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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5/02/07 18:05:47
Name 글곰
Link #1 https://brunch.co.kr/@gorgom/269
Subject [일반] (삼국지) 남중 정벌 : 북벌의 전초전 (1)
(이전 글은 아래 링크를 참조하시면 됩니다.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탕거 전투 : 장비 일생일대의 대승
-한중 전투 : 유비의 비상
-형주 공방전 : 불멸로 남은 이름
-이릉 전투 : 파국의 절정

https://brunch.co.kr/brunchbook/samwar1





223년 여름, 촉한의 초대 황제 유비는 백제성에서 눈을 감았습니다. 뒤를 이어 태자 유선이 즉위했지요. 유비는 승상 제갈량에게 탁고하고, 상서령 이엄이 보조하도록 함으로써 뒷일에 대비했습니다. 이로써 제갈량은 촉한의 명실상부한 제 이인자이자 실질적인 통치자가 되었습니다.

이때 촉한의 상황은 매우 좋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가을에 선제 유비가 이릉에서 패한 이후로 사방에서 반란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한가태수 황원이 군사를 일으켜 촉군을 침범해 왔고, 원래부터 동오와 내통하고 있던 익주군의 호족 옹개 역시 반란을 일으켜 군을 점거했습니다. 게다가 옹개는 동향 출신인 또다른 호족 맹획을 시켜 이민족들을 충동질해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지요. 유비 살아생전에 이미 모반했던 적이 있는 월수군의 이민족 왕 고정 또한 재차 반기를 들었습니다. 또 장가태수 주포도 뒤이어 반란을 일으켰었습니다.

이중 황원의 반란은 수도인 성도에서 가까운 곳에서 발생하였기에 자칫 심각한 문제가 될 수도 있었습니다. 다행히도 촉군태수 양홍이 적절히 대처하여 반란을 진압하고 황원을 사로잡았지요. 반면 익주 남부, 이른바 남중(南中) 지역에서 일어난 반란을 진압하는 건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워낙 멀리 떨어진 곳이라 촉한의 통치력이 미치지 못했고 옹개나 고정 등의 세력 또한 대단했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세력은 남중 네 개 군 중 셋을 호령했으며 오직 영창군만이 오관연공조(五官掾功曹) 여개와 부승(府丞) 왕항의 지휘하에 저항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이 반란은 유선이 즉위한 시점에서 촉한이 직면한 가장 큰 위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여기서 잠깐 익주 지역의 역사를 간략히 살펴보겠습니다. 춘추시대와 전국시대에 걸쳐 익주는 본래 한족의 영역이 아니었습니다. 사천 분지에 있었던 파(巴)나라와 촉(蜀)나라는 모두 이민족의 국가였습니다. 그러다 전국시대 말엽, 대략 기원전 3세기 무렵에 진(秦)이 이곳을 점령하면서부터 익주 북부 일대가 한족의 지배 강역에 포함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원래 살던 이민족들은 점차 익주 남부의 오지로 밀려났는데 그곳이 바로 남중 지역입니다. 물론 이곳에도 전(滇)나라라는 이민족 국가가 있었지만 전한 무제 시절인 기원전 2세기 무렵에 복속되었습니다. 여담이지만 이 지역에는 지금도 수십에 달하는 다양한 소수민족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나라에 복속되었다 해서 남중의 이민족들이 그저 가만히 있지는 않았습니다. 유비는 익주를 차지한 후에 내항도독(庲降都督)이라는 지위를 두어 남중 4군을 관리하도록 했습니다. 도독(都督)이란 일정한 지역의 군사 지휘권을 지닌 자리입니다. 각 군의 군사 지휘권은 본래 태수에게 있는데도 굳이 상설직으로 통합 군사지휘관을 둔 것은 그만큼 군사를 동원할 일이 많았다는 의미입니다. 반란이 빈발했다는 거죠.

물론 이민족들만 반란을 일으킨 건 아닙니다. 남중 지역에 자리 잡고 오래도록 부와 권력을 축적해 온 호족들 역시 불만이 많았습니다. 후한시대 말엽에 이르러 천하가 혼란에 빠지면서 중앙정부의 행정력이 변방에까지 미치지 못하자, 이들은 반쯤 독립세력화 했습니다. 중앙에서 부임해 본 관리를 내쫓거나 심지어 죽이기도 했지요. 그리고 백성들에게서 세를 거두어 중앙으로 보내지 않고 대신 자신의 재산으로 축적했습니다. 촉한이 건국되고 남중 지역에 행정력을 투사하려 하자 이들은 당연히 극렬하게 반발했습니다. 그리고 촉한의 상징이자 기둥이었던 황제 유비가 세상을 떠난 시점이야말로 그들이 반란을 일으키기에 최적의 시점이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제갈량은 과연 어떻게 대응했을까요?

답은 대응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제갈량은 거의 2년 동안 관문을 굳게 닫고 농사에 힘쓰도록 했습니다. 농사란 곧 국가의 경제와 직결된 문제이니만큼 먼저 국력을 키우면서 내실을 다졌다는 뜻입니다. 촉한이라는 국가의 상징과도 같은 유비가 세상을 떠난 상황에서 무엇보다도 나라를 안정시키는 게 가장 시급하다는 판단이었을 테지요. 물론 이릉에서의 대패로 인해 국력이 대폭 소모된 상황에서 군사를 동원하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문제도 있었을 겁니다.

물론 그렇다 해서 제갈량이 그저 가만히 놀고만 있었던 건 아닙니다. 우선 동오와의 관계를 개선하여 다시 우호를 맺었습니다. 이로써 옹개가 멋대로 활개 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였던 동오의 지원을 끊어 버렸지요. 또 소금과 비단을 비롯한 여러 산업들을 진흥하여 국고 수입을 크게 증대시켰습니다. 그 결과 촉한은 이릉의 대패로부터 불과 삼 년 만에 다시 한 번 군사를 일으킬 수 있는 국력을 비축하게 됩니다.

이렇게 쌓아 올린 국력을 바탕으로 제갈량은 드디어 칼을 뽑아 들었습니다. 225년 봄, 제갈량은 직접 군사를 이끌고 정벌에 나섭니다. 칼끝을 겨눈 곳은 이른바 남중으로 일컬어지는 네 개 군, 즉 익주군/장가군/월수군/영창군이었습니다. 이때 자신이 깊이 신임했던 왕련이 친정(親征)을 극구 만류했음에도 불구하고 제갈량은 결국 직접 군사를 지휘하겠다고 결정했습니다. 그만큼 남중 평정을 중요하게 여긴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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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대적으로 군사를 일으킨 제갈량은 남하하여 월수군으로 진격했습니다. 아울러 군사를 두 갈래로 나누어서 내보냈지요. 내항도독(庲降都督) 이회는 남쪽 익주군으로 향하도록 하고, 문하독(門下督) 마충은 동남쪽 장가군으로 파견했습니다. 이들의 역할은 각기 맡은 방면의 반란군을 진압하고 사태를 수습한 후 다시 제갈량의 본대와 합류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미처 제갈량이 당도하기도 전에 적진에서 내분이 일어났습니다. 놀랍게도 고정의 사병들이 옹개를 죽인 겁니다.

사서에는 이유가 명확히 나와 있지는 않습니다. 다만 앞뒤 정황으로 짐작해볼 때 내분이 일어난 것 같습니다. 옹개는 한족이고 고정은 이민족인 수(叟)족이었지요. 서로의 이해관계가 달랐을 겁니다. 또 옹개는 애당초 이민족들에게 지지를 받지 못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니 옹개와 고정 간의 내분이 크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이유야 어찌 되었건 간에 옹개의 죽음은 촉한에게 큰 기회였습니다. 마충은 주포를 물리치고 무난히 장가군을 평정했습니다. 이회는 한때 두 배나 많은 적군에 포위당해 위기에 빠졌지만, 그들을 속여 방심하게 한 후에 기습하여 승리하고 익주군을 탈환했습니다. 그리고 제갈량은 고정을 사로잡아 참수합니다. 그야말로 연전연승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습니다. 옹개와 협력하고 있었던 맹획이 잔당을 규합하여 제갈량에게 저항해 온 겁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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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가타이칸
25/02/07 18:14
수정 아이콘
(수정됨) 삼국지로 정말 오랜만에 오셨네요 글곰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전기쥐
25/02/07 18:20
수정 아이콘
다음화부터 칠종칠금의 신화가 펼쳐지는건가요
如是我聞
25/02/07 18:26
수정 아이콘
2025년 봄에 읽는 225년 봄 이야기.
25/02/07 18:45
수정 아이콘
오 글곰님의 삼국지 글 너무 반갑습니다. 감사합니다.
nn년차학생
25/02/07 18:50
수정 아이콘
와! 삼국지 글 너무 좋아요!
LuckyVicky
25/02/07 19:32
수정 아이콘
글곰님의 삼국지 글이라니 ㅠㅠ
Jedi Woon
25/02/07 19:33
수정 아이콘
쿤밍이 익주군이였군요.
영창은 더 남쪽인 줄 알았는데 서쪽 다리 방면일 줄이야.
25/02/07 23:09
수정 아이콘
쿤밍... 그러니까 곤명은 매우 유서 깊은 도시 이름입니다. 당장 이 글에서 언급한 이회가 포위되었던 곳이 바로 곤명입니다.
물론 익주군이든 영창군이든 간에 서류상의 영역은 더 남쪽으로 뻗어나갑니다. 실제 지배력이 미쳤는가 하는 건 다른 문제지만요.
후추통
25/02/07 20:27
수정 아이콘
저도 이거 관련해서 글을 썼지만 촉한정권의 가장 위기가 바로 이 시기였다고 봅니다. 권력의 공백이나 진공상태가 아닌 제갈량이 이 문제를 단시간 내에 해결 가능한가라는 의문이 있었고 결국 촉오동맹의 성공은 유비의 탁고라는 명분에 제갈량에게 강력한 실무적 힘을 더해주는 일이었거든요.

"왜 선제께서 나에게 탁고를 하셨는지 알겠지?"

라는 걸 아예 대놓고 보여줬으니 언터쳐블이 되었죠. 요즘들어 느끼는 제갈량에 대한 공포는 본인이 계획을 짰을 때 내부의 적이나 본인이 알고 있더라도 어쩔수 없는 돌발 상황이 아닌한 그 계획이 착착 돌아가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25/02/07 23:11
수정 아이콘
제갈량이 친정에 나선 데는 그런 이유도 있었을 겁니다. 제갈량에게 독자적으로 군사를 지휘한 경험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군사적 능력이 완전히 증명되었다고 보기에도 무리가 있었거든요. 하지만 제갈량은 실적으로 증명했지요.
모래반지빵야빵야
25/02/07 20:57
수정 아이콘
오 전 익주군이 성도일 줄 알았는데 훨씬 남쪽이었군요.

맹획의 출신에 대해선 여전히 왈가왈부가 있는 것인가요? 뭔가 연의의 이미지 때문에 한족이 아니라 이민족 느낌이 강한데 실제로 정사 등에는 그런 기록은 없다고 봤던 것 같아서..
후추통
25/02/07 22:40
수정 아이콘
당시 익주군이라는 개념이 익주와 혼동되서 그렇습니다. 개념이 완전히 분리되는 시기는 제갈량의 남중정벌 이후 및 서진 시기가 되어야 가능하고요.

여기에 맹획은 아무리 봐도 이수 그러니까 비한족 세력의 우두머리 중 하나로 보는데 현 중국학계는 맹획을 대성 그러니까 한족계 세력으로 주장합니다. 이유는 간단한게 제갈량의 남중정벌은 중국 당국에서는 민족투쟁이 아닌 계급투쟁으로 봐야하는데 맹획이 이수라면 절대로 계급 투쟁이 될리가 없죠
25/02/07 23:21
수정 아이콘
(수정됨) 글쎄요. 저는 맹획을 한족으로 봅니다. 정확하게는 이민족으로 간주할 증거가 없고 여러 정황상으로도 한족으로 보인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는 전문가가 아니기에 저의 생각에는 하등의 신빙성도 없지만요. 중국 사학계의 역사관이 종종 괴상망측해진다는 점은 저도 십분 공감합니다만(허쯔취안의 위촉오 삼국사를 읽다 보면 가끔씩 머리가 멍해지곤 하죠), 맹획이 한족인 게 그러한 역사관을 만족시키는지의 여부와 실제로 맹획이 한족이었는가 하는 점은 전혀 별개의 문제 아니겠습니까.
후추통
25/02/07 23:58
수정 아이콘
네 하지만 전 저렇게 계급투쟁으로 몰고가는 것에서 전 맹획이 한족 계열인 대성이 아닌 비한족 계열인 이수라고 생각하고 여기에 추가로 이 시점에서는 대성 이수보다는 친촉파와 친오파 그리고 독자세력화 셋의 대결로 봐야한다 생각합니다. 친촉은 이회 친오는 옹개 주포 독자세력은 고정같이요.
25/02/07 23:27
수정 아이콘
>성도는 촉군에 속해 있습니다. 익주군은 한참 남쪽이지요. 다음 글에 언급될 사항이지만 제갈량이 나중에 익주군의 이름을 건녕군으로 고치는데, 사실 익주와 익주군이 헷갈리는 게 싫어서 그러지 않았을까 하고 혼자 짐작 중입니다.
페퍼민트
25/02/07 21:28
수정 아이콘
와 오랜만에 글곰님의 삼국지라니 너무 좋네요.
잘 읽겠습니다!
철판닭갈비
25/02/08 01:33
수정 아이콘
와 글곰님 삼국지 이야기 오랜만에 보네요
후추통님과 함께 역사글 참 감사히 잘 읽었었는데
어릴때 삼국지 보면서 촉빠라 몇 안 되는 사이다 부분 중 하나가 남만정벌이었어서 시리즈 기대됩니다!!
근데 그동안 책이나 만화에서 남만정벌로 들어왔는데 저 지역을 남중이라고 하나보군요?
카바라스
25/02/08 13:47
수정 아이콘
남만은 동이족처럼 남쪽의 야만인,오랑캐를 일컫는 말이었고 남쪽4개군을 남중이라고 불렀다고하네요
전설속의인물
25/02/08 18:45
수정 아이콘
왕의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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