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시판
:: 이전 게시판
|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18/05/01 15:51
크크 쿨타임 돌아왔군요
진짜 마속은 답이 없습니다. 1차 북벌은 촉 최고의 기회였는데.. 물론 최종적으로 장안을 점거한다고 해서 촉이 딱히 유리해진다고 보기는 힘들겠지만 적어도 치명적인 타격을 먹이고 원래 내부 결속력이 상대적으로 약한(반란이 자주 일어나는) 위의 특성상 판도가 상당히 변할 수 있었음은 부정할 수가 없었다고 보는데... 결국 마속을 중용한 제갈량에도 책임은 있지만, 솔직히 절대적인 장수의 부족에 시달리고 있던 촉이 단순히 길목만 막으면 되는 가정에 설마 마속이 그런 사건을 터트릴 줄 알았겠습니까 유비의 유언이 크게 써서는 안된다는 말이었지만 사실 뭐 마속에게 맡긴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이었다고 크크
18/05/01 16:16
마지막 줄이 핵심입니다. 뭐가 힘든 일이라고......
거기 있는 성에 들어가서 상대만 막으라고! 저글링 오니까 벙커에 들어가라고! 어설프게 무빙샷 좀 시도하지 말라고!!!!!!
18/05/01 16:49
이 마속 하나때문에 삼국지 후반부의 판세가 완전히 바뀌어버렸다고 보는지라 크크
위의 전력이 넘사벽이긴 한데 원래 가장 무서운건 외부보다 내부의 자중지란이죠 당시에, 특히 위나라는 내부적으로 반란이 엄청 자주 일어난 나라였고 당시 제갈량이 장안까지 먹었으면 진짜 위는 위험했죠. 외부보다 내부에서요 크크 마속의 잘못된 한번의 판단은 역사를 바꿀 정도로 엄청났다고 봅니다
18/05/01 15:52
유비의 사람 보는 안목이 얼마나 뛰어났는지를 알수 있음과 동시에
그 마속이라도 기용해야할 정도로 이릉으로 인재들 다 뿌리채 뽑아버린 유비의 삽질도 알 수 있는(..)
18/05/01 15:52
마속이 가정을 틀어막으면, 위연 대 곽회라는.... 마치 추신수와 슈어져 급의 맞대결이 펼쳐졌을 거라는 점에서 더더욱 아쉬울 수 밖에요.
18/05/01 15:52
가정맹어호라
가정은 호랑이보다 무섭고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에 들어가야 하기에 산에 올라간 겁니다. 내가 쓰고도 뭔 소린지 모르겠네 -_-
18/05/01 15:55
딴소리를 하자면 옹양주 겸병은 차선책이지요.
언제나 최선책은 형주를 먹고 북진하는 것입니다. 손제리 개객기. 결국 적벽, 형주공격, 이릉전투라는 위, 오, 촉의 한번씩의 삽질 때문에 삼국지라는 이름이 남아 있을 수 있었겠지만요.
18/05/01 15:55
근데 개인적으로 저부분에서 항상 개인적으로 아쉬웠던건
그냥 마속말고 왕평을 대장으로 보냈으면 좋지 않았을까.... 왕평이 항장이고 지위 같은게 문제였겠지만 나중에 제갈량 사후 왕평이 세훈 공을 생각하면 특히 그런 생각이 드네요.
18/05/01 16:06
하긴 유비는 위연을 한중 태수로 임명하는 등 과감한 인재 기용이 돋보였던 군주였는데
상대적으로 제갈량은 그런 모습에선 부족하기도 합니다. 모든 것을 순리대로 행했던거 같아요.
18/05/01 16:12
본인이 곧 세력의 존재가치나 다를 바 없는 유비와, 죽은 유비의 고명과 그 자식의 신뢰에 따라 권한을 얻은 제갈량의 입장은 다를 수밖에 없겠죠. 그래도 비위나 강유 등의 발탁을 보면 제갈량도 요놈 괜찮다 싶은 순간 잔뜩 힘을 실어 주곤 했습니다.
18/05/01 16:44
몇년이 지났건 투항을 했다는 항장이라는 꼬리표는 어쩔 수 없습니다.
공적만으로도 넘사벽이었던 장료가 비슷한 위치의 위의 장군들과 비교하면 식읍은 쥐꼬리만했죠.
18/05/01 18:12
심지어 그건 본인이 한신을 알아본 게 아니라, '난 모르겠지만 소하 네가 그렇게 말하니 나도 걔를 믿겠다'는 것에 가까워서 더 무시무시하죠.
18/05/01 15:55
당시 39세면 나이나 관록이야 충분하고 본인이 기책을 써서 대박을 터트려 떠보려는 고집이였겠죠.
저 패배로 사실상 삼국지 향후전개는 결론이 났다고 생각합니다.
18/05/01 16:11
그런데 정말 장난스럽게 까는것 말고 진짜 무슨이유일지 궁금합니다...
제가 알기론 저게 정사에 있는 일이고 읍참마속도 있는일이구요, 마속과 제갈량이 어느정도 같이 계책을 짠걸로 알고 있는데요..그런 마속이 저런행동을 했다는것이 단순히 주목받고 싶어서 인가요?? 아니연 본인 판단에 예상보다 많은 장합병력이라 산으로 올라가 시간을 끈다거나 장합병력의 허리를 끊는다거나 무언가 전략적인 판단을 한것은 아닐런지요?? 그리고 유비의 유언도 정사에 있는말인지 궁금합니다..제갈량이랑 이엄이 탁고대신으로 유언을 받았다는데 많고 많은 신하중에 딱 마속만 중하게 쓰지말라고하는데 정말인가요..??
18/05/01 16:22
제갈량전은 '마속이 제갈량의 명령을 듣지 않고' 부적절하게 움직였다고 기술하고 있으며, 왕평전은 왕평이 올바른 간언을 했지만 마속이 듣지 않았다고 합니다. 마속은 그냥 정신이 회까닥 나갔던 게 틀림없습니다. 상대 병력이 많으면 더더욱 성에 틀어박혀야지, 갑자기 산에 올라가면 안 됩니다.
유비의 마속에 대한 평가는 촉서 마량전에 기술되어 있습니다. 유언이라기보다는 조언으로 보시는 게 맞을 듯합니다.
18/05/01 16:28
마속전에 나옵니다.
선주가 임종 때에 제갈량에 이르길 “마속은 말이 그 실제를 과장하니, 크게 기용할 수 없소. 그대가 이를 살펴보시오.” 라 했다. 제갈량은 오히려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여, 마속을 참군(參軍)으로 삼고, 매양 불러서 얘기하기를 밤낮으로 했다.
18/05/01 16:30
마속전은 없고, 원래 마량전에 마속의 이야기가 함께 기술되어 있습니다. 마속전은 그냥 파성넷에서 편의로 만들어 놓은 거라...
https://ctext.org/text.pl?node=603623&if=gb 링크에서 다섯 번째 문단부터가 마량전에 등장하는 마속의 이야기입니다.
18/05/01 16:31
아, 그렇군요. 다른 후한기록에도 마속전에 같이 기술되어있길래 저도 옮기면서 확인했더니 동류마진동여 이런식으로 마씨를 같이 서술했었군요.
18/05/02 14:04
잘 몰라서 그러는데 혹시 마속이 평소에 공을 세울 기회가 많지 않았나요? 모처럼 큰 공을 세우겠답시고 밀려오는 대군을 막아내는게 아니라 멋지게 개발살 내버리겠다는 의도였다면 백보 천보 양보해서 이해는 해줄 수 있겠는데요
18/05/01 16:22
일단은 마속의 직책은 참군입니다. 현대말로 치자면 참모죠.
즉 제갈량의 북벌에서 제갈량과 마속은 같이 머리를 맞대고 전략 구상을 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따라서 제갈량의 명을 받고 가정으로 이동할 당시의 마속은 제갈량과의 전략을 담고 들어갔었겠죠. 여기서부터 마속의 돌발행동이 나오는데... 사실 이게 유일하지 않나 싶습니다. "장합을 내 손으로 때려잡고 싶었다." 39살. 한창의 나이. 거기다가 친한 상관인 제갈량의 존재. 아마도 마속은 제갈량의 후계자에 가장 가까운 존재였을거고 그 쯤에서는 뭔가 보여주고 싶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마속의 참군은 대단하다면 대단하지만, 또 별거 아니라면 별거아닌 직책이거든요. 마속 본인은 실전을 한 적도 없구요. 한마디로 말해서 제갈량의 후계자가 되고 싶어서 쉽게 보이는 군공을 세우기 위한 욕심이 아니었나하고 저는 생각해요. 당연히 유비의 유언은 탁고대신만 들었으니까 다른 사람이 알 수 없는게 맞지만, 제갈량이 마속을 참하면서 본인이 직접 "선황제가 그렇게 말했다" 라고 언급했으니까, 제갈량이 명분을 위해서 거짓말한 것이 아니라면 사실일 겁니다. 이 부분은 정사 마속전에 있습니다.
18/05/01 16:43
혹시 병사의 질이나 숫자가 부족한 것은 아니었을지요? 저도 PGR의 역사 능력자 분들이 올려주시는 삼국지 관련글은 모두 재밌게 봐서, 마속의 문제 큰 것은 이해가 됩니다만,
연의 기준으로도 병력이 3만인가 했던 것 같은데, 위 정사기준 5만이라면 장합과의 병력차는 분명히 더 컸을 것 같은데, 아무리 수성전이라 해도 위군의 구원병으로 명장 장합이 투입된 군대에게 이길 수 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양평관이나 가맹관, 동관 같은 요새들도 장수의 차이에 따라 뚫리기도 하는 걸 생각하면, 그리고 마속의 기재가 부족한 걸 상수로 놓고보면, 마속이 미치지 않고 길목을 틀어막았어도 어렵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살짝 듭니다!
18/05/01 16:47
https://pgr21.net/?b=10&n=324593
가정의 위치를 보면 알겠지만 이렇게 완벽한 길목을 막지 못한다는 건 상상이 잘 안 됩니다. 전술에 밝은 왕평이 말릴 정도였으면, 제갈량이 짠 그림이 훨씬 더 정확했을 가능성이 높죠. 실제 마속보다 훨씬 더 힘든 임무를 부여받았던 조운은 조진을 상대로 굉장히 잘 버텼거든요. 참고로 당시 위군은 조진이 본대, 장합이 별동대에 가까웠습니다.
18/05/01 16:56
조명이 안 되어서 그렇지, 조운은 조진을 아주 제대로 끈덕지게 물고 늘어졌죠. 지형의 이점을 활용해서 다수의 적을 상대로 충분한 시간을 벌었고요. 반면 마속은...... 후.
18/05/01 17:22
링크 주신 글도 전에 읽은 적이 있었고, 조진이 본대 장합별동대라는 내용은 본문에서도 글곰님이 짚어주셔서 인지하고 있습니다.
말씀하신 의미는 장합이 별동대이니, 연의에서보다 병력이 많지 않았을 것이다, 라는 말씀이실지요? 아래 조운의 예를 들어주신 것처럼, 장수의 역량차이가 더 크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댓글을 남겼습니다. 너무 산에 올라서 졌어!! 산만 안 올랐으면 개나소나 막았는데! 라는 쪽으로 밈화되어가는 느낌도 있어서요.
18/05/01 18:01
산에 올라가지 않고 시킨대로 막았어도 마속의 능력 역량에 의심이 가니 내려와서 싸웠어도 졌을 수도 있지 않느냐 라는 의문이신 것 같은데,
아무도 시키지 않고, 심지어 왕평도 말린 등산을 강행해서 목말라 자멸하게 한 실수가 너무 커서 같습니다. 식수도 못 구하는 곳에 올라가서 멀쩡한 부대를 이삭줍기하듯 쉽게 처부수게 만든 대실수니까요. 내려가서 싸웠으면 저렇게 허무하게 패배하진 않았겠죠. (그런데 등산 같은 바보짓을 할 정도의 장수 재능이니 내려와서 싸웠어도 상상 이상의 희한한 뻘짓으로 패배했을 것 같다는 생각도 조금 들긴 합니다. 그런데 그건 일어나지 않았으니 알 수 없는 일이고, 올라가서 쉽게 자멸한 실수가 너무 명백하거든요.)
18/05/01 18:09
은영전에 보면 서로가 대치한 상황에서, 주인공이 상대 함대의 사선 앞을 유유히 가로지르자 상대가 '깜짝 놀라서' 아무 반응도 하지 못하여 결국 주인공이 승리하게 되는 어처구니없는 에피소드가 있습지요. 마속이라면 정말로 그런 짓을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18/05/01 18:49
답변들 감사합니다.
궁금했던포인트가 그건데 역시 일어나지 않은 일이라, 한쪽으로 얘기가 쏠리는게 맞는것 같습니다! 내려왔었어도 지긴 졌어도, 이만큼 if 떡밥은 아니었을테니까요...!
18/05/01 19:21
가정에 있었던 성의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원래 수비측이 유리한 법이고, 당시 공성전의 양상을 보면 성 하나 점령하는 데 몇 달이 걸리는 건 예사입니다. 물론 가정성이 큰 성은 아니었겠죠. 하지만 조그만 성일지라도 방어에는 큰 도움이 되며, 심지어 가정은 공간이 협소하고 길이 험하여 공성병기를 가져오기도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장합은 한가로이 공성전이나 하고 있을 처지가 못 되었습니다. 당장 농서 전체가 위태로웠거든요. 더군다나 제갈량의 병력규모를 생각해 보았을 때 마속에게 쥐여준 병력이 장합에 비해 턱없이 적은 수준은 아니었을 겁니다.
18/05/01 22:08
왕평이 제갈량 명령이라고 우겨서 남긴 1천명 병사들로도 장합을 견제하면서 더이상 추격 못하게 막고 무사히 퇴각할 정도였으니 병사들의 수준보다는 수장의 능력이 더 큰 것 같아요.
물론 이후 활약으로 보면 왕평이 관우 장비에 버금갈 정도로 뛰어난 무장이긴 하지만 장합군과의 병력 차이에도 불구하고 막을 정도면 마속 혼자 말아 먹었다고 밖에는...
18/05/01 16:44
삼국지 전체에서 제갈량의 1차 북벌만큼 계획적으로 잘 짜여진 전략은 거의 없다 싶을 정도로 완벽한 전략이었죠.
조조도 유비도 대부분의 전략적 행동에서 실제 기책의 뛰어남도 있지만 운에 의한 성공에 많이 의존했습니다. 예를들어 이렇게 공격하면 상대가 이런 인물이고 내부적으로 이러니 분명 문제가 생길 거야.. 이런 식으로요. 그에반에 제갈량의 1차북벌은 운의 요소를 최대한 빼버리고 전략적 치밀함으로 설계하여 실패할 확률이 진정으로 잘 보이지 않습니다. 삼국지 전체에서 가장 완벽한 전략을 이렇게 완벽하게 무너뜨린 마속의 대단함은 알면 알 수록 놀라울 수 밖에 없습니다.
18/05/01 16:46
삼국지게임할때마다 마속이랑 강유를 제갈량 사후 주축인재로 쓰기는 하는데 참 거시기합니다. 실제역사에서 마속이 가정을 잘 방어하고 옹양주겸병이 성공했을경우 마속이랑 강유의 관계가 어떻게 되었을지도 궁금하고요. (제갈량이 밀어주는 촉나라의 차세대 원투펀치로서 사이좋게 지냈을지, 양의랑 위연처럼 으르렁 거렸을지...)
18/05/01 16:55
제갈량이 181년생, 마속이 190년생, 강유가 202년생입니다. 제갈량과 마속의 나이 차보다 마속과 강유의 나이 차가 더 큽니다. 아예 체급이 달랐겠지요.
그리고 역할도 달랐을 겁니다. 강유는 항복하고 2년 있다가 정서장군이 되거든요. 야전군 지휘관인 셈이죠. 마속은 아마도 참모 역할을 계속했을 것 같고요.
18/05/01 22:15
마속이 실책 안 했어도 장완, 비의 같은 뛰어난 문무겸장의 재상급 인재들이 있어서 제갈량의 뒤를 잇지는 못했을 것 같아요.
특히 비의는 오직 혼자서만 강유를 달래 가면서 촉을 이끌고 있었으니 제갈량이 아무리 사람 보는 눈이 없어도 능력과 인격적으로 완벽한 저 둘을 놔두고 마속에게 후사를 부탁했을 것 같진 않네요. 이미 북벌 때 뒤를 맡긴 게 이엄과 장완이기도 했고요.
18/05/01 16:49
참 납득하기 힘든 부분입니다
심지어 화용도에서 관우가 조조를 놔준다는것 까지 예측하는 그렇게 똑똑한 제갈량이 사람을 잘못 봤다는 것도 이해하기 힘들고 나름대로 제갈량 옆에 붙어서 당대에는 뛰어난 지성이였을 마속이 그런 초보적인 전술적 실수를 저지르는 것도 이해하기 힘들고 그냥 뭔가 퍼즐의 나사가 빠져버린거 같은 서사라 저 이야기속에는 드러나지 못한 역사의 뒷이야기가 반드시 있지 않을까 싶은 상상을 해봅니다
18/05/01 16:56
해놓은 뻘짓만 따지면 조괄이 더 크지만.. 그래도 진나라의 계략 + 조 효성왕의 팔랑귀 + 방어 일색의 전략을 뒤집어야하는 조괄의 입장 등을 정상참작할 여지가 있는데 마레기놈의 뻘짓은 쉴드가 불가능하죠
18/05/01 16:57
제갈량이 전략적인 부분은 어느정도 과장되었다고 보지만 이 1차 북벌은 진짜 최고의 전략이라고 생각하는데 사람을 잘못썼네. 왕평이었으면 막고도 남음이었겠지만...
18/05/01 17:01
사실 이 마속의 그냥 가만히 있어도 성공하는 상황에서의 실수 하나로 제갈량 군재적인 측면이 많이 깎여내려가는 면도 있죠
1차 북벌로 장안까지 먹었으면 제갈량 군재 평가 더 올랐을듯.. 1차 북벌 제갈량은 진짜 완벽했죠
18/05/01 17:01
형주에서 맹달 유봉 미축 사인 중 3명만이라도 제 몫을 했다면 이릉도 없었을거고, 제갈량도 10년은 더 살지 않았을지
양번만 어떻게 잘 틀어쥐었으면 진짜 조위도 업으로 강제천도하지 않았을까요?
18/05/01 17:04
불쌍한 미축 까지 마시지요. 그렇잖아도 동생놈이 사고쳐서 서러운데... ㅠㅠ
여튼 맹달 유봉 미방 사인 중 그나마 사인이 제일 사람 같은 놈이고, 유봉도 조금 봐줄 만한 점은 있고, 맹달은 나쁜 놈이고, 미방은 아예 할 말도 없죠.
18/05/01 22:25
매우 아쉬운 상황이죠. 미방이 최고 나쁜놈...
사실 미방이 오와 내통한 게 먼저고 사인은 오군을 방어하다가 미방의 내통 소식을 듣고 격파당한 거라 참작의 여지가 있어요. 저는 더 아쉬운게 방통의 전사인데, 방통이 어이없게 죽지만 않았다면 아마 형주에서 관-방 라인으로 양양먹고 형주 방어하고 그랬을 것 같아요. 왜 관우 외에 아무도 안 두고 다 데리고 입촉한 건지...
18/05/01 17:15
아, 그리고 옹양주가 왜 중요하냐면
저 지역이 이민족들이 중국 내지로 들어와 살던 주요지역이였는데 그들은 당시 1류 용병으로 쓰였습니다. 그리고 실크로드의 중국 시작점이였죠. 따라서 경제적 이득도 막대합니다. 1차북벌이 성공했다면 진짜 제갈량이라면 끓일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고 봅니다. 물론 전 제갈빠입니다(...)
18/05/01 17:32
마속요. 솔까 유선이 말아먹은 건 얼마 되지도 않습니다. 촉한은 조선시대 초기 정도전 정도는 가볍게 발라먹을 정도로 극도의 재상중심국가였거든요. 유선은 다만 한의 혈통을 이은 명분의 상징에 불과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습니다. 잘한다 못한다, 혹은 능력있다 없다를 떠나서 그런 게 표시날 일 자체를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18/05/01 17:55
유선은 사실 놀고 먹는거박에 안햇다고 봐아... 제갈량 생전엔 북벌 부터 남만 내치 죄다 햇고 사후 오래지나지않아 망햇으니까요
18/05/01 21:11
촉한 건국 221년, 제갈량 사망 234년, 촉한 멸망 263년. 제갈량 사후 30년은 더 지속된 국가인데 잘 못 알고 계신거 같습니다.
18/05/01 22:30
유비 사후 제갈량이 11년, 장완이 12년, 비의가 7년간 내정과 군정을 모두 이끌었고 그 이후 10년간이 유선의 직접 통치예요.
촉한은 비의 죽고 몰락의 길을 걸었어도 망할때까지 10년이나 걸린 셈이고 그마저 성도 방위만 제대로 했다면 더 오래갈뻔할 정도로 나름체계가 잘 잡힌 나라였어요.
18/05/01 22:36
그냥 쭉 놀고 먹었으면 됐는데 재상 다죽고 황호 이뻐해서 힘실어주고 오나라 설후가 말사러 왔다가 신하들 공무원 자리유지에 급급 백성들 굶고 개판이라고 손휴에게 보고하는 모습이 있고 나중에 종회가 쳐들어오고 강유가 급하니까 원군보내라고 하는데 황호가 무당쇼보여주면서 설레발임 하니까 응 안보내줘 곽익이 제가 달려가겠슴돠 하니까 안전함 오지마 그리고 항복 역시 사람은 하던 거 해야하는 것 같습니다.
18/05/01 17:59
유선은 아이를 많이 낳고, 권력을 오래 유지했다는 거만으로도 전제군주의 기본 의무는 다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마속에 한 표 던집니다.
18/05/01 17:23
가장 중요한 능력치는 사람보는 눈 '안목'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무리 혼자서 일 잘해도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죠. 그런면에서 유방이나 유비나 이런 케릭터가 사실 별 볼일 없어보이지만 가장 뛰어난 군주 같습니다.
18/05/01 17:36
저렇게 얼토당토 않은 명령이 나온 건 아마 마속이 부하들에게 인정받지 못한 상관이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백면서생, 입전투, 책상물림 등으로 불리며 실전경험 없다고 은근히 무시당하는 분위기. 그래서 뻔한 작전보다는 누구라도 반대할 만한 결정을 밀어부치고 그걸 성공시켰을 때의 임팩트로 자신의 지위와 존재감을 인식시킬려고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내심 이런 작전을 써도 이 전투에서 지지않을 자만감도 있었을 테구요.
18/05/01 19:25
나름 설득력이 있는 의견 같습니다. 어쩌면 군공과 명성이 너무나 필요했는지도 모르지요.
뭐 결과적으로 볼 때 명성은 생겼습니다. 이천 년이 지나도 영원토록 기억될 이름자가 역사에 남아버렸네요.
18/05/01 17:48
저게 아니엇다면 역사가 달라졋을거라고 봅니다. 옹양주까지 촉이 먹엇다면 제갈량 혼자 남만부터 내치까지 하니라 과로하지않앗을거고 최소 10년은 더살지 않앗지싶습니다. 그리고 저 위쪽이 구 마초 아빠의 세력권 아니엇나요? 그것도 영향력 남아잇엇을지도 모르고 사마의가 제갈량보다 뛰어나지 않앗으니 먹은걸 뺏기진 않앗을거라보고 저구도면 장안이 풍전등화죠. 아 망할놈의 마속
18/05/01 18:04
마속이 만약 산에 오르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옹양주를 통합한 제갈량은 가정을 틀어막고 후방에서 기병대를 양성하고
공략에 실패한 조진은 병력을 물려서 장안으로 회군하여 그 동안 물량을 모은 제갈량의 장안 공성전이 한 번쯤은 나오지 않았을까요? 그 정도의 기세라면 유씨왕조가 3대까지는 갔을 것 같은데 아쉽네요
18/05/01 19:15
독형예이주제군사로 완에 있었으니 아무 관계 없겠지요.
물론 북벌 반 년 전에 맹달의 반란시도가 있었고 사마의가 진압했으니만큼 그 일을 중심으로 그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18/05/01 18:20
둘다 교과서에만 충실했다는 평을 받기도 하고, 말아먹은건 조괄이 더 크지만말입니다, 조괄보다 더한놈이죠....조나라가 장평에서 역으로 진군을 몰살시키고 상당땅을 먹었다고 전국통일을 한다거나 하는 시나리오는 딱히 그려지지 않으니까요.....
18/05/01 18:55
고등학교 졸업자 중에서도 가려 뽑아서 4년동안 전략 작전 전술 지휘 전문적으로 교육받고 이후로도 수년에서 십수년 가량 그 분야를 갈고 닦아온 군사전문가라는 작자들이 KCTC에서 보여주는 추태만 생각해도...
마속이 왜 그랬는지는 미스테리지만, 마속같은 사람이 존재할 수 있다는 건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18/05/01 19:00
사실은 가정의 산 위에 마왕이 부활을 기다리고 있고 제갈량의 북벌은 그 재단을 파괴하기 위한 위장 전술이고 마속은 제갈량에게 비밀리에 명령을 빋고 산에 올라가 재단을 파괴한 후 패장인척 하고 사형 당함... 차라리 이게 더 설득력이 있을거 같은 사건입니다.
18/05/01 19:08
진짜 신기한게, 보통 아무리 결과론적으로 막장인 전략이라도 자세히 살펴보면 그래도 '최소한 그나마라도 이걸 노린 것 같긴 하네' 라는 생각이 드는데 저 등산은 진짜 모르겠어요 크크크
18/05/01 19:28
글 잘읽었습니다. 너무 재밌어요. 크크
제가 생각하는 마속의 전술은 이렇지 않았을까 싶네요. "적은 필시 먼길을 달려와 그 힘이 부족한데다가, 특히나 높은산에 주둔한 우리 군을 치기 위해 무거운 몸을 이끌고 산을 오르면 더욱 그 힘이 부칠거라생각하오. 우리는 그틈을 타 일순간에 산에서 달려 내려오며 지친 적들의 목을 쳐버리는 것이오. 그러면 주머니 속 구슬을 꺼내 듯, 손쉽게 그들의 목을 얻을 것이외다." 라고 말했지만, 현실은 산아래 관망타임~마!
18/05/01 20:04
길막은 참 중요한 거군요! 짜증스런 초창기 온라인 게임의 모티브가 제갈의 길막지시에 마속의 무빙이라니.마속님은 무능일지라도 매너유저임은 확실!
18/05/01 20:19
제갈량 밑에서 열심히 일했지만, 그래도 외형적으로 인정받는 업적을 세우려면 전장에서 사령관으로 출전해 자기 이름걸고 공적이 필요하기는 하잖아요.
그래서 제갈량이 겸사겸사 총애하는 마속에게 글쓴님 말씀대로 난이도는 별로 높지 않지만, 논공행상할때 엄청 남을만한 일을 일부러 주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근데 사람 심리가 뛰어난 상사 밑에서 일하다 보니 자기가 매우 능력이 엄청난 것으로 착각한 상태에서, 딱 공을 세울만큼의 각이 나오는 일이 왔겠다 싶어서 오버해서 보여주고 싶을때가 종종 있어요. 그런 관점에서 보면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만...당시 촉, 오나라의 상황이 위나라에 비해 여유가 없어서 한 번의 실수로도 모든 일을 그르칠 수 있다는 게 큰 문제였겠죠. 본인도 그걸 자각하고 있었어야 했는데 1차 북벌이 너무 상황이 좋았었나 봅니다. 크크
18/05/01 21:01
중국 역사에 자주 보이는 일들인데
호구조사의 멸실에 따른 것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중국 역사의 격동기를 보면 불과 30년~50년 가량의 세월에 인구가 1/10 또는 그보다 더 적게 줄어드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물론 많은 사람이 줄었겠지만 실제로 그 모든 경우에 인구가 1/10으로 줄었다고 보는 사람은 많지 않고 유랑민 등의 발생으로 인구통계에 안 잡힌 인구가 많았을거라고 추측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로도 통일왕조 탄생 후 30년(1세대~1.5세대) 내에 인구가 2배 이상 폭증하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18/05/01 21:10
황건의 난이 있기 이전 후한말 인구가 5천만명 정도로 추정되고 전란 이후 인구가 급감하였기에 촉 멸망 당시에는 인구가 훨씬 줄은 상태였습니다. 94만호는 촉 멸망때의 기록이죠.
어찌나 인구가 많이 줄었으면 조조가 훗날 자신의 고향인 패현을 찾아갔을때 하루종일 둘라봐도 아는 얼굴 하나 없어 한탄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18/05/01 21:46
뭐 대충 생각해보면. 장합에겐 시간이 없다. 한시라도 빨리 곽회와 합류해야 한다.
이런 장합의 상황을 알고도 막기만 하는 건 위군 주력을 깨부술 절호의 기회를 놓치는 것이다. 그러니 산위로 올라가 적을 끌어들여서 1. 장합이 우리를 치러 올라오면 - 지형의 우위를 이용해서 파죽지세로 깨버리자 2. 장합이 우리를 무시하고 지나가면 - 뒤를 쳐서 박살을 내자. 3. 장합이 우리를 포위하면 - 시간 끌면 끌수록 합류가 늦어지는만큼 마냥 포위는 못할테니 물러가는 걸 친다. 근데 물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을 안함....
18/05/01 22:06
전략적으로 단순 길막도 훌륭한 공적인데
거기에 만족못하고 전술적으로 자기 힘으로 승리 거둬보겠다고 교과서에 나온대로 높은 곳에 진을 쳤으나... 사지인줄 몰랐던거죠.
18/05/01 22:58
물 생각안하고 산에 올라간 바보.
다른 곳에서는 마속빠가 있어서 마속은 바보가 아니고 타당한 작전이었음. 물 소리는 져서 원인찾다가 나온거고 애초 적은 병력으로 많은 병력을 막으라고 해서 그런 거임! 제갈량이 마속 죽인 건 너무 한거임. 이러며 조괄도 재평가할 소리를 하던데 댓글들 보니 역시 이게 정상적인 반응이군요. 안심이 됩니다. 마속은 제갈량의 절도를 지키지 아니했다, 행동거지(舉措)가 번요(煩擾-번거롭고 어지러움, 혹은 요란스러움)했으며, 물을 버리고 산을 올라, 아래에 있는 성을 점거하지 않았다. 장합이 그 급도를 끊고 공격해 대파하니 (마속의) 병사들이 이산(離散-구성원이 헤어져 흩어짐)되었다. - 자치통감 71권
18/05/02 09:51
요즘 중화TV에서 방영하는 사마의2 최후의승자에서
이제 마침 마속이 가정에 가는 부분이 나오더군요 아마 오늘 그 부분 방영할거같은데 기대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