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그 영화가 좋다. 차태현은 우리랑 별 반 다를 것 없는 꿈은 있는데 그건 비현실적이고, 그렇다고 변변찮게 필사적으로, 혹은 현실에 맞게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도 아니고, 적당히 방황하고 적당히 나태하고 적당히 열심인 우리네 같은 사람이다. 그 영화 속에서 엄청나게 난 놈은 없다. 레코드 회사의 사장도, 딴따라들도, 연예기획사 놈들도, 여주인공도 다 우리네 같이 인간답다. 그리고 영화의 결말마저 너무 좋았다. 해피엔딩. 세상엔 이런 판타지도 필요하다. 모두 다 헤헤 웃으며 행복하게- 라고.
이 영화의 백미는 진짜 명곡 중 하나인 '이차선 다리'인데, 이 가사도 노래도 맘에 참 쏙 드는 노래다. 이차선 다리 위에서 갈라진 남자와 여자,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을 것만 같은 두 사람. 목 놓아 소리쳐 서로를 불러보지만 너무 멀어서 들리지 않아. 무거운 발걸음으로 저 다리를 건너고 몇 번을 돌아보고 바라보지만 잡지도 못하는 두 사람. 그래서 차라리 저 이차선 다리가 없어지길 바라는, 이어지지 못하는 서로에 대한 절절함. 트롯버전도 좋고, 록 버전도 좋았다.
결국 OST와 다르게 영화에서는 남주인공과 여주인공은 모든 장애와 시련을 이겨내고 성공과 사랑 둘 다 얻어낸다. 그래서 좋다. 그 정도 판타지는 있어도 되잖아? 의외로 현실에서는 바다 남쪽 끝까지 오토바이를 타고 달릴 수 있는 남자도, 티비 너머를 바라보며 체념하는 여자도 없다. 영화 속, 혹은 내 글에 나타나는 나에 비해서 세상의 사람들은 좀 더 쿨하다. 안타깝게도, 그 사람도 역시 현실에 사는 뭇 다른 사람들처럼 나보다는 조금 더 쿨할테다. 현실에서 사랑이 이뤄진다는건 꽤 많은 우연을 필요로 한다. 서로의 시간도, 타이밍도, 장소도, 그 외에 일어나는 여러가지 자잘한 사건들에서 어느정도 운이 따라주어야만 한다. 이런것들이 사실은 꽤 커다란 장애물이다. 어릴 적 교회에서 교회 전도사와 선생들에게 집단 린치를 당한 나는 그 뒤로 강력한 무신론자가 되었지만 그런 나에게도 꼭 '타이밍'이다 싶을 때 하늘에서 뚝 떨어졌다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는 그 사람과 나 사이의 장애물을 수 번 마주치면 생각하게된다. 그 사람은 인연이 아닌가보다 하고. 그놈의 입에도 담기싫은 '운명'이 아닌가 보다 하고 말이다.
지난 글들을 보았다. 의외로 나는 그 사람을 여러번 포기하고, 다시 여러번 좋아하게 되었다. 그 글들을 보며 그때를 떠올려 보면 분명히 지금보다 난 훨씬 편안한 마음이었다. 마치 쇠를 담금질 하듯이, 그 사람을 다시 마음에 담아 둘 때마다 강도도 경도도 강해지는, 마음을 때릴 수록 풀리지 않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오늘 아침에는 비몽사몽한 잠꼬대로 엄마가 싸는 '김밥재료'에 대해서 엄마와 이야기하다가 나도 모르게 입에서 '난 속았나봐..'라고 말했다. 엄마는 단무지 이야기를 하던 아들이 디비져 누워서는 갑자기 속았다는 소릴하니 뭔 헛소리냐고 했고, 잠이 퍼뜩 깬 나는 소고기가 맛있을거같다고 했다. 엄마는 살 뺄 생각도 없냐며 핀잔을 주었다. 난 내 자신에게 너무 놀랐다. 속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던거니. 내 그릇도 작아 빠졌구나.
처음 그 말이 생각난다. 우리 의외로 오래 알고 지냈어요. 그 말이 그 때보다 지금 더 깊게 다가온다. 머리속에 왜냐고 물었더니, 지난 장애물이 많았다고 생각했다. 당신은 마치 아침드라마의 각본 속 주인공처럼 황당하고 엄청난 일들이 몰아쳤지만 그 비극속에서 절대 무너지지 않고 기대지도 않는 사람이었다. 그런 당신에게 다가가는 나는 영상 속 주인공이 아닌 지나가는 시민 A처럼 조심스러운 사람이었다. 그래, 우리는 과감하지도 않고 무모하지도 않았다. 아니, 당신은 이미 나보다 한참 어른이었으니까 내가 그랬으리라. 난 마음은 소년이라고, 죽을 때 까지 난 19살이라고 생각할 거라고 했지만 그 무모함의 칼날은 이미 무딜대로 무뎌지고 과감한 도끼의 날은 이가 빠져 어디에도 박히지 않았다. 고작 몇 년 사회에서 굴러보고, 여러 사람을 만나고, 여러 삶을 보게되고, 들어오고 나가는 돈을 멍하게 바라보던 날들은 어느새 소년을 소년으로 있지 못하게 하였다. 마음은 소년인데 온통 어른스러움 뿐이다. 그래서 난 그 사람과의 장애물에 번번히 시간을 두어야 했다. 들이 받아 깨 부수거나 피투성이가 되어 튕겨나가거나 하는 것을, 그러한 배짱을 잃은 채 우리는, 나는 당신에게 너무 많은 시간을 주었다. 그것은 아마 당신에게도 나에게도 좋은 일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 장애물들을 없애는 데 정말 내게 필요한건 돈이었을까, 차였을까, 멋진 얼굴이었을까, 선이 선명한 복근이었을까, 흠 잡을 데 없는 노래실력이었을까, 모델처럼 쭉 뻗은 기럭지였을까, 혹은 학력? 패션? 센스? 같은 것들이었을까. 언제나 나는 없는 것에만 눈길을 주었다. 내게 없는 것을 보고, 그 장애물들은 나에게 외쳤다. "그냥 그렇게 부딫혀와!" 그렇게 깨지고 부서지고 다시 들이받아서 흉터로 배워야 했건만. 그런 소년은 마음뿐이었다. 그러니 소년은 이미 벽 너머로 뛰어 달려가는 마음을 바라 본 채 앞을 가로막은 벽 앞에서 기다렸다. 그 벽이 헐거워 지기를, 금이 가기를. 그것은 현실이란 이름의 기다림이기도 했고, 타협이기도 했고, 서로를 조금 안도하게 하는 것이기도 했다. 해결해야 할 문제는 언제나 무언가가 없기에 생기건만, 난 그런것에 대해 너무 겁을 먹었던 것일까. 것일까? 그랬던 것이 분명하다.
그 사람은 복면달호의 여주인공 처럼 어떤 말미를 주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것이 상냥한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단 칼에 싹둑,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모를, 술 취한 버릇이 잠드는 사람이니 술김에 전화하여 화 낼 일도 없는 그런 사람. 그리고 나는 달호처럼 그런 그 사람을 수소문하고 찾아가고 뒤쫒아 결국 다시 안으러 가는 길을 떠나지도 않는다. 마음은 소년이 되어 몇 번이고 뜀박질을 해가지만, 저 멀리서 너도 빨리 뛰쳐 나오라고 손짓하지만 그냥 여기 앉아 글을 쓴다. 그것 뿐이다. 그저 여전히 아름다운지 궁금해지는 밤이 오면, 그것이 조금 괴롭다. 오늘은 술을 먹어 청승이 늘어난다. 쓸데 없는 것들이 떠오른다. 내 CPU는 성능이 참 좋다. 공부할 때는 아닌데, 이럴때는 쿼드코어라도 되는 것 마냥 하나 하나가 다 떠올라서 어지럽다. 그 사람의 변화 없는 SNS를 비 로그인으로 찾아가 보면, 나는 이 사람에게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이었구나 하고 느껴서야 진정이 된다. 현실은 이렇다. 비록 영화에서는 그를 기다리며 찾아올 힌트를 남겨두는 여자와, 그런 그 여자를 결국 찾아내고 마는 남자가 있지만. 그래서 난 복면달호가 좋다. 해피엔딩은 있다고 믿는 편이 좋다.
난 참 못됐구나 싶다. 아니, 변덕이 심하다. 이제는 좀 그 강한 사람이 무너졌으면 좋겠다. 아무렇지도 않지 않았으면 좋겠다. 새벽 네시에 잠을 억지로 깨우는 진동소리 너머로, 갈라지고 텁텁한 목소리로 화를 냈으면 좋겠다. 그냥 그렇게 슥삭 하고 없어진게 아니었으면 좋겠다. 문자를 주고받다가 스르륵 잠들던 이 시간에 아무렇지도 않게 뭐하냐고 물을 사람이 나밖에 없었어서 그래서 그 사람도 문자를 쓰다 지우다 쓰다 지우다 배게에 얼굴을 던지고 한숨을 꺼져라 쉬었으면 좋겠다. 힘들어하고 있었으면 좋겠다. 하던 일도 그것때문에 잘 안될정도로, 일상이 다 무너져버리듯이 그렇게 무너져있었으면 좋겠다. 변변찮게 화 한번 못 내본 내가, 아쉬움 한번 서운함 한번 외치지 않았던 내가, 전부 흘려보내가며 오롯이 당신을 바라본 내가, 그래서 한번 싸워볼 기회도 없었던 내가 이젠 당신이 무너지기를 바란다.
완결을 분명히 냈는데도 계속 무언가가 쏟아져 나온다.
내가 남겨두려 했던것들은 대체 무엇인가.
난 이제 그 사람과 있던 시간에 대한 증거를 찾고있다.
그 사람의 괴로움은 내게 훌륭한 증거가 되어줄 것이다.
혹은 그것은 최고의 위로로써 자리할 것이다.
참 못났다.
나 참 못났다.
요즘 사람마냥 쿨하게, 혹은 끝까지 쿨한 척 하지 못하는 내가 참 못났다.
대체 언제쯤 난 어른이 되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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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최근에 경험했던 이별이 nickyo님과 정반대였던 까닭인지... nickyo님의 그분은 참 좋은분 같군요. (하기야 이별에 좋은 이별 나쁜 이별이 어디 있겠습니까만은...)
왜인지 어디선가 읽었던 명언(?) 한구절을 nickyo님께 들려드리고 싶네요.
'사랑의 비극이란 있을 수 없다. 비극은 사랑이 없는 곳에만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