의 편을 들고 있었죠. 장자계승의 원칙. 유학자들에게는 당연한 거였을지 몰라도 그런 싸움을 보고 거쳐 온 종친들에게는 다른 문제였을 겁니다. 수양이 왕이 되기 너무도 쉬웠던 이유 중 하나를 여기서 찾아 보고 싶네요.

결국 여기서 세종대왕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기 생각이야 어떻든 수양에게 힘을 몰아준 건 결국 그였으니까요. 글쎄요... 영조와 정조 대까지 비교해 본다면, 아무리 성군이라도 재위기간이 긴 건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에 뭐 더 빨리 가셨다면 훈민정음이 안 나오는 초유의 사태도 일어날 수 있었겠지만요.

여담으로 하나 더 하자면 정조의 모습이 여기에 비교됩니다. 개혁 군주라는 모습과 다르게 그의 모습은 오히려 벽파에 더 기울어졌고, 그 벽파와 대립한 것은 바로 사도세자 문제였으니까요. 여기서 김조순이라는 외척을 만드는 무리수를 두게 되었죠. 그 모습이 세종대왕의 모습과 비슷합니다.

그런데 여기까지 오면 "정조가 실패했다"는 말에 의문이 또 들죠. 정순왕후와 벽파가 그의 개혁을 다 뒤집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실패한 건 사도세자 추숭 하나 뿐이었죠. 세도정치의 기반은 그가 마련해 놨구요. 하지만 이건 세종대왕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렇다면 세종대왕도 수양이 나라 갈아 엎고 집현전 없애고 했으니 실패했을까요? 그건 아니죠. 세종도 정조도 후대의 일에 자신의 잘못이 이유가 되긴 했지만, 그 후대를 만든 건 후대의 왕과 신하들이었습니다. 이것으로 성공과 실패를 가를 순 없지 않을까요. 글쎄요...
에휴... 정조 얘기 언제 한 번 크게 쓰긴 해야겠네요. 이상입니다. 다음 편은 문종과 그 아들 단종의 모습에 대해서 다뤄 보죠. 문종이 수양을 두려워 한 것일지, 정말 신뢰한 것일지 조금이나마 답을 찾아봐야죠.

생각해보면 제가 중심으로 삼는 건 언제나 실록이네요. 접근성이 좋아져서 그렇지만 10년 전만 해도 꿈도 못 꿀 일이었는데... 아예 타이틀을 이 쪽으로 정해 버릴까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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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원
11/08/28 01:09
수정 아이콘
언제나 좋은 글 잘 읽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문종 vs 안평대군 vs 수양대군의 대결구도가 그리 뚜렷하지는 않았던 모양이네요.
용의 눈물로 굳어버린 훈남 양녕대군의 실체를 알아버렸을 때 처럼 드라마로 구축된 역사관의 폐해일까나요. 크크
11/08/28 01:09
수정 아이콘
청나라도 장기집권한 건륭제 때부터 슬금슬금 썩어들어가기 시작했다는 걸 생각해 보면,
왕의 재위기간이 긴 건 확실히 위험한 일인 것 같긴 하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
무리수마자용
11/08/28 01:11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문종이라고 검색해보니 고려 문종도 흘륭한 왕이었더군요 생각해보니 고려도 조선만큼 오래 지속된 왕조인데 역시 기록덕후 조선의 힘인가봅니다 [m]
Je ne sais quoi
11/08/28 08:24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다음 편 기대할께요~
구국강철대오
11/08/28 12:59
수정 아이콘
문종시기에 수양에 대해서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힘을 키워두게 놔 버린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재위기간 2년이라지만 사실 세종 후반기에 실질적인 임금노릇을 하고 있었으니까요. 문종이 장수했다면 세조가 절대로 반정을 하지 않았으리라는데 가슴속 삼천원쯤 걸어봅니다.

그리고 반정이라서 딱히 나쁠것도 없는게 태종때부터 성종때까지 잘 했거든요. 왕족 내부의 다툼이었지 왕가의 권위자체는 튼튼했는데... 오히려 신하에 의해 추대된 중종반정부터 왕권이 약해진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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