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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2/07 23:09
쿤밍... 그러니까 곤명은 매우 유서 깊은 도시 이름입니다. 당장 이 글에서 언급한 이회가 포위되었던 곳이 바로 곤명입니다.
물론 익주군이든 영창군이든 간에 서류상의 영역은 더 남쪽으로 뻗어나갑니다. 실제 지배력이 미쳤는가 하는 건 다른 문제지만요.
25/02/07 20:27
저도 이거 관련해서 글을 썼지만 촉한정권의 가장 위기가 바로 이 시기였다고 봅니다. 권력의 공백이나 진공상태가 아닌 제갈량이 이 문제를 단시간 내에 해결 가능한가라는 의문이 있었고 결국 촉오동맹의 성공은 유비의 탁고라는 명분에 제갈량에게 강력한 실무적 힘을 더해주는 일이었거든요.
"왜 선제께서 나에게 탁고를 하셨는지 알겠지?" 라는 걸 아예 대놓고 보여줬으니 언터쳐블이 되었죠. 요즘들어 느끼는 제갈량에 대한 공포는 본인이 계획을 짰을 때 내부의 적이나 본인이 알고 있더라도 어쩔수 없는 돌발 상황이 아닌한 그 계획이 착착 돌아가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25/02/07 23:11
제갈량이 친정에 나선 데는 그런 이유도 있었을 겁니다. 제갈량에게 독자적으로 군사를 지휘한 경험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군사적 능력이 완전히 증명되었다고 보기에도 무리가 있었거든요. 하지만 제갈량은 실적으로 증명했지요.
25/02/07 20:57
오 전 익주군이 성도일 줄 알았는데 훨씬 남쪽이었군요.
맹획의 출신에 대해선 여전히 왈가왈부가 있는 것인가요? 뭔가 연의의 이미지 때문에 한족이 아니라 이민족 느낌이 강한데 실제로 정사 등에는 그런 기록은 없다고 봤던 것 같아서..
25/02/07 22:40
당시 익주군이라는 개념이 익주와 혼동되서 그렇습니다. 개념이 완전히 분리되는 시기는 제갈량의 남중정벌 이후 및 서진 시기가 되어야 가능하고요.
여기에 맹획은 아무리 봐도 이수 그러니까 비한족 세력의 우두머리 중 하나로 보는데 현 중국학계는 맹획을 대성 그러니까 한족계 세력으로 주장합니다. 이유는 간단한게 제갈량의 남중정벌은 중국 당국에서는 민족투쟁이 아닌 계급투쟁으로 봐야하는데 맹획이 이수라면 절대로 계급 투쟁이 될리가 없죠
25/02/07 23:21
(수정됨) 글쎄요. 저는 맹획을 한족으로 봅니다. 정확하게는 이민족으로 간주할 증거가 없고 여러 정황상으로도 한족으로 보인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는 전문가가 아니기에 저의 생각에는 하등의 신빙성도 없지만요. 중국 사학계의 역사관이 종종 괴상망측해진다는 점은 저도 십분 공감합니다만(허쯔취안의 위촉오 삼국사를 읽다 보면 가끔씩 머리가 멍해지곤 하죠), 맹획이 한족인 게 그러한 역사관을 만족시키는지의 여부와 실제로 맹획이 한족이었는가 하는 점은 전혀 별개의 문제 아니겠습니까.
25/02/07 23:58
네 하지만 전 저렇게 계급투쟁으로 몰고가는 것에서 전 맹획이 한족 계열인 대성이 아닌 비한족 계열인 이수라고 생각하고 여기에 추가로 이 시점에서는 대성 이수보다는 친촉파와 친오파 그리고 독자세력화 셋의 대결로 봐야한다 생각합니다. 친촉은 이회 친오는 옹개 주포 독자세력은 고정같이요.
25/02/07 23:27
>성도는 촉군에 속해 있습니다. 익주군은 한참 남쪽이지요. 다음 글에 언급될 사항이지만 제갈량이 나중에 익주군의 이름을 건녕군으로 고치는데, 사실 익주와 익주군이 헷갈리는 게 싫어서 그러지 않았을까 하고 혼자 짐작 중입니다.
25/02/08 01:33
와 글곰님 삼국지 이야기 오랜만에 보네요
후추통님과 함께 역사글 참 감사히 잘 읽었었는데 어릴때 삼국지 보면서 촉빠라 몇 안 되는 사이다 부분 중 하나가 남만정벌이었어서 시리즈 기대됩니다!! 근데 그동안 책이나 만화에서 남만정벌로 들어왔는데 저 지역을 남중이라고 하나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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