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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2/02/12 11:51:46
Name 눈시BBver.2
Subject [일반]  대몽항쟁 4부 - 3. 고생 많으셨습니다

거란 유민 토벌전

1차 침공 : 1216말~1217초
주요 전선은 청천강 북쪽. 약탈에 치중했기에 병력이 분산됐고, 김취려의 활약으로 청북의 적 주력 격파. 하지만 후군이었던 김취려가 나서야 될 정도로 고려군은 약화돼 있었고, 최정예인 최충헌의 가병과 도방 병력은 개경 방어에만 치중.
또한 전투가 청천강 북쪽으로만 한정돼 있지만, 적의 소규모 병력이 현 경기도까지 진출했고 관군은 여기에도 제대로 맞서지 못 했다는 정황이 많음. 정숙첨은 이들 때문에 제 때 가지 못 했고, 5군 중 하나인 김중귀는 남양주에서 이들에게 패배, 전투에 참가 못 함.


2차 침공 : 1217초~1219초
만주에 남아 있던 남은 거란 유민들 모두 침공. 고려군 연전연패로 적은 서북면에서 경기도까지 진출. 춘천과 원주가 함락되고 충청도 박달재까지 진출했으며, 태백산맥을 넘어 강릉까지 공격한 후 북진. 개경, 서경 등 대도시는 점령이나 약탈을 피했지만 하삼도를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이 피해를 입음. 이 때 조충과 김취려 등의 활약으로 적을 강동성으로 모는 데 성공하지만 이미 때는 늦어 몽고군과 동진군이 고려 내로 진입함. 연합군 형성으로 강동성이 함락되며 거란 유민 소멸.

대몽항쟁
1219년 최충헌 죽음
1220년 최우 집권

1225년 저고여 암살 사건 발생


1차 침공 : 1231년 총대장 살리타. 총병력 3만. 성들은 우르르 깨지고 패잔병들 귀주성에 집결, 전쟁이 끝날 때까지 사수. 중앙군은 동선역에서 승리를 거두지만 안주성까지 진격했다가 참패. 귀주성과 자모산성이 버티고 의주에서 몽고에 대한 반란이 일어난 상황에서 개경 포위. 항복 과정 중에 몽고군 경기도와 충청도를 공격. 충주 노비, 천민들의 항전만이 돋보임. 고려는 항복하고 서경에 다루가치 72명을 두고 돌아감.


2차 침공 : 1232년 고려 조정이 강화도로 천도한 것을 알게 된 살리타의 재침공. 다루가치를 몰살시킨 게 명분이었지만 전부 죽였다는 건 찾기 어렵고, 그들을 몰아내려 했던 시도가 서경의 홍복원에 의해 알려졌다고 봄.
총병력 1만. 고려의 서북 전선 포기로 저항 거의 없었음. 살리타는 강화도로 가는 배를 만들려다 포기하고 지나가는 지역을 초토화하며 남진. 몽고의 선발대는 대구까지 이르렀지만 살리타의 본대는 경기도 광주에서 막힌 후 우회했다가 처인성에서 끔살.
몽고군이 돌아간 후 최우는 정규군을 투입, 서경을 탈환함. 한편 몽고는 동진국을 멸망시킴으로써 만주 완전히 점령


3차 침공 : 1235년 7월~1239년 4월. 총대장 당고. 총병력 2차 침공과 비슷하다고 추정 + 동진국의 일부 병력 증원. 살리타의 복수를 명분으로 침공. 동진군을 동원한 동계에서의 침공으로 시작. 이어 서북면으로 침공 개시. 경주가 공격당하고 후에 전쟁 말에는 조현습, 이원우의 항복으로 동경이 몽고군의 손에 들어감. 한편 전라도에서는 최씨 정권에 대항하는 반란이 발생해서 김경손이 투입돼 반란 진압. 죽주의 항전으로 전라도에는 큰 피해 없었음. 전쟁이 계속되며 자원한 소수의 야별초와 각 지역 단위의 게릴라전이 계속됐고, 최씨 정권도 화친 협상을 계속하여 결국 몽고군 철수

이후 8년간 전쟁이 없었지만 조정의 개경 환도 움직임이나 전후 복구 움직임은 없었음.


4차 침공 : 1247~1248년. 총대장 아모간. 총병력 1만 정도 추정. 북계와 서해도(황해도)를 다지는 것에 집중. 강화도를 건너지 못 하면 별다른 방법이 없었기에 대충 화친 맺고 후퇴했다가 구유크 칸의 죽음으로 끝.

1248년 최우 죽음. 최항 승계. 치열한(은 개뿔) 외교전 끝에 몽케 칸 재침공 결정. 전쟁이 없는 동안에도 동진의 병력을 이용해 고려를 끊임 없이 견제.


5차 침공 : 1253년~1254년 1월. 총대장 야굴. 기존의 병력에 1만 증원. 서경을 중심으로 북계 통제 시작. 북계에는 평화적으로, 서해도에는 몰살이라는 화전양면전술 보임. 동계에서는 현 강원도 불바다 됨. 지역 거주 병력 및 백성과 산성방호별감과의 갈등 본격적으로 시작. 이후 충청도를 지나 경상도로 넘어가려다 충주의 김윤후에 의해 발목 잡힘.
야굴은 충주성 공격을 지휘하다 병을 얻고 귀환, 충주가 끝까지 버티면서 몽고군은 더 이상 진격하지 못 하고 화친으로 기움. 고려도 한계가 보임에 따라 고종이 강화도를 건너 육지에서 화친을 맺는 상황이 일어남.


6차 침공 :  1254년~1256년. 총대장 차라대. 아래 지휘관들도 다수 교체. 병력 5천 증원. 전국을 초토화시키며 진격. 하지만 충주에서 또 막히자 우회해 경상도 서쪽으로 진격. 이후 몽케 칸의 명령에 의해 후퇴. 이 해 붙잡혀 간 인원만 20여만에 이름.
1255년에는 충청도를 우회하려다 충주의 다인 철소 천민들에 의해 대패 -_-; 경상도 진공 포기 후 전라도로 진격. 광주까지 진격한 후 수군을 동원해 강화도로 가는 조운로를 끊으려 함. 이에 조정에서는 마침내 도방 병력과 삼별초 파견, 큰 성과를 거둠. 전국에서 계속되는 삼별초의 활약 및 충주와 압해도 등에서의 항전, 몽케 칸에게 사신으로 간 김수강의 활약으로 철군.


7차 침공 : 1257년. 최항은 몽고에 조공 중단. 직후 최항 죽고 최의 계승. 한편 차라대는 조공이 중단된 것과 왕이 입조하지 않은 것을 핑계로 침공. 이번은 지나치게 남진하지 않고, 살상은 물론 약탈도 하지 않으며 서해상의 섬을 수군으로 끊는 것에 치중. 사실상 침공의 마무리 단계. 이후 김수강이 다시 사신으로 가면서 철수.


8차 침공 : 1258~1259년. 김준, 유경, 임연 등에 의해 최의 숙청. 한편 차라대는 태자 입조를 목적으로 침공. 곳곳에서 방호별감과 삼별초를 죽이고 투항하기 시작했으며, 조휘와 청탁에 의해 동계의 북부 지역이 몽고에 넘어가 쌍성총관부가 설치됨. 김준은 내부 문제를 해결한 후 다수의 삼별초를 동원해 막았지만 이미 때는 늦었고 결국 태자가 몽고로 떠남.

+) 대몽항쟁 당시 고려에 들어온 몽고군이 2선급이다, 3선급이다는 식의 말이 많던데, 이에 대한 제 정리는 이렇습니다. 1차의 경우 고려부터 동진 등 "요동 지방"을 총괄하기 위해 들어온 병력이었으니 아예 2군급으로 보기는 어렵지만, 2차부터는 약탈에 치중한 편이었으니 정예 몽고군보다는 해당 지방의 거란과 여진군의 비율이 상당히 높았던 것 같습니다. 다만 야굴과 차라대가 투입된 5차부터는 고려를 확실히 지배하기 위해 만 단위의 정예병들이 증원된 것 같구요.
간단히 말하면, 수도 적었고 후방 내지 현지 병력의 비율이 높긴 했지만, 1차와 5차부터의 경우 마냥 떨이만 왔다고 판단하기는 힘들다 정도입니다.

이렇게 1차 침공부터 따지면 28년, 저고여 암살 사건부터 따지면 35년, 거란 유민의 침공부터 따지면 무려 43년에 이르는 대몽항쟁은 끝이 납니다. 후... 그럼 이를 정리해 보죠.

몽고가 얼마나 강력했건 그 이전에 고려의 국방은 파탄나 있었습니다. 원래 왕조 국가에서, 특히 전쟁이 많이 나지 않은 국가에서는 무력은 외국의 침략을 막기보다는 내부의 반란을 막는 것에 더 특화돼 있기도 했죠. 이건 전근대에서는 당연한 것이었고, 현대에는 경찰이 그 역할을 대신하게 됐을 뿐 혼란스러운 나라에서는 여전합니다. 결국 그렇다는 말에 머물지 말고 그 정도를 봐야 됩니다.

그런 면에서 무신정권은 최악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무인들이 정치하니까 다른 건 몰라도 국방 등에서는 더 강할 것이다는 것은 착각일 뿐이죠. 정통성 없이 믿을 게 자기의 힘밖에 없는 이들이 자기의 힘을 줄일 수는 없으니까요.

이미 최충헌 때 거란의 유민들이 쳐들어 왔음에도 자기 직속의 정예병들은 개경에서 벗어나지 않았고, 이런 상황에서 국경 방비가 제대로 될 리가 없으며, 그들을 토벌하는 것 역시 2선급 부대와 끌어 모은 지방군이 맡아야 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최강의 군대를 만나야 했죠.

그런 걸 생각하면 1차에서는 생각보다 잘 싸워 줬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물러난 후 최우는 강화도로 들어간 후 상식 밖의 방침을 세웁니다.

"저들이 오면 섬이나 산성으로 도망쳐서 저들이 돌아갈 때까지 기다리자"

분명 몽고군이 강하긴 했습니다. 아무리 국방력이 막장이 됐다 하더라도 1차 침공 초기에 청북의 성들이 함락되는 모습은 무섭죠. 강화 천도를 밀어붙일 때 반대하던 김세충에게 최우가 했던 말, "그렇다면 어떻게 막겠느냐?"는 것에는 저도 답 하기 힘들긴 합니다.

하지만, 고려는 이미 2차 여요전쟁 때 왕이 붙잡힐 위기에 처했다가 겨우 살아난 위기를 이겨낸 바 있습니다. 그 뒤에도 마찬가지죠. 임진왜란 초기의 상황이 1차 침공보다 못 할까요? 정묘호란은 또 어땠나요? 선조가 아무리 요동으로 도망치려 했다 한들 최소한의 지휘는 했으며, 중앙군을 신립에게 딸려주며 일본군을 이기려고 노력이라도 했습니다. 일본군의 점령지 내에서도 각 지방관이 병력을 규합하여 반격을 시도했고, 피해를 입지 않은 전라도에서는 한양을 탈환하기 위해 북상하기도 했죠. 인조도 병자호란으로 피난을 갈 때도 자기가 나중에 나서는 책임감을 보여줬습니다. 적이 쳐들어 왔다는 말에 왕자고 뭐고 내팽개치고 자기 혼자 강화도로 갔으면 전쟁은 또 달라졌겠죠. 이는 한국전쟁 당시 국민은 물론 정부의 다른 이들에게도 아무런 연락 없이 달아난 이승만보다도 오히려 좋게 봐도 될 부분입니다.

최우, 최항은 이런 것들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 때 일어난 항쟁을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과 비교하지만 내용이 완전히 달라요. 곽재우를 시작으로 일어난 의병들은 백성들이 주체가 된 게 아니라 각 지방의 사대부들이 중심이 됐습니다. 이들은 분명 기득권이며, 노블리스 오블리제로 봐도 되는 부분이죠. 하지만 대몽항쟁의 항쟁은 백성, 민중들이 중심이 됐습니다. 조정에서는 이들에게 섬으로 도망가라는 명령 이상을 하지 않았으며, 방호별감들이 파견되긴 했지만 성을 지키는 것 이상을 하지 않았습니다. 무책임이죠 이건. 충주에 했던 것처럼 잘 싸운 지역에 포상이라도 잘 줬으면 좋으련만, 그건 거의 충주에 국한됐습니다. 버티는 성에 삼별초를 투입하는 것도, 굶주린 백성들을 부른 것도, 너무 늦은 후였습니다.

어차피 조정은 지켜야 전쟁도 할 수 있고 나라도 사는 것, 몽고군이 워낙 강하기도 했으니 강화도로 가는 것 자체를 탓할 순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싸우려는 노력을 해야 그들이 항쟁을 주도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이죠.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3차 때는 게릴라전을 조금이라도 하려고 했죠. 하지만 이것도 자원한 자들이 많고, 병력도 백 단위에 불과했습니다. 이들이 제대로 전쟁에 나선 것은 6차 때, 몽고군이 조운로(쌀 수송로)를 끊으려고 했을 때였죠. 늦어도 너무 늦었어요. 차라리 김준이 더 잘 싸웠고, 더 제대로 싸울 마음이 있었구요. 이미 육지에서는 전쟁에 지친 백성들이 고려를 배반하고 있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지금까지 버텨 준 것만도 대단해요. 자기들을 버리고 갔음에도 배반은 정말 적었고, 반란이 일어나도 최씨에 반할지언정 몽고에 협조하지 않은 이들도 많습니다. 이게 고려의 저력이자, 대몽항쟁에서 정말 대단한 부분이라고 봐도 될 겁니다. 진작에 백성들이 항복했다면 최씨 정권은 강화도의 정권으로 남았을 것이고, 몽고는 왕준 같이 자기 편이 된 왕족들을 괴뢰정권의 왕으로 앉혔을 것입니다. 하지만 백성들은 그러지 않았죠. 그들은 적이 오면 싸웠고, 적이 오지 않으면 계속 버텼고, 적이 물러나면 돌아와서 어떻게든 다시 살았습니다. 대몽항쟁의 주역은 바로 이들입니다. 그들은 살기 위해 싸웠겠지만, 당시의 상황에서 그것만으로도 존경하지 않을 수 없는 일들인 겁니다.

분명 이렇게 오래 버틴 것이 몽고에서 고려를 평가하는 데 큰 점수를 얻었고, 원종이 항복하는 것이나 후에 고려가 받은 대우의 이유가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최씨 정권에 공을 돌릴 수 없습니다. 그 동안 항복하지도, 죽지도 않고 버틴 백성들이 있었기에 이게 가능했던 것이죠. 역사의 아이러니로 돌려야 될 부분일 뿐, 최씨가 잘 했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가령 최씨가 몇 년 더 버텨서 쿠빌라이 칸이든 아릭 부케든 정권을 확실하게 잡은 후에도 버텼으면 어떻게 됐을까요? 오히려 일본을 칠 때의 대규모 병력을 모아서 고려를 없애버리지 않았을까요? 이것조차도 고려가 버텼을지는 미지수입니다. 백모씨가 무릎을 아작낼 정도로 고생시켜서 이대호가 최고의 타자가 됐다고 해서 그 공을 백모씨에게 돌릴 수는 없는 거죠.

임용한 교수는 몽고가 강화도를 치지 못 한 것이 단지 능력부족이 아니라 정치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확실히 결론을 내리진 않았지만, 무리하면 할 수 있음에도 하지 않은 것이라는 투였죠. 이런 측면으로 본다면 (저는 아예 못 한 거라 생각하지만요) 몽고는 고려를 어느 정도 봐 준 건 맞는 것 같습니다. 이 정도면 항복하겠지, 항복하겠지, 그러다가 나중에야 강화도까지 공격할 정도의 마음을 먹었다는 쪽이죠. 이외에도 임용한 교수는 몽고가 고려에 투입한 병력이나 공세한계점 등을 보고 이것이 고려가 버틸 수 있는 원인 중 하나였다고 서술합니다. 고려를 완전 파괴할 정도나 완전 점령할 정도의 병력은 없었다는 것이죠. 이 점에 대해서는 동의하구요. 일부러든 그럴 여유가 없었든 몽고는 고려를 지도에서 없애거나 원나라에 편입할 정도의 능력은 없었습니다.

헌데 이런 이들에 대해 최씨 정권은 그렇게 나섰다는 것이죠. 몽고군이 가을부터 겨울까지 6개월 이상의 원정이 힘들었다고 하지만, 애초에 최우가 이를 알고 강화도로 천도했을지도 의문입니다.

굳이 "여몽전쟁" 대신 "대몽항쟁"이라는 명칭을 미는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이를 전쟁으로 봐야 될 지도 의문이죠. 임용한 교수는 "당시의 기록이 조금만 더 충분하게 남아 있다면 누군가가 이 전쟁을 [전쟁 아닌 전쟁]이라고 기록한 문서를 분명히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평가합니다.

임진왜란이니 병자호란이니 하지만, 우리 역사상 가장 힘들었던 때는 이 시기였습니다. 이후에도 삼별초는 삼별초대로, 몽고는 몽고대로 고려를 계속 괴롭혔죠. 일본정벌이 모두 실패로 끝난 이후에야 원과 고려의 관계는 보통의 사대 관계로 돌아갑니다. 그래도 뜯기고, 내정에 간섭되는 것은 그 어느시대보다 심했죠. 오히려 이렇게 힘든 시기였기에 더 미화되는 것일 겁니다. 왜란과 호란이 비교적 가까운 시기이기도 했지만요.

그 피해 역시 왜란과 호란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습니다. 왜란이 아무리 힘들었다 한들 거의 전국토가 전장이 된 건 초반 1년일 뿐이었고, 곡창지대인 하삼도가 직접 피해 지역이 됐다 해도 대부분의 기간 동안 점령지는 일부에 불과했습니다. 정묘, 병자호란은 그 기간도 짧았고 피해를 입었던 지역 역시 더 적었구요. 반면 대몽항쟁 기간 동안, 주로 서북이 전장이 됐지만 충청도부터 강원도까지 공격받는 일이 많았습니다. 경상도 역시 공격을 많이 받았고, 끝까지 버티던 전라도도 6차에서는 주요 전장이 돼 버렸습니다.

임용한 교수는 기존 역사책의 서술, "귀족들은 강화에서 편하게 살았지만, 산성과 섬에서 살아야 하는 백성들의 생활은 고통스러웠다"는 것을 문제 삼습니다. 그는 멀어서 산성이나 섬으로 가지도 못 했을, 아마 더 대다수였을 사람들에 집중합니다. 그나마 해안 지대에서 살거나, 산골에서 살아서 피난 가기 쉬웠던 사람들은 그나마 나았을 겁니다. 하지만 백성의 대부분을 차지할 내륙에서 살았던 사람들은 그러지 못 했죠. 죽고 끌려가거나, 성에 숨었다가 함락됐거나, 굶어 죽었거나... 이게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충주성 등의 항전은 그렇게 버틴 이들에 대한 것일 뿐, 요행히 적이 공격하지 않은 경우를 제외하면 그들은 싸우다 죽거나, 싸워서 이기거나, 싸워서 이겨도 굶어죽거나 했을 것입니다.

1254년 한 해에만 잡혀간 사람이 20만이 넘습니다. 죽은 사람은 그보다 많겠죠. 이는 단 1년의 일일 뿐입니다. 이 해가 가장 피해가 심했을 뿐이죠. 그간 잡혀가거나 죽은, "고려가 잃은" 사람들이 얼마나 될 지는 알 수 없습니다. 백 만? 이백만까지 잡아도 그렇게 과장일까요? 문제는 당시 고려의 인구죠. 생산량과 인구가 많이 늘었던 조선 말의 인구도 1100만에서 1300만 정도로 잡고 있습니다. 그로부터 수백 년 전의 고려, 이들의 인구가 팔백만은 되었을까요? 대량살상무기가 개발되기도 전의 전근대입니다. 이 때 잃은 민간인들은 전부 몽고군이 하나하나 손으로 죽이거나 끌고 간 사람들인 거죠. 굶주림으로 죽어간 백성들은 또 어땠을까요?

단지 힘들었다 수준이 아니라 한민족 최악의 위기, 지금 인구 비율로 치면 도시 한 두개 정도가 아니라 한두 단위의 도가 아예 없어질 정도의 피해가 나올지도 모릅니다. 재산피해는 또 어떨까요?

이걸 최씨 정권은 무시한 것이고, 그 때의 백성들은 이런 피해에도 끝까지 싸운 거죠.



임진왜란을 총 정리하며 바로 든 느낌은, 역시 "장군님으로 대동단결"이었습니다. 그 순간만큼은 선조가 미쳤든, 백성들이 얼마나 큰 피해를 입었든, 히데요시가 아무리 미웠든 상관 없었습니다. 이순신이라는 세 글자가 그렇게 자랑스러울 줄 몰랐죠.

병자호란을 총 정리하며 바로 든 느낌은, "꼬시다"(고소하다)였죠. 광해군을 부정적으로 본다면 그는 자기의 잘못에 대한 벌을 받은 셈입니다. 인조 역시 그렇죠. 그렇게 소중히 하던 정통성을 모두 내팽개치고 한국 역사상 최악의 굴욕을 당한 게 인조였습니다. 그 순간만큼은 백성들의 고통에 대한 생각보다 이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겠죠. 직접 피해를 받은 많은 사람들보다는 그 시절 가장 잘 했고, 가장 못 했던 대표적인 인물에 대한 생각이 먼저 드는 거니까요.

여요전쟁에서는 정말 정말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배층도 백성들도 정말 잘 버텨줬고, 잘 싸워 줬습니다. 그 전개와 결과까지 생각한다면 한국사의 수많은 침략전쟁 중 가장 잘 맞서 싸운 전쟁일 것입니다.

그리고... 대몽항쟁을 총정리하는 지금,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이것이네요.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리고... 살아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 때의 그 분들을 직접 만나면 이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몽고가 아무리 강했든, 최씨들이 아무리 막장이었든, 우리가 봐야 될 것은 이 때 직접 싸우고 마침내 살아남은 고려인들입니다. 그들이 대몽항쟁의 주역이었고, 지금 우리를 만든 조상이니까요. 이들이 있는 한 대몽항쟁은 절대 부끄럽기만한 역사가 아닙니다.

이상, 대몽항쟁에 대한 정리를 끝내겠습니다.

최씨 정권과 고종, 이외에 고려라는 나라에 대한 얘기도 하고 싶었습니다만, 남은 상황을 얘기한 후 마지막에 다시 해야 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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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요약.
"고생 많으셨습니다"라는 게 이 글 보신 분께 드린 말씀인 줄 아셨겠지만, 이 말씀 드릴 분들은 따로 있다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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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2/12 12:15
수정 아이콘
살리타이씩이나 되는 장수가 이끈 1차 침공 때의 몽고군이 2군급이었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전세계를 휩쓴 몽고군을 고려조정이라고 딱히 막을 수 있었을까 싶습니다.

그러나 '무신정권'이라던 당시의 고려 정부는 참 한심한 모습이었다는데 공감합니다.
무인이라는 가당찮은 자존심조차도 없었나요?
그들도 분명히 뜻이 있었을 것인데... 어찌 그리 자신의 안위만을 우선시했는지
12/02/12 12:41
수정 아이콘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공허진
12/02/12 12:42
수정 아이콘
어제 드라마 '무신' 방송하는데 눈시님 글 연재와 절묘하게 시기가 일치하는군요

8차 침공 : 1258~1259년. '김준'(!!!), 유경, 임연 등에 의해 최의 숙청. 한편 차라대는 태자 입조를 목적으로 침공. 곳곳에서 방호별감과 삼별초를 죽이고 투항하기 시작했으며, 조휘와 청탁에 의해 동계의 북부 지역이 몽고에 넘어가 쌍성총관부가 설치됨. 김준은 내부 문제를 해결한 후 다수의 삼별초를 동원해 막았지만 이미 때는 늦었고 결국 태자가 몽고로 떠남

본의아니게 스포일러하신듯 합니다 크크
Je ne sais quoi
12/02/12 13:30
수정 아이콘
에고 수고하셨습니다. 전 국토와 전 국민이 정말...
집중과
12/02/12 14:40
수정 아이콘
잘 봤습니다 ^^
무리수마자용
12/02/12 14:59
수정 아이콘
이등병이 되어 싸지방에서 이 글을 읽습니다. 시간 제약상 다 못 읽고 넘어갑니다 ㅠ 눈시님 글에 댓글 하나 남기는데 백일이 넘게 걸렸네요.
시나브로
12/02/12 15:32
수정 아이콘
오래 전 역사니까 그랬었구나 하고 읽지 정말ㅠㅠ

잘 읽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추천~
양정인
12/02/12 16:24
수정 아이콘
그동안 잘 읽었습니다.
몰랐던 '사실' 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어제 '무신' 이 첫 방송을 하더군요.
그 드라마를 보면서 고려의 무신정권을 어찌다룰지 기대가 되기도 하고...
'김준' 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어찌다룰지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불패외길자족청년
12/02/12 16:27
수정 아이콘
쿠빌라이때는 아마 차원이 달랐을 겁니다. 카라코룸에서 보면 고려는 변방이지만 대도(북경)에서 보면 고려는 그야말로 중핵중에 중핵이었으니까요. 당시의 줄타기는 한국 외교사에서 명전에 올려도 무방할 걸작이었지요.
아해부노조단
12/02/12 23:00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쓰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그동안 잘 읽었습니다.
12/02/13 03:20
수정 아이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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