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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2/03/15 23:07:07
Name 눈시BBv3
Subject [일반]  검푸른 해협 - 5. 인생은 실전이다

"왕이 왕위에 오르지 않았을 때에는 ‘태자’라 하지 않고 ‘세자’로 칭호하며, 국왕의 명을 옛날에는 ‘성지’ 라 하였는데 지금은 ‘선지’라고 하며, 각 관직 칭호를 원 나라 조정과 같이 하는 것 역시 이런 예이다." - 1275년

"선지’를 고쳐 ‘왕지’라 하고, 짐을 ‘고’ 로, ‘사’를 ‘유’로, ‘주’를 ‘정’으로 고쳤다." - 1276년

고려를 다룬 사극에서는 황제 황제 하지만, 고려에서 주로 왕을 칭하던 표현은 성상聖上이었습니다. 성상폐하 이런 식이었죠. 그 외에도 여러 호칭이 있었는데 1114년에 성상으로 통일하기도 합니다. 고려식 외왕내제였죠. 중국이나 만주에서 누가 황제를 외치면 모셔주기는 하는데 우리는 우리식대로 하겠다 이런 식이었습니다. 후에 조선에서는 이를 까면서도 정작 외왕내제는 계속했고, 중국에 알려질까 걱정하면서도 계속 썼습니다. 임진왜란 때 진짜 걸렸었는데 "에이 오래 써 온 건데 봐줘용~ 사대 열심히 하잖아염~" 이렇게 무마했죠 (...)

이런 외왕내제가 깨진 게 바로 원 간섭기 때입니다. 그냥 원에 굴복해서 한꺼번에 바뀐 것처럼 나오지만, 이런 호칭과 관직들이 바뀐 건 꽤나 시간이 흐른 후입니다. 원과 고려가 혈연적으로 맺어지면서 고려 내부의 상황을 더 잘 알게 됐고, 단지 책봉만 해 주는 제후국이 아닌 부마국이라는 원이 다스리는 질서에 완전히 편입됐기 때문이었습니다. 고려 내의 다루가치들이 이를 열심히 알린 것도 있구요. 조선에서도 세자라고 하면서 격이 낮아졌지만 원 간섭기 때와 비할 게 아닙니다. 고려든 조선이든 통보나 다름 없던 왕 책봉은 이 때 원나라가 마음대로 좌지우지하는 것으로 바뀝니다. 송나라를 모방해 천자국의 것으로 했던 제도는 모두 제후국의 것으로 낮춰지구요. happyend님이 유게에 올리신 도병마사->도평의사사가 등이 있죠. 원종이나 충렬왕이라고 이런 걸 반길 리가 없었습니다. 원종은 받아들이긴 받아들이되 오래된 풍속을 어찌 자기 대에 바꾸겠냐면서 자기 죽은 뒤로 하라고 미뤘었죠. 결국 그 부담은 충렬왕에게로 옮겨갑니다.

충렬왕은 이런 원 간섭기의 청사진을 제대로 그려야 했습니다. 원종이 쿠빌라이 칸과 한 도박은 성공했지만, 개경 환도 등의 문제로 원에 제대로 찍힌 상태였거든요. 겨우 결혼에 성공해서 부마국이 되긴 했지만 원의 고려에 대한 시선이 좋다고 보기는 힘들었습니다.

1차는 그냥 끌려다니기만 했지만, 그 이후 고려는 조금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1. 복귀 후
12월 말에서 1275년 1월 초까지 원정군의 회군이 완료됩니다. 흔도는 포로로 잡은 어린 남녀 200명씩을 충렬왕에게 바치죠. 첫 날의 승전을 생각하면 전리품은 꽤 많았을 겁니다. 이는 그나마 원이나 고려에 있어 체면치레가 돼 줬겠죠. 그래도 부끄러웠는지 원사에서는 이 원정에 대한 얘기가 없습니다.

충렬왕이 먼저 힘쓴 건 국내에서 원의 간섭을 최소화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만일 상국에서 또 여러 도에 권농사를 보내게 된다면 얼마 남지 않은 백성들이 공급하기가 실로 어려울 것이니, 한 신하를 보내어 그 허실을 살피게 하고, 권농하는 일만은 모두 신에게 위임하신다면 신이 장차 백성을 모두 인솔하여, 그 부지런하고 게으름을 살펴서 성상의 백성을 근심하는 마음에 어긋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해인 1275년에도 이는 계속됐죠.

"만일 다시 일본을 치게 된다 하더라도 필요한 전함과 군량은 실로 소방에서 감당할 수 없으니, 엎드려 바라건대, 간절한 정성을 굽어 살피셔서 애절한 호소를 알아 주소서"

참고로 제가 유게에 올렸던 고려 여인네들 얘기가 바로 이 때 나옵니다. (...)

원에서는 고려인이 활과 화살을 가지지 못 하게 하는 등 여전히 견제하는 쪽으로 나왔고, 고려에서는 이런 간섭을 벗어나기 위한 요청을 하며 맞섭니다. 이를 위해 여러 차례 원에 갔다 온 이가 김방경이었죠. 한편 이런 대립을 틈타 치고 나온 세력이 바로 권문세족이었습니다. 통역이든 원에 바치는 매를 잡는 이든 원과 조금이라도 연줄 있는 이들이 그걸 믿고 권세를 부리기 시작한 것이죠.

이 해 10월에는 "상국의 것과 비슷한 모든 관명을 고쳐라"는 명령에 따릅니다. 교과서에서 흔히 보는 변화가 이 때 제대로 나온 것이죠. 성省 부府로, 부部를 司로 바꾸는 등의 일이었습니다. 천자국에서나 쓰던 삼공 역시 없어졌구요. 이 시기 정략결혼으로 고려에 온 대장공주와 다른 왕족들과의 갈등도 시작됩니다만, 이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겠습니다.

아무리 간섭에서 벗어나려 한들, 쿠빌라이 칸의 일본 정벌 준비는 다시 시작됩니다. 역시 10월이었죠.

원과 고려가 이렇게 은근히 대립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대립만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습니다. 고려의 경우 왕정복고를 시켜준 것이 바로 원이었고, 나라가 아직 재건이 안 된 상황에서 고려를 지켜주는 이 역시 원이었습니다. 반면 원의 경우 일본 정벌을 준비하기 위해서 고려를 아예 말려죽여서도 안 됐고, 고려와 너무 틈이 벌어져서도 안 됐습니다.

때문에 참으로 묘한 상황이 펼쳐지죠. 견제는 견제대로 하면서 고려의 요구는 어느 정도 들어주는 것이었습니다. 홍다구는 물론 흑적이 계속 고려를 음해했지만 대부분 듣지 않습니다. 이런 음모들이 다 들어갔으면 전쟁이 다시 일어났거나, 고려의 재건이 더 힘들어졌겠죠. 쿠빌라이 칸보다 얘네가 더 미워요. -_-; 단지 음해할 뿐만 아니라 고려에 뭐가 있다, 뭐가 있다 하면서 수탈을 부추겼거든요. 고려에 금이 난다는 핑계로 1만 1천의 백성들을 동원해 약간의 금을 채취해 가기도 했죠. 고려에서 이를 중지하길 청해서 결국 없어졌습니다만...

지금까지 상황을 보면, 그 중심에는 김방경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2. 김방경
1276년 7월, 김방경은 쿠빌라이 칸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원으로 갑니다. 이 때 김방경은 호두금패를 받는데, 이는 송에서부터 시작된 포상이었습니다. 문무 2품 이상이 찼으며 그걸 신분을 나타내는 표시로 썼죠. 고려인 중에 그걸 받은 이는 김방경 뿐이었습니다. 거기다 그의 대접 또한 파격적이었습니다. 마침 멸망한 남송의 황제가 신하들을 데리고 참석했는데, 황제 자체는 태자 다음 자리에 앉혔지만, 고려는 스스로 순응했고 송은 힘이 다하여 항복했다 하여 다른 신하들을 (남송의 왕족 한 명 빼고) 모두 김방경의 아래에 앉힙니다.

충렬왕이 그 공을 알려주긴 했지만, 홍다구 등의 방해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이 정도의 대우를 받았다는 것은 일본 정벌 때의 공을 인정받은 거라고 봐야 될 것입니다. 물론 그가 이전에도 원과 고려 사이에서 인정받긴 했지만 정벌이 실패한 상황에서 아무 공 없이 이런 대우를 받기는 힘들었을 테니까요.

그가 단지 친원파로 보기에는 흔도와 홍다구와의 갈등이 꽤나 많이 드러난다는 것이죠. 이는 후에도 이어져서 죽을 뻔한 위기를 겪기도 합니다.

때는 충렬왕 3년인 1277년 12월, 그 동안 일본 정벌은 비교적 조용히 이루어지고 있었고, 원의 수탈에 대한 건들도 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조용했습니다. 고려는 조금씩이나마 살아나고 있었죠. 제국대장공주는 다른 왕족들이랑 갈등도 겪고 자기 사치를 부리는 모습도 보였지만, 그래도 고려의 인삼 등을 중국의 여러 나라와 교역하면서 많은 이익을 올리는 도움도 주었습니다. 충렬왕도 나태해졌다는 비판은 보이지만, 그래도 이전에 있었던 일들에 비하면 정말 평화로운 나날이었죠.

대장군 위득유, 중랑 노진의 등은 김방경의 권세에 불만을 가져 흔도에게 김방경을 모함합니다. 다루가치를 죽이고 역모를 저지른다는 것이었죠. 흔도는 이를 충렬왕에게 알렸고 김방경과 그 가족, 거기에 연루된 사람들은 붙잡혀 갑니다. 안정복은 이에 대해 "무고한 것을 알면서도 무시했으니 혼란이 커졌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충렬왕으로서는 흔도의 말을 무시하기 힘들었겠습니다만.

마침 정동원수가 되어 일본 정벌을 총괄하기 위해 고려에 온 홍다구는 좋구나 하고 고문을 책임집니다. 이 기회에 짜증나는 김방경을 주깅려 한 것이었겠죠. 이 때 고문 모습을 이렇게 그리고 있습니다.

"다구는 쇠사슬로 그의 머리를 감고 못질을 할 것처럼 하며, 매질하는 자에게 그 머리를 치라고 소리쳤다. 종일 알몸으로 서서 추운 날씨에 살이 얼어서 먹장빛처럼 되었다."

충렬왕은 이미 이전에 흔도와 함께 고문했으니 다시 할 필요가 없다고 말리지만, 홍다구는 참 악랄하게 고문을 계속합니다. "몸에 성한 살이 없을 정도로" 고문을 당한 김방경은 기절했다가 다시 깨어났죠. 자백을 받지 못 한 홍다구는 충렬왕에게 "자백한다면 유배에 그칠 것이다"면서 거짓 자백을 하게 했고, 충렬왕 역시 고문이라도 막으려고 허위자백을 하라고 했지만 김방경은 거부합니다.

"왕께서 이렇게 말씀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신이 군졸 출신으로 재상의 자리에까지 올랐으니 이몸이 짓이겨 없어질지라도 국가에 보답하기에 부족합니다. 어떻게 저의 몸을 아껴서 허위로 자백하여 나라를 저버리겠습니까?” (홍다구에게) “나를 죽이려거든 바로 죽여라. 나는 정의에 어긋나는 일로 너에게 굴복하지는 않겠다.”

결국 자백을 받지 못 한 홍다구는 "집에 무기를 간직했다"는 핑계로 그를 대청도에 보냈고, 아들 김흔은 백령도로 유배보냅니다. 다행히 다른 이들은 다 석방됐구요. 대신 김방경을 무고한 위득유와 노진의가 장군이 됐죠. 김방경의 유배길에 나라 사람들이 길을 막고 울면서 전송했다고 합니다. 처음도 아니었죠. 삼별초 토벌 때 이후로 두 번이나 역적으로 몰린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다행인 점이 쿠빌라이 칸은 이런 무고를 믿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 일을 알리러 온 사신에게 김방경의 일에 대해서 물어본 후 이렇게 말 했죠.

"방경이 그까짓 것을 믿고서 반란을 도모한단 말이냐? 들으니 방경이 고려 서울에다 주택을 지었다 하니 반란을 도모한다면 어째서 주택을 짓겠느냐? 빨리 다구를 돌아오게 하고, 국왕이 직접 와서 보고하게 하라"

고려로서는 마지막 희망이었습니다. 급히 원에 소환되는 홍다구에게 위득유와 노진의는 "고려에서 원 저주한다"면서 이를 황제에게 알리라 했지만, 쿠빌라이 칸은 이것도 믿지 않고 충렬왕을 직접 소환합니다.

아마 이 쯤 되면 충렬왕도 무엇이 고려가 살 길인지 알았을 것입니다.

3. 피할 수 없다면
쿠빌라이 칸은 홍다구, 흔도, 충렬왕은 물론 유배된 김방경과 그를 무고한 노진의, 위득유까지 소환합니다. 이에 노진의와 위득유는 걱정하다가 "혀가 말라서 죽었다"고 하죠. 김방경은 무죄로 결정됐고, 흔도와 홍다구는 오히려 충렬왕에게 빌죠. 그 모습이 참으로 구차합니다.

"황제께서 김시중(김방경)의 사건을 물으시면 왕이 말씀드리기에 달렸습니다" - 홍다구
"내가 왕의 나라에 7년간 있는 동안 잘한 것은 한 가지도 없고 나쁜 짓을 많이 했으니, 아무쪼록 잘 말씀드려 주십시오" - 흔도

6월, 공주와 함께 북경에 도착해 일을 해결한 충렬왕은 꽤나 충격적인 말을 쿠빌라이 칸에게 던지니다.

"일본은 섬 안에 있는 오랑캐로서 감히 대국을 대항하려 하옵니다. 신은 나라의 은덕을 보답할 것이 없사오니 돌아가서 배를 만들고 식량을 비축하여 그들을 토벌하여 죄를 응징할까 합니다"

피하기만 했던 고려에서 일본 정벌을 직접 요청한 것이었습니다.

어차피 당할 것, 고려가 할 수 있는 것은 고려의 가치를 최대한 알리는 것이었습니다. 그 방법은 일본 정벌의 전초기지로서의 역할이었죠. 쿠빌라이 칸도 당황했는지 "돌아가서 재상들과 깊이 연구하여 보고하라"고 했습니다. 또 한 가지 노리는 것이 있었습니다. 끌려가는 역할에서 고려가 주도권을 잡음으로써 홍다구 등의 개입을 최대한 배재하는 것이었죠. 김방경에게 계속 호의를 보이는 쿠빌라이 칸이었고, 그 역시 고려가 말라죽기를 바라지 않기에 할 수 있는 얘기였습니다.

"그러나 다구가 있는 한 나라 꼴이 되기가 어렵겠습니다. 다구는 군사 문제만을 관장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국내 정치 문제까지를 전부 제 마음대로 하려 합니다 대국에서 저희 나라에다 꼭 군을 설치하려면 차라리 달단군이나 한아군을 배치하고 다구는 소환시켜 주십시오."

그 외에 쿠빌라이 칸은 이것저것을 따지지만, 충렬왕은 모두 홍다구 등의 문제로 받아칩니다.

7월, 쿠빌라이 칸은 다루가치와 합포, 서해 등에서 주둔시킨 원나라 병력을 철수시킵니다. 그리고 모든 권한을 충렬왕에게 맡기죠. 11월까지 원에 머문 것으로 보이는데, 돌아와서는 김방경을 다시 불러들이고 홍다구와 놀았던 자들을 귀양 보냅니다.

이렇게 원과 고려 사이의 관계는 변하게 됩니다. 원의 간섭을 최대한 배제하는 길은 아이러니하게도 확실히 충성 서약을 하는 것, 고려의 이용 가치와 김방경에 대한 호의를 이용하는 것이었습니다. 충렬왕은 그렇게 충성 서약을 마친 후 돌아와서 본격적인 일본 정벌 준비에 착수하게 되죠.

원사에서는 2차 정벌에 대해서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1280년 12월 신미에 고려 왕 왕춘이 군사 1만 명, 수수(水手) 1만 5천 명, 전선 9백 척, 양곡 10만 석을 거느리고 일본을 정벌하러 나갔다. 홍다구 등에게 전쟁 도구를 주고, 고려국에 갑옷과 전투복을 주었다. 그리고 일본을 정벌하러 가는 여러 도의 군사들에게, 고려의 길을 취해서 나아가되 백성들을 동요시키지 말라고 유시하였다."

+) 다만 2차 일본 정벌 자체는 1281년 여름에 있었죠.

다음 편에선 본격적인 2차 정벌에 대해서 다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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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 ne sais quoi
12/03/16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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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자 들어가는 왕 중에서도 그래도 머리 쓰는 사람이 있었던 것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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