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윽고 밤이 되자 여가부는 수행원을 다 물리치고 홑몸으로 정부와 같이 한은의 집을 찾아갔다. 벤츠를 타고 가기가 송구스러워 걸어서 갔다. 정부는 여가부를 잠시 현관문밖에 세워두고는 혼자 안으로 들어가 한은을 만나보고 정부가 온 자초지종을 이야기하였다. 한은은 듣는 둥 마는 둥하면서 말했다.
“그대가 가져 온 와인이나 어서 풀게.”
그래서 두 사람은 술을 내어 즐겁게 마셨다. 정부는 술을 마시면서도 문밖에 세워 둔 여가부가 민망스러워 거듭 여가부의 일을 이야기하였지만 한은은 좀처럼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밤이 이슥해졌다. 그제야 한은은 말했다.
“손님을 불러볼까.”
여가부가 들어왔다. 그러나 한은은 일어나 맞이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여가부는 몸둘 바를 몰라 하다가 마침내 나라에서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고 있다는 자기의 뜻을 말했다. 한은은 손을 휘저었다.
“밤은 짧고 말은 기니 듣기에 지루하군. 지금 자네 벼슬자리는 무엇인가?”
“장관입니다.”
“그래? 그렇다면 나라에서는 믿을 만한 신하겠군. 내 사회적 갈등을 청산할 테니 대통령에게 청하여 여야 지도부에게 삼고초려를 하게 할 수 있겠는가?”
여가부는 머리를 떨구고 한참 동안 생각하고 나서 말했다.
“어려운가 합니다. 그 다음의 일을 듣고자 하옵니다.”
“나는 둘째 번이라는 것은 배우지 못했네.”
눌러 붙어서 재삼 묻자. 한은은 다시 입을 열었다.
“대한민국에 많은 홀아비,홀어미가 갈등을 맺어 아기를 낳지 않고 있네. 자네가 나라에 청하여 군가산점, 임신출산가산점을 지원하고, 체납 세금을 털어 집값을 2015년 수준으로 내려서 그들에게 살집을 장만해줄 수 있겠는가?”
이것도 정말 생각조차 할 수 없는 문제가 아닌가. 여가부는 한참이나 머리를 숙이고 있다가 비로소 고개를 들었다.
“어렵겠습니다.”
“이것도 어렵다. 저것도 어렵다. 그럼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그럼 아주 쉬운 일이 있으니 자네가 할 수 있겠는가?”
“원컨대 듣고자 합니다.”
한은은 말했다.
“대체로 출산을 하고자 한다면 먼저 둥지가 튼튼하지 않으면 안 되네. 또 아기를 먹이고 입히고자 고용을 안정화시키면 도서고금 가정에 불화가 없었네. 지금 미국 땅에는 천하의 주인이 들어앉아서 스스로 달러를 찍어내고 금리를 올리고 있네. 이에 대한민국은 금리를 올리지 못하고 있으니, 우리 물가는 치솟을 걸세. 이제 우리가 우리 청년들의 고용률을 상승시키고 육아휴직을 강제로 가게 법으로 지정한다면 그들은 기뻐하며 혼인과 출산을 할걸세. 그렇게 되거든 나라가 이제는 가족 관련 지출을 늘리고, 도시 집중도를 낮추기 위해 지방 투자를 늘린도록 하게. 그리고 결혼제도에 대한 전통적 방식과 허레허식을 완화하여 국민들이 부담없이 결혼과 혼전 동거를 하게 한다면, 그때야말로 출산률은 치솟고 천하대사를 꾀하여 부국강병을 이룰 수가 있을 것이네. 그런 다음 IT 및 문화 산업에 투자하고 문어발 기업을 정비하여 코스피를 안정시켜 나라 경제를 회복한다면, 우리 나라는 적어도 2050년에 인구가 없어서 소멸할 걱정은 없을 것이네.”
여가부는 얼빠진 듯 멍하니 있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기업들이 수도권을 지키고 있으니, 강제로 지방을 보낼 수 없고 육아휴직을 법으로 지정한다면 누가 일을 하여 나라가 돌아가겠습니까?”
이 말에 한은은 버럭 화를 냈다.
“소위 행정부와 국회가 대체 어떤 놈들이냐? 한번 선출되면 나라를 돌보지 않고 제멋대로 이득을 취하니 얌통머리가 없지 않느냐? 출산률이 0.6이 다 되어가도록 고령표, 성별 갈등에 따른 이탈표만 신경써서 아무것도 못하니 이건 나라를 이끄는 지도부로서 주관이 있는 것이냐? 그러면서 어찌 일할 사람이 없다 하며 주둥이를 놀리는 거냐? 옛날에는 원룸 신혼을 시작해도 손가락질 하지 않았고, 열심히 일하면 미래를 꿈꿀 수 있었다. SNS 오남용과 젠더 갈라치기, 고물가로 청년들의 목숨이 경각에 달려있는데 그래 그까짓 휴직과 가산점을 아낀단 말이냐? 뿐만 아니다. 장차 다음 엘리트가 IT, 순수과학, 문화, 미디어를 익혀야 하거늘, 그 넓은 직종 중에서 의학만 찾아? 내 비로소 세 가지를 말했으나 너는 그 중 한 가지도 못 한다 하면서 그래도 신임 받는 행정부 노릇을 한단 말이냐? 이런 놈은 참수하는 것이 옳다.”
한은은 좌우를 돌아보며 칼을 찾아 찔러 죽일 듯한 기세다. 여가부는 크게 놀라 엉겁결에 뒤창을 차고 나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날 그는 다시 한은의 집을 찾았으나, 이미 집은 텅 비고 찬바람만 쓸쓸할 뿐, 주인의 종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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