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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0/07/23 21:38:49
Name aurelius
Subject [일반] [역사] 교황청의 역사: 제4부 - 십자군전쟁과 교황 (수정됨)
The Crusades: Did You Know? | Christian History

보통 십자군 전쟁 하면 가장 유명한 일화가 클레몽 공의회의 연설입니다. 교황 우르바노 2세가 프랑스의 클레몽에서 기사들에게 피 흘리고 있는 기독교 동포들을 보호하고 성지를 탈환하기 위해 성전(聖戰)을 벌여야 한다고 일장연설을 한 사건이죠. 성전에 참여하면 모든 죄가 용서받고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내용도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DEUS VULT! DEUS VULT! 하느님께서 바라신다! 사람들은 교황의 부름에 이와 같이 응답하여 기사들 뿐만 아니라 농민과 가난한 평민들까지 참여하여 대규모 원정에 떠났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실 이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1. 개혁파 교황 우르바노 2세, 간신히 즉위하다 

우르바노 2세는 개혁파 교황 그레고리오 7세의 서거 3년 후, 1088년 교황에 선출되었는데, 그의 지위는 매우 불안정했습니다. 신성로마제국 황제 하인리히 4세는 버젓이 살아있었고 그가 옹립한 대립교황 클레멘스 3세가 로마를 점거하여 자리를 보전하고 있었습니다. 그레고리오 개혁을 지지하던 추기경단이 망명지에서 과거 그레고리오 7세 교황이 총애하던 추기경을 교황으로 선출한 것입니다. 따라서 객관적으로 보자면 새로 교황이 된 우르바노 2세는 누군가에게 명령할 위치가 전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우르바노 2세는 대단히 정력적이었습니다. 그는 그레고리오 개혁을 완수하고자 했고, 로마에 입성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일개 수도사 마냥 이탈리아 남부, 프랑스 남부 등지를 오가며 설교를 했고 성직매매와 성직자 결혼 등을 비판하면서 규율과 청빈을 요구했습니다. 그는 전임자처럼 여전히 신성로마제국 황제 하인리히 4세와 적대관계였지만, 전임자와는 다르게 강력한 우군을 확보하는 데도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그는 교황의 서임권 관련해서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기에만 집착하지 않았고, 따라서 영국과 프랑스왕에 대해서는 비교적 유연한 정책을 펼쳐 이들이 신성로마황제가 옹립한 대립교황이 아니라 정통 교황을 지지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하게는 하인리히 4세의 아들 콘라트를 우군으로 만들어 그의 결혼을 중개하였고, 그가 교황의 편에 서도록 하였습니다. 

우르바노 2세가 로마에 입성할 수 있었던 것은 황태자 콘라트 덕분이었습니다. 그가 무슨 이유로 우르바노 교황을 지지했는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하루 빨리 왕위를 잇고 싶은 마음에서였을까? 아니면 아버지에 대한 사적인 증오심이 있었던 것일까? 또는 진심으로 개혁파 교황들에 대한 존경심이 있었던 것일까? 진실은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교황파 역사가들은 콘라트가 독실한 신앙인으로 세속적 권력보다 영적인 구원을 우선시한 사람이었다고 치켜세웠습니다. 아무튼 콘라트는 아버지에 대해 반란을 일으켰고, 교황은 즉위한 지 5년이나 지나서야 간신히 로마에 입성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교황궁이 위치한 라테라노 성당을 탈환한 것은 그 이듬해 1094년이었습니다. 

십자군 전쟁을 촉발시킨 클레몽 공의회가 1095년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교황이 이제서야 로마에 돌아왔다는 것은 상당히 놀라운 일입니다.  

2. 십자군 전쟁을 촉발시킨 두 개의 공의회: 피아첸차 공의회와 클레몽 공의회 

1095년에는 중요한 공의회가 두 건 있었습니다. 3월에 개최된 피아첸자(이탈리아 북부) 공의회와 11월에 개최된 클레몽(프랑스 중부) 공의회입니다. 

피아첸차 공의회의 의제는 표면상 특별한 게 없었습니다. 개혁파 교황의 공의회답게 기존 개혁의 원칙들을 나열하면서 그레고리오 7세의 교황칙령(Dictatus Papae)을 다시 읊는 수준이었습니다. 성직매매 금지, 성직자 독신 제도의 확립, 세속권력의 주교 서임권 금지, 교황의 무오류성 등 말이죠. 또한 고해성사를 주거나 죽은이를 묘에 매장하는 대가로 금품을 받는 것 또한 금지했습니다. 물론 로마를 탈환한 교황의 공의회인 만큼 대립교황 클레멘스 3세를 단죄하고, 그를 부당하게 옹립한 황제 하인리히 4세에 대한 비난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황제에 걸맞지 않다는 점을 증명하기 위해 증인으로 그의 아들 황태자 콘라트를 불렀고, 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불륜을 저지르며 음란하게 난교를 즐긴다고 증언했습니다. 심지어 새엄마인 황후와 같이 성교를 나누자는 제안을 했다고 증언했습니다.  (결국 나중에 콘라트는 독일 영주들과 아버지에게 미움을 받아 그의 동생 하인리히가 다음 황위계승자로 간택됩니다). 

그런데 이 공의회가 더욱 중요했던 점은 바로 동로마의 황제 알렉시오스 콤네노스의 사절단이 와있었기 때문입니다. 정통 로마의 후계자,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콘스탄티노플로 천도한 이래 계속 명맥을 이어온 로마제국의 황제가 "정통 교황" 우르바노 2세에 사절단을 보낸 것입니다. 만지케르트 전투의 패전 이후 동로마 제국은 줄곧 셀주크 튀르크의 압력을 받고 있었으며, 알렉시오스 황제는 이에 서유럽으로부터 원군을 받고자 했습니다. 황제의 사절단은 피아첸자 공의회에 참석한 최고위급 인사로, 이에 합당한 예우를 받았으며, 우르바노 2세는 이들에게 원조를 약속했습니다. 

사실 우르바노 이전에도 십자군 관련 계획이 있었습니다. 이미 그 전임자 그레고리오 7세 또한 동로마 황제를 원조해야 한다는 구상을 갖고 있었고, 십자군을 기획하고자 했습니다. 다만 기획단계로만 끝나고 실제로 이루어지지는 못했습니다. 따라서 그레고리오의 유지를 이은 우르바노 2세로서는 동로마 원조가 전혀 새로운 구상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보다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습니다. 교황이 보기에 방탕한 인물이었던 하인리히 4세를 황제로 인정하기보다 동로마의 황제를 추켜세우면서 그에게 원군을 파병하여 교황으로서 위엄을 세우는 게 나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동로마 황제의 원군요청을 명분으로 유럽의 영주들의 신앙심을 고양시켜 그들이 사소한 분쟁을 계속하는 것을 멈추게 하고, 그 에너지를 해외로 분출시키는 게 나았습니다. 더욱 중요하게는 독일이나 프랑스의 영주들이 모두 해외로 떠난다면, 신성로마제국 황제나 프랑스 국왕 등은 교황을 상대로 무력을 행사하기 어렵게 될 터. 교황은 이 기회를 반드시 포착해야 했습니다. 

같은 해 11월, 리옹과 가까웠던 도시 클레몽에서 다시 공의회가 개최되었습니다. 사실 이 공의회의 메인 의제는 십자군이라기보다는 기존에 피아첸자 공의회에서 결의된 내용을 재확인하고, 교황법령을 구체화시켜 반포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이 중 몇가지는 오늘날에도 이어지는데 가령 사순절에는 육류를 섭취하면 안된다는 것과 성토요일에는 저녁까지 금식해야 한다는 것 등이 있습니다 (물론 오늘날 대부분의 신자들은 지키지 않는 규율들입니다...). 아무튼 클레몽 공의회에서 성직매매 금지, 세속권력에 의한 주교 서임 금지 등 기존의 원칙을 다시 결의했습니다. 그리고 공의회 마지막날 교황은 군중 앞에서 그 유명한 연설을 했습니다. 동방에 있는 우리 형제들이 살육당하고 있다! 성당들이 파괴되었고, 수녀들이 더럽혀졌다! 진군하자 예루살렘으로! 하느님의 축복이 그대들과 함께 하노라! 

십자군 전쟁의 시대가 개막한 것입니다. 

3. 십자군 전쟁은 어떻게 교황을 강화시켰나?

우르바노 2세는 예루살렘 탈환 수일 후 당시 교통기술의 한계로 그 소식을 듣지 못하고 서거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촉발시킨 십자군은 교황의 권위를 전례없이 강화시켰습니다. 기독교 세계의 영적 심장 예루살렘의 탈환은 전적으로 교황의 이니셔티브였고, 이는 그 어떤 군주도 황제도 하지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교황은 서유럽의 기독교인들을 단지 말의 힘으로 움직일 수 있었고, 그 결과는 예루살렘의 정복이었습니다. 그리고 새로이 탄생한 예루살렘 왕국은 교황에게 충성을 맹세했고(물론 형식적인 것이지만), 예루살렘 정복 과정에서 탄생한 기사단 등은 모두 교황의 직할 부대가 되었습니다. 

교황은 봉건군주처럼 예루살렘 왕국과 레반트의 공국들을 신하(vassal)로 삼았고, 따라서 이들을 보호할 의무가 있었습니다. 교황이 수차례 십자군을 요청한 것은 바로 그러한 봉건적 의무를 수행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새롭게 탄생한 기사단들은 유럽전역에 지부를 두어 인력을 모집했고, 교황으로부터 특권적 지위를 부여받아 각 나라에서 세속권력의 방해없이 활동할 수 있었습니다. 이들은 교황의 검이 되었고, 때로는 교황의 금고가 되기도 했습니다. 

경제적인 이득도 있었습니다. 십자군에 참여하기 위해 떠나는 영주들은 재산을 교회에 맡기는 경우가 많았고, 이들이 사망하게 될 경우 그 재산은 교회에 귀속되었습니다. 또는 십자군 전쟁에 참여하기 위한 경비가 부족한 영주들은 자신들의 영지를 담보로 교회로부터 돈을 빌렸고, 교회는 그 영지를 상속받거나 또는 그 영지에서 나오는 수입을 일종의 "이자(interest)"로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단어 모기지(Mortgage)가 이 때 탄생했습니다. 죽음을 뜻하는 단어 Mort, 그리고 약속을 뜻하는 단어 Engagement의 합성어인데, 죽게 되면 그 영지를 교회에게 바친다는 뜻입니다. 교황에게 이는 중요한 수입원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교황의 주수입원은 로마와 그 주변의 조세수입이었는데, 많은 경우 황제와 대립할 경우 제국군이 이탈리아에 진군하였고, 그렇게 되면 조세수입을 확보하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국군이 미치지 못하는 프랑스에서 수입을 확보할 수 있게 됨에 따라 교황은 보다 독립된 수입원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교황은 기독교 세계 전역에 있는 주교들에게 십자군을 위한 특별세금을 부과하였고, 이는 경우에 따라 연수입의 5%에서 10%까지 달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교황은 십자군전쟁을 통해 권위와 함께 교황을 보좌하는 기사단 그리고 교황의 권위를 뒷받침하는 경제력을 모두 확보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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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
20/07/23 23:54
수정 아이콘
압도적 감사
새강이
20/07/24 09:26
수정 아이콘
오우..Mortgage라는 단어가 여기서 나왔다니..지적인 세렌디피티를 느낍니다 감사합니다.
Je ne sais quoi
20/07/24 10:48
수정 아이콘
오늘도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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