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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1/08/14 18:46:15
Name 눈시BB
Subject [일반]  절사손장자(絶嗣損長子) - 조선의 장남들


+) 이전 글에서 치명적인 오류가 있었음을 다시 알립니다. 자세한 건 전 글을 참조해 주세요.
+) 최대한 찾아 쓴다고 하지만, 카더라를 그대로 넣거나 한 쪽 주장만 넣는 일도 많습니다. 제 글을 100% 믿으면 안 된다는 거죠. 그래도 최대한 틀리지 않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앞으로도 틀린 게 있으면 지적 부탁드리겠습니다.

"오늘날 신민들이 모두 이미 원손에게 기대를 걸어 적자손이 당연히 왕위를 계승할 줄로 알고 있을 뿐인데, 만일 신들이 경솔하게 전하의 뜻을 따라버린다면 어찌 신하의 도리이겠습니까."
"세자가 이미 졸하였으면 뒤를 이을 사람은 원손인데, 국본(國本)을 바꾸어 세우는 일을 어찌 말 한 마디에 당장 결단할 수 있겠습니까"
"세손이 계통을 잇는 것은 고금의 떳떳한 법이니, 떳떳한 법 이외에는 다시 진달할 것이 없습니다. 대체로 떳떳한 법을 지키면 비록 어려운 시기를 당하더라도 오히려 나라를 보전할 수 있지만 만일 갑자기 권도를 쓰면 인심이 복종하지 않아서 흔히 환난을 일으키게 됩니다"
"옛 역사를 상고해 보건대, 태자가 없으면 태손으로 이었으니, 이것이 곧 바꿀 수 없는 떳떳한 법입니다. 상도를 어기고 권도를 행하는 것은 국가의 복이 아닌 듯합니다"

죽은 소현세자의 아들 대신 봉림대군을 세자로 세우자는 논의를 할 때 신하들이 반대하면서 한 말입니다. 조선은 유교가 지배하던 나라, 적자, 장자에 대한 정통성은 확고했죠. 그렇다면 조선시대에 이건 제대로 이루어졌을까요?

시작하기 전에 생각나는 말이 절사손장자(絶嗣損長子)입니다. 자손이 끊어지고 맏아들을 잃는다는 무시무시한 말이죠. 세종의 능을 정할 때 풍수사 최양선이 한 말입니다. 이에 의정부와 예조에서 그를 벌 할 것을 주장하지만 세종은 듣지 않았죠. 그가 예언자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이건 사실이 됩니다.

+) 이전 글에서 태종의 능을 정할 때라고 했는데 오류입니다.
+) 꽤나 길어졌으니 스크롤 압박에 시달리신다면 결론만 보세요 ( ..)

1. 태정태세문단세
(1) 태조-정종-태종
마침내 새로운 이씨 왕조를 세운 태조 이성계. 국호도 고려에서 조선으로 바꾸고 한양으로 천도하면서 분주히 움직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크나큰 결정을 하게 됩니다.

당시 태조에게는 첫째 부인 한씨가 낳은 6남 2녀가 있었고(왕이 되기 전에 죽습니다), 두 번째 부인 강씨가 낳은 2남 1녀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진안군 이방우. 하지만 초점은 오히려 강씨의 아들들에게로 옮겨졌죠. 그녀가 태조에게서 받은 총애와 정도전 등의 지원이 큰 힘이었습니다. 이 중 막내 방석이 세자가 되죠. 나라가 아직 완전해지지 않았을 때, 나이로 해야 한다는 측과 공으로 봐야 한다는 측이 있었지만 방석은 둘 다 아니었죠. 이 때 정도전이 지원한 것에 대해 "재상 중심의 정치를 하기 위해 너무 잘난 자를 원하지 않았다" 정도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한편 이성계는 워낙에 산전수전 다 겪은 몸이니 누가 자기를 반대하랴 이런 생각이었다고 하죠.

그 결과가 바로 1차 왕자의 난입니다. 여기서 방석과 그 형 방번이 죽게 되죠. 태종 이방원은 그의 형 방과를 정종으로 내세웁니다. 이후 위협을 느낀 건지 자기에게도 기회가 있다 생각한 건지 방간이 거병하는데, 방원은 너무나도 쉽게 제압하죠. 2차 왕자의 난입니다. 그래도 여론도 있고 동복이라서 그런지 죽이지는 않습니다.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동안, 장자면서도 제대로 거론조차 되지 않았던 방우는 조선 개국 이듬해에 세상을 뜹니다. 술을 벗삼아 살던 인생이었습니다. 권력이 싫어서 그랬던 걸까요? 향년 40세였습니다.

정종에게는 적자가 없었습니다. 그 때문에 태종도 편히 그를 허수아비로 세울 수 있었다고 하죠. 그래도 뭔가 구색을 맞추기 위해 "세제"가 아닌 "세자"로 형의 아들이 돼 버립니다. -_-a

(2) 세종-문종-단종-세조
양녕과 충녕대군의 갈등은 재밌는 소재거리입니다. 흔히 양녕이 자기가 부족함을 알고 일부러 못 한 모습을 보여주었고, 충녕이 왕이 될 수 있게 했다고 하죠. 하지만 이는 선조 때부터야 볼 수 있는 모습이고, 고종 대에 이르러 아예 국가 공인이 됐다고 합니다. 그 이전에 보이는 모습은 세자에 대한 도전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고 하죠. 양녕이 그대로 왕에 오를 경우 자기가 숙청당할 수도 있는 상황을 각오한 겁니다. 뭐 덕분에 조선 최고의 성군이 탄생하지만요.

세종 때는 정말 일이 잘 풀립니다. 문종은 충실하게 세자 수업을 받았고, 세종 말에는 국정을 거의 책임질 정도로 권력이 평화롭게 이양됐습니다. 거기다 세손 단종도 잘 크고 있었죠.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습니다. 재위기간이 2년으로 짧다 하나 그의 나이는 서른아홉으로 그리 빨리 죽은 건 아닙니다. (오래 산 것도 아니지만요) 하지만 그 때 단종은 겨우 열두 살. 수렴 청정을 해야 했으나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어머니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세종이 자식들에게 일을 많이 맡기면서 안평, 수양대군의 힘이 커졌죠. 결국 그는 14살에 왕위에서 물러나고 17살에 처형됩니다. 자식은 없었죠.  

재밌는 건 이 때 양녕대군이 세조가 왕이 되는 걸 격하게 찬성했다는 점입니다. 세조가 머뭇거리자 "니가 내 조카냐"고 욕 했다고도 하죠. 복수일까요 -_-a

세조의 장남 의경세자는 20살의 나이로 죽습니다. 책봉된 지 2년만이었죠. 이 때 단종의 어머니 현덕왕후가 세조의 꿈에 나타나 "니가 내 아들 죽였으니 나도 니 아들 죽이겠다"고 했다는 야사가 있습니다.

2. 예성연중인명선
(1) 예성연중
죽은 의경세자의 뒤를 이어 둘째 해양대군이 세자가 됩니다. 19살 때 세조를 이어 왕위에 오르지만 불과 14개월 동안 살다 죽었죠. 그의 장자 인성대군 역시 어린 나이로 죽습니다. 세종의 능을 옮긴 게 바로 이 때였다고 합니다.

둘째 제안대군이 후계 1순위였습니다만... 예종이 죽었을 때 그는 불과 네 살이었죠. 결국 의경세자의 두 아들로 좁혀지고, 열 세 살이었던 둘째 자을산군이 선택됩니다. 장인어른이 바로 한명회였거든요. 죽은 의경세자는 덕종으로 추증되고, 후계 1순위 제안대군과 2순위 월산대군(성종의 형)은 특이하게 천수를 누리고 살았습니다. 예종 시절 남이와 함께 공이 컸던 구성군 이준이 폐서인된 걸 생각하면 특이하죠. 제안대군은 바보였고 부인을 두고 큰 사건을 벌입니다. -_-; 첫째 부인을 내쫓아놓고 다시 맞은 부인이 맘에 안 들자 재혼하겠다고 왕을 협박했거든요. 결국 재결합하죠. 그럼에도 성관계를 하지 않았다고 하네요. 당시에도 진짜 바보냐 바보인 척 하는 거냐고 말이 많았다고 합니다. 한편 월산대군은 자기 집에서 학문과 시를 벗 삼아 살고 자기는 물론 그 친척이나 종들조차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조용히 살았다고 합니다. 중국에까지 그의 시가 알려졌다고 하네요.

성종의 맏아들이 바로 연산군입니다. -_-; 재위 12년만에 쫓겨나고 두 달만에 죽죠. 재밌는 건 중종 30년까지도 그의 죽음을 숨겼다는 점이겠죠. (...)

중종은 폐비된 윤씨(연산군의 어머니)에 이어 중전이 된 정현왕후 윤씨의 아들입니다. 다행히 연산군에 의해 숙청되거나 하지 않고 잘 살았네요. 하지만 그는 반정에 가담도 하지 않아서 왕권이 극히 약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를 숙청할 때는 참 빨랐죠. 조광조, 김안로 등을 숙청할 때 잘 볼 수 있습니다.

중종이 왕위에 오른 후 단경왕후는 아버지가 연산군의 처남이라는 이유로 폐위됩니다. 그 뒤를 이은 게 장경왕후 윤씨죠. 그녀는 인종을 낳지만 엿새만에 산후병으로 죽습니다. 그 뒤를 이어 중전이 된 것이 바로 문정왕후 윤씨입니다. (윤씨가 참 많네요)

(2) 인명선
문정왕후가 인종의 목숨을 노렸고, 집에 불을 질렀다는 야사도 있습니다. (이 때 인종은 어머니께 효도하기 위해 죽으려 하다가 중종이 찾자 "어머니께는 효지만 아버지께는 불효구나" 하면서 나왔다고 하죠) 그의 최후도 독살설이 나오죠. 중종을 간호하다 같이 몸이 약해진 거라는 말도 있습니다. 아무튼 그는 단 8개월만에 31살의 나이로 죽습니다. 그 뒤를 13살의 명종이 잇게 되죠. 이 명종도 34살의 나이로 후계 없이 죽습니다. 외아들로 순회세자가 있었지만 13살의 나이로 죽었죠.

공중에 붕 뜬 왕위계승권, 자식을 포기하다시피한 명종은 중종의 7남 덕흥군의 아들들을 만나봅니다. 자신의 익선관(모자-_-a)를 써 보라고 하죠. 두 명은 곧이곧대로 쓰지만 셋째는 갑자기 "신하된 자가 어찌 이걸 쓰겠냐"면서 거절하죠. 그가 바로 하성군입니다. 뭐 이후 명종이 그를 후사로 세운다고 확정한 건 아니었습니다만 다른 유언이 없었던 관계로 그가 왕이 되죠.

조선 최초의 방계 승통, 거기다 서자의 아들로 왕이 된 선조입니다.

3. 광인효현숙경영
(1) 광인효
선조는 중전인 의인왕후 박씨에게서 자식을 갖지 못 했습니다. 대신 후궁인 공빈 김씨에게서 임해군과 광해군을 얻었죠. 일찍 죽는데, "다른 후궁들이 나를 저주해서 죽은 거다"고 하면서 죽은 후에도 선조의 총애를 놓지 않으려 했죠. 하지만... 죽은 자가 산 사람을 이길 순 없죠.

선조는 세자를 정하지 못 하다가 임진왜란이 일어나서야 광해군으로 세웁니다. 역시 서자에 둘째죠. 이후 선조는 인목왕후 김씨에게서 영창대군을 얻습니다. 그가 광해군을 핍박한 것은 자신의 컴플렉스 때문에 적자를 앉히려고 한 거라는 게 통설입니다만... 임란 전에도 신성군에게 마음이 간 걸 보면 그냥 광해군이 싫어서라고 봐야겠죠. -_-; 광해군은 꿋꿋이 버텼고, 왕위에 오릅니다.

그 후폭풍은 거셌죠. 임해군이 역모로 몰려 죽고, 영창대군도 어린 나이에 잔혹하게 죽습니다. 인목왕후도 늘 두려워하며 지냈죠. 이후 폐세자 된 장자 질은 아내와 함께 탈출하다가 실패, 자살하죠.

인조는 선조의 다섯째 아들 정원군의 장남. 때문에 자기 아버지인 정원군을 추숭하는 데 몰두합니다. 이게 원종이죠. 이후 장남 소현세자가 죽자 세손으로 잇지 않고 둘째 봉림대군을 앉힙니다. 효종이죠. 때문에 효종은 정통성에 크게 컴플렉스를 느끼고 있었습니다. 소현세자의 아내인 강빈에 대해 이름도 언급하지 못 하게 했죠.

(2) 현숙경영
이후 그나마 장자로 이어집니다. 현종이죠. 이 때 예송논쟁으로 효종을 적장자로 보느냐 아니냐로 크게 싸웁니다. 정통성에 대한 논란이었던 거죠. 현종이 죽었을 때 그 장자는 불과 13살이었음에도 수렴청정 없이 바로 친정을 시작합니다. 숙종입니다. 따지고보면 정통성에 하자도 없고 왕위를 위협할 큰 세력도 없는 상황에서 집권한 유일한 왕이었습니다. 송시열의 서인도 기세가 죽은 상황이었고, 외척부터 각종 당파에 이르기까지 환국으로 여러 차례 갈아 버렸습니다. 자신감이 넘쳤는지 공정왕(정종)과 노산군(단종)을 왕으로 확실히 추증하고 사육신을 신원하는가 하면 자신의 정통성에도 관련 있는 소현세자의 비 강빈까지 신원합니다.

문제는 또 그 다음이었죠. 첫 중전인 인경왕후 김씨는 일찍 죽었고, 뒤를 이은 인현왕후 민씨는 아이가 없었습니다. 이 때 왕의 총애를 받던 후궁이 있었으니... 바로 장희빈입니다. 그가 낳은 아들이 바로 경종이죠. 덕분에 중전까지 됩니다만... 숙종 자신이 생각이 바뀌고 숙빈 최씨가 도우면서 다시 상황이 바뀌죠. 최씨는 아들을 낳는데 연잉군, 훗날의 영조입니다.

세자는 장희빈의 아들 윤이었습니다만... 숙종이 죽을 무렵에는 노론이 지배하고 있었죠. 소론은 경종을, 노론은 영조를 지지하던 상황이었습니다. 경종이 대리청정할 때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잘 한 것도 없지만 실수도 없었던 것은 이것 때문이라고 하죠. 경종은 몸도 약해서 노론은 연잉군을 세제로 하고 대리청정부터 아예 왕위를 바꾸라고 강요하는 단계에 이르게 됩니다. 왕권이 강했던 숙종이 죽은 직후부터 뒤바껴 버린 거죠. 이 때 소론의 한 판 뒤집기가 벌어지죠. 이게 경종이 애초에 계획한 거였다는 주장이 있고,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이를 따르고 있습니다.

이 때 연잉군은 자신의 정치생명에 위협을 느꼈는지 내관 중에 자신을 음해하는 자가 있다며 정면돌파합니다. 이 때 숙종의 마지막 중전이었던 인원왕후 김씨는 연잉군을 자기 양자로 들이고 힘을 주죠. 여기에 더해 연잉군에 대한 얘기가 계속 나오는 상황에서도, 심지어 자기를 독살한다는 말까지 나오는 상황에서도 이에 대한 조사를 하지 않습니다. 애초에 대립할 수밖에 없었던 이복형제, 그것도 정적인 상황에서 이런 건 대단하죠.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이렇게 평하더군요.

"왕은 사적인 감정을 누르고 대계를 택했다. 어쩌면 진정한 우애인지도 모르겠다."

경종에게는 자식이 없었고, 4년만에 건강이 악화돼서 죽습니다. 이후 영조는 심심하면 경종의 우애를 언급하죠. 탕평 때문도 있겠지만 독살설을 무마하고 자신의 정통성을 살리기 위한 거였을 겁니다. 하지만 이후에도 소론, 특히 노론과 자신에게 강경했던 준론은 여러 차례 역모를 일으키고 독살설을 계속 주장합니다.

영조의 첫째 아들 효장세자도 10살의 나이로 죽습니다. 여기에는 실제 독살이 있었다고 합니다. 영조의 여종이었는데 개인적인 원한 때문이었다고 하는군요. 그리고 그 배후에는 영조 재위 내내 일어난 역모들이 얽혀 있다고 합니다.

4. 정순헌철고순
영조의 둘째 아들이 바로 사도세자입니다. 그 최후야 굳이 설명할 필요 없겠죠. 영조는 세손을 죄인의 자식으로 두지 않기 위해 효장세자의 양아들로 올리고, 후에 효장세자는 진종으로 추승됩니다. 하지만... 그 마음이 어디 가겠어요. 정조가 즉위할 때 한 말이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였습니다. 후에 사도세자는 장헌세자로, 나아가서 장조로 추승되죠. 아, 말을 안 했는데 효장세자도 사도세자도 모두 후궁이 낳은 자식입니다. 세자가 되면서 정비인 정성왕후 서씨의 양자가 되죠.

정조는 어땠을까요. 그의 첫 아들 문효세자는 5살의 어린 나이로 죽습니다. 뒤이어 세자가 된 게 둘째 아들 순조였죠. 역시 둘 다 후궁에게서 얻었습니다. 순조가 왕위에 오른 후 수렴청정을 한 것이 문정왕후와 함께 욕 먹는 정순왕후죠. - -a

순조의 아들이 효명세자인데, 몸이 안 좋고 정치에 흥미를 잃은 순조에 의해 일찌감치 대리청정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대리청정 3년만에 죽게 되죠. 소현세자와 함께 독살설이 설득력 있는 케이스라고 합니다. 그에 뒤이어 다른 자식들도 연이어 죽어 나가면서 순조는 더욱 정치에 관심을 잃게 되고 이게 세도정치가 급격히 발전한 이유가 됐다고 하죠.

효명세자의 아들, 세손은 8살에 왕위에 오르니 헌종입니다. 7년간 순원왕후의 수렴청정을 겪고 15살에 친정을 합니다만, 이 때는 세도정치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때였죠. 그나마 오래 살지도 못 해서 23살의 나이로 죽습니다. 후사가 없었죠. 자, 이제 열심히 허수아비로 앉힐 왕족을 찾아 봅시다.

겨우 찾아낸 게 사도세자의 서자 은언군, 그의 아들 이광의 셋째 아들 원범이었습니다. 강화 도령 철종입니다. 그의 아버지 이광은 작위조차 없어서 왕이 된 후에야 전계대원군으로 추증됩니다. 거기다 헌종보다 항렬도 높아서 문제가 됐었죠. 그런 그마저도 후사 없이 죽습니다. 다음 차례는 누구일까요?

남연군 이구는 인조의 셋째 아들 인평대군의 6대손입니다. 이후 사도세자의 넷째 서자 은신군이 자식이 없자 양자로 입양되죠. 복잡하죠? 그 아들이 흥선대원군 이하응이며, 그 둘째 아들이 고종입니다. 뭐 이쯤되면 정통성이고 뭐고 상관할 상황이 아닌 것 같네요. 뭐 이들의 업적에 대해서까지 말할 필요는 없을 겁니다.

마지막을 찍으면서 볼 것 하나, 고종의 첫째 아들조차도 태어난 지 4일만에 사망했습니다. 순종은 그의 둘째 아들이었죠.

5. 결론
자, 좀 간단히 정리해 볼까요? 확실한 장자가 뒤를 이은 건 세-문-단 때와 효-현-숙 때밖에 없습니다. 이 중 단종은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고 숙종은 강력한 왕권을 누렸죠. 뭐 첫째가 일찍 죽은 경우도 여럿 있습니다만... 이를 통해 조선 대부분의 왕은 정통성에 빈곤을 느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각 왕들이 벌인 일들에서 이런 것들을 많이 느낄 수 있죠. 태종과 세조가 자신의 정적인 정도전, 안평대군 등을 마구 깐 것부터 예종이 세조의 시호를 정할 때 고집을 부렸던 것, 성종이 대간들에게 너무나도 약했던 것 등도 이것과 엮을 수 있을지도요. 뭐 정적을 까고 자기 정통성 살리는 건 당연한 거겠지만요.

선조의 정통성 컴플렉스야 너무 유명하고, 인조도 이제까지 썼듯 청에 강경했을 때는 다 자기 정통성과 관련해서였습니다. 효종은 소현세자를 아예 흑역사로 묻으려 했고, 영정조대의 자기 신원 노력 역시 눈물겹습니다. 그 뒤에야 뭐 더 이상 그게 무의미해 졌지만요. 정통성을 확립하기 위해 방계가 될 경우엔 자기 아버지를 왕으로 추숭하거나 어머니를 후궁에서 왕후로 추숭했고, 그렇지 않을 경우라도 후궁의 자식은 거의 왕비의 양자로 올렸습니다. 정말 눈물겹죠.

애초에 조선이 왕권 견제를 방침으로 하는 성리학 국가였지만, 심심하면 보이는 옥사나 왕권이 너무 약했던 왕은 이런 이유가 크지 않을까 싶습니다. 중국처럼 왕조가 계속 바뀐다면 모르겠습니다만, 조선은 상당히 안정된 나라였죠. 그런 나라에서 이렇게 장자계승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 어쩌면 조선 최대의 문제점이었을지도요.

반면 이렇게 이게 그렇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일괄적으로 일찍 죽었다고 표현했지만 나이가 차 있을 경우도 있었고, 애초에 첫째는 이후 낳은 자식들보다 약한 편이라고 하니까요. 무녀리라는 말이 있죠?

하지만 장자계승이 이 정도로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 흥미로우면서도 깊게 고찰해 볼 문제가 아닌가 합니다.

----------------------------------------
괜히 한 번 써 보고 싶더라구요. 글 쓰는 것도 중독인가 봐요. -_-;
다 쓰고 나니 조선시대를 한 번 관통한 것 같아서 후련한데... 역시 씁쓸하네요. 저거 하나하나 다뤄도 다 비극일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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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keDog
11/08/14 18:55
수정 아이콘
뜬금없지만 BGM 어캐 끄나요?
끄는 버튼 있으면 좋겠지만...
11/08/14 19:34
수정 아이콘
막연히 조선에서 확실한 정통성을 가진 왕은 드물었다라고 생각했는데,
실제 장자계승이 제대로 이루어진 라인은 세-문-단과 효-현-숙밖에 없다는 것은 놀랍습니다.

정통성을 가지기 위해 처절한 몸부림을 쳤을 조선 국왕들을 생각하면 안타깝기도 하네요.
물여우
11/08/14 19:48
수정 아이콘
장자계승이 거의 없었다는 것만 보면 조선도 참 불안정한 왕조였네요.
오늘도 잘 보고 갑니다. 글 중독 현상 아주 좋습니다. 크
아우디 사라비아
11/08/14 20:00
수정 아이콘
이렇게 보니 조선이 어찌어찌 이어간게 용하군요...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보고 있습니다
쎌라비
11/08/14 21:08
수정 아이콘
재밌게 봤네요. bgm 괜찮은데요.
아틸라
11/08/14 21:12
수정 아이콘
수차례의 왕자의 난과 반정등으로
장자상속이 이어지지 않았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이럴줄은 몰랐네요 -_-;

전제군주국가가 아니라는 점이
왕권이 약해도 국가는 존속될 수 있는
메리트가 된 걸지도 모르겠네요//
김익호
11/08/14 21:16
수정 아이콘
이 브금이 뭔가요?
많이 들어본건데 생각이 안 나니 답답하네요.
11/08/14 22:52
수정 아이콘
그래도 세계에 500년이나 유지한 왕조는 별로 없다능. 무시하지 말라능. (응?)

어떤 의미에선 전형적인 왕조라기 보다는 입헌군주에 가까웠다 해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신분의 경계는 명확하지만요. 그러기에 장자에게 안전하게 연결되기 보다는 일발역전을 꿈꿀 수 있었겠죠;;
홍승식
11/08/14 22:54
수정 아이콘
다시한번 느끼게 되는 수양대군 XXXX!!
어린 왕을 신하들이 업신여긴다면서 정난을 일으켜 놓고 공신들에게 그리 권한을 주니 후세는 더 엉망이 되어버리죠.
정난을 했으면 태종처럼 공신들을 모두 쳐죽이던가.
어차피 손에 피를 묻혔으면 끝까지 책임을 져야지, 자기가 왕이 되었다고 나몰라라 하면 어쩌란 말입니까.

차라리 문종이 수양이나 안평에게 확실하게 섭정을 부탁했으면 어땠을까요.
Je ne sais quoi
11/08/14 23:43
수정 아이콘
알고는 있던 사실인데 제 기억보다는 장자 계승이 많았군요. 전 그래서 읽을 때마다 '이것들 장자 계승 되지도 않으면서 맨날 정통성 타령이야 -_- 정치하는 것들은 아무튼 고대부터 쓸데없는 거 집착하는데 뭐 있어' 그랬습니다 -_-;;
11/08/15 00:33
수정 아이콘
찜질방에 왔다가 정말 재미있게 보고갑니다 [m]
승리의기쁨이
11/08/15 00:40
수정 아이콘
항상 재미있게 잘 보고있읍니다. ^^
하늘의왕자
11/08/17 11:31
수정 아이콘
언제나 잘 보고 갑니다.
아직 다 읽지는 못했지만, 댓글 먼저 달아봅니다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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