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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5/12/26 17:05:09
Name 라거
Subject [일반] 존재하는 것은 무엇일까?

※ pgr에서 매일 눈팅만 하면서 재미있는 글도 읽고 유익한 글도 읽는 유저입니다. 특히, 자연과학에 관련한 글을 흥미롭게 읽고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저는 철학을 공부하고 있는데, 예전에는 그래도 드문드문 철학 관련한 글이 올라왔던 것 같은데, 요즘에는 그렇지 못한 것 같아서 아쉽기도하고, 또 제가 흥미로워하는 문제들을 같이 나누고 싶어서 이렇게 글쓰기를 시도해봅니다. 가볍게 읽어주시면 좋겠네요 :)





"오면서 누굴 지나쳤소?"
"누구도요."
"오, 그렇구만. 이 젊은 아가씨도 그를 봤다고 하오. 그러면 그 누구도는 물론 당신보다 느리겠구만!"
"최선을 다했습니다. 누구도가 저보다 빠르지는 않았으니까요!"
─ 루이스 캐롤(『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저자)



0. 들어가며


이 글에서 다루는 내용은 철학의 한 부분인 존재론(ontology)의 역사에 관한 것입니다. 철학의 분야들은 크게 존재론(또는 형이상학), 인식론, 윤리학 등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인식론이 "우리는 어떻게 세계를 인식하는가?"에 대한 탐구이고, 윤리학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관한 탐구라고 한다면, 존재론은 "존재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관한 탐구입니다. 또는 "세계의 일반적 구조에 대한 탐구"라고 하기도 하지요.


이런 물음은 우리가 살면서 한번쯤 깊게 숙고해볼 만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은 "존재론"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고대 그리스의 사상가들을 떠올리거나 ("관념적" 또는 "현학적"이라고 간주되는) 프랑스나 독일의 심오한 철학자들을 떠올리기 마련입니다. 물론 그것 역시도 철학 그리고 존재론의 일부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이 글에서는 플라톤에서 현대 존재론까지 이어지는 존재론의 역사를 스케치해보고, 그것이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짧은 글 안에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많은 분들에게 흥미롭게 읽혔으면 좋겠습니다.



1. 존재론의 시작, 플라톤


무려 2,000년 넘게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냐?(What is there?)"

돈 많고 시간 있고 머리 좋은 사람들이 달려들어도 쉽게 풀리지 않은 문제 중의 하나였습니다.

인류의 장구한 역사만큼이나 그 문제는 더 깊이 음미되었고, 나름대로의 답변들도 쌓여갔습니다.


이 문제를 처음 제기했던 것은 플라톤(Platon)이었습니다.

그가 생각하기에, 중요한 시대적 과업 중의 하나는 동시대의 궤변가들을 논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궤변가들은 '소피스테스'라고 불렸고, 그래서 그들을 논박하기 위해 저술한 플라톤의 책 제목이 되기도 했습니다.

거기에서 플라톤은 이렇게 주장하려고 합니다: "소피스테스 놈들이 하는 말은 전부 거짓말이다."

그렇지만 여기서 그는 다음과 같은 딜레마에 처합니다.


[딜레마]

거짓말은 (1) 존재하지 않는 것(비존재)에 대한 주장이거나 (2) 존재하는 것을 (실제와 다르게) 잘못 서술하는 것이다.

만일 (1)이라면, 소피스테스의 주장은 비존재에 대한 주장이다. 그렇지만 비존재에 대한 주장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거짓말은 불가능하다.

만일 (2)라면, 소피스테스의 주장은 존재와 유사한 것(유사물)에 대한 주장이다. 유사한 것은 비존재가 아니다. 비존재에 반대되는 것은 존재뿐이다. 그러므로 유사한 것도 존재다. 그러면 소피스테스의 주장도 결국 존재에 대한 주장이다. 따라서 거짓말은 불가능하다.


딜레마의 첫 번째 뿔은 분명해보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거짓말을 비존재에 대한 것이라고 인정한다면, 애초에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므로 그에 대한 주장도 불가능할 것입니다. 두 번째 뿔도 조금 의심스럽기는 하지만 반박하기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왜냐하면 두 번째 딜레마를 거부하기 위해서는 "존재 또는 비존재뿐이다"라는 대전제를 거부해야 할 것인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그걸 거부해버리면 더 큰 골칫거리들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플라톤은 이렇게 결론 내립니다: "비존재는 어떤 식으로든지 존재해야만 한다!"


이후 2,000년 동안 수많은 철학자와 철학도들을 갈아넣는(..철밀레?) 문제의 헬게이트가 열린 겁니다. 화이트헤드(Whitehead)가 "서양철학은 플라톤의 각주", 콰인(Quine)이 "플라톤의 수염" 운운하는 것은 이유가 있었던 겁니다. 오늘날에는 존재에 관한 그 물음을 중심으로 하는 철학의 분야를 존재론(ontology)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또는 형이상학(metaphysics)이라고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론 플라톤의 저 결론은 이상하게 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비존재면 비존재지, 어떤 식으로든 존재한다는 것은 무슨 궤변인가?



2. 팽창하는 존재론, 마이농


그렇다면 다른 사례를 한 번 들어볼까요. 빨간 장미와 빨간 스웨터와 빨간 사과만으로 이루어진 세계를 상상해봅시다. 거기에 존재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물론 장미와 스웨터 그리고 사과, 이 세 종류의 존재자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들은 빨갛다는 점에서 어떤 공통점을 가지지 않나요?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식의 문장을 만들 수 있을 겁니다: "장미와 스웨터와 사과가 공통적으로 가지는 어떤 성질이 있다."


물론입니다. 그리고 누구도 저 문장이 거짓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저것이 주장하는 바는 바로 그 성질, 다시 말해서 빨강임(redness)이라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 참이라는 것입니다. 단지 우리가 빨강임이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지, 그것은 존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 문장이 참이기 위해서는 장미와 스웨터 그리고 사과만으로는 불충분합니다. 빨강임이라는 어떤 성질이 또한 세계에 존재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죠.


이런 생각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19세기 후반의 철학자 마이농(Meinong)은 그 범위를 확장해나갑니다. 그에 따르면, 유니콘이나 피터팬 그리고 셜록 홈즈 같은 것들도 존재하는 것들입니다. 그것들은 우리가 흔히 허구적인 존재자들(fictional entities)이라고 여기는 것들이죠. 그런데, 마이농에 따르면? 그것도 어떤 식으로든지 있는 거랍니다. 비록 우리가 현실 세계에서 보고 듣고 만지는 그런 존재자들과는 다르게 존재하지만, 존재하기는 하는 거라고요.


왜냐고요? "유니콘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문장을 생각해봅시다. 이 문장은 유니콘의 존재를 긍정하는 사람이나 부정하는 사람이나 그것이 의미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유니콘의 존재를 부정하는 사람에게는 빼박캔트(!) 참인 문장일 테고요. 그렇지만 이 문장이 참이기 위해서는 그 문장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인 유니콘이 어떤 식으로든지 존재해야만 합니다. 결국에는 유니콘이 현실의 존재자들과는 다르지만 어떤 식으로든지 존재한다는 결론이 도출됩니다.


더불어 수들(numbers), 집합들(sets), 함수들(functions)과 같은 수학적 존재자들도 당연히 존재할 것입니다. 빨강임과 같은 속성들(properties)도 존재하는데, 우리가 필수적으로 사용하는 수학의 대상들이 있다는 건 그보다 이상한 일이 아닐테니까요. 그렇게 존재론은 부흥(?)합니다.



3. 오캄의 면도날? 러셀의 면도날!


20세기 초반의 철학작 러셀(Russell)이 보기에, 얘네들은 미*놈들이었습니다. 셜록 홈즈나 피터팬이 있다니요. 우리는 "있다(there is)", "존재한다(exist)"라는 말을 그렇게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지만 보셨다시피, 플라톤이나 마이농이 단지 "있다", "존재한다"는 말을 비유적인 의미에서 또는 수사학적인 의미에서 사용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합리적인 추론의 결과로 그러한 대상들이 없으면 안 된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니까요. 그리고 러셀도 그런 존재론자들의 철학적 동기(motivation)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러셀의 과업은 다음과 같은 조건들을 만족시키는 이론을 제시하는 것이었습니다:


(1) 불필요한 존재자들을 제거하자.

(2) 상식적인 존재론을 구성하자.

(3) 비존재 또는 허구적 존재에 관한 참된 주장들을 해명하자.


복잡한 논의는 제외하고, 그의 핵심적인 생각에 집중해봅시다. 그가 생각하기에, 이러한 팽창된 존재론의 원천은 언어(language)에 있었습니다. 위에서 논의한 것처럼, 전통적인 철학자들이 기대고 있는 생각은 비존재 또는 허구적인 존재자들에 관한 주장을 우리가 참으로 받아들이고 있고, 이것이 참이기 위해서는 그것들이 있어야 한다는 직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러셀은 이런 문장을 생각해봅니다.


"현재 프랑스의 그 왕은 대머리다."


2015년 현재 프랑스에는 왕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플라톤이나 마이농에 따르면 '현재 프랑스의 그 왕'은 어떤 식으로든지 존재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저 문장이 참이든 거짓이든 우리가 그 의미를 이해하고 있고, 따라서 주어 자리에 오는 그 존재자가 어떤 식으로든지 있어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러셀은 위 문장을 이렇게 이해해보자고 제안합니다.


"어떤 x가 있는데, x는 현재 프랑스의 왕이고, 대머리이며, 유일하다."

("현재 프랑스의 왕이고, 대머리이면서, 유일한 어떤 사람이 존재한다.")


이렇게 이해했을 때, 우리는 현재 프랑스의 그 왕을 어떤 식으로든지 존재한다고 상정할 필요가 없고, 또 위의 문장은 (세계에 그런 x가 없기 때문에) 거짓이라고 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사실 위의 문장이 분석되는 과정에는 20세기까지 지배하던 고전논리학을 대체한 프레게(Frege)의 새로운 논리학에 관한 논의가 필요할 텐데, 그것은 접어둡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셀의 분석에서 눈여겨 볼 것은 언어적인 어려움 때문에 이상한 유사문제들(pseudo-problems)이 생겨날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제 그런 이상한 문제들이 생기면, 문제 자체가 먼저 성립하는지 검토해봐야 하고, 그 검토는 언어에 대한 분석으로 가능하다는 겁니다.


쉽게 말하자면 이런 겁니다.


마이농: "이거 봐, 우리가 주장하는 많은 문장들이 유의미하려면 비존재자들도 어떤 식으로든지 존재해야돼."

러셀: "그래? 니가 원하는게 문장의 의미를 보존하는 거라면, 다른 존재자들을 상정하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그 의미를 해명해주지."



4. 존재론의 위기, 논리실증주의


이러한 러셀의 분석에 공감하고, 상식적인 존재론이라는 생각에 동의하는 일군의 철학자들은 사실 철학의 문제들 자체가 모두 언어분석으로 "해소"될 수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합리적인 의심으로 나아갑니다. 그 시작에는 (초기) 비트겐슈타인(Wittgenstein)이 있었고, 카르납(Carnap)과 같은 논리실증주의(logical positivism)가 바통을 이어받았죠.


이들이 보기에, "존재하는 것이 무엇이냐?"라는 물음은 철학자들이 다룰 것이 아니라, 자연과학자들이 다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철학자들이 할 일은 러셀 이전에 범람했던 헛소리(bull-shit)를 반성하고, 그 원인을 찾는 것이죠. 물론 그 원인은 러셀이 잘 보여준 것처럼, 언어에 대한 잘못된 사용에 있었던 것일 테죠. 그러므로 철학자들이 가장 먼저 착수해야 하는 일은 이것입니다: "유의미한 문장의 기준은 무엇이냐?"


"현재 프랑스의 그 왕은 대머리다"라는 문장의 진정한 의미, 참 뜻이 "현재 프랑스의 왕이고, 대머리이면서, 유일한 어떤 사람이 존재한다"와 같이 분명한 방식으로 분석되고, 이해될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는 세계의 많은 문장들을 분명하게 분석해야 합니다. 그리고 헛소리는 집어치워야 합니다.


논리실증주의의 선봉장이었던 카르납이 표적으로 삼았던 것은 독일의 하이데거(Heidegger)였습니다. 가령, 하이데거는 이런 문장을 유의미하게 사용합니다: "무(nothingness)는 존재자의 총체를 부정한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요? 하이데거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제대로 알고나 사용하는 걸까요? 카르납은 하이데거가 '무(nothingness)'라는 표현을 일종의 무언가를 실제로 지시하는 표현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그것이 그의 철학 전반에서 수많은 헛소리를 양산해내고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논리실증주의자들은 유의미한 문장이 무엇인지 밝혀내는 것이 매우 중요한 문제이며, 따라서 그들은 이러한 기준을 제안합니다.


[검증주의]

문장은 (1) 그 자체로 정의상 유의미한 것(분석적)이나 (2) 경험적으로 검증되는 것(종합적)만이 유의미하다.


즉, 우리의 언어적 표현은 무조건 분석적이거나 종합적어야만 합니다. 분석적인 문장은 정의상 참인 문장, 가령 "총각은 결혼하지 않은 남자다" 또는 정의상 거짓인 문장 "사람은 사람이 아니다"입니다. 그리고 종합적인 문장은 경험적으로 검증 가능한 문장, 가령 "서울시청 안에는 남자 화장실이 5개 있다"입니다. 하이데거가 주장하는 위와 같은 문장은 분석적인 문장도, 종합적인 문장도 아니므로 무의미한 문장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검증주의에서 제시한 그 기준은 분석적인 건가요, 아니면 종합적인 건가요? 둘 다 아니라면, 그 역시 무의미한 문장일 것이고, 그것도 아니라 하나의 제안이라고 한다면, 우리가 그것을 받아들여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요?



5. 콰인과 현대존재론


논리실증주의의 적자이면서 친부살해의 주인공인 미국의 철학자 콰인(Quine)은 전통 형이상학에 대한 분석의 칼날이 지나간 자리에 철학의 문제들을 (올바른 방식으로) 재건하고자 합니다. 그는 언어분석이 철학에서 중요하다는 점도 알고 있었고, 또한 자연과학의 성과에 대해서도 깊이 공감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논리실증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철학이 자연과학의 성과들을 수용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존재론의 기본적인 과업들은 자연과학의 임무와 오버랩되는 것이지요. 탁자나 마우스, 빌딩의 존재에 관해서 철학자들은 과학자들보다 모릅니다. 그런 점에서 철학자들은 과학자들에게 한 수 배워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학자들이 할 일이 완전히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자연과학에서는 다루지 않는 존재자들에 관해서 철학자들은 탐구해볼 만 합니다. 가령, 오늘날 자연과학에서 필수적으로 사용되는 수학의 대상들은 존재하는 걸까요, 아니면 단지 없는걸까요? 위에서 논의한 속성의 존재에 관해서도 아직 논의가 완전히 해소되어 버린 것은 아닙니다.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존재에 관해서는 자연과학이 잘 다루고 또 성과를 내고 있지만,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존재에 관해서는 어떤가요? 나아가 자연과학에서 상정되는 이론적인 존재자들(theoritical entities) 사이의 관계에 관해서 철학자들이 협업하여 탐구해볼 여지는 없는걸까요?


그 중에서 콰인은 대표적으로 수학적 존재자에 관해 생각해봅니다. 그가 보기에, 수학적 존재자들은 존재해야 고, 또 존재할 수밖에 없는데,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가 기대고 있는 최선의 과학이론에 필수불가결하기 때문입니다.


이때 "필수불가결(indispensible)"하다는 것은 단지 콰인의 임의적인 논의는 아닙니다. 자연과학에서 이미 이론적인 존재자들을 도입하고, 또 새로운 존재자들을 발견할 때에 암묵적으로 기대고 있었던 방법을 명시화하는 과정에서 도출되는 기준으로 고려될 수 있습니다. 그의 제안은 이런 것입니다. 직관적으로 말해서, 만일 더이상 다른 것으로 환원될 수 없고, 또 이론에 필수적인 존재자에 관해서 우리는 그것이 있음을 인정해야만 합니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우리가 존재한다고 인정하는 것들(존재론적으로 개입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명시화함으로써 제대로 된 존재론적 탐구를 계속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한편으로 콰인은 철학자들이 계속 탐구해야 하는 존재론적 과업들이 있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 마구잡이식으로 존재론을 해나가서는 안 됩니다. 러셀과 카르납 등이 주었던 교훈을 반영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우리가 "존재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답을 구하려는 모든 사람들이 지켜야만 하는 일종의 지침을 제공합니다. 그것이 저 유명한 "존재론적 개입 기준"이고, 대략적으로 말해서 그것은 존재하는 것에 대한 문장을 다른 문장으로 만족스럽게 바꿔쓰기(paraphrage)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 존재를 인정해야 한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러셀은 "현재 프랑스의 그 왕은 대머리다"라는 문장을 의미 보존하면서 다른 만족스러운 문장으로 바꿔쓰기 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현재 프랑스의 그 왕이라는 존재자를 인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반면에, 우리가 바꿔쓰기 하지 못하는 문장도 있을 겁니다. 가령, "1+1=2"라는 문장은 그것을 같은 의미를 가지는 다른 문장으로 어떻게 바꿔써야 할지 막막해보입니다. (물론 수학적인 존재자들까지도 부정하고 싶어하는 현대 철학자들은 그것을 일상적인 대상들로 구성된 문장으로 바꿔쓰고자 시도합니다.)


또, 현대 철학자인 치좀(Chisholm)은 이런 문장은 만족스럽게 바꿔쓰기하기 어렵다고 주장합니다.


"지금까지 예화되지 않은 많은 자동차의 모양들이 있다.(There are many shapes of automobiles that haven't been exemplified.)"

그리고 위에서 콰인이 수학적 존재자들이 자연과학에 또는 물리이론에 필수불가결하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했을 때, 그가 의도한 것도 바로 물리이론들의 진술들이 수학적 대상들 없이 바꿔쓰기 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한 것입니다. (흥미롭게도 이와 대조적으로 필드(Field)라는 철학자는 수학 없는 물리이론을 세워보려는 시도를 합니다. 그의 저서 제목 중 하나는 『Science without Numbers』입니다. 안타깝게도 철학계의 평가는 그가 뉴턴물리학에 관해서는 성공적일지 몰라도 확장된 현대 물리학에도 성공적일지는 의심스럽다는 것입니다.)



6. 나가며


많은 사람들은 "철학"이나 "존재론"과 같은 표현들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을 떠올리거나, 아니면 "인문학적 감수성"과 같은 개념들을 떠올립니다. 누군가는 "죽음"이나 "자유", "신"과 같은 묵직한 표현들로 그것들을 대신하기도 합니다. 물론 이것들이 철학의 주된 주제들 중 하나였고, 또 여전히 대답될 만한 흥미로운 것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학, 그리고 존재론이라는 분야에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종사하고 있고, 또 답을 구하기 위한 방식으로 활발하게 논의하고 있습니다. 이런 논의들이 많은 사람들에게도 흥미롭게 읽혀서 철학에 대한 인상도 바뀌었으면 하는 것이 제 바램이네요 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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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hmylove
15/12/26 17:09
수정 아이콘
콰인이 엄청 중요한 철학자인데, 의외로 콰인을 잘 모르는 분들이 많더군요. 잘 읽었습니다.
15/12/26 17:36
수정 아이콘
그러게요. 아무래도 분석철학 자체도 잘 알려져있지 않다보니까 콰인은 더더욱 잘 모르는 것 같더라고요. 고맙습니다.
15/12/26 17:13
수정 아이콘
플라톤이 처음일리가요.
市民 OUTIS
15/12/26 17:31
수정 아이콘
철알못이지만, 저도 서양철학에서는 파르메니데스가 더 시초라 생각합니다.
15/12/26 17:34
수정 아이콘
아, 사실 파르메니데스가 "최초"라는 타이틀에는 더 적합하겠네요! 제가 글을 쓰면서 염두에 뒀던 것은 존재론에 관해 최초로 통일적인 체계를 세웠던 철학자 정도로 플라톤을 고려했던 것 같습니다. 지적 감사합니다!
Jace Beleren
15/12/26 17:16
수정 아이콘
개인적으로 이러한 종류의 철학 논쟁을 볼때마다 '통일된 언어'가 전제되지 않는 이상 자꾸 헛발질이 나올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실제로 고대 중세쪽의 철학적 토픽을 보면 이러한 언어적인 문제 때문에 논쟁이라는 이름의 병림픽을 달렸던 적이 많고...

이 글의 제목만 해도 '존재하는 것은 무엇일까' 인데 만약 이게 '실존하는 것은 무엇일까' 였다면 받아들이는 뉘앙스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겠지만 영작하려면 둘다 What does exist mean? 정도일텐데 실제로 실존과 존재 실현과 구현은 전혀 다른 뉘앙스의 표현이라는것을 고려하면 영어로 했던 논쟁을 단순 번역을 통해 한글로 가져오는것도 좀 무리가 있고 그 반대도 좀 무리가 있죠.

글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15/12/26 17:33
수정 아이콘
동의합니다..뭔가 언어의 유희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직관적으로 a와b가 다르다는 것은 알겠는데 그 다름이 언어적 측면에서 생기는 부분도 있어보이고 실제 직관을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어보이고 어쨌든 언어에 의한 인식이 꽤나 중요한 부분인거 같네요..
15/12/26 17:42
수정 아이콘
위에서 자세히 서술하지는 않았지만 카르납이 대표적으로 그런 생각을 하는 철학자입니다.

형이상학적 논의들이 아무리 세련되게 바뀌어봤자 어쨌든 "말뿐인 논쟁(verbal dispute)"이라는 거죠. 그런데 그런 주장이 강력하기는 하지만, 일관되게 지지되기는 또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15/12/26 17:39
수정 아이콘
20세기 초반에 러셀과 논리실증주의자들의 생각도 바로 그런 것이었다고 봅니다. 그래서 현대철학의 "언어적 전회"가 있었다는 말을 하니까요. 실제로 그래서 존재론에 대한 메타적 논의(metaontology)를 하고 있고, 거기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문제 중에 하나가 "존재", "실존", "존속", "있음" 등등의 단어가 전부 동일한 의미냐 아니면 각각 다른 의미냐 이런 논의입니다. 나중에 더 관심이 있으시다면 그런 것도 찾아보시면 재미있을 겁니다. 고맙습니다.
Jace Beleren
15/12/26 18:14
수정 아이콘
그러한 개념의 정의가 참으로 어려운게

1. '삼각형의 네번째 변' (기하학적 정의)
2. '뿔과 날개가 달린 유니콘' (상상속의 동물)
3. '사랑' (관념)
4. '세종대왕' (조선의 왕)
5.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6. '이 댓글' (이 댓글)

이 여섯가지의 일종의 '존재의 정도'? (이것도 애매한 표현입니다만) 는 각각 유의미한 차이가 있죠.

1은 정의 자체가 비존재의 인과성을 가지고 있고
2는 있다는 증거가 없지만 있을수도 있으며
3은 관념적인 표현이라 실재성이 애매하고
4는 실재했다는 증거가 많지만 죽었기에 확실하지는 않고
5는 실재하며 현재도 살아있지만 우리가 아는 오바마가 정말 그 오바마라는것이 확실하지 않기 때문에 (...) 의심의 여지가 있고
6은 그에 반해 적어도 이 댓글에서 다룬 그 어떤것들보다도 가장 실재하는것이 확실합니다.

근데 여기서 어디서부터 존재하고 어디서부터 실제하고 어디서부터 존속하며 어디서부터 '있음' 을 속성으로 가지고 있는지 이야기하려면 사실 너무 어렵습니다.

마이농과 비슷한 생각을 지닌 누군가는 [어쨌든 우리가 그 개념을 다뤄야 하기 때문에 모두 존재한다] 고 생각할 수 있고
대체적인 보통의 사람이라면 [사랑까지는 존재하고 유니콘부터는 구라임]이라고 말할테고
어제 크리스마스였는데 집에서 혼자 영화보신분들은 [사랑부터 존재 안하는데 크크크 위에 최소 존알못] 이라고 할테고 (...)
의심하기 좋아하는 누군가라면 [6번 빼고는 다 구라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고
개는 영혼이 없다고 발로 뻥 차버릴거 같은 쓰레기 인성을 가진 사람 (...) 은 [1~6 전부 존재하지 않는다. 그걸 의심하는 나만 존재함] 이라고 말하겠죠.

근데 이 생각들을 가지고 투닥투닥하려면 다른 외적으로 헷갈리는 부분이 적어야 할텐데, 언어가 통일이 안되면 그게 힘들거 같아요.
15/12/27 15:17
수정 아이콘
우선 6번 존재자가 가장 확실하게 존재하는 것 같은 이유는 그 표현 안에 이미 존재를 함축하고 있는 지표어(indexical) "이(this)"가 포함되어있기 때문일 겁니다.

1과 2의 경우에는 둘 다 허구적인 존재자일 텐데, 특히 1은 정의상 불가능한 모순적인 존재자라는 점에서 마이농의 입장에서도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2의 경우에는 의견이 분분할 수 있습니다만, "유니콘"이 기본적으로 이름(name)이라는 점에서 존재할 가능성은 없는 것입니다. 이는 이름과 기술구(description)에 관한 긴 논의를 필요로 하는데, 대표적인 철학자가 크립키(kripke)입니다. 그에 따르면, 우리가 유니콘에 갖다붙이는 여러 속성들(말임, 뿔이 하나임 등등)을 가지는 어떤 생물을 발견할 수는 있지만 유니콘 자체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3의 경우가 위에서 논의한 속성의 존재와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이는 지적해주셨다시피 충분한 논의의 대상입니다.

4는 과거 존재자들에 관한 논의와 연관되는데, 특히 시간 철학에서 주된 연구 주제입니다. 영원론(eternalism)이라는 입장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그런 과거 존재들도 전부 현재 존재들처럼 존재한다고 봅니다. 반면에 현재론(presentism)은 과거나 미래 대상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지요.

5의 경우가 많은 사람들이 존재론을 공부하면서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의문 중에 하나인데, 이는 인식론적인 것과 존재론적인 것을 혼동함에서 비롯됩니다. 우리는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주장을 그것은 인식된다는 주장과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미국의 대통령인 오바마가 존재한다는 주장은 오바마를 직접 인식하고 있다는 주장에 의존하고 있지 않습니다. 비록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더라도 존재하는 것들은 존재하는 것이지요.

첨언하자면, 존재한다라는 말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그리고 존재와 실존 등이 어떻게 의미가 다른지 하는 문제는 분명 존재론을 하는 데에 있어 중요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존재한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고, 그런 일반적인 직관 위에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어떤 언어 표현이 애매하거나 모호하다는 점이 그 표현을 사용하는 권리를 앗아가는 것은 아니죠. 가령, '대머리'라는 표현을 우리는 자유롭게 사용합니다. 머리카락 몇 개부터가 대머리인지 애매하더라도 그렇게 하는 것처럼 말이죠.
市民 OUTIS
15/12/26 17:47
수정 아이콘
being의 쓰임 때문에 혼동도 오죠. 온톨로지야 그리스어의 being과 유사한 것인데, 존재라는 의미도 되지만 '규정성(~임)'으로도 사용되죠.
20세기 중반 이후부터 있음(존재)보다 ~임(규정성)으로 'be'를 해석하는 입장도 많아진 것 같습니다.

몇 년 전 한국 서양고대철학 전공 학회에서 서양어와 한국어의 차이-한국에서는 존재하다는 말에서 계사의 의미(~이다)의 의미는 없으니-때문에 한국에서 기왕의 형이상학(존재론)의 논의가 유효한가의 반성도 있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Jace Beleren
15/12/26 18:21
수정 아이콘
사실 '존재'라는 한자어 자체가 언제, 어디서 먼저 쓰였냐를 생각해보면 exist being 양쪽으로 다 해석하는것은 말씀하신대로 좀 무리가 있는것으로...
市民 OUTIS
15/12/26 18:41
수정 아이콘
서양의 be동사는 다의어죠. 현대 영어의 be동사야 시어(詩語)를 빼곤 '존재하다'는 의미로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고 알고 있습니다. 'there is/are' 형태로 사용해도 이것이 존재하다의 의미보다 어디 장소에 무엇이 있다 정도로 쓰이는 것 같습니다.(영알못이라 틀렸을 것같은데) 이건 존재의 범주가 아니라 장소의 범주에 가깝죠. (그리스어에서는 영어와는 용례가 달랐다고 합니다) 온톨로지(존재론)는 '있다/-이다'의 다의어 (영어로 치면 옛 be동사, 즉 존재하다의 의미가 살아있는,의 분사형태로 알고 있습니다)의 용례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있다/없다이니 흔히 한자식의 존재론과 관련이 있고, '이다/-아니다'에 대한 논의이니 진리론과 연결됩니다. 거짓말을 통해 플라톤이 비존재도 어떻게든 존재해야 한다로 연결된 것은 be동사의 다의성 때문이라고 봐야 합니다. 한국에서 존재론이 창시되었다면 진리론과 큰 연관이 있었을까는... 모르겠습니다. 분명 존재론과 범주론은 사실상 같고 같이 발전했으니 인식-논리-언어학과는 밀접하지만 진리론과는 직접 연결을 맺을 필요가 있을진 모르겠습니다.
15/12/26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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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진짜 재미있는 글 같은데 이미 술을 마셔서 제대로 정독할 수가 없네요. 내일에라도 꼭 각 잡고 읽어보겠습니다!
Jace Beleren
15/12/26 17:35
수정 아이콘
내일 : 분명히 처음 읽는 글인데 내 댓글이 달려있네?
돈보스꼬
15/12/26 17:44
수정 아이콘
위에 지적해주신 대로 존재/비존재 문제는 파르메니데스가 가장 먼저 제기했다고 봐도 되겠죠.
마이농-러셀-논리실증주의-콰인으로 이어지는 깔끔한 정리 잘 읽었습니다. 어려운 주제를 이렇게 쉽고 재밌게(!) 정리하기 쉽지 않은데, 좋은 글 감사합니다. 크립키 이야기도 같이 나왔으면 했는데.. 다음에 또 글 부탁드립니다.
(어...그런데... 러셀 콰인 마이농도 있고... 치좀도 있고... 호 혹시 이번 학기 존재론연스... 아 아닙니다 잘못 짚은 걸수도..)
15/12/26 17:58
수정 아이콘
크크크 혹시 H선생님의 존재론 연습인가요
듣지는 않았고 관심 있게 지켜보고 강의계획서를 탈취(?)해둔 상태입니다...흐흐
ohmylove
15/12/26 17:48
수정 아이콘
아 그리고 묻어가는 질문인데
존재론, 인식론, 윤리학 각각에 대한 서양철학의 역사적 흐름을 다룬 교양서적이 있을까요?(전문서적은 사양합니다..;; 저번에 도전해봤다가 실패한 적이 있어서)
급궁금해지네요 흐흐
15/12/26 18:04
수정 아이콘
음..각각에 관한, 게다가 "역사"는 마땅한 교양서적이 있는지 잘 모르겠네요. 다만, 개인적으로는 철학사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러셀의 <서양철학사>를 추천하구요, 전반적인 논의는 네이글의 <이 모든 것의 철학적 의미는?>, 블랙번의 <생각>, 러셀의 <철학의 문제들> 정도 추천합니다!

윤리학은 사실 또 조금 다른 분야라서 제 생각에는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도 좋은 책인 것 같구, 브로디의 <응용윤리학>이라는 책도 재미있게 읽으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혹시 무슨 책을 읽다가 실패하셨는지 궁금하네요 흐흐..
ohmylove
15/12/26 18:13
수정 아이콘
콰인의 <논리적 관점에서>요.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못 알아듣겠어요.

음.. 근데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는 샌델 개인의 생각이 너무 들어간 책 아닌가요? 전 좀 일반적인 철학적 논의를 보고 싶은데..

답변 감사합니다.
Jace Beleren
15/12/26 18:16
수정 아이콘
헉, 센델의 정의는 보통의 저자들에게 본인 생각이 너무 없고 그냥 소개만 한다고 까이는 책 아닌가요. 교양서적중에서 저것보다 더 객관적인 시점을 가진 노잼책은 출판되기 어려울거 같아요.
ohmylove
15/12/26 18:18
수정 아이콘
음? 정말인가요? 그렇다면 읽어보겠습니다!

샌델의 정의 책을 비판한 책도 나와서, 샌델이 개인의 생각을 너무 많이 집어넣은 줄 알았네요.
Jace Beleren
15/12/26 18:24
수정 아이콘
제 기억에는 그 책에서 비판하는 이유 자체가 말을 너무 알맹이 없고 부정확하고 애매하게 한다 그런 내용일거에요.
ohmylove
15/12/26 18:26
수정 아이콘
알맹이가 없다는 게 근거(레퍼런스)를 많이 제시를 안 했다는 건가요?
Jace Beleren
15/12/26 18:30
수정 아이콘
음 일단 비판서의 내용은 비판서 쓴 사람들 생각일뿐 객관적인것은 아니라는것을 먼저 밝히고... 아울러 저는 그 비판서의 내용에 별로 동의하지 않는것도 밝힌뒤에 이야기하자면, 위에서 말했던 대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불분명하고 용어 사용도 불분명하고 일관성이 없다~ 이러한 기조였던걸로 기억합니다.

다만 정의라는 책 자체가 워낙 한국에서 히트를 쳐서 이거 말고도 비판서가 더 있을텐데 다른건 안 읽어봐서 모르겠어요. 제가 읽은 책은 그랬습니다.
ohmylove
15/12/26 18:33
수정 아이콘
답변 감사합니다.

샌델의 정의 책이 그렇게 노잼인데 어떻게 히트를 쳤을까 의문이네요;;
가뜩이나 전공책 아니면 안 읽는 우리나라에서..

그리고 샌델의 다른 책인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도 궁금하네요. 과연 좋은 책인지..
Jace Beleren
15/12/26 18:37
수정 아이콘
음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객관적으로 봤을때 센델의 정의 자체는 제 생각엔 핵꿀잼이에요. 근데 그것마저도 학계에서는 '제대로 된 본인 의견이 없다' 같은 이유로 비판하는거니까, ohmylove님이 원하는 정의보다도 더 개인의 생각이 절제된 책은, 대개 거의 전공서적의 가까운 책일테고, 그러면 이미 실패하신 경험이 있다고 하셨으니 아마 노잼이라 또 실패하실거 같다 그런 의미였습니다.

저는 마이클 센델 정의는 정말 좋은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제삼을 여지가 없는것은 아니지만 그 정도 문제로 인해 좋은 책의 지위가 박탈된다면 사실 교양과학책중에 좋은책은 아예 없다고 봐야...
ohmylove
15/12/26 18:39
수정 아이콘
긴 답변 감사합니다! 연말 잘 보내세요~
15/12/26 18:51
수정 아이콘
헉..크크크 도대체 어떤 분이 그런 책을 추천하신겁니까...콰인은 원래도 어렵다고 정평이 나있으니 결코 절망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흐흐
ohmylove
15/12/26 18:59
수정 아이콘
박제윤 교수님이라고 처칠랜드의 뇌과학 책을 세 권 정도 번역하신 분이 계신데
그 분이 제 대학에 와서 교양강의를 하셨어요.

그 분과 지금도 연락하면서 그분께 과학철학 쪽에 질문을 가끔 던지는데.. 뭐 어쨌든

그 교양강의가 끝나고 나서 그 강의에 너무도 깊이 감명받아(포퍼, 쿤 이야기도 좋았지만 뇌과학과 뇌과학의 철학적 함의를 처음 접함)
그 강의 끝나자마자 포퍼의 분석, 종합명제 구분 비판에 대한 질문을 했죠. 그 근거가 뭐냐구요.
그러니까 그 교수님이 "<논리적 관점에서>라는 책에 써 있다. 하지만 봐도 니는 모를거다."라고 하셨죠.
하지만 저는 너무도 궁금해서 그 책을 읽어보았죠.


하지만 gg.
이게 독해능력 부족이라기보단..
혼자서 아무 배경지식 없이 읽으니까 의미 자체가 이해가 안 되고, 또 하나의 말을 중의적으로 해석 가능하더라구요.;;
오히려 읽으면 오개념만 쌓일까봐 gg..
마스터충달
15/12/26 19:32
수정 아이콘
존재론과는 별개의 이야기입니다만, 본문의 논리실증주의나 콰인의 말을 보니 제가 요즘 생각하는 것과 어느 정도 통하는 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쉽게 서술(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은
1. 대부분의 경우 설명하는 사람 조차도 그 의미를 제대로 모르기에 쉽게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2. 그 이외의 경우에 있어서도 설명하는 것이 공감을 얻기 힘들거나 개인적 생각의 결과인 경우가 제일 빈번할겁니다.
이럴 경우 난해함은 그저 무가치할 뿐입니다. 그러나 쉽게 설명할 수 없는 모든 것이 무가치하진 않습니다. 정말 난해하게 설명하는 것 외에는 도리가 없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철학은 그런 경우가 많은 학문이죠.

대신 난해하다는 건 어쩔 수 없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쉽고 직관적으로 다시 서술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올바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때때론 난해함을 좇는 것이 아닌가 싶은 모습도 많죠. 많이 감추고, 꽁꽁 싸맬 수록 환호하는 사람들도 있고요. 그리고는 무슨 소리인지도 모를 소리에 의미를 부여하죠. 저는 이런 걸 '숨은 그림 찾기'라고 부릅니다. (넓은 의미에선 '지적 사기'라고 부를 수 있을지도요) 영화 비평이나 리뷰를 보다보면 이런 '숨은 그림 찾기'가 오작동하는 경우가 꽤 있습니다. 비평이 아무리 헛소리라고는 하지만 '그럴 듯한' 헛소리여야 하는데, 그저 헛소리인데도 불구하고 난해함으로 멀쩡한 듯이 위장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떻게 쓸 것인가를 고민하다보니 요즘엔 이런 생각을 하고 있네요;;
본문과 별 상관없는 댓글 죄송합니다;;;;
15/12/27 15:28
수정 아이콘
동의합니다. 저도 예전에는 글을 잘 쓴다고 할 때 반드시 수사학적인 요소가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도 어떤 글을 쓰느냐에 따라서 다르겠죠. 자신의 감정을 관찰하고 하루를 정리하는 일기를 쓰면서 반드시 논제와 근거로 이루어진 방식으로 글을 쓸 필요는 없겠지만, 논문을 쓰거나 특히 우리가 무언가를 탐구하기위한 학문적인 글을 쓸 때는 최대한 간명하면서도 논증적인 글을 써야할 겁니다.

그런 학문적 글쓰기에 한정한다면 제가 생각하기에 어려운 글이 허용되는 경우는, 오직 그것이 기존의 생각들과 너무 달라서 한번에 이해되기 어려울 정도로 독창적인 생각을 담고 있거나, 문장 하나하나가 긴 논의들을 밀도 있게 담고 있어서 빠르게 읽기 어려운 경우 정도밖에는 없다고 봅니다.

일전에 참고했던 글쓰기 책에서 재미있는 구절을 읽은 적 있었는데, 거기에서 저자는 학생들이 사상가들을 공부하면서 그들의 글쓰기 스타일을 따라하는데 그건 정말 멍청한 짓이라고, 왜냐하면 그 사상가들이 교과서에 실린 이유는 글을 그렇게 써서가 아니라 그렇게 난해하고 서투르게 썼음에도 불구하고 독창적인 생각을 했기 때문이라고, 그러니까 우리같은 사람들이 무작정 따라하다가는 평생 읽히지도 않은 글을 쓸 거라고요...크크크
비욘세
15/12/26 19:53
수정 아이콘
본문의 철학자들과 프랑스 포스트모던 철학자들이 만나면 주먹다짐이 일어날것 같군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15/12/27 15:36
수정 아이콘
실제로 그런 대립(분석철학vs대륙철학)이 유명하죠. 찾아보면 재미있는 농담도 많구요. 그렇지만 그런 구분법 자체가 사실 그렇게 실질적(substantial)이지도 않을 뿐더러 이제는 논의에 있어서도 서로 많은 교류를 합니다 크크
15/12/28 08:50
수정 아이콘
우와아아앙 정말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저는 이런 문제에 대해서 논리실증주의를 살짝 접한 뒤로는 '그렇군 언어의 정리가 필수겠군.' 이라고 마음 편하게 고민하기를 멈추었는데, 그래도 이런 글을 읽는 것은 참 좋아합니다. 이런 글이 많아져야 자게가 더욱 풍성해지겠죠. 좋은 글 감사합니다.
연필깎이
16/01/03 00:32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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