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에서 입영열차? 가 나오고 있습니다.
집시여인에 입영열차 안에서까지 연타로 들으니 괜시리 센치해져서 고속도로 휴게소에 차 세워두고 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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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년 1월 2일.
1사단 1연대 1대대 1중대 1소대로(나중에) 배치받게 되었다.
여자친구와 사실상의 이별을 하고 입대를 해서 그런지,
1월 7일이 기일인 친구의 납골당에 찾아갈 수 없어서인지,
매일매일 돈과 씨름하는 엄마와 중학생인 동생이 맘에 걸려서였는지..
두고 온 사회의 모든 것이 사무치게 그리웠고,
모든 것이 막연하게 그저 슬퍼서 힘든 것도 제대로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틈만 나면 노래를 불렀다.
잘 하지도 못하는 노래고, 매일같이 악을 쓰느라 목 상태도 맛이 갔지만, 아는 노래 중 가장 슬픈 노래들을 불렀다.
주로 토니 블랙스톤?의 언브뤡마이 하트와
강태공바리우스의 포에버를 불렀는데,
슬픔을 표출은 하되 그 슬픔이 직설적으로 누군가에게 전달되는건 피하고 싶어서였던 것 같다.
그렇게 내 캐릭터는 노래깎는 노인이 되어갔고..;
훈련소 기간에 설날이 포함되어서였는지 훈련병들 중 노래를 "잘" 하는 몇 명을 뽑아서 셀프 위문공연에 엉겁결에 포함되어버리게 되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이 아이는 커서 친구 결혼식에서 김경호 노래를 열심히 짖게 된다; 부르는게 아니라 짖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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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를 곡을 전하는 과정은 기억이 나지 않는데 어쨌든 "입영열차 안에서" 로 결정이 되었고,
2번. 그러니까 10여분에 걸친 맹훈련으로 합을 맞추고 그렇게 무대에 올라가게 되었다.
그 무대는 대충 이런 느낌이었는데..
아마 그 자리에 원곡자인 이민우가 있었다면 90미리 무반동포로 우리를 날려버렸지 싶다;;
무대 위의 우리는 모두 고스트 입영왕이 되어 이민우가 빙의된 기분이었으나
실상은 불협화음이 무엇인지, 군대 클라쓰가 무언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현장일 뿐이었..는데,
적어도 나는 그랬다
내 마음은 노래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로 많이 위로받았기에
그래서 난생 처음으로 내가 내고 싶은 소리가 아닌, 남에게 들려주는 소리를 내려고 했고,
되는데로 부르고 "야이 그래서 노래 안 들을거야?" 가 아닌,
이런 노래를 들을 흔치 않은 기회를 맞은 불쌍한 노랑 병아리들을 진심으로 위로해주고 싶었다.
내가 위로받은 것 처럼..
살면서 그런 마음으로 노래를 부른 유이한 경우로, 다른 한 번은 아이 돌잔치때 "그대 고운 내 사람" 인가 하는 노래를 불렀던게 전부다.
여튼..
전달이 잘 되었드 그렇지 않든,
위로받고, 누군가를 위로하려고 무언가를 함으로써 스스로 더 크게 위로받았던 경험이 내가 생각해도 너무 아름다운거다 이게..
그.. 미국에 이민간 필리핀 동포들을 위해서 디씨와 딴지에서 조리돌림을 당하면서도 묵묵히 노래를 불러주는 아시안프린스가 된거같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