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의미는 원래 없다는 것부터 시작해서,
그렇다면 어떤 것을 추구하며 살아야 할까 싶어서,
유력한 후보인 행복에 대해 나름대로 정리를 해보고 있습니다.
우선 행복이 무엇인가? 에 대해 정의를 해야 할 것 같아서,
서은국 교수의 ‘행복의 기원’를 읽었는데, 신선하고 재미있었지만,
뭔가 부족한 것 같고, 좀더 알아보고 싶어서,
최인철 교수의 ‘굿라이프’를 읽고 서로 비교하면서
조금 더 정리가 된 것 같습니다.
‘굿라이프’에 대한 독후감이라고 보면 될 것 같고,
인생과 행복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은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우선 ‘행복의 기원’에서 말하는 행복에 대해 살펴봅니다.
원문 그대로 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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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본질적으로 감정의 경험인데,
마치 머리에서 만들어내는 일종의 생각 혹은 가치라는 착각이 들게 한다.
이성적 능력을 과대평가 하는 것은 행복을 이해하는데 방해가 된다.
본능의 ‘보이지 않는 힘’이 우리를 얼마나 움직이는지 과소평가하며 산다.
인간은 100% 동물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인생관 또한 다분히 목적론적이다.
그에게 삶은 가만히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뭔가를 추구하며 그것을 향해 나가는 과정이다.
이 때 인간이 추구하는 가장 궁극적인 목표를 행복이라고 보았다.
인간 행위의 종착지는 결국 행복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아무런 ‘이유 없는 우주 pointless universe’에서 살고 있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만 세상을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세상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기본적인 사실을 냉정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목적론적 사고를 극복하는 것이다.
우리는 아무런 ‘이유 없는 우주 pointless universe’에서 살고 있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만 세상을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많은 현대인의 삶이 행복과녁을 제대로 못 맞추는 이유가 쾌락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많은 서양 학자들이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가치 있는 삶이 곧 행복이라는 해석을 해왔다.
그 결과, 행복을 필요 이상으로 거창하게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사실 그가 관심을 둔 것은 정확히 말해 ‘가치 있는 삶 good life’이지 ‘행복한 삶 happy life’는 아니었다.
우리가 혼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초엘리트주의적 행복관의 잔재 때문에 좋은 삶과 행복한 삶이 뒤엉켜있다.
행복은 가치 value 나 이상, 혹은 도덕적 지침이 아니다.
천연의 행복은 레몬의 신맛처럼 매우 구체적인 경험이다.
그리고 쾌락적 즐거움이 그 중심에 있다.
쾌락이 행복의 전부는 아니지만, 이것을 뒷전에 두고 행복을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가치 있는 삶을 살 것이냐, 행복한 삶을 살 것이냐는 개인의 선택이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점은 첫째, 이 둘은 같지 않다는 것이고,
둘째는 어디에 무게를 두느냐에 따라 삶의 선택과 관심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무엇이 가치 있는지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잣대가 필요하고,
많은 경우 그 잣대의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평가다.
그 칼날로 기름기를 제거하고 나면 행복의 살코기로 남는 것은 주관적인 즐거움과 기쁨이다.
남의 칭송과 칭찬을 받으며 사는 사람이 아니라, 일상에서 긍정적인 정서(기쁨 등)를
남보다 자주 경험하는 사람이 이런 연구들에서 ‘행복한 사람’으로 정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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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있고 Insight도 많이 얻었지만,
아쉬웠던 부분은
1. 행복이 쾌락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 잘 납득이 안되었다는 점.
혼자 음악을 들을 때,
산꼭대기에서 풍경을 볼 때,
옛날 즐거운 생각을 할 때,
아이가 웃는 것을 볼 때,
등등 굉장히 다양한 경험과 감정에서 행복을 느끼는데,
너무 단편적이고 설명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2. 가치 있는 삶/좋은 삶(good life)을 추구하면,
행복한 삶(happy life)을 살지 못할 것 같은 전제를 깔고 있다는 점.
’무엇이 가치 있는지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잣대가 필요하고,
많은 경우 그 잣대의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평가다.’
가치 있는 삶을 추구하면, 행복한 삶을 얻을 수 없을 것 같은 뉘앙스를
책 전반에 풍기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왜 2가지를 구분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같이 쓰이는 것을 경계 했는지 이해는 됩니다.
가치에 대한 주체적 정의가 어렵기 때문에,
사람들이 당연히 잘 못할 거라는 생각이 깔려 있는 것 같아요.
물론 나만의 정의를 만드는 것은 아주 어렵다고 생각해요.
그것이 곧 나의 철학이고, 곧 자아성찰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희는 어차피 못할거야 하고
얼렁뚱땅 넘어가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굿라이프’는
행복은 쾌락에 불과한가?
가치 있는 삶과 행복한 삶은 전혀 별개의 것인가?
의 아쉬운 부분을 많이 채워주었습니다.
첫번째 아쉬움(행복은 쾌락일 뿐인가)에 대해 설명된 부분을 옮겨 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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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적 관점은
인간과 동물이 공통으로 경험하는 행복을 설명하는 데에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인간만이 추구하는 행복, 즉 좋은 삶을 설명하는 데에는 한계를 지닐 수 밖에 없다.
인간은 끊임없이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그 삶에 스토리를 부여하는 존재다.
과거를 회상하고 미래를 계획하여,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연결하는
소위 ‘connecting the dots’라는 의미 창출 작업을 하는 것이 인간의 특징이다.
이 작업은 순간순간에 관한 것이 아니라 삶 전체에 관한 것이다.
삶이란 해석과 재해석의 연속이다.
과거의 즐거움이 지금 생각하니 어리석은 일이었다고 후회하고,
과거의 고통이 지금 생각하니 축복이었다고 감사하는 것이 인간이다.
순간의 경험들은 그 순간에 종료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재평가된다.
따라서 순간의 기분만을 가지고 좋은 삶을 이해할 수는 없다.
대니얼 카너먼은 두 가지의 구분을 위해
경험하는 자기(experiencing self)와
기억하는 지가(remembering self)라는 개념을 제안했다.
우리에게는 현재 순간을 경험하는 자기가 있고,
나중에 그 경험을 기억하고 회상하면서 새롭게 재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자기가 있다.
카너먼은
우리에게 두 가지 자기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에도 두 가지가 있다고 주장한다.
하나는 경험하는 자기를 위한 행복이고,
다른 하나는 기억하는 자기를 위한 행복이다.
경험하는 자기를 위한 행복을 추구한다는 것은 지금 현재의 만족과 기분을 추구한다는 것이고,
기억하는 자기를 위한 행복을 추구한다는 것은 삶 전체의 의미와 가치를 추구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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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심리학자다!!!
시원하고 명쾌한 설명이었습니다.
조금 더 옮겨 적어봅니다.
마치 ‘행복의 기원’에 대한 반론 같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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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순간의 기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삶’의 행복이기도 하다.
삶의 행복은 순간의 행복 이상의 것이다.
행복이 좋은 기분과 좋은 삶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모두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대인들은 좋은 기분으로서의 행복만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좋은 삶으로서의 행복은 좋은 기분과 함께 삶의 의미와 목적, 삶에 대한 품격있는 자세와 태도까지를 포함한다.
쾌락은 생물학적이고, 의미는 문화적이다.
쾌락은 현재에 집중할 때, 의미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통합하는 과정에서 발견된다.
나이가 들면 쾌락보다 의미가 중요해진다.
‘맛이 좋은 음식’과 ‘좋은 음식’이 다르듯, ‘좋은 기분’과 ‘좋은 삶’은 다르다.
좋은 음식이 맛이 좋을 수도 있지만, 맛이 좋다는 것이 좋은 음식의 필수 조건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좋은 삶이 좋은 기분을 많이 느끼는 삶일 수 있지만, 좋은 기분 만이 좋은 삶의 조건은 아니다.
‘행복’이 ‘행복한 기분’처럼 기분을 수식할 때와 ‘행복한 삶’처럼 삶을 수식할 때는 그 뜻이 다르다.
행복이라는 단어 역시 ‘기분’을 지칭할 때와 ‘삶’을 지칭할 때는 다른 뜻을 갖게 된다.
행복이 서로 다른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행복을 행복한 기분의 관점에서만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그 결과, 좋은 삶으로서의 행복의 의미를 간과하는 실수를 범한다.
기분 관점에서만 행복을 이해하는 사람들은 인간을 다른 동물들과 질적으로 다른 존재로 보지 않는다.
이 관점에 따르면, 인간의 행복이란 생존과 번식에 도움이 되는 자극들(예를 들어 음식, 섹스, 친밀한 관계 등)에 의해서 유발되는 기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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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행복의 기원에서 비친
마치 가치 있는 삶을 추구하는 것이 행복한 삶을 사는데 방해가 되는 것 같은 우려? 의견?
(2번째 아쉬움)에 대해서도
아래와 같이 반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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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삶이란, 의미가 가득한 삶이다.
의미는 우리 삶에 질서를 부여할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해준다.
행복에 대한 정의를 지나치게 가볍게 내리면
행복을 추구할 만한 이유를 발견하기 어려운 것처럼,
의미를 좋은 삶의 중요한 요소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의미에는 무거운 의미뿐 아니라 가볍고 경쾌한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무거운 의미 혹은 큰 의미란
삶에 대한 목적의식과 소명의식, 자기희생, 대의 명분 같은 것을 뜻한다.
작은 의미란 일상 속에서 경험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의미를 뜻한다.
아침마다 아이들의 밥을 지어주는 것,
연로한 부모님에게 안부전화를 하는 것,
맡겨진 과제를 제시간에 해내는 것 등 일상적인 일을 통해서 경험되는 의미다.
의미 추구는 엘리트 도덕주의자의 강압적 명령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우리의 본성이다.
행복해지기 위해서 홀로 있기보다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라는 말을 들을 때,
한편으로는 동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의문이 들었던 적이 있었을 것이다.
우리의 이런 반신반의가 혼자 있는 것이 주는 의미의 행복을 경험했기 때문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스스로를 자발적으로 격리시킨 상태에서 경험하는 성찰의 시간이
성장과 의미 경험을 제공했기 때문에,
혼자 있는 시간이 주는 행복을 부정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반면에 즐거움 혹은 쾌락은 혼자 있을 때보다는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훨씬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행복의 기원'에서 들었던
2가지 아쉬운 점을
'굿라이프'의 도움으로,
'의미'라는 요소를 행복에 추가함으로써 해소했습니다.
두 책은
서로 적절한 보완재가 되는 것 같습니다.
특히 출간 순서대로 ‘행복의 기원’과 ‘굿라이프’를 읽어서 더 좋았던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두 책에서 공통으로 강조한 내용을 적어보면서 마무리합니다.
어쩌면
행복의 가장 근본적인 조건이자 핵심 아닐까 합니다.
구분하지 않고 적었어요.
어떤 책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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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적 자유감이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내 인생을 마음대로 사는 것이다.
이런 삶을 보편적으로 지지해주는 문화가 있고,
이렇게 살기 위해 세상과 문을 닫고 기인이 되어야 하는 문화도 있다.
행복이라는 씨앗은 개인의 자유감이 높은 토양에서 쉽게 싹을 틔운다.
획일적인 사고는 행복에 큰 타격을 준다.
마치 행복에도 정답이 있고, 이는 몇 개의 잣대로 압축된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좋은 대학 간판, 대기업 명함, 높은 연봉.
이런 조건들을 갖추지 못한 인생은
왠지 ‘행복 시험’에서 낙제한 것 같은, 그래서 불행한 삶이라는 좌절감을 느끼게 한다.
보다 결정적인 것은 다른 사람들의 평가나 시선에 얼마나 신경을 쓰며 사느냐다.
물론 사회의 일원으로 살며 타인의 평가와 의견을 경청하고 존중하는 자세는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내 인생의 유일한 나침판이 되면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어느새 삶을 경험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남에게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살게 된다.
***행복의 주요 요건 중 하나는 내 삶의 주인이 타인이 아닌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살아가기보다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갈 때 행복이 찾아온다는 점을 시사한다.
의미의 원천, 자기다움
“반성되지 않은 삶은 가치가 없다(The unexamined life is not worth living)” 소크라테스
자신의 내면에 귀를 기울이고 자신에게 충실한 삶을 사는 것을 최고의 행복으로 제시한 것이다.
리틀의 연구(개인 프로젝트 personal projects 분석)는
인간이 경험하는 의미의 중요한 원천이 진정한 자기를 만나는 것, 즉 자기다움의 삶을 사는 것임을 보여준다.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이 자기가 누구인가를 드러낸다고 느낄 때,
인간은 의미를 경험한다.
일이 잘되면 기분이 좋지만, 그 일이 자기다운 일이면 의미가 경험된다.
우리가 성공, 성취, 효용, 효율 등 무엇을 이루는 것에만 집착하게 되면
순간적인 기분의 행복을 누릴지는 모르지만,
의미 있는 삶을 경험할 가능성은 줄어든다. 의미 있는 삶이란 자기다움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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