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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0/05/26 10:37:36
Name aurelius
Subject [일반] [역사] 1919년 한 중국 지식인의 유럽생각 (수정됨)
량치차오, 우리나라에서는 양계초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사람입니다. 

그는 19세기말~20세기 초 당시 활약한 중국 계몽주의자로 캉유웨이와 함께 중국의 근대화를 위해 노력했습니다. 청조 말기 언론활동을 통해 이름을 알렸고, 신해혁명 이후에는 정치인으로 활약하였으나, 정치에서는 그닥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글쓰는 것을 멈추지 않았고, 그가 저술한 작품은 조선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특히 [이태리건국삼걸전]은 조선의 신채호가 번역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이외에도 [조선망국사략][월남망국사]를 저술하면서, 조선과 베트남의 경험으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하면 중국도 그렇게 될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아무튼...

량치차오는 1차세계대전 종전 후 1919년 파리 베르사유 강화협상에 중국 대표단의 고문자격으로 참석했습니다. 그리고 전쟁의 결과 폐허로 변한 유럽의 모습을 보며, 중국...나아가 인류의 미래에 대한 고민을 남겼는데 그 결과가 [구유심영록]이라는 책입니다. 

그는 어설픈 중체서용(中體西用)이 아니라 후쿠자와 유키치식의 전면적인 서구화를 강력히 제창하던 인물이었으나, 1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눈으로 확인한 뒤 과학만능주의를 비판하며 약자와 소외된 자 그리고 자연을 중시하는 휴머니즘을 설파했고 서양의 뛰어난 업적을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중국문화가 인류복지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고민하였습니다.  

한편 베르사유 평화 협정이 근본적 문제를 해결하기는 커녕 이를 어설프게 봉합시켜 후일 화근이 될 수 있다는 점도 정확히 바라보았지만, 동시에 국제연맹으로 대표되는 "국제주의(Cosmopolitanism)"을 높게 평가하면서 인류가 나아가야할 길이라고 보기도 했습니다. 

량치차오의 고민을 읽어보니, 윤치호보다 인격적으로나 생각의 깊이로보나 훨씬 뛰어난 인물임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학부생 시절 개인적으로 윤치호를 상당히 높게 평가했었고, 그의 문제의식에 공감하는 바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윤치호는 사회적 다윈주의에 심취하여 약육강식을 당연한 이치로 보면서 시종일관 냉소적이었고, 그 자신이 조선과 인류의 복지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그리고 무엇을 위해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고민이 부족했습니다. 요즘으로 말하자면 '모두까기 인형'으로 대안은 제시하지 않고 자기 잘난 맛에 사는 그런 인물이었죠. 그리고 현실세계에서는 한없이 나약하여, 후일 자기 일기에는 일본을 욕하면서도 동시에 일제에 적극적으로 협력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량치차오는 후쿠자와 유키치류의 근대화와 계몽주의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으면서도 동시에 인류애적 관점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비관적인 상황에서도 계속 희망을 찾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는 메이지 유신 추종자들과는 달리 "민주주의"와 "자유"가 핵심적인 가치라고 보았고 "일국보신"보다는 "국제협력"을 주장했습니다. 윤치호와 동시대인이지만, 윤치호가 19세기적 인물이라고 한다면, 량치차오는 20세기적 인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하에서는 구유심영록에서 인상적인 부분들을 발췌해서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소제목은 제가 임의로 붙인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
p.15~17 [예측할 수 없는 역사적 전환] 
"나는 인류가 참으로 천지간에 존재하는 괴물이라고 생각한다. 인류는 시시각각 자신의 의지로 자신의 지위를 창조하고 자신의 처지를 변화시킬 뿐 아니라, 시시각각 자신이 창조하고 변화시킨 지위와 처지에 의해 자신이 지배당하기도 한다. 인류가 무엇을 창조하고 변화시키려고 하는지는 창조되고 변화된 사물이 나타나기 전까지, 아무도 그것을 사전에 알 수 없다. (중략) 19세기 초 기세등등하던 러시아, 프로이센, 오스트리아의 신성동맹이 십여 개월만에 동시에 와르르 무너질지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 스위스, 네덜란드 등의 주변국가에 몇 십명의 크고 작은 군주들이 동시에 망명하여 배고프고 외로운 신세가 될지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 동방의 사나운 독수리로 불리던 거대한 러시아가 사분오열되어 국제단체에서 밀려나고, 이렇게 큰 규모의 유럽평화회의에서 아무런 지분도 없을지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 90년 전 네덜란드에서 독립한 벨기에와 40년 전 터키에서 독립한 세르비아가 유럽평화회의에서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될지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 2~3백년 동안 몇차례 분할되었던 폴란드, 심지어 천여년 동안 뿌리조자 뽑혔던 유태민족이 뜻밖에 본래의 신성한 국호를 다시 사용하게 될지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 대문을 꽉 닫고 집안에서 먼로주의를 얘기하던 미국이 위세를 과시하며 바다 건너 타국의 일에 관여하게 될지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 국제연맹이 예전에 지식인들이 세세한 조항으로 구체화되고 몇 십개국의 대표가 공동으로 체결하게 될지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 이삼십년 전만 해도 각국 정부에서 커다란 재앙으로 여기던 사회당이 오늘날 각국 국회에서 최대 세력이 되고 각국 정부에 거의 다 사회당원이 있을지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 각국 엘리트 정치가들에 의해 법도 하늘도 모르는 급진파로 찍힌 레닌정부가 요절하기를 바라는 신문사들의 매일 같은 저주 속에서도 오뚝이처럼 2년 동안 견디고 오늘날에도 의연하게 존재하여, 호기심 많고 모험심 강한 수많은 유람객들이 현명하다고 칭송하게 될지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 우리가 여태 진리이면서 완전하다고 여겼던 대의정치가, 오늘날 뿌리채 흔들리며 아무도 그 수명을 장담할 수 없게 될지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 영국, 프랑스, 독일과 같은 강대국들이 중국처럼 가난에 신음하며 고리대금에 기대어 연명하게 될지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 기세등등하던 유럽각국에서 편안하게 생활하던 인민들이 석탄과 식량을 구하지 못해 집집마다 생필품 때문에 근심하게 될지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이상은 내가 우연히 생각한 몇 가지 큰 단서들을 마음대로 적어놓은 것이지만 매 사건이 모두 놀랄만한 일들이다. 그래서 나는 이번 대전이 새로운 세계사의 본론이 아니라 과도기적인 전환점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p. 18~19 [파리강화회의 한계]
"전쟁의 결과로 유럽 동남지역에 많은 신생소국들이 생겨났다. 과거 발칸지역에서 소국들의 분립은 실로 분쟁의 화근이었는데, 지금은 전쟁으로 인해 발칸의 형세가 더욱 확장되었다. 소국 상호 간의 이해관계가 더욱 복잡해져서 시시각각 반목할 수 있는 상황이 조성되었다. 소국들은 힘이 부족하여 외부의 원조를 구하지 않을 수 없었고 강대국들은 이를 빌미로 그들을 조종할 수 있었다. 이러한 현상들은 과거 전란의 도화선이었는데, 대전 후에도 이점이 교정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변질되어 더욱 심각해졌다. 이는 민족자결주의로 볼 때 일종의 진보이지만, 유럽 자체의 국제관계 정세로 본다면 상서로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또 여러나라가 러시아 급진파를 뱀처럼 증오하면서 호랑이처럼 두려워한다. 협약국 군대가 러시아의 중도파 군대를 지원하여 급진파를 포위공격하고 있는데, 비엔나회의 이후 신성동맹국이 프랑스혁명당에 대응하던 지난날을 되풀이하는 듯하다. 급진파의 운명이 어떨지에 대해선 알 수 없으나 중도파의 지도자가 러시아 전체를 통치할 수 없다는 사실은 조금이라도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다 판단할 수 있는 일이다. 협약국의 이러한 심리와 행동은 러시아 시국을 수습하는 데 아무런 효과가 없을 뿐 아니라 유럽에 화근을 하나 더 만들 수도 있다." 

p.38~39 [유럽문명의 몰락?]
"여러분은 나의 말을 듣고 바로 다음과 같은 의문을 가지게 될 것이다. "당신의 말대로라면 유럽은 전부 끝난 게 아닙니까? 물질세계가 이렇게 고갈되고 정신세계가 이렇게 혼란하면, 이제 어떤 일이 남아있는건가요? 과거에 이집트, 중앙아시아, 그리고 그리스로마도 매우 찬란한 문명을 소유했지만 후에 모두 소멸되거나 중단되었는데, 이번에 유럽이 또다시 이런 역사극을 재연하는 게 아닙니까?" 나는 이런 의문에 단호하게 대답하려고 한다. "아니다. 아니다. 절대 그렇지 않다". 유럽이 백년 동안 겪은 물질적 정신적 변화는 모두 '개성발전'에서 유래한 것이고, 지금도 날마다 이 길을 가고 있다. 현재의 유럽문명은 고대, 중세 및 18세기 이전의 문명과 근본적으로 상이한 점을 지니고 있다. 예전은 귀족의 문명이고 수동적인 문명이지만, 지금은 군중의 문명이고 자발적인 문명이다. 예전의 문명은 특수한 지위와 특수한 재능을 지닌 소수에 의지하여 유지한 것이어서 '훌륭한 사람이 없으면 훌륭한 정치가 사라지는' 원리를 벗어날 수 없었지만, 지금의 문명은 전 사회의 보통사람 개개인의 자각을 통해 날마다 창조되어온 것이다. 그래서 지금의 문명의 '질'이 예전에 비해 때때로 떨어지지기는 하지만 그 '양'은 풍부해졌고 '힘'은 지속될 수 있었다. 현재의 유럽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모든 사물이 '평민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도 간혹 혐오스러워 할 때가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현상이 사회를 진보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퇴보시키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과거에 상층에 있던 사람을 하향하게 하는 한편, 과거에 하층에 있던 사람을 상향하게 하였다. 하지만 과거에는 하층에 있던 사람들이 대다수였기 때문에, 계산해보면 사회는 분명 향상된 셈이다. (중략) 그래서 유럽의 문명은 대다수인의 심리 위에 건설된 것이어서, 마치 집을 짓는데 땅을 잘 다지고 말뚝을 튼튼히 박으면 폭풍우가 와도 흔들리지 않는 것과 같다. 

p. 44-45 [유럽의 현재와 미래]
"내가 유럽의 상황에 대해 자질구레하게 말하여 여러분을 골치 아프게 했을지도 모르겠다. 이제 간략히 정리해보자. 첫째, 대전의 결과 오스트리아와 러시아가 와해되었고, 중부유럽과 동유럽의 여러 소수민족이 연이어 건국하였으며, 게다가 윌슨의 민족자결이 크게 고취되어 민족주의의 불길이 갈수록 타오르고 있다. 19세기 후반에 유럽 민족운동사가 일단락을 짓게 되었고, 향후 유럽 이외의 지역으로 확장될 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해 국제관계가 복잡해지고 세상의 일이 더 많아지겠지만, 대체로 인류 사회조직의 진보라고 할만하다. 둘째, 이번 대전에서 연합국이 완전히 '호조(互助)'를 통해 승리한 점은 유럽인들에게 커다란 교훈을 주었다. 비록 이상적인 국제연맹이 완성되지 못했지만 국가 간의 호조정신은 날로 발전하고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세계주의가 이로부터 첫 발을 내딛은 것이다. 셋째, 연합국은 '중부유럽의 군국주의를 타도하자'는 기치를 내세워 군벌 정복을 위한 십자군을 일으켜 대성공을 거둔 셈이다. 전제주의의 4대 진영(러시아, 독일, 오스트리아, 터키)을 송두리째 뽑아버렸고, 민족주의가 절대적 정치원칙이 되었으며, 게다가 사회당이 날로 발전하여 '사회민주주의'가 점차 가장 중도적인 정치제도가 될 것이다. 넷째, 러시아 급진파 정부가 뜻밖에 수립되어 2년이 경과했는데 장래의 결과에 상관없이, 설령 붕괴된다 하더라도 그 정신은 끝내 소멸하지 않을 것이다.

p. 47-48 [세계주의 국가를 위하여]
"만일 스스로 일어서지 못하고 국제연맹의 보호를 기대한다면 그것 헛된 꿈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국제연맹을 무의미하게 보아서는 안 되며 최선을 다해 그 발전을 도와야 한다. 국제연맹은 세계주의와 국자주의가 조화되는 첫걸음으로서, 국가 상호간의 관념을 사람들에게 깊이 인식시키고, 국가의지는 절대적이고 무한한 것이 아니라 외부의 통제를 많이 받아야 한다는 점을 알게 하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국가와 국가 상호 간의 관계가 한층 밀접해졌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현황 속에서 '세계주의 국가'를 건설해야 한다. 어찌하여 '세계주의 국가'라고 부르는 것인가? 국가는 사랑해야 하지만, 완고하고 편협한 구사상을 애국이라 여겨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오늘날의 국가는 이렇게 발전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의 애국은 국가만을 알고 개인을 몰라서는 안 되며, 또 국가만을 알고 세계를 몰라서는 안 된다. 우리는 국가의 보호 아래서 개개인의 천부적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고, 전 세계 인류문명을 위해 커다란 공헌을 해야 한다."

p. 48 [비관하지 마라, 중국은 망하지 않는다]
"우리는 비관하며 중국이 망할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절대 안 된다. 재정문제와 경제문제에 있어 유럽이 우리보다 몇십배 더 어려울지도 모른다. 우리가 이 자그마한 문제를 겪으며 의기소침해 한다면 유렵인들은 연이어 대서양에 뛰어들어야 할 것이다. 군벌의 전횡과 정치 부패 때문에 어쩔 방도가 없다고 한다면, 19세기 전반기 유럽의 역사를 읽어보고 그때의 정세가 어떠했는지 살펴보라. 영국과 프랑스 양국은 현재 민주정치의 모델로 공인되고 있지만, 예전에는 귀족의 전횡가 부패가 우리와 마찬가지였는데, 어떻게 오늘날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인가? 먼 과거의 역사는 그만두더라도, 현재 자본가 계급의 전횡은 어떠한가? (중략) 우리가 어쩔 도리가 없다고 상심한다면 유럽의 대다수 사람들은 앉아서 죽음을 기다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중략) 현재의 인심이 이전보다 타락했다는 것도 나는 인정할 수 없다. 예전에 죄악이 없던 적이 있었는가? 어떤 것은 관념의 차이로 인해 죄악으로 인식되지 않았고, 또 어떤 것은 사회여론이 무관심하여 죄악을 발견하지 못했던 것일 뿐이다. (중략) 사실 어제나 오늘이나 같은 죄악이지만, 폭로하고 깨달았는지의 여부가 달랐던 것 뿐이다. 그러나 폭로하고 깨달았다는 것은 일종의 진보이다. 왜 그런가? 그것은 국민 자각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고인의 말에 "병을 아는 것이 약이다"라는 말이 있다. 이 "안다"는 데서 치료의 방법이 생기는 게 아니겠는가? 현재 유럽인들은 날마다 세계종말이나 문명파산을 외치고 있는데, 이 말이 타당한지 여부를 떠나 이러한 위기감은 각성의 증거라고 할 수 있다. 한 사람에게 있어 제일 두려운 일은 현 상태에 만족하는 것이다."

p.76 [자기비하 하지 마라]
"폐쇄적인 낡은 세다가 서양학술이 사실 중국 고유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정말 우스운 일이다. 하지만 서학에 심취하여 중국의 모든 것이 마치 몇천년 동안 야만적인 생활을 하여 조금도 가치가 없는 것처럼 여기는 것은 더더욱 우스운 일이다. 모든 사상은 항상 자신의 시대를 배경으로 삼는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배워야할 것은 사상의 근본정신이지 그 파생조건이 아니다. 가령 공자는 많은 귀족윤리를 주장하여 오늘날 적용하기가 매우 힘들지만, 이 떄문에 공자를 비난할 수 없다. 플라톤은 노예제도를 보존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 때문에 플라톤의 사상을 말살할 수 없다. 이 점을 이해한다면 중국의 옛 학문을 연구함에 있어서 공정한 판단을 내려 오류를 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매우 중요한 일이 있는데, 우리 문화를 발휘하려면 유럽문화를 통해 발전경로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유럽의 연구방법이 확실히 우리보다 정밀하기 때문이다. '일을 잘 하려거든 먼저 도구를 잘 이용해야 한다'는 말과 같다. 나는 청년들에게 다음과 같이 희망한다. 첫째, 모든 사람이 우리 문화를 존중하고 애호하는 마음을 지녀야 한다. 둘째, 서양의 학문연구방법으로 서양을 연구하여 그 진수를 깨달아야 한다. 셋째, 우리 문화를 종합하고 타국의 문화로 보완한 후 화합작용을 일으켜 새로운 문화체계를 형성해야 한다. 넷째, 새로운 체계를 외부로 확장하여 인류 전체가 그의 좋은 점을 얻게 해야 한다. 

p. 107-108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대한 감상]
"사원이 높이 솟은 쌍탑이 고딕양식의 국회의사당과 인접해 있고, 장엄하고 소박한 기상이 경건함을 자아내는데 이곳이 바로 웨스트민스터 사원이다. 이 사원의 역사를 간략히 살펴보면 11세기 참회왕 에드워드가 창건하였고, 13세기 말 헨리 3세가 사원을 대거 재건축했으며, 지금까지 천년 동안 누대에 걸쳐 중축하고 있다. 서쪽 탑이 문루는 20년 전에 신축한 것이다. 가장 신기한 것은 각 시대의 건축양식이 한 곳에 융합되어 거의 천년 건축술을 전시하는 박물관이 되었다는 점이다. 사람으로 비유하면 당나라의 감투를 쓰고, 송나라의 비단 옷을 입고, 명나라의 홀을 들고, 청나라 용 문양 조끼를 걸치고, 서양 가죽신발을 신는 것과 같은데, 모습이 아주 우스꽝스럽고 보기 흉하지가 않을까? 하지만 사원은 조금도 부조화되지 않았고 장엄한 자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서 매우 흥미로웠다. (중략) 이 사원 내부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1376년에 짓기 시작하여 1582년에 완성되었는데, 그동안 한 세기 반이라는 오랜 시간이 경과하였다. 생각해보면, 이는 설계도를 그릴 때 마음대로 심은 삼나무가 장성하여 기둥으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도의 오랜 시간이다. 영국인들이 근면 성실하게 원래의 계획을 따르며, 백여년이 지나도록 추호도 흔들리거나 나태하지 않고 끝내 이를 완성시켰던 것이다. 아! 이 일이 사소하기는 하지만 그들의 위대한 정신을 설명해주고 있다. 우리 중국인에게 물어본다면, 백년 후를 내다보며 완성하려 한 집이 있는가? 만약 어떤 사람이 이렇게 집을 지으려 한다면, 무엇보다도 자신이 완성된 집을 보겠다는 생각을 해서는 안 되며, 더더욱 그 집에서 자신이 살겠다는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이런 사람은 작은 성과에 만족하지 않고 원대한 계획을 추구하며, 이것이 일생일대에 완성할 수 없는 일임을 잘 알면서도 그 이상의 기초를 세워 다른 사람에게 전해주려고 한다. (중략) 나는 유럽문명의 기원이 이점에서 비롯되며, 인류사회가 진화할 수 있는 이유도 이 점에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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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클러스터
20/05/26 11:59
수정 아이콘
"현재의 인심이 이전보다 타락했다는 것도 나는 인정할 수 없다. 예전에 죄악이 없던 적이 있었는가? 어떤 것은 관념의 차이로 인해 죄악으로 인식되지 않았고, 또 어떤 것은 사회여론이 무관심하여 죄악을 발견하지 못했던 것일 뿐이다."
이건 정말 시대를 관통하는 발언이라고 봅니다. 옛날 사람들의 도덕성이 더 좋았다는 것은 거진 다 망각과 과거 미화라고 생각해요.
Ms.Hudson
20/05/26 12:22
수정 아이콘
국뽕 살짝 묻혀서 보면 유럽문화를 통해 발전한건 우리나라가 잘 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중국은 문혁 그말싫...)

한국에서는 이런 관점을 갖고 있었던 사람이 없는지 궁금하네요.
대학생이잘못하면
20/05/26 14:33
수정 아이콘
[우리의 애국은 국가만을 알고 개인을 몰라서는 안 되며, 또 국가만을 알고 세계를 몰라서는 안 된다.]

여러모로 소름돋는 말이네요.
Jedi Woon
20/05/26 15:28
수정 아이콘
백년 전에 갖던 문제의식이 백년 뒤 지금과 크게 다른게 없는것을 보면, 기술진보 외에 인류의 고민과 문제는 늘 한결같았던 것 같네요
FRONTIER SETTER
20/05/26 15:41
수정 아이콘
와 진짜 감탄 또 감탄하면서 읽게 되네요. 훌륭한 선인의 좋은 사상을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브리니
20/05/26 17:28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중간중간 오타에서 직접 타이핑하시는 모습이 떠올라 더 감사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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