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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1/06/11 04:50:32
Name 눈시BB
Subject [일반]  임진왜란 못 다한 이야기 - 참전 일본 무장

bgm은 워크래프트 오크 (...)

절대 제가 요새 신장의 야망 다시 시작해서 글 쓰고 능력치 넣은 거 아닙니다. ( ..)

1. 고니시 유키나가, 소서행장

통솔:77 무력:63 지력:70 정치:84

부산진성, 동래성을 점령하고 상주에서 이일을 깨뜨리고 탄금대 전투로 전쟁의 분위기를 확 바꾸고 한양에 맨 처음 들어갔던 고니시 유키나가입니다. 거기에 평양성도 점령하고 지키다가 명군에 의해 처절하게 깨지기도 했죠. 강화 회담을 주도했으며 정유재란 때는 괜히 최전방(조선 수군이랑 제일 가까웠으니-_-; )에 있다가 신나게 당하고 시마즈 요시히로가 구해줘서 겨우 도망갔죠.

임진왜란 때 일본군 중 가장 큰 공을 세웠고 가장 큰 피해를 입었으며, 조선인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인물일 겁니다. 그렇다면 일본에서는 어떨까요.

고니시는 사카이 출신으로 1555년생입니다.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고그 자신도 상인이었죠. 처음에는 우키다가의 가신이 되었다가 항복한 후에는 히데요시의 가신이 됩니다. 외교 사절로 항복할 때도 그가 갔다고 하죠. 이후에는 수군을 맡게 됩니다. 이후 공을 세워서 마침내 다이묘가 되는데, 히데요시는 무슨 생각인지 영지 하나를 갈라서 가토 기요마사와 나눠주죠. 여기서부터 라이벌 관계가 되나 봅니다.        
그는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고, 군기도 십자가가 있었습니다. 왜란 때도 신부 세스페데스를 데리고 다녔죠. 가토 기요마사는 니치렌종 (지금도 남아 있는 남무호렝게쿄인 거 같은데요)을 믿어서 천주교를 탄압했는데, 고니시가 이걸 받아주면서 또 갈리게 됐다는군요.
임진왜란 때는 사위 소 요시토시와 함께 전쟁을 최대한 막아보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실패하죠. 하지만 정작 전쟁이 벌어지자 고니시는 선봉으로 많은 활약을 합니다. 평양성에서 더 이상진격하지 않고 꾸물거리는 모습을 보이는데, 저야 군량의 한계로 진격한계선에 도달했다고 봅니다만 여러 설이 있긴 합니다. 보통 상인의 한계라거나 외교로 끝을 보려고 했다는 등의 설들이 나오죠. 이렇게 상인 출신이라는 것 때문에 많이 까입니다.
가토 기요마사와의 불화는 유명한데, 이것을 이용해서 이순신을 파직시킨 걸 보면 머리는 좋았나봅니다. 이게 단지 이순신용으로 쓴 게 아니라 계속 가토만 잡으면 된다고 들먹거리면서 정유재란 발발까지 시간을 끌며 조정을 혼란에 빠뜨리기도 하죠. 아무튼 그 갈등은 히데요시 가신들 간의 문치파 vs 무투파 갈등의 한 예로 쓰입니다. 글만 아는 서생, 머리에 든 것 없는 무식한 무장, 뭐 이런 식이죠. 하지만 고니시는 출신만 상인일 뿐 전쟁터에서는 싸워야 된다는 전형적인 전국시대 무장의 사고방식을 가졌다고 합니다.

당시 소서행장이라는 이름 외에도 평행장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는데, 여기서 "평"은 일본의 주요 무장 가문 헤이시를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겐지를 뜻하는 "원"으로 불리기도 했다는군요. 히데요시가 자기가 뼈대 있다고 "평"이라는 성을 내세운 건지 중국과 조선에서 대충 붙인 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감히 천하인의 가족도 아니면서 같은 성을 쓴 건 위험했죠. 그런데 히데요시는 여기에 아무런 딴지를 걸지 않습니다. 반면 가토 기요마사는 한 번 하려다가 크게 욕 먹었다는군요. 히데요시가 얼마나 신뢰했을지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세키가하라 전투 때는 이시다 미쓰나리를 따라 서군에 가담, 농성을 제안하지만 이시다 미쓰나리는 거부합니다. 패한 후에는 잡혀서 이시다 미쓰나리, 안코쿠지 에케이와 함께 참수당하죠. 천주교 신자라서 할복을 거부했고, 승려가 염불을 외자 거부하고 예수, 마리아를 외치며 죽었다고 합니다. 교황조차도 이를 애석해 했다고 하는군요. 그의 가문은 멸문당하고 영지는 가토 기요마사에게 넘어갑니다.

전쟁을 반대해놓고 가장 열심히 싸우고, 히데요시를 속여서까지 전쟁을 끝내려고 하고, 조선에서 고아를 데려서 양녀로 키우기도 하는 등 임진왜란 관련 매체에서는 가장 입체적인 인물일 겁니다. 보통은 좀 동정하는 쪽으로 서술하죠. 이에 대한 판단은 각자 해야 될 듯 하구요.

일본에서는 평가가 그리 좋지 않은 걸 넘어서서 전국시대물에서 거의 다루어지지 않습니다. 능력치도 최고치가 120이라는 걸 생각하면 정치 말고는 그저 그런 무장일 뿐이죠. 제대로 활약한 전투도 없는 상태니까요 뭐. 어쩌면 일본이 임진왜란을 흑역사시켰다는 가장 큰 증거일 겁니다. 우리 입장에서는 능력치가 정말 박하게 매겨졌다고 봐도 되겠죠. 가토 기요마사와의 불화, 세키가하라 때 참수, 후에 그의 영지에서 시마바라의 난 (천주교 박해에 대항해서 일어난 반란)이 일어났다는 것 정도죠. 오히려 일본인들이 보기엔 일본 무장의 대표격으로 등장하는 게 신기할지도 모르겠습니다.

2. 가토 기요마사, 가등청정



통솔:88 무력:92 지력:64 정치:71

고니시가 비교적 착한 왜놈으로 알려졌다면 가토 기요마사는 못된 왜놈의 대명사죠. 청정이 가장 흉악하고, 강화 회담도 방해하고, 왕자들도 잡아 가는 등... 그냥 악역이죠. 임진록에서는 가등청룡이라는 동생을 등장시켜서 죽이기도 합니다.

가토 기요마사는 히데요시가 확실한 자기 가신으로 키우려고 했던 인물 중 하나입니다. 히데요시의 아내 네네의 조카로 어릴 때부터 키웠고, 히데요시가 성공하자 다이묘로 적극적으로 밀어주죠. 어릴 때 이름은 토라노스케, 근데 이 아명을 다 커서도 히데요시가 부르기도 했다고 합니다.
임진왜란 때는 라이벌 고니시에게 언제나 한 발 늦고, 제비뽑기에서도 져서 별 얻을 거 없는 함경도로 갑니다만... 여기에 국경인의 반란이 터지면서 왕자들도 잡고 함경도를 석권하게 됩니다. 이 때 백성들에게 세금을 물려서 내지 않으면 죽였다고 하는군요. 하지만 해안가 성 정도만 점령할 수 있었을 뿐 전체 점령은 못 했고, 정문부의 의병과 추위에 밀려 후퇴합니다. 고니시보다야 덜 했습니다만 상당한 피해를 입었죠.

이름(토라)답게 호랑이 사냥을 좋아해서 많이 잡아서 바쳤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전국무쌍(-_-;)에 보면 호랑이 가죽 같은 걸 허리에 차고 있는데 느낌이 영 그렇더군요.

오다 노부나가가 죽은 후 유력 가로였던 시바타 가츠이에를 이기고 히데요시가 천하인으로 나서게 된 전투, 시즈카다케의 전투에서 크게 활약해서 시즈카다케의 7본창이라는 명예로운 이름을얻게 됩니다. 일본은 전투에서 처음 적을 잡은 것을 "일번창"이라 부르며 포상했는데 그만큼 전투에서 큰 활약을 했다는 거겠죠. 다만 이 칠번창은 그저 히데요시가 자기 가신 키우기용으로 만들었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그나마 좀 잘나게 된 것은 가토 기요마사와 후쿠시마 마사노리 정도였죠. 아무튼 이 때 25만석의 영주가 됩니다.

아무튼 히데요시가 직접 키운 가신 중에서는 가장 유명한 무장이어서 드라마에서도 나오고 전국무쌍 3에서도 나옵니다. 특히 후쿠시마 마사노리와 함께 이시다 미쓰나리를 암살하려고 하다가 실패해서 세키가하라 전투의 시작을 열게 된 게 유명하죠. 전형적인 무투파로 어디까지나 문치파인 이시다 미쓰나리와 고니시 유키나가가 싫어서 이에야스 편을 들었다가 16111년 죽게 됩니다. 죽기 전에 도요토미 히데요리와 이에야스 사이를 중재하려 했고 죽은 지 3년 후에 오사카 전투가 벌어진 것을 생각하면 의미심장하죠. 이 때문에 이에야스의 독살 설도 많이 나오고 조선 통신사의 기행문에도 이에야스가 독살했다고 쓰여 있다고 합니다.

키가 작아서 키높이 구두를 신었다고 하는군요.

3. 구로다 나가마사, 흑전장정


통솔:78 무력:74 지력:82 정치:86

히데요시의 군사였던 구로다 간베에 요시타카의 아들입니다. 초반에 김해에 상륙해서 경상우도를 휩쓸고 추풍령으로 북진, 고니시와 함께 평양성을 점령한 후에 황해도로 가죠. 이 때 연안성 전투를 겪습니다. 이후에는 직산 전투에서 활약하죠.

세키가하라 전투 때는 동군에 서서 최고 무공을 올렸고, 52만 3000석의 영주가 됩니다. 하지만 도요토미 히데요리와의 관계를 아예 끊지는 못 해서 견제당했다고 하는군요.

그 아버지 구로다 간베에는 히데요시가 이에야스보다 더 경계해야 된다고 했었던 사람인데 (자기 참모였는데 말이죠) 세키가하라 전투 때 큐슈 서북부를 휩쓸어 버리기도 했던 사람입니다. 나가마사가 돌아와서 이에야스와 악수했다고 하니까 "왼손은 (이에야스를 칼로 찌르지 않고) 뭐 했냐"고 했다는군요. 이래저래 아버지보다 못 한 아들이라는 인상이 강합니다.

가신이었던 고토 마타베에와 사이가 안 좋은 걸로 유명한데 정작 직산전투에서 다 질 뻔한 걸 그가 원군이 온 것처럼 명군을 속여서 시간을 끌었다고 합니다.

4. 후쿠시마 마사노리, 복도정칙


통솔:82 무력:88 지력:37 정치:51

위에서 언급한 시즈카다케 7본창의 필두입니다. 남들 3천석 받을 때 홀로 5천석을 받았다고 합니다. 히데요시와 멀게나마 혈연관계였다는군요. 이 때문인지 히데요시가 계속 밀어줘서 임진왜란 때는 24만석의 다이묘가 됩니다.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활약해서 히로시마 등 49만석의 다이묘가 되죠. 이후 히로시마성을 무단으로 수리했다는 죄목으로 4만 5천석으로 감봉당하고 그 자식대에 이르러서는 아예 몰락해 버립니다. 역시 도요토미가와 친해서 견제당했다는 주장이 강하네요. 아무튼 임진왜란 때는 딱히 한 게 없는 듯 합니다.

가토 기요마사와 비교해도 돌 오브 돌이라는 이미지라고 합니다. - -;

5. 모리 데루모토(모리휘원), 고바야카와 다카가게(소조천융경), 안코쿠지 에케이(안국사혜경)


통솔:50 무력:41 지력:26 정치:62

전국시대에 가장 유명한 다이묘 중 하나인 모리 모토나리의 장남 모리 다카모토의 아들입니다. 다카모토가 빨리 죽어서 할아버지에게서 가독을 상속받았죠. (화살 하나는 꺾기 쉬워도 세 개는 꺾기 어렵다는 이른바 삼시훈은 장남이 빨리 죽었기에 창작일 가능성이 높다는군요)
모토나리의 둘째, 셋째 아들인 깃카와 모토하루, 고바야카와 다카가게의 도움을 받아 (일본어로 카와가 川라서 이 둘이 모리의 두 강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는군요. 아들들을 두 가문에 양자로 들여보냈습니다) 나름 세력을 불립니다만... 오다 가문과 맞서게 되죠.  +) 모리 가문에 종속된 수군은 무라카미였는데 임진왜란에 참전한 구루시마 미치후사 등이 여기서 갈라져 나온 것입니다.

이후 종속돼 있던 우키다 가문이 오다와 내통하고 큐슈에 있던 오토모 가문도 협공해 오면서 모리 가문은 이리저리 당하게 되죠. -_-; 결정적으로 혼노지의 변에서 히데요시에게 제대로 훼이크를 먹게 됩니다. -_-; 오다 노부나가가 죽으면서 히데요시가 급히 돌아가야 해서 정전을 요청했는데, 그걸 모르고 한 거죠. 뭐 이래저래 이견은 있습니다만. 이후에는 히데요시의 확실한 우군으로 120만 5천 석을 확보하게 됩니다. 임진왜란에 이런 거대 다이묘가 직접 참가했다는 것은 의미가 크죠. 우키다 히데이에가 명목상의 대장이라면, 모리 데루모토는 실질적인 총대장으로 활약하게 됩니다. 총대장답게 제대로 한 전투는 없지만요 (...) "조선인들은 생업에 종사하라" 이런 명령서들에는 보통 모리 데루모토의 이름이 있죠.

세키가하라 전투 때는 그 이름값으로 서군의 총대장이 되었습니다만, 적극적으로 출진하지 않고 아들을 보내는 선에서 끝냅니다. 문제는 이 때 깃카와 히로이에와 고바야카와 히데아키가 서군을 배신하면서 패배하게 되죠. 서군 중 가장 큰 가문이었는데 적극적으로 싸우지 않은 것과 그 가신단의 분열 등을 보면 세키가하라에서 패배한 가장 큰 이유를 제공한 게 되겠죠. 이후 모리 가문은 영지를 삭감당하게 됩니다. 모토나리의 화려했던 시절을 생각하면 허무하죠. 그래서인지 인기가 없습니다. 나름 내정 면에서 한 게 있다곤 합니다만, 그런 사람이 쉽게 눈에 띄진 않죠. 모토나리가 유언으로 더 이상 영토를 늘리지 말고 수성에 힘쓰라고 했는데, 그게 데루모토의 능력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강항은 조심섬이 많고 느긋해서 우리나라 사람과 비슷하다고 했다는군요.

통솔:87 무력:71 지력:92 정치:93

고바야카와 다카가게는 모리 모토나리의 셋째 아들로 지략이 뛰어났다고 합니다. 눈싸움을 하는데 둘째 형 깃카와 모토하루는 그냥 공격하는데 다카가게는 매복해서 날렸다고 하죠. -_-; 어찌 보면 셋 중에서 가장 모토나리를 닮은 사람일지도요. 능력치를 보시면 알 수 있듯 시마즈 요시히로와 함께 전국시대가 한창일 때 활약한 장수 중 임진왜란에 참전한 몇 안 되는 인물입니다. 근데 정작 임진왜란 때는 전라도 점령에 실패해서 일본이 패한 결정적인 역할을 했죠. 뭐 그 땐 완전 노장이었으니... 그 때문인지 벽제관 전투에서는 명에 한 방 먹이고 후퇴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그게 들어맞아서 강화회담에서 일본이 꽤 큰 목소리를 낼 수 있었습니다.
히데요시가 고바야카와 히데아키를 모리의 양자로 들이려 하자 가문이 망하게 할 수 없다면서 자기 가문의 양자로 들였다고 하죠. 어디까지가 사실일지는 몰라도요.

이후 모리 가문의 조슈 번은 근대에 들어 메이지 유신에서 큰 역할을 맡게 됩니다. 화려한 부활일까요.

7. 나베시마 나오시게(과도직무), 다치바나 무네시게(입화종무)

통솔:90 무력:85 지력:91 정치:84

둘 다 큐슈의 명장입니다. 나베시마의 경우 큐슈의 패권을 다투었던 류조지 가문의 가신이었는데, 시마즈 가문에게 패한 이후 점차 실권을 잡게 됩니다. 그래서 조선에도 류조지 가문 대신 갔죠. 임진왜란 때는 가토 기요마사와 함께 함경도까지 갔습니다. 정유재란 때도 가토와 함께 행동했고, 정기룡에게 패배하기도 했고, 울산성 전투를 구원할 때  총사령관을 맡기도 합니다.

통솔:95 무력:94 지력:68 정치:60

다치바나 무네시게는 서국 제일의 무장이라는 별명까지 얻었죠. 시마즈 요시히로에게 밀렸던 오토모 가문의 가신이었습니다. 친아버지 다카하시 쇼운과 양아버지 다치바나 도세츠는 둘 다 능력치가 미친 -_-; 명장들이었죠. 히데요시가 큐슈를 정복한 이후에는 아예 단독으로 다이묘가 됩니다. 세키가하라 전투 때는 서군 편을 들었고, 돌아올 때는 가문의 원수이자 친아버지를 죽인 시마즈 요시히로와 동행하지만 옛날의 원수를 잊고 함께 돌아가자고 한 대인배이기도 하죠. 이 때 시마즈의 군대는 80명 수준이었습니다. 큐슈에 돌아온 후에는 구로다, 가토, 나베시마의 연합군에게 공격받는데 요시히로가 이 때의 은혜로 원군을 보내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결국 멸문 -_-; 근데 그 능력을 여러 다이묘가 인정해서 결국 쇼군의 친위대가 됩니다.
주절주절 써 놨지만 임진왜란 때는 가덕도 내지 부산의 축성 역할만 맡습니다. 가덕도에서 조선 수군을 몇 번이나 공격한 용자입니다. 특히 원균에게는 1차 출동 때 장수 두 명 잃게 하고 2차 출동 때는 400명의 병력을 잃게 만들죠. 다만 이순신을 공격했을 때는 1명 죽이고 5명 포로로 잡아놓고 거센 반격을 받아서 피해가 컸는데, 다른 다이묘들은 "니네가 겁도 없이 공격해놓고 우리에게 하소연하냐"고 욕 먹었죠. 이게 무네시게 자신인지는 모르겠지만요. 노량 해전 때는 고니시를 구원하러 같이 가기도 합니다.

8. 시마즈 요시히로, 도진의홍



통솔:89 무력:105 지력:73 정치:70 (12탄에서는 통솔과 무력이 바뀜)

임진왜란 전반부에 고니시, 가토가 유명하다면 후반부는 역시 시마즈 요시히로죠. 시마즈 가문은 특히 정한록을 써서 임진왜란 때의 전공을 자랑하고, 이건 일본의 임진왜란 연구에 큰 도움이 됩니다. (기타지마 만지의 책에는 아예 시마즈 가문만 따로 설명해 놓은 부분이 많습니다) 다만 과장이 너무 많죠.  
시마즈 가문은 남부에 위치한 가문입니다. 요시히로의 아버지 다카히사 때는 혼란했던 사쓰마 국을 통일하고 형 요시히사 때는 4형제가 힘을 합쳐서 큐슈 대부분을 통일합니다. 이 4형제의 우애는 유명하죠. 이 때문에 큐슈의 명문가문이던 류조지와 오토모는 멸문할 위험에 처했고, 오토모는 히데요시에게 구원을 요청, 히데요시는 20만의 대군을 이끌고 큐슈로 갑니다. 한 차례 이기기는 하지만 결국 항복, 영지가 크게 줄어버리죠. 이에히사는 그 책임을 지고 은거하고 요시히로가 차기 당주가 됩니다.

생각해보면 요시히로와 원수나 다름 없던 나베시마 나오시게, 다치바나 무네시게가 같이 조선으로 갔으니 마음이 어땠을까 궁금하네요. 정유재란 때는 칠천량 해전에서 두번째 가는 공을 세우고 (160척 격침) 남원성 전투에 참가하고 전라도를 점령하면서 많은 코를 베고 -_- 사천성 전투 때는 명군 "3만 명의" 목을 베고 -_- 노량 해전에는... 정유재란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최고의 악역이자 끝판 대장이죠. 이런 점 때문인지 열전에 "거북선 조선 수군을 격파"했다는 게 들어가기도 합니다. 칠천량 해전을 말한 건지 노량 해전을 왜곡한 건지는 모르겠네요.

조선인들을 많이 붙잡아가고 도자기도 많이 가져갔습니다. 그만큼 시마즈군의 피해도 컸다는 말이 되겠습니다만... 좋게 볼 순 없죠. 세키가하라 때 겨우 천 명만 데려갔으니 노량해전의 피해가 크긴 한 거 같습니다. 근데 여기서 서군 수뇌부와 의견이 다르다는 걸로 전투 때 중립을 외쳤고, 자기 구역에 들어온 아군에게 활을 쏘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후 전황이 불리해지자 어이 없는 명령을 내리는데, "앞으로 후퇴"였죠. 십 만이 넘는 동군의 한가운데를 지나서 후퇴한 겁니다. 이 때 보여 준 전술이 스테가마리, 소수 부대가 적의 대장을 저격 후 돌격해서 시간을 벌고, 본진은 그 사이에 후퇴하는 전술이었다고 합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본진 바로 옆을 지나쳤다고 하며, 이에야스의 명장 이이 나오마사는 이걸 막다가 역시 중상을 당해 후에 병사했다고 합니다. 큐슈로  돌아갈 때 남은 병력은 겨우 80명이었다고 합니다. "시마즈의 후퇴"입니다.

이후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시마즈 가문을 걱정해 몇 번 정벌을 하지만 번번이 막아내고, 결국 시마즈 가문을 그대로 두게 합니다. 시마즈 가문은 무예를 숭상해서 일본군끼리도 두려워했고, 대대로 어리석은 군주가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후대에까지 번영합니다. 이 때 류큐를 정속시키기도 하죠. 결국 시마즈 가문의 사쓰마번은 모리가 있던 조슈 번과 함께 메이지 유신의 주력이 되고, 후에 제국 해군의 중심이 됩니다. 우리에게는 참 대대로 싫은 가문일 겁니다.

재밌는 게, 사쓰마 번은 현재의 가고시마입니다. 가고시마의 뜻은 사슴섬, 사쓰마 번은 음차라고 봐야 되겠죠. 이순신이 있던 녹둔도의 뜻도 사슴섬입니다. 이 녹둔도를 사차마라고 부르기도 했다는데, 이 역시 음차라고 봐야겠습니다. 이 두 지역은 똑같이 사슴섬이라는 의미를 가졌다는 거죠. 한국어와 일본어의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이순신은 녹둔도에서 패하고 큰 부상을 당했지만, 덕분에 선조의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리고 사쓰마에서 온 시마즈 요시히로군에게 전사하지만, 노량 해전으로 인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영웅의 반열에 오릅니다. 무언가 있는 걸까요.

이후 요시히로는 은거해서 전장에서 죽어간 일본인과 조선인의 원혼의 명복을 빌다가 죽었다고 합니다. 고양이 쥐 생각해주기일까요. 뭐 일본 장수들이 늘 하는 거긴 하지만요. 아무튼, 일만명 이상을 끌고 온 장수들 중에서는 고바야카와 다카가게와 함께 최고의 네임드 무장입니다. 게임에서는 언제나 서쪽에서 세력을 불려서 플레이어들의 간담을 서늘케 하죠. 최신판에서는 통솔력 대신 무력이 100을 넘는데다 그 가문도 시스템이 좀 바뀌어서 잘 못 크지만요.

9. 하치스카 이에마사(봉수하가정), 쵸소카베 모토치카(장종아부원친), 이시다 미쓰나리(석전삼성), 우키다 히데이에(우희다수가)

통솔:64 무력:50 지력:79 정치:82

이에마사는 노부나가의 가신 하치스카 마사카즈의 아들입니다. 마사카즈는 노부시(주인 없이 무리를 짓는 무사들?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출신으로 보통 무장들이 생각하지 않은 기발한 작전을 세우는 걸로 유명했죠. 히데요시와 짝짜꿍이 맞았는데, 히데요시의 작품 중 하나인 스노마타의 일야성을 지은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강 상류에서 나무를 베서 뗏목을 만들어 한밤중에 강을 타고 하류로 가서 밤새 성을 지어 버린 거죠. 이런 아버지에 비해 이에마사는 그리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임진왜란 때도 별 활약은 없었고, 정유재란 때 수군에 전속됐고 명량 해전에 참가했지만 역시 별로 얘기는 없었습니다. 세키가하라 때는 자기는 서군에, 아들은 동군에 참전해서 어느 쪽이 이기든 가문을 유지할 수 있게 했습니다. 결국 동군이 이겨서 자기는 은거하고 아들에게 물려주는 방식으로 가문을 유지했죠. 많은 다이묘들이 이런 방식을 취했다는군요.

통솔:93 무력:86 지력:94 정치:84

쵸소카베 모토치카는 한 때 시코쿠의 패자가 되었습니다만... 시코쿠를 노리던 오다 노부나가와 히데요시에 의해 영토가 크게 축소됩니다. 노부나가에게 "새가 없는 섬의 박쥐"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무시당했죠. 시코쿠는 지금도 제일 안 유명한 섬이기도 하구요. -_-; 세키가하라 후에는 근거지인 도사도 야마우치 카즈토요에게 뺏기죠. 공명의 갈림길이라는 드라마로 유명합니다. 휘하 병사 및 농민들의 충성심은 대단해서 농민들이 언제나 전투를 준비해서 이들을 일령구족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카즈토요가 처음에 도사로 갈 때 이들을 다스리기 힘들었다는군요. 사쓰마, 조슈와 함께 이 도사 번은 메이지 유신의 주역이 됩니다. 임진왜란 때는 삼천명 정도로 참전해서 별 활약은 못 합니다. 명량해전 후 우수영을 육지에서 점령한 게 모토치카였다는군요.

통솔:52 무력:13 지력:85 정치:99

이시다 미쓰나리는 히데요시가 가장 믿던 가신 중 하나였죠. 하지만 문치파라서 가토 등 무투파와 대립하게 됩니다. 이에야스에 맞서기 위해 세키가하라 전투를 계획합니다만... 야습도 안 돼 농성도 안 돼 우리는 정의로우니 전면전을 해서 이겨야 돼 하다가 병력도 많고 지형적으로도 좋았는데 많은 배신 및 장수들의 소극적인 행동으로 패하게 됩니다. 뜻은 좋았지만 능력이 부족했다고 할까요. 임진왜란 때는 히데요시 직속 감독관으로 와서 행주산성에 참전하기도 합니다. 이 행주산성 전투는 미쓰나리가 군사적으로 무능했다는 증거 중 하나로 꼽히죠. 여기서 부상당합니다. -_-;
처형당하기 전에는 물을 달라고 하니 감밖에 없다고 해서 "감은 감기에 안 좋다"면서 거절했다는군요. 어이없어서 곧 죽을 놈이 몸 걱정하냐고 하니까 "대업을 달성하는 자는 마지막까지 그래야 된다"고 했다는군요.

통솔:69 무력:58 지력:41 정치:56

우키다 히데이에는 모리 가문을 배신하고 히데요시에게 붙었던 우키다 나오이에의 아들입니다. 히데요시의 양자로 일단 조선 침략의 총대장이었죠. 하지만 나이가 20대라서 전국시대를 헤쳐 온 다른 장수들에 비해서 가오가 설 리가 없었죠. 말 그대로 명목상의 총대장이었습니다. 히데이에 기 살려 주려고 한 전투가 진주성 전투, 어쩌면 한산도 대첩, 행주 대첩이었는데... 아시다시피 다 졌죠. 세키가하라 때는 히데요시의 양자였던만큼 미쓰나리보다 더 빨리 군사를 일으켰다는 말도 있습니다. 이후에는 철저히 몰락합니다만...

10. 도도 다카도라(등당고호), 와키자카 야스하루(협판안치), 구키 요시타카(구귀가륭), 가토 요시아키(가등가명), 구루시마 미치후사
임진왜란 해전에 대해 설명할 때 걸리는 게, 이런 수군 장수들은 일본에서 별로 유명하지도 않고 영지도 작은 다이묘들이었다는 거겠죠. 덕분에 이런 장수들을 띄워 주는 거에 급급합니다. -_-;



통솔:77 무력:64 지력:93 정치:92

도도 다카도라는 그나마 제일 유명합니다. 배신으로요. (...) 아사이 -> 오다 -> 도요토미 -> 도쿠가와로 계속 주군을 바꿨으며, 그 수는 열 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그 자신도 "7번 주군을 바꾸지 않으면 무사라 할 수 없다"고 했죠. 철저한 실력파입니다. 키가 매우 컸다고 하며, 축성의 달인이었다고 합니다. 세키가하라 때는 동군에 속했는데, 하필 서군에서 제일 잘 싸우는 장수들이랑만 붙어서 운이 안 좋았다고 하는군요. 물론 최악의 대진운은 바로 임진왜란 때였겠습니다만.
그나마 도쿠가와 때는 충성을 바쳐서 이에야스 임종 때 머리맡을 지켰다고 하며, 그의 영지인 이세번은 막부군 선봉이었다고 합니다... 만 역시 메이지 유신이 세워질 때 가장 먼저 배신해서 그 버릇 어디 가냐고 욕 먹었다고 합니다.-_-;
임진왜란 때는 옥포해란 때 깨지고 깨지고 깨지고 불쌍한 생각이 들 정도죠. -_-; 그나마 칠천량 해전에서 소수 병력으로 기습해서 조선 수군을 붕괴시킨 일등공신이 되었습니다. 명량에서 깨지지만요.
NHK에서 그를 주인공으로 대하드라마 만든다는데, 언제 만들까요.



통솔:62 무력:72 지력:40 정치:25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7본창 중 한 명입니다. 역시 히데요시가 가신을 양성하기 위해 띄워 준 케이스죠. 용인 전투니 한산도 대첩이니 하면서 최고의 수군 장수라 띄워 주지만 해전 한 적도 없이 그저 바닷가라서 수군으로 차출된 케이스입니다. 왜 이런 잘나지 않은 장수를 계속 띄우는지 이해가 안 가죠. 뭐 일본도 불멸의 이순신 본 후 "이렇게 잘난 애를 우리가 몰랐다니"라는 걸 보면 거기도 사정은 그리 다르지 않은 듯 합니다. 고니시 유키나가보다 더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 괴리가 큰 장수일 겁니다.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서군을 배신해서 그나마 인정 받습니다.

통솔:78 무력:74 지력:55 정치:44

구키 요시타카는 그나마 일본 수군 장수들 중에서는 가장 해전 경험이 크고 가장 노련한 장수일 겁니다. 애초에 쿠마노 해적 세력 출신이거든요. 노부나가에게 종속돼서 많은 해전을 치뤘고, 특히 노부나가의 명을 받아 철갑선을 제작, 모리 가문의 수군을 격파합니다. 그렇게 다이묘가 돼서 임진왜란 때도 참전합니다만... 일본 수군이 뭐 할 게 있어야죠. 안골포 해전에서 깨집니다. 세키가하라 때는 자신이 서군에, 아들이 동군 편에 들었는데 아들이 그를 구명하기 위해 노력해서 결국 성공하지만, 그 전에 할복합니다.

통솔:73 무력:76 지력:52 정치:46

가토 요시아키 역시 7본창입니다. 임진왜란 때는 7본창 중 4명이 참가한 거죠. 나머지 3명이 완전 듣보잡인 걸 생각하면 임진왜란이 얼마나 히데요시 친위세력에 의해 이루어진 건지 알 수 있습니다. 역시 신나게 깨지다가 칠천량 해전에서는 자기가 직접 판옥선에 뛰어들어 전공을 세우고 손에 부상을 입기도 하고 바다에 빠지기도 했다는군요. 얼마나 사실일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세키가하라 때는 동군에 가담해 이시다 미쓰나리 본군과 싸워서 전공을 세웠다고 합니다.

통솔:76 무력:70 지력:40 정치:45

구루시마 미치후사는 무라카미 해적 출신으로 히데요시의 눈에 들어 다이묘가 됩니다. 구키 요시타카와 함께 몇 안 되는 해전 전문가죠. 하지만... 그 형 구루시마 미치유키와 함께 각기 당포, 명량해전에서 전사합니다. -_-; 이걸로 구루시마 가문은 박살~ 그나마 게임에선 등장도 안 하네요. 위 능력치는 그 아버지 능력지입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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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시BB
11/06/11 05:06
수정 아이콘
(또 잘렸군요 -_-; )
이상이 임진왜란 참전 일본 무장들의 대략적인 명단입니다. 이 외에도 그 가신들이나 잠깐 왔다 간 인물들 - 진주성 전투에 참전한 호소카와 타다오키, 다테 마사무네 등 - 을 생각하면 더 많겠습니다만.

임진왜란 글에서 많이 말했던 거지만 주로 히데요시가 가신으로 키운 인물들이 많고, 나머지는 큐슈와 시코쿠에서 히데요시에게 항복한 다이묘들입니다. 그리고 총대장은 히데요시가 많은 힘을 실어 준 우키다 가문과, 히데요시를 후원한 거나 다름 없는 모리가문 쪽이었죠. 조선 침략의 성향을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능력치를 굳이 넣은 것은 우리의 평가와 일본에서의 평가가 얼마나 다른지 여실히 보여주는 부분이라서입니다. 신장의 야망은 최고 능력치가 120이고, 일본 내의 게임이라서 그런지 전국적으로 능력치가 상향평준화 돼 있습니다. 그런 것치곤 다들 많이 낮죠. 물론 전국시대 후반부라서 낮은 능력치가 많이 나온 것 역시 있겠지만요.

임진왜란 때 참전한 대부분의 다이묘들은 세키가하라 전투 후 도요토미 가문과 함께 몰락합니다. 뭐 그렇지 않은 자들도 많지만요. 글쎄요. 인과응보일까요.

아무튼... 이런 식으로 북관대첩이나 김충선 같이 제대로 다루지 않은 부분들을 또 다뤄보고 싶네요.
... 알았어요. 제 할 일 할게요.
11/06/11 05:12
수정 아이콘
bgm이 뭔지 안읽고 글을 읽어내려가는데 머릿속 어딘가에서 '어 이노래가 뭐였더라 굉장히 익숙한걸?' 하며 머리를 갸웃거리는데 왜 뜬금없이 오크 한마리가 for the HORDE!!를 머릿속에서 외치고 있는거죠? 아놔.. 습관이란 무섭군요(..)
샨티엔아메이
11/06/11 08:05
수정 아이콘
쇼군2가 임진왜란 직전까지의 스토리라서 그런지 익숙한 이름이 눈에 띄네요.
초보용 팩션인 쵸소카베랑 그다음레벨인 시마즈! 물량용의 오다가문...
그 게임을 하면서 내 생전에 알리가 없을거 같던 일본전국시대 역사를 보면서 게임도 상당히 중요하구나란걸 느꼈습니다.
우리나라도 이런게임하나 만들어야하지않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꺄르르뭥미
11/06/11 09:16
수정 아이콘
한자 독음 패치만 깔고하면 "소서행장"이 "고니시 유키나가"라는걸 몰라서 역사와 게임의 시너지가 안되는 단점이...
amoelsol
11/06/11 10:04
수정 아이콘
한국인이라면 대개가 흥미진진해 할 수 밖에 없는 이야기이니 관련 글을 여러 번 읽었지만, 대부분 4자 + 4자로 이루어지는 일본 역사상의 인물들의 이름은 이상하게 너무 외워지지가 않아요. T.T 어릴 때 처음 접한 책이나 드라마에서(조선왕조오백년 '임진왜란'과 1950년 6월 한국전쟁 발발 며칠 전에 출간되었던 '임진왜란'이라는 3권짜리 소설) 한자발음으로 기억되기 시작해서인지도 모르겠지만요...(소서행장, 가등청정, 흑전장정, 모리길성, 도진의홍, 우희다수가...;;)
하심군
11/06/11 11:42
수정 아이콘
16111년...갑자기 워해머40000이 생각나네요.

그때쯤이면 황제폐하께서 타이탄 이끌고 은하정복 신나게 하시던 시절이겠네요(...)
11/06/11 15:38
수정 아이콘
아...신장의 야망 이야기 길게 썼다가 다 날려버렸네요.
왠지 불안해서 복사할까 생각했는데 괜히 안했어...그런데 날리고 되돌아와보니 브금이 그렇게 잘 어울릴수가 없...
태합 5나 하러 가야겠습니다.
난그랬어
11/06/11 22:57
수정 아이콘
역사에대해 논의나 질문할 지식이 안되는지라 리플에 낄수는 없지만, 게시판에 써주시는 글들 잘 읽고 있습니다.
언제나 기대하고, 즐겁게 읽습니다. 감사하며, 앞으로도 좋은글 부탁 드립니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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