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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6/01/16 12:01:46
Name 복숭아
Subject 나의 팬이 되자..
1.

나는 스타크래프트를 좋아한다.
하는 것도 물론 좋아하고 보는 것은 더욱 좋아한다.

자랑은 아니지만-_-2002년 이후로 온게임넷, MSL, 프리미어리그 등 거의 모든 경기를 봐왔다.
후배의 ID를 빌려서 실시간으로 보거나 여의치 않을땐 인터넷 결제로 봤고,
혹시나 놓친게 있으면 며칠 후 유료가 풀리고 난 후 꼭꼭 챙겨보았다.

30회에 가까운 각종 대회의 우승자와 준우승자를 헷갈리지 않고 말할 수 있으며
눈을 감고도 숱한 명경기들의 시작과 끝에 대해서 떠올릴 수 있다.

그리고 나는 홍진호, 박용욱, 나도현, 이윤열의 팬이다.
그들은 모두 나보다 어리고-_- (당연하게도)스타를 잘한다.
하지만 내가 그들을 좋아하는 것은
단순히 스타를 잘한다거나 성적이 좋다거나 해서는 아니고,
그들이 극한의 집중력을 보여줄 때 경기력이 급격히 상승한다는 점 때문이다.
반대로 말하면 평소때는 항상 불안해하며 경기를 지켜볼 수밖에 없다는 점인데
불안정하면서도 언제나 예상을 뛰어넘는 그 무엇을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는 점이 오히려 그들의 매력이다.
극한의 집중력이 만들어내는 최고의 순간!을 공유한 사람으로서 나는 그들의 팬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들의 빛나는 눈은 경기를 지켜보는 나를 화면안으로 투영시키게 한다.
그들의 경기를 볼때면 나는 그들의 마우스가 되고 그들의 유닛이 된다.



2.

스타크래프트를 스포츠로서 관전하고
Pgr21에서 글을 읽고 쓰고 하면서 느낀 것은
누군가의 팬이 된다는 것 또한 나쁘지 않은 일이라는 것이다.

매일 수천명의 사람들이 Pgr에서 글을 읽으며 감정을 나눈다.
뿐만 아니라 누군가는 이혼사유가 될만큼 미친듯이 FM을 하고
아놀드파머의 라운딩에 평생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지금도 내 인생을 바꿀 영화나 소설을 읽고 있을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의 그러한 열정들이 전적으로 의미없다고 하기엔 우리네 삶은 너무나 가볍다.



3.

하지만 중요한 건 많이 본다고 해서 스타를 잘하게 되는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K-1이나 프라이드 매니아라고 해서 양아치들을 때려 눕힐 수는 없으며
어줍짢은 영화평론가나 시나리오작가지망생은 구름처럼 널려있다.

결국 팬은 그들의 감정을 공유할 수 있을 뿐
나머지의 삶은 전적으로 자신이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잠시라도 잊으면 안된다.

물론 자기가 할 수 없는 것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 열광하는 것도 좋다.
하지만 남들에 열광할 시간에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의 영역을 조금이라도 더 넓히거나
꼭 그게 아니어도 자기가 이미 할 수 있는 것을 좀더 온전히 즐길 수 있는 법을 배울 수 있다면 그것을 진정한 '성취'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길지 않은 삶에 있어서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의 팬이 되는 것이다.

나의 팬이 되자.


ps.
2년동안 피지알에서 참 많이 웃고 즐거웠습니다.
피지알회원 여러분 모두 행복하셨으면 합니다.^^
아차. 그리고 너무도 애쓰시는 homy님, 일택님, 항즐이님, 아케미님, 발그레 아이네꼬님,..등등
그동안 고맙다는 말한마디 제대로 건네지 못한것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말은 안하지만 저처럼 많은 이들이 기억할 겁니다.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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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kHigh-Kebee
06/01/16 12:05
수정 아이콘
어디가시나요? 설마 군대일리는 없고...
after_shave
06/01/16 12:14
수정 아이콘
자기 자신에 투자하러 가시는 듯.
아케미
06/01/16 12:50
수정 아이콘
헉, 정말 어디 가시는 듯한 분위기이네요. 복숭아님, 언제 어디서든 항상 멋진 나날 보내시기 바랍니다!
파일널푸르투
06/01/16 13:53
수정 아이콘
어디에 있든 잘 되시길 빌겠습니다.
포켓토이
06/01/16 14:12
수정 아이콘
나다의 팬이 되자.. 로 읽어버렸습니다. -_-;
06/01/16 19:32
수정 아이콘
주변의 떡밥에 낚여서 하마트면 이 좋은 글을 놓칠뻔 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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