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te |
2002/02/28 03:07:05 |
Name |
Apatheia |
Subject |
[잡담] 지구에서 온 편지 |
때로 사람은
아무런 잘못도 없는 상대에게서도
상처를 받을 수 있는 것 같다.
웃으며, 억지로 괜찮다고 말하기 위해
화장실에 가서 세번이나 찬물로 세수를 해야 했고
마주앉은 사람이 전화를 받느라 자리를 비운 사이
애꿎은 커피숍 냅킨을 잡아뜯는 것으로
불편한 심사를 달래야 했으며
그렇게 그렇게 참았던 울음을
안녕...이라는 인사까지 다 마치고 택시를 탄 후에야
그것도 저 뒤에서 나를 지켜보는 사람을 위해
손까지 한번 흔들어주고 나서야
또한 이 빌어먹을 소심한 성격 탓에
혹시나 기사가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지나 않을까 싶어
잠이라도 든 척 하고 차가운 유리창에 이마를 기댄 채
마침 꽤나 큰 볼륨으로 흘러나오는 택시 안의 트로트 음악에 감사하며
들키지 않게, 그렇게 조금씩 겨우 흘려보낼 수 있었다.
화라도 낼 수 있었다면 조금은 덜 슬펐을까, 그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참으로 슬프게도
그 사람 또한 잘못이 없었고
그 사실을 뻔히 알고 있음에도, 그 명백한 사실에 상처받는 나를 저주하며
난 그렇게, 내 영혼의 한 부분을 어딘가 흘려버린 기분으로
그렇게 집으로 돌아왔다.
때로 사람은
아무런 잘못도 없는 상대에게서도
상처를 받을 수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아픔이란 건, 어쩌면,
지독히 뻔뻔하고 철면피한 상대에게서 받는 그것보다
훨씬 더 크고 아픈 건지도 모르겠다.
-Apatheia, the Stable Spirit.
PS...
1. 지구에서 온 편지.
내용과 아무런 상관없는 제목이지만
그냥 지금 듣고 있는 김광민 1집의 제목이라서.
2. 리플도 아닌 메일까지 보내서 괜찮냐고 물어봐 주신
한 따뜻하고 상냥한 님께 감사드리며.
|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