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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0/12/28 17:59:41
Name 아난
Subject [일반] 아도르노, 베토벤, 예술의 소외.. (수정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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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베토벤 (1770년 12월17일∼1827년 3월26일) 탄생 250주년이 되는 해이다. 세계 여러 곳에서 수 많은 기념 행사들이 열렸을 테고 수많은 글들과 영상물들이 쏟아져 나왔을 것이다. 나 역시 베토벤의 어떤 곡들을 아주 좋아하고 아직 안 들어본 곡들이 있다는 사실, 귀에 익은 곡들도 더 집중해서 몇 번이나 다시 들어보아야 한다는 사실 - 즉 해볼만한 것이 있다는 사실! - 에서 아주 큰 위안을 느끼지만 그 사실은 베토벤의 곡들이 초역사적인 예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믿음과는 무관하다. 나는 노을같은 것은 인류 문명이 끝나는 날까지 어떤 좋은 감흥을 주지만 예술작품들의 위대성은 닳아없어진다고 믿는 사람이다. 배토벤의 곡들이라면 중기까지 작품들이 제일 먼저 그리 되는 운명을 맞이하거나 이미 맞이 했을 것이다.  

아도르노에 따르면, '메뉴펙쳐 시대 이래의 노동과정의 해체와 바흐 이래의 모티프와 주제조작기법, 즉 해체시키고 조합하는 기법은 깊숙한 곳에서 일치한다'는 의미에서 '부르주아적 원리를 통한 사회의 역동화와 음악의 역동화는 동일한 의미를 지닌다'. 베토벤은 중기까지는 귀족들의 후원을 받았음에도 그 음악의 역동화의 에이전트였다. 즉 더이상 귀족들이 주인공이 아닌, 더 평등하고 자유로운 사회의 음악적 이미지를 창조한 작곡가를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칭찬해준 것은 귀족들이었다. 자수성가와 사업에 바빴던 초창기 부르주아지들은 그의 곡들을 들어낼 음악적 귀를 결여하고 있었다. 다만 그들의 막내 동생들과 자녀들 일부가 베토벤을 감식할 수 있고 열렬히 숭배하는 문화 부르주아지로 성장하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아도르노는 중기까지의 베토벤의 음악이 미적 조화의 한계에 갇혀 있으며 그로 인해 급속하게 허위적인 화해의 가상으로 전락했다고 주장한다: '음악이 명백한 이데올로기적 입장을 취한 경우야말로 역사의 경과와 함께 변질되는 위험이 생긴다. 베토벤의 인류애의 열정은 그 시대 그 장소에서는 비판적 내용을 지녔으나 시대가 흐름에 따라 가치저하를 가져왔으며 종국에는 있는 그대로의 현재를 축복하는 의식이 되어버렸다.' 특히 9번 교향곡의 합창 악장에서 하모니가 부과하는 불협화음들의 화해를, 그리고 어떻게 사소하게만 변주되면서 전체를 일관하는 그것의 아름다운 선율이 단편화된 세계 속에서 인류의 형제애의 이상이 이미 실현된 듯한 인상을 주는 지를 떠올려 볼 수 있을 텐데, 이것이 거의 아도르노와의 공동작품이라고 할만한 토마스 만의 한 소설에서 주인공이 9번 교향곡이 ‘철회’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이다. 우리는 물론 9번 교향곡이 나치들의 모임에서도 몇 차례 공연되었다는 것, 더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는 5번 교향곡을 어떤 페미니스트 음악학자가 '강간 판타지'라고 해석한 적이 있음을 알고 있다. 즉 아도르노를 필두로 적어도 중기까지의 베토벤의 작품은 '캔슬'하려는 움직임이 있어왔다.    

베토벤은 말기부터는 귀족들의 후원에서 벗어나 자영업자가 되었는데, 그럼으로써 '음악과 사회의 고분고분한 적합의 도식을 폭파'한 '완전하게 자율적인 음악이' 역사상 최초로 출현했다. 현악사중주 등으로 대표되는, 이 시기의, 미적 조화의 한계를 벗어난 곡들은 아도르노의 자율적 예술작품의 범례들 중 하나이다(에드워드 사이드는 <말년의 양식에 관하여>에서 아도르노의 이 말기 베토벤 작품론에 기대고 있다). 나는 이 곡들 중 몇개는 끝까지 들어 본 적 있지만 그 대단함을 실감하지는 못했다. 클래시컬 음악을 어느 정도는 듣고 사는 이들 대다수가 나와 마찬가지 일것이다. '나는 실감했는데'라는 이들도 십중팔구 아도르노적 의미의 대단함을 들어낸 것은 아닐 것이다. 이 대단한 곡들은 들어내기도 어렵지만 연주하기도 어렵다. 이 곡들은 '아마추어 연주자들은 감당할 수 없는 요구'를 한다. 이런 곡들이 아직 그 예술적 가치가 다 닳아없어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는 첫 클래시컬 음악이라는 생각이 타당하다면, 그 사실은 예술작품의 대단함과 예술작품의 소외 - 생활세계로부터의 소외 - 가 동전의 양면임을 말해준다. 물론 아도르노는 이 소외에 대한 책임은 대중을 깔보는 예술가들이나 비평가들이 아니라 사회에, '생산 라인 앞에서 보내지 않는 시간'을 진지한 예술작품들에 주의를 집중시키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사유를 하는데 보다는 다음 날에도 '생산 라인 앞에서 계속 시간을 보낼 수 있기 위한' 가벼운 오락이나 휴식 시간으로 '사용할 수 있으면 기뻐하는' 이들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사회에 있다고 본다. 이 사회와 거리를 두고 이 사회를 비판할 수 있기 위해 예술은 이 사회에 통합된 이들은 즐길 수 없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2
In Search of Beethoven - Documentary Beethoven Festival On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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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고 흥미로운 얘기들을 많이 해주는, 지금까지 만들어진 것들 중 최고의 베토벤 다큐멘터리라고 하는데, 아쉽게도 영어 자막이 안 달려 있다. 영어 듣기 되고 베토벤 많이 좋아하는 분들은 도전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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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28 18:08
수정 아이콘
저는 이러한 평론에 딱히 동의하지 않습니다. 예술작품의 감동이 시대를 거쳐갈 수록 닳아 헤어진다는 시각자체에도 동의할 수 없고요.
반복해서 접하게 되면서 최초의 감동이 덜 느껴지게 된다는 이야기라면 몰라도 말입니다.

저는 제 손으로 처음 엘리제를 위하여를 완주했을 때의 감동을 기억하고,
처음으로 전원 1악장을 들었을 때의 감동을 기억합니다.

비록 시간이 지나, 처음 느꼈던 그 감동이 조금은 빛이 바랬을 수는 있겠습니다마는,
왜 그 때 그 시절 나의 감동을 두고 소위 평론가라는 이들이 저 따위 막말을 해 대도 인정을 받는 것인지... 저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 논법대로라면, 인간이 생을 마감할 때까지 만 몇번 이상을 보았을 [노을]의 감동은 왜 닳아 헤어지지 않는다는 것인지 모를 일입니다.

평론가 당신이 그렇게 믿고 싶다면 그러라지요. 저는 동의하지 않겠습니다.
20/12/28 19:07
수정 아이콘
(수정됨) 인간이 생을 마감할 때까지 만 몇번 이상을 보았을 [노을]의 감동은 왜 닳아 헤어지지 않는다는 것인지 모를 일입니다.
--

개인이 보내는 시간이 아니라 역사적 시간이 흐름에 따라 닳아 헤진다는 것입니다. 노을을 보고 느끼는 감흥은 문명 자체와 - 역사적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 성격이 바뀔 수 있는 개개의 문명들이 아니라 - 자연 사이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사회에서라도 사회에 대한 불만은 생기기 마련이고 그 불만은 가장 흔히 유토피아적 자연의 이미지 (자연미)를 낳습니다. 그 이미지 중에서도 노을의 이미지는 가장 원초적인 듯 보입니다. 그런데 이건 제 생각이고 아도르노는 어떤 자연미는 초역사적이고 보편적이라는 식의 생각을 안 합니다.

예술작품의 경우는 역사적 시간이 흐름에 따라 사회가 변하면 예술작품이 생산된 사회에서의 문제상황과 문제의식과는 다른 문제상황과 다른 문제의식이 생기게 되고 그것들을 반영하고 그것들에 대응하고 그것들을 표현하는 새로운 예술작품들이 요구됩니다. 어떤 예술작품들은 양파같이 다층적이고 풍부하고 복잡해서 사회가 변하면 겉 껍질에 해당하는 가치가 떨어져나갈뿐 속껍질에 해당하는 새로운 가치가 드러나기도 합니다. 아도르노 자신의 말입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역사적 시간의 흐름 = 사회의 역사적 변화]에 따라 가치가 닳아 없어진다는 것이 아도르노의 생각이고 지난 30여년동안 헤게모니를 쥔 - 문화전쟁에서 승리한 - 좌파 문학예술관련 식자들의 생각입니다. 그런식의 생각이 타파하고자 한, 전통적인, 어떤 예술작품의 가치는 보편적이고 초역사적이다라는 식의 생각은 흔히, 비아냥 거리른 어투로, '리버럴 휴머니즘적'이라 불립니다.
20/12/28 19:20
수정 아이콘
그야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아도르노가 과연 개개인의 감동 역시 계량하여 어느 것은 저급하고, 어느 것은 고급하다고 말할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서유럽의 촌로가 틀에 박힌 스테인드 글라스를 보고 성호를 긋는 것을 두고, 그는 닳아 문드러진 상징에 감동을 느낄 뿐이라고 폄하할 수도 있겠지만요. 아도르노의 감동이 그 촌로의 감동보다 우위에 있다고 말하는 이가 있다면, 저는 그의 양심을 의심할 수 밖에 없습니다.

아름답다는 감정은 지극히 개인적이면서 내밀한 것입니다. 다른 누가 무엇이라고 말하더라도, 아름다운 것은 아름다운 것이지요. 세상에 진리가 있는지 없는지 저는 모릅니다만, 아름다운 것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개개인별로 존재하는 것이라 믿습니다. [더]아름다운 것이라는 관념 자체가 고통을 계량화하여 누가 더 고통스러운지를 따지는 올림픽 같은.. 하등 쓸모없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여기까지가 제 생각입니다. 하여, 타인의 감정을 두고 저 따위 말을 하는 이들을 존중하고 싶지도 않고요.

네. 그렇게 말씀하십시오. 저는 무시할테니.
20/12/28 19:24
수정 아이콘
네, 엄청난 리버럴 휴머니스트 혹은 미적 대중/민중/민주주의자시네요. 조롱하고자 하는 의도를 전하려고 쓴 댓글 아닙니다!
김연아
20/12/28 20:40
수정 아이콘
아도르노가 좀 양심리스한 인간이긴 하죠 크크크크
노둣돌
20/12/29 12:48
수정 아이콘
노을의 감동도 역사적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바뀔 수 있다고 봅니다.
노동이 삶을 영위하는데 필수인 세상에서 낮동안은 힘겨운 시간을 보내야만 합니다.
황혼이 찾아오면 이제 이 힘든 시간으로부터 잠시 해방될 수 있기에 노을이 아름답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의 도움으로 노동 종말의 세상에서 태어날 아이들은 더 이상 노을이 아름답지 않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요한슨
20/12/28 19:09
수정 아이콘
저는 본문의 내용에 상당부분 동의하는것이

한 시대의 예술 양식은 최고 수준의 예술적 업적을 이뤄내면서 후대에 큰 영향을 주는 예술가들에 의해 정의되는 것이지, 평균에 의해 정의되는 것이 아니죠. (물론 예술성 없이 영향력만 있으면 그 역시 의미가 없지만)

고전주의가 18세기의 흔하디 흔했던 당대의 무명 작곡가들의 트렌드에 의해 정의되는가 아니면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과 같은 천재들에 의해 정의되는가를 생각해보면 천재의 위대함과 중요성에 대한 가치를 온전히 회복하는것 역시 꼭 필요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요한슨
20/12/28 19:15
수정 아이콘
여담이지만 제가 예전에 다음에서 헤비메탈(중에서도 쓰레쉬,블랙,데스 등 익스트림 계열)과 클래식만을 듣는 카페지기분이 운영하는 카페에서 딱 본문과 같은 논조로 베토벤을 조명하는 글을 봤는데 동일인물이 아닌가싶을 정도네요...
20/12/28 19:39
수정 아이콘
실용 오디오에 비슷한 논조의 글을 썼던 것도 같은데, 그 카페는 아닙니다.
요한슨
20/12/28 19:58
수정 아이콘
저는 그 카페 영향인지도 모르겠지만 아도르노보다는 하인리히 쉥커의 이론을 많이 접했었습니다. 베토벤 9번 모노그레프, 화성,대위법,자유작법 등의 쉥커의 저서에서 예술양식이론 정립의 필요성을 역설했었는데 필연적으로 그 과정에서 베토벤과 모차르트가 자주 언급되었으니까요.
카페알파
20/12/28 21:18
수정 아이콘
(수정됨) 어, 여기서 '실용 오디오' 를 알고 계시는 분을 만나니 반갑네요. 십수년 전 거기 꽤나 들락거렸었는데, 어느 새 점점 안 가게 되었지만요.

나무위키 '오디오필' 항목에서 오디오 관련 사이트에 '두근두근 오디오' 나 '디시 인사이드 - 헤드폰, 이어폰 갤러리' 는 소개되어 있는데, '실용 오디오' 나 '하이파이 클럽' 은 소개되어 있지 않은 점이 아이러니하더군요. 둘 다 두두오 등보다 훨씬 오래된 사이트이면서 진짜배기 고인물들의 서식처일텐데요.
카페알파
20/12/28 21:26
수정 아이콘
(수정됨) 저는 복잡한 건 잘 모릅니다만, '예술작품들의 위대성은 닳아없어진다'는 말은 동의할 수 없네요. 만일 진짜 닳아없어지는 것이고 후대로 갈수록 나중에 나오는 작품에 의해 빛이 바랜다면 벌써 없어졌겠죠. 그리고, 실제로 당대에는 곧잘 연주되다가 현재에는 연주되지 않고 잊혀진 곡이 최소 현재 연주되곤 하는 곡들이 10배는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교향곡이 현재 연주되고 있는 곡이 100 여곡 정도인데, 실제 작곡되었던 곡은 1,000 여곡이 좀 넘는다던가 하는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소위 '고전음악' 이라고 하는 것들, 특히 100년 이상 수백년을 살아남아 연주되는 곡들은 세대를 뛰어넘는 그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각자 생활 환경도 다르고, 그에 따라 생활 방식 및 사고 방식이 달라질 수 밖에 없는 여러 세대들에게 공감되는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죠. 실제로 남아 있는 곡보다 몇 배나 되는 많은 곡들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 잊혀졌구요. 그게 닳아 없어질 아름다움이나 위대함이었다면 몇 세대, 혹은 열 세대 이상을 거쳐 살아남기는 힘들었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많은 시대의 사람들에게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 곡이라면 앞으로 상당히 오랜 세월 ─ 어쩌면 인류 멸망의 순간까지 ─ 살아남아 있어서 여전히 그 아름다움과 위대함에 빛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만.
20/12/28 22:19
수정 아이콘
(수정됨) 살아남았다는 사실 자체가 예술적 가치의 존속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아도르노는 많은 오페라 작품들이 예술적 가치가 소멸한 채 공식문화로만 살아남아 있다고 말합니다. 물론 문화 부르주아지들과 국가의 문화정책이 도장찍어주는 것만으로는 - 즉 교과서에 실리고 공립 미술관에 소장되고 자주 공연/방송되는 것만으로는 - 공식문화가 될 수 없습니다. 적잖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저는 그것을 좋게는 고급오락적 가치 나쁘게는 이데올로기적 가치라고 봅니다.

아도르노가 수백년, 수천년이 흘러도 예술적 가치가 살아 남아 있는 경우라고 볼만 하거나 보는 예술작품들이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비극들, 셰익스피어의 희비극들, 베토벤의 말기 작품들이 그렇습니다. 그 살아남음은 그 작품들이 생산되었던 사회들과 그 이후의 사회들의 어떤 공통성/연속성, 그 작품들이 다루었던 제재가 그 이후의 사회들에서도 갖는 중요성, 그 작품들이 그 제재를 해석/가공한 결과로서의 그 작품들의 이념적 내용이 그 이후의 사회들에도 가질 수 있는 설득력에 의해 설명될 수 있습니다. 생산되었던 사회에서는 주목/경청/간파되지 못했던 어떤 것이 이후 사회들의 감상자들에게 예술적 가치를 가진 것으로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본 글에서의 양파 비유). 그러나 알파님 자신이 얘기하셨듯이 그런 의미에서 살아남는 작품들은 극히 적습니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살아남는 작품들의 예술적 가치도 초역사적이지는 않습니다. 그 예술적 가치는 여전히, 사회들의 역사적 연속성 등등 사회역사과학의 텀들로 설명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역사적입니다. 근본적인 역사적 변화가 일어나면 그 예술적 가치들은 닳아없어지고 그 작품들은 망각되거나 사료로만 다뤄지거나 고급오락으로만 즐겨지게 됩니다.
20/12/28 22:24
수정 아이콘
카페알파는 제가 인상깊게 본 애니입니다. 오늘은 이미 글을 많이 썼으니 내일쯤 오래전에 쓴 짤막한 감상기를 올릴까 합니다.
라프로익
20/12/28 23:06
수정 아이콘
아도르노의 미학에 많이 배우긴했는데, 오늘날 연주자들이 주목받는 시대에 들어선 지금, 처음 만들어졌을 때 의도가 어떻든 하이든 현악사중주 같은 음악도 위대하다고 이야기 할수 밖에 없다 생각하네요.
그리고 베토벤 후기 현악사중주가 잘 안들린다면 바그너부터 시작해 바르톡까지 귀를 뚫어놓고 다시 한번 도전해보시면 좋을거 같아요. 그래도 별로면 취향차이.
20/12/29 06:11
수정 아이콘
흥미로운 이야기라 이러저러 이야기를 해보고 싶은데 대책없이 길어질것 같아 선뜻 손이 안가네요. 여튼 잘 읽고 갑니다.
보라는고민중
20/12/29 16:01
수정 아이콘
개념의 상대성을 무시한다는 느낌이 드는군요. 케바케인 것을 객관화하는 오류가 아닐까요.

저는 무신론자이고 불교의 명상적 메카니즘을 좋아 합니다. 하지만 며칠 관련 서적을 읽다보면 관심이 사그라들지요. 그래도 몇쳔년간 불교를 탐구하는 스님들을 머저리들이라고 욕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클래식 음악가로서 대중음악은 감동의 지속성이 없다고 느낍니다. 하지만 나한테 그런것이지 다른 사람들한테는 정반대인 것을 알고는 있습니다.


대학 교수를 비판하려 한다고 꼭 대학 교수일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나이에 상관없이 적어도 비판 대상에 걸맞는 지적 업적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지요.
베토벤만큼 인류 사상사에 업적을 남긴 인물을 헐뜯는 말을 들어 봤자 시간낭비입니다. 숭배하자는 말이 아니라 잘 알아보고 비판하자는 것이죠.

아난님은 일생동안 베토벤을 연구하는 인간들을 무시하고 싶어하시는 것 같습니다. 피지알에도 클래식 음악인들 있어요.
21/01/01 01:18
수정 아이콘
역사적인 것을 초역사적인 것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이데올로기는 여전히 강려크 하다는 걸 댓글로 새삼스럽게 느낍니다. 예술의 영도를 내걸었던 아방가르드도, 키치를 혐오했던 모더니스트도, 비판이론의 선구자 아도르노도, 모두가 오늘날에는 평등한 개취의 상대성의 세계좌표의 한 눈금을 차지할 뿐이겠지요. 지금과 같이 역사적인 것은 그 흔적조차 찾아보기 어려운 시대에 새로운 예술양식은 나타날 수 없으니 과거의 것을 가져다 쓰기 바쁜것 아니겠습니까. 의도는 다르지만 어쨌든 웹에는 넝마주이가 되어 과거의 것들을 편집증적으로 수집하는 뒤틀린 벤야민주의자들이 넘치는 오늘날, “생산에서 벗어난 시간”조차 넷플릭스와 유튜브의 온갖 문화산업에 점령당한 걸 보면 아도르노의 말이 틀린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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