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1/12/29 13:59:05
Name epic
Subject [일반] 남극점 경주...외전 - mile의 번역 문제
<남극일기, 스콧 저, 박미경 옮김>의 일부 입니다.

12월 30일 토요일
...매우 고되고 힘든 행군을 한 날이다. 겨우 17.7km 행군. ...우리 팀은 10.4km를 가서 점심을 먹었다. ...두 정상 사이의 13km
구간이 끝까지 힘들었다. ...지표는 80km 전보다 더 악화되어 있다. ...

여기서 km 부분의 원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only 11 miles(geo.) ... 6 1/2 miles ...8 miles...50 miles...

마일을 킬로미터로 번역한거죠. (국제 표준도 아니고) 우리가 흔히 쓰는 단위가 아니기 때문에 환산하여 번역하는게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오해가 생길 수 있습니다. 17.7km. 이 수치는 자연히 17.6km도 17.8km도 아닌 17.7km라는 주장을
하는 셈입니다. 그런데 그 당시의 거리 측정 최소 단위가 반 마일이었습니다. 그렇게 세밀하지가 않았다는거죠.
말하자면 이동거리가 5 1/2마일이라고 썼다면 대충 8.4~9.2km라는 얘기일텐데 이걸 8.8km로 번역해놓으면 미묘하게 의미가 달라져
버립니다. 수치가 소숫점까지 붙어 복잡해 보이기도 하구요. 그래서 저는 차라리 그냥 마일로 놔두는게 낫다고 봅니다.
마일로 변환한 수치가 자주 등장하지 않는다면 그냥 마일과 km 둘 다 써줘도 크게 무리가 없을테고 빈번히 등장한다면-
성실한 독자라면 오히려 마일에 충분히 익숙해지는 기회가 될겁니다.

그런데 이걸 번역자의 잘못이라고까지 말하긴 어렵죠. 제 생각에 반대하는 분들도 많을 겁니다. 하지만 위의 번역자는 명백한
잘못을 했습니다. (애석하게도 이건 관련 서적의, 거의 모든 번역자가 마찬가지 입니다.) 그 잘못이 뭔지 지금부터 설명하겠
습니다.

2차 탐험 때 섀클턴이 도달한 최종 지점은 남위 88도 23분입니다. 그는 '100마일 이내'에 집착을 했고 그래서 마지막에는 상당히
무리해가며 97마일 지점까지 갔습니다. 97마일을 km로 환산하기 위해 1.6을 곱하면 155.2 (1.6093을 곱하면 156.1) 정도가
나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책에 '155km 전까지' 갔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위도 1도 상의 거리가 대충 111~2km 입니다. 90도에서 88도 23분을 빼면 1도 37분이죠. (1 + (60-23)/60) x 111 = 179.45
155랑 179.5랑은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이게 어찌된 일일까요?

위도상 1도 37분=97분 입니다. 97분과 97마일. 즉, 그는 1분과 동일한 마일 단위를 썼다는 얘깁니다. 즉, n miles, nautical
miles, sea miles, 우리말로 '해리'입니다. 해리(해상마일)은 바다, 혹은 하늘에서 여전히 쓰이는 단위로 위도상 1분을 1마일로
잡습니다. 현재의 위도를 알면 바로 거리가 되기 때문에 꽤 편리한 단위 입니다.
아문센, 스콧, 섀클턴 모두 남위 90도를 향해 나아갔고 태양의 고도로 위도를 측정했으며 그 수치 그대로, 해상마일을 단위로 썼습니다.
그런데 이걸 nautical miles나 n miles, nm이라 쓰지 않고 geographical miles라는 용어를 썼습니다. 같은 의미죠.

위의 km 수치는 죄다 틀렸습니다. 마일에다 1.6이 아닌 1.85를 곱해야 했습니다. 저 일기문의 번역자가 고증을 게을리했다고 해도
단지 원문의 only 11 miles(geo.)를 무시하지 않았다면 뭔가 잘못됐다는걸 깨달을 수 있었을 겁니다.

네이버에서 '스콧 17.7km'로 검색을 해봤습니다.
  
귀환의 여정은 끔찍하기 그지 없고, 최악의 일들이 계속 되었습니다.스콧의 일기는 3월29일에서 멈췄고, 극점을 향해 출발한지
5개월만 이었습니다.식량과 연료 저장소 까지의 거리가 17.7Km 떨어져 있다고...

스콧의 일기는 3월29일에서 멈췄다. 극점을 향해 출발한지 5개월만 이엇다. 저장소 까지의 거리는 17.7Km떨어져 있다고 생각하며
매일 출발하려 했으나 사나운 눈보라 때문에 텐트 밖을 나가지 못하고 있다고...

그러나 나는 앤 패디먼의 '서재 결혼시키기'에서 처음으로 로버트 팔콘 스콧 대령의 영웅적인 죽음을... 죽었다' - 앤 패디먼
'서재 결혼시키기' p48 중에서 그리고 마지막 저장소인 원톤 캠프까지 겨우 17.7km...

로버트 스콧이라는 사람을 책에서 봤는데요. 그가 남극에 도착한 후에 베이스 캠프로 돌아오는 길에서 어떤 사람이... 죽었다'
- 앤 패디먼 '서재 결혼시키기' p48 중에서 그리고 마지막 저장소인 원톤 캠프까지 겨우 17.7km 밖에 남지 않은...


스콧은 11마일을 남겨두고 죽었습니다.  그리고 그 11마일은 17.7km가 아니라 약 20.4km 입니다.
(사실 저 원톤 캠프도 1톤 캠프라 쓰는게 좋다고 봅니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저 지리마일 또는 해상마일은 일정하지가 않습니다. 위도는 극점으로 갈수록 급격히 줄어드는
경도와 달리 거의 일정하지만 1도 간의 거리가 완전히 같지는 않습니다. 지구가 온전한 구형이 아니기 때문 입니다. 극점으로
갈수록 아주 약간씩 늘어납니다. 그래서 아주 정확히 km로 환산하려면 꽤 복잡한 변환 과정이 필요합니다.

국제 표준으로 해리를 위도 45도 지점 기준으로 정해 놓았습니다. 그런데 영국은 멋대로 자기네들 기준에 맞춰서 약간
다른 수치를 씁니다. 하지만 어차피 그 당시 탐험가들은 그런 고정된 수치와 무관하게, 직접 측정한 위도를 바로 거리로
환산해서 썼습니다.

여기에, 이동거리의 경우 썰매에 달린 거리계의 수치를 인용해 쓰기도 했는데, 일직선으로 정확히 달린 것도 아니고, 또 설매의 거리계
라는게 뒤에 따로 달아놓은 바퀴가 굴러가는 횟수를 가지고 재는건데 그 바퀴가 울퉁불퉁한 지면에서는 제대로 닿지를 않아 정확도가
떨어졌습니다. (썰매 여러 대를 평균내어 어림잡곤 했습니다.)
따라서 그들이 위도를 확인하여 계산한 거리와 썰매의 거리계를 보고 적은 주행거리는 분명히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게다가- 이 탐험가들은 종종 본래의 마일과 지리마일을 따로 썼습니다. (그리고 geog. 등을 항상 표기한 것도 아닙니다. 대부분 그냥
miles만 썼습니다.)

We covered 152 geographical miles by sledging (175 startus miles) in 10 marching days.
It took us 2 1/2 days to reach Butter Point(28 1/2 miles geog.)

아무래도 빙벽의 길이 등 위도와 상관 없는 거리는 일반적인 마일을 썼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건 원문의 해당 부분과
문맥을 파악해야 명확히 알 수 있을 겁니다.

복잡한 문제이고 때로는 그리 중요하지도 않은 문제 입니다. 하지만 최소한, 마일과 해리를 구분 못한건 좀 너무하다는
생각 입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Mithinza
11/12/29 14:02
수정 아이콘
뭐... 전문분야 번역자의 부재는 하루이틀 일이 아니니까요.

우리는 '사생아 소드'와 '위대한 검'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레빈슨
11/12/29 14:05
수정 아이콘
힘세고 강한 아침!
번역자가 많은것을 깊이 알수는 없을 것이고 그래서 감수과정이 중요한 것이겠죠.
11/12/29 14:48
수정 아이콘
난 이 일이 너무 좋아... 를 밀어봅니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34290 [일반] 장사힘드네요... 장사하다 맞기까지했습니다. [24] 옹겜엠겜6956 11/12/29 6956 0
34289 [일반] 지식채널e - 5분 [3] 김치찌개3902 11/12/29 3902 0
34288 [일반] 학교에서 깽판 좀 쳐볼 만한 나라 대한민국 [57] 레몬커피6091 11/12/29 6091 0
34287 [일반] 대구 자살 학생 가해자들이 주고받은 문자가 공개되었네요. [49] 이루이7063 11/12/29 7063 0
34286 [일반] 유교에 대한 짧은 단상 [18] 로렌스3576 11/12/29 3576 1
34285 [일반] 소방관 2분 원대복귀 하셨다는군요. [35] 烏鳳6167 11/12/29 6167 0
34284 [일반] 아내와 함께 LOL을.. [52] Hook간다5722 11/12/29 5722 1
34283 [일반] [프야매] 저코진리(?)덱 11한화 풀육성 분석. [19] 제르4702 11/12/29 4702 0
34282 [일반] 된장찌개는 어려워. [67] 삭제됨4884 11/12/29 4884 1
34281 [일반] 지식채널e - 마지막 비행 [3] 김치찌개3722 11/12/29 3722 0
34280 [일반] [프야매] 11LG 타투 분석 [28] 낭천5477 11/12/29 5477 0
34277 [일반] 기사 자체가 스포가 되는 나는가수다 2번째 새가수!!! [41] blackforyou6261 11/12/29 6261 0
34276 [일반] [정치] 헌재, SNS 선거운동 규제는 위헌 [17] ㈜스틸야드3712 11/12/29 3712 0
34275 [일반] 남극점 경주...외전 - mile의 번역 문제 [4] epic3673 11/12/29 3673 0
34274 [일반] 국제앰네스티 정봉주 전 의원의 양심수 선정 검토 중, 김근태 전 장관 위독 [48] New)Type5894 11/12/29 5894 0
34273 [일반] 위키피디아가 경영난을 겪고 있는 모양입니다. [20] Mithinza5271 11/12/29 5271 0
34272 [일반] 부산 금정체육공원에서 활동할, 축구회 모집글입니다. [3] 칼잡이발모제3661 11/12/29 3661 0
34271 [일반] 김문수 119 전화 관련 사과 올라왔네요 [252] UMC12087 11/12/29 12087 0
34270 [일반] 2011 StarCraft Award in PgR21 - 스타크래프트2 부문 수상자 인터뷰 kimbilly2967 11/12/29 2967 0
34268 [일반] 프로야구 매니저 2011선수업데이트 기념 -11롯데vs08롯데- [30] nickyo6490 11/12/29 6490 0
34267 [일반] 박재홍 선수협회장의 인터뷰가 올라왔습니다. [28] Morning4100 11/12/29 4100 0
34266 [일반] 정말 별거아닐수도있을거같은 사기(?) [30] 감성적이지만감정적이지않은5429 11/12/29 5429 0
34265 [일반] 서기 2012년을 맞아하는 가벼운 미래 예측 [40] kimera5601 11/12/29 5601 1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